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17화 (217/328)

"아아아...."

협회, 스타더스의 사무실.

언제나처럼 그곳에 앉아있던 신하루는, 약간 피곤한 얼굴을 한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쁜놈.'

"하아..."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며칠전에 있었던 에고스틱의 테러.

또 어디서 새로운 빌런을 끌고 온 그와 맞서 싸우다가, 마지막에 괜히 울컥해가지고...

다 잊고 일에 집중하려고 해봐도,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 순간에 그녀는 계속해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하게 됐다.

....히어로가, 빌런 앞에서 울컥해가지고 괜히 욕한다음 도망친다?

거기다가 찔끔 눈물까지 흘린거같다?

...심지어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에고스틱 앞에서 했다?

".....으으."

그때의 일을 생각하던 스타더스는, 다시 약간 귀를 붉혔다.

....진짜 그때 미친거 같다, 미친거 같아.

[스타더스. 몸은 어떤가. 괜찮은가? 이상이 있다면 바로 연락하게.]

그때, 컴퓨터의 협회내 메신저를 통해 오는 알림.

확인해보니 협회장이 보낸 것이었기에, 그녀는 대충 괜찮다고 답장을 해서 보냈다.

...저번 카타나라는 빌런과의 싸움 이후, 확실히 협회장이 조금 더 그녀의 몸상태를 걱정하는 느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마 사실 따지고보면, 그 카타나는 빌런이 지금까지 스타더스 그녀가 상대해온 적들중 제일 강한 편이었으니 말이다.

'....카타나라는 그 여자가, 생각보다 강한 능력자였구나....'

싸울때 까지만 해도 몰랐으나.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카타나는 빌런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능력자라고 한다.

...솔직히, 그때 그 여자랑 싸울때는 분노에 휩싸인채 무아지경으로 싸워서 제대로 기억도 안나서인지.

스타더스는, 카타나가 그녀가 지금까지 싸워왔던 빌런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었다. 특별히 강한 것 같지도 않았고.

다만.

"그렇게 강하나...."

나중에 협회장과 뉴스에 나오던 내용을 보면, 카타나라는 빌런은 상당히 강했나 보다. 애초에 일본 능력자 랭킹 1위라고 하니 뭐.

그래서 일본에서도 그런 카타나와 대등하게 맞서싸운 자신이, 상당히 화제라고 하기도 하고.

'하긴...'

...자신은 그녀와, 딱히 생사결을 하고 싸운건 아니었다. 카타나라는 여자도 자신을 막 기필코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마치 대련을 하듯 움직였었지. 스타더스 그녀도 일단 이 카타나는 제압만 하려고 했지 죽이려 한건 아니었고.

특히 중간에 에고스틱이 막았었으니까 그렇지... 어쩌면 생사결로 싸웠으면 또 달랐을지도...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스타더스는, 또 문득 그날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카타나와 거의 껴안고 손까지 잡던 에고스틱과, 그걸 보고 울컥해서 쏘아붙인 자신....

"으으으으...."

볼이 붉어진 그녀는, 쪽팔린 마음에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결국책상에 엎어졌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뭐에 씌였나...

하지만.

차가운 책상의 감촉을 느끼며.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때는.

왜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그 카타나라는 빌런 여자와 껴안고, 손을 잡고 있는 에고스틱을 보며.

그녀는 정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었다.

"왜지...."

...그래.

다른 빌런이랑 결탁한 에고스틱을 보고 그랬었던걸꺼야.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는 뜻이니까. 빌런세력의 위험성이 더욱 증가했다는 걸테니까 히어로로써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에고스틱도 나쁜놈이 맞잖아? 그러니까 그런걸꺼다.

...그래, 그런걸꺼야.

.....

"......"

정말, 그거 하나 때문일까.

"....."

단지 그거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게 맞는걸까.

신하루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쿨럭, 저한테 하나 빚지신 겁니다.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그렇게.

신하루는.

서울 한복판, 드높게 새워진 협회 건물 상층에서.

홀로 자신의 사무실에 엎드린 채.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홀로 깊은 생각에 빠졌고.

'....그래.'

이내 그녀는, 다시 약간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결론을 내렸다.

"....이건, 다. 에고스틱 때문이야."

나한테는.

나보고는, 자기만의 히어로라고 해놓고서.

대놓고 앞에서 막, 다른 사람과 그러면.

당연히 히어로로써, 기분 나쁠수도 있는거 아니야?

그래. 그녀가 이상한게 아니다.

아마 자신처럼 아치에너미가 있는 히어로들은 다들 그럴거야.

그리고 빌런이면, 숙적인 히어로만 신경쓰고. 히어로한테만 그래야지. 그게 상식 아니야? 그래. 그게 상식일거다.

...심지어, 차라리. 자기 입으로 가족이라고 말한 에고스트림 동료면 몰라.

처음보는 다른 이미 유명한 빌런 데리고와서, 나랑 싸우게 해놓고. 자기는 막 걔랑 손잡고 그런 짓 다하면.

...담당 히어로로써, 숙적으로써, 아치에너미로써.

좀 서운할 수도 있는거 아니야?

그래. 그런, 거다.

"....그래. 잡아서 어디 감금해두는게 역시 맞아...."

자꾸 자신의 히어로를 안보고, 다른 곳만 보는 빌런은. 벌을 줘야지. 일단 가둬놓고 내 옆에 두는게 맞다. 그래, 빌런은 잡아야지.

그렇게 책상에 엎드려있던 스타더스는, 살짝 붉어진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해서 피곤해진 머리와, 쌓인 스트레스, 혼란스럽고 서운한 마음이 합쳐져.

그녀는 결국, 그런 결과를 도출해냈고.

[상대 기습하는 법]

[상대 기절시키는 법]

[순간이동하는 능력자 가둬놓는 법]

[도망치는 상대 붙잡는 법]

...이내, 한동안.

그녀의 인터넷 검색기록은, 상당히 '전문적'이 되었다.

오직, 단 한명만을 위해서.

***

[네 다인씨. 어차피 다음주에 하루랑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한번 은근슬쩍 물어볼게요.]

"그래. 늘 고맙다 설아야."

[뭘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번에 다인씨가 저한테 카타나씨 소개시켜준 덕분에, 이번에 양국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거든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이설아.

...하긴, 이설아가 대한민국 정치계를 움직이고. 카타나도 이제 음지에서 일본 협회랑 정부를 장악한 상황이니. 둘이 만나면 사실상 그게 정상회담인가...?

뭐 친해졌다고하니 다행이지만.

[그리고 그 안티 에고스틱 방송...이라고 해야하나? 다인씨가 만든 그 방송국 있잖아요.]

"어."

나는 그때 이설아가 하는 말에 귀를 귀울였다.

내가 기자하나 섭외해서 만든, 에고스틱 비판 전문 방송국.

나중에 이설아와 얘기하다보니 말 나와서, 그녀한테 방송국을 완전히 매각했었다. 나보다는 이설아가 지분같은거 관리하는게 나을거 같아서 말이지. 난 신경쓸 틈이 없기도 했고.

[이번에는 그 대충 일본 빌런 데리고 온거 가지고 대충 에고스틱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런 컨셉으로 가고 있기는 한데...]

"어, 잘하고 있는데 왜?"

[...그게 지금 항의를 너무 받아서, 저희 방통위 쪽에도 막 프로그램 폐지 청원이 올라오고 있어요.]

"....음. 그런 억까에 굴할 수는 없지. 계속 하라 그래."

내 빌런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게는, 계속 세뇌시킬 수밖에 없다. 아니, 일본 빌런 데리고 왔으면 욕을 해야지 쇼라고 감탄하면 어떡해. 난 내가 틀렸다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게 내가 빌런인 이유를 설명해야지.

사실, 빌런중의 빌런으로 인정받아 카테달까지 들어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상 무슨 의미가 있긴 싶다만... 어쨌든 계속 하고는 있다.

[...그게 될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알았어요.]

그렇게 납득한 이설아와 몇마디를 더 나누다.

마침 PMC 얘기가 나왔다.

[아 그리고 저도 PMC 애들 한번 만나볼까 하는데, 어때요? 그래도 나름 제 그룹 타이틀 달고있는 애들인데 너무 신경 안쓴거고 같기도 하고요.]

"아, 좋지. 이제 슬슬 애들도 거의 능력 완성 끝났으니까 이제 현역에 실습 내보낼 때 됐거든. 그럼 그건 그때 얘기하자."

[네. 그럼 다인씨도 푹 쉬세요. 하루건은 만나고나서 또 연락드릴게요.]

"응 알았다. 고마워."

뚝.

그렇게 이설아와의 전화도 끝나고.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려놨다.

"뭐해? 이거 먹을래?"

"음? 아, 고마워."

그때 아이스크림 바를 빨면서 내쪽으로 오던 최세희가 내게 아이스크림을 휙 던졌고.

나는 그걸 공중에서 잡아서 뜯었다.

....망고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아니, 이거 말고 다른 맛은 없어?"

"없어. 저번에 서자영이 싹다 이걸로 시켰었잖아."

"...."

"근데 이거 맛있는데? 왜."

그렇게 노란 망고바를 할짝이며 말하는 최세희였다.

...망고스틱 보유국이니까 망고스틱을 집에 쌓아둬야한다는 논리로 어디서 망고맛 하드를 잔뜩 사온 서자영 덕분에, 냉장고에 마르지 않는 이 망고스틱들.

나는 차가운 바를 입에 가져다댔다.

시원하고 달달하니 맛있긴 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카타나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스타더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는지, 꽤나 만족한 모양. 좋은 시간이었다고, 기회되면 언제든 오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카타나를 배웅해준 뒤.

나는 그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다.

바로 스타더스. 그녀가 마지막에 왜 그랬냐에 관한 것.

"......"

나쁜놈이라...

그래. 나는 나쁜놈이 맞다. 애초에 빌런이 나쁜놈이 아니면 더 이상한거지.

하지만... 그날 보인 스타더스의 반응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마치... 서운함에 삐진 느낌같다고 해야될까.

그리고.

'....나쁜놈.'

그 말을 들은 나도, 심장이 덜컹거렸다.

...사실,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굳이 따지자면 자유의 여신상도 안터지고 엑스 마키나의 죽음이 발표된 날 즈음인가.

이상하게 스타더스가, 전보다 눈에 더 밟히기도 했다.

그래서 왜 운거야.

나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설아가 다음에 스타더스랑 만날때 알아본다고 했으니, 그거나 믿어야지.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며, 티비 소리를 라디오 삼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덩쿨마녀도 슬슬 오랜만에 보러가야 되는데, 언제가지...

[...전 회장이 마침내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순간 귀에 어째 구속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쎄함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냥 넘겼다.

순간이동이랑 제일 관련없는게 구속인데 뭐.

"...야, 근데 세희야. 좀 춥지 않냐?"

"아니? 따뜻한데. 네가 아이스크림을 먹고있어서 그런거 아니야?"

"그런가?"

....쎄한 이유가 그거때문이었나?

나는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스타더스에게 테러를 하고 난 이후.

나는 집에서 푹 쉰뒤, 여러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특히 최근들어, 예전과는 달라진 점으로는.

"흡!"

"이야, 이걸 피해?"

나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함께 대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갑자기 왜 너도 능력 테스트 한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우리 코칭만 해줬잖아."

집 앞 숲속.

공중에서 나한테 번개 공격을 몇번 날려주다가, 내려오며 묻는 최세희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냥. 혹시 모르니까."

....정확히는 어제 구속 어쩌구 하는 뉴스를 본 다음에 기분이 쎄해져가지고 그런 거지만.

하여튼, 예전부터 슬슬 나도 능력을 강화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앞으로 점점 사회가 혼란해질텐데, 미리 미리 대비는 해놔야지.

하여튼, 그런 생각으로 난 내 회피능력을 시험해봤다. 최세희가 번개를 던지면, 내가 그걸 순간이동으로 피하는 식으로.

그리고 결과는.

"....존나 잘 피하는데?"

"그러냐?"

"어. 아니, 막판에는 나름 진심으로 휘둘렀는데 어떻게 한대도 안맞냐."

능력 사용만으로 은근 체력 소모가 컸는지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이내 나와 그녀가 함께 지상에 착지하자, 기다리고 있던 하율이가 우리한테 수건과 물을 건내줬다.

"고생했어요 세희언니, 다인오빠."

"고마워 하율아."

감사인사를 건낸 나는 물을 한모금 마셨다.

적당히 목을 추릴 정도로 마시고 앞을 보니, 땀을 닦고있는 최세희가 보였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도 무슨 여름처럼 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 아마 이럴줄 알고 미리 얇은 옷을 입고 온 듯 하다.

"하아... 죽겠다..."

"제가 힐해드릴게요. 두분 다 기다리세요."

"어. 고마워어..."

이내 하율이의 손에서 빛이 번쩍하며.

우리 둘에게, 뭐가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갔다.

"어휴. 이제야 살겠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최세희.

나또한 아까보다 더 가벼워진 몸에 힘을 쭉 늘어트렸다. 역시, 하율이가 최고다. 사실 하율이 정도의 힐러한테 피로회복을 받고있는게 좀 언벨러스하긴 하지만... 본인이 만족하니 됐나.

그렇게 어느정도 테스트를 끝낸 우리는, 집까지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아니, 근데 정말 너 순간이동 엄청 잘한다니까? 무슨 제 6의 감각이라도 있는줄. 더이상 뭐 훈련은 안해도 될거같은데?"

"맞아요 다인오빠. 저도 보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그래?"

나는 잠시 아까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늘에 떠서, 최세희가 10만볼트 날리는걸 다 피하던 순간.

대충 짚어보면 순간이동의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 그렇지, 컨트롤 자체는 나름 잘되는 것같다. 하긴 나름 오래 쓰긴 했으니.

물론 방금도 최세희랑 공방 끝나고 나니까 머리에 현기증이 핑 도는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나마 하율이가 힐해준 덕에 어느정도 괜찮긴 했다.

"...그래도 순간이동은 틈틈히 좀 더 능력 유지를 위해 가끔 연습해야겠어. 이게 또 오래 안쓰다보면 감각이 무뎌지더라."

적당히, 어느정도 거리 이동할 스택만 쌓아놓고 훈련하면 되겠지.

"하긴, 그건 맞지. 내가 그래서 늘 주기적으로 능력 쓰는거야."

최세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그게 아니라, 그냥 번개로 다 박살내는걸 좋아하는거 같은데.

어쨌든, 순간이동은 됐고... 결국은 무력인가.

나는 내 다른 능력, 염동력을 떠올려봤다.

염동력은 뭐 총기나 무기 띄워서 사용하는게 제일 맞다. 애초에 좀 약해서.

결국 그럼 피지컬로 남은건 베히모스인가.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베히모스를 깨웠다.

뀨잉잉--?

환청과 함께 깨어나는 듯한 녀석.

나는 그렇게 안쪽 옷에 방탄슈트처럼 붙어있던 검은촉수같은 녀석을 꺼냈다.

이내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자, 공중에 떠서 내 주먹을 휘어잡는 녀석.

그렇게 마치 두꺼운 검은 거병의 팔같은걸 낀 모습이 된 나는, 근처를 향해 주먹을 날려봤다.

파앙-!

굉음과 함께, 쓰러지는 옆에 있던 나무.

...음 미안하다. 그래도 이미 얘 친구들도 원래 훈련의 여파로 많이들 쓰러져있으니 괜찮을꺼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최세희는 흥미롭다는 듯 내 팔에 붙은 검고 커다란 베히모스-검틀렛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제 드디어 그 검은... 무언가도 써먹게?"

"써먹기야 원래부터 써먹긴 했고, 이제 슬슬 얘도 좀 다양하게 전투에 활용하는 법 찾아보게."

뀨잉~

나는 다시 검은 촉수를 해제시킨 뒤 가슴팍에 앝게 방탄조끼처럼 둘러놓았다.

내가 한은그룹 지하 실험실까지 들어가서 챙겨온, 한은그룹 지식의 결정체 베히모스.

평소에는 별로 쓸 일이 없어서 방탄조끼 신세인 비운의 생체병기이지만, 이제 슬슬 얘도 몸처럼 컨트롤 할 방법을 배워야겠다.

왜냐하면.

"......"

최세희와 하율이와 떠들며 숲을 걷다가, 나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세계관이 막장이 되는 중후반부. 드디어 튀어나올 네임드 빌런들과 월광교 게이트 사건까지 생각하면... 내 몸 하나 잘 간수할 정도는 되야겠지.

그렇게 저택 앞까지 도착한 뒤.

동생을 보러간 하율이와 헤어지고, 최세희와 나는 저택 한쪽편으로 같이 걸어갔다.

"휴, 바로 샤워해야겠다. 너도 할거지?"

"당연하지."

"그럼 끝나고 같이 저쪽에서 바나나 우유나 마시자. 콜?"

"좋지."

"오케이. 십몇분후에 내려와라."

그렇게 최세희와도 헤어진 뒤.

나는 잠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앞으로를 생각했다.

...능력을 어느정도 파워업 하겠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한 이유.

따지고보면, 오늘이 드디어 그 날이어서이기도 하다.

바로, 원작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는 그 사건.

바로 월광교 게이트 사건의 신호탄이, 오늘 터지기 때문

나는 그 생각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몇시간 뒤려나.

***

어두운 밤하늘.

하늘에 열리는, 거대하고 푸른 포탈.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 전 하늘에 열리는 게이트들.

그곳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괴수들.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불타는 도시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광소하는 노인.

인간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신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렇게 이세계에서 찢어진 차원의 틈을 타, 전 세계를 공격하는 괴수들의 습격...

"...."

최세희와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뒤.

씻고 나온후 같이 근처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떨다가, 다시 거실로 돌아와서.

나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마도, 전세계 어디에선가 뜬금없이 포탈이 하나 열릴거다.

그리고 거기서 괴물 몇마리가 튀어나오겠지.

단순히 빌런의 초능력 중 하나라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능력자들 중 특히 강한 몇몇은 그 모습을 보고 느낄거다.

이건, 단순히 평범한 능력이라기에는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이질적이라고. 어쩌면 더 큰 사건의 전초전이 될 수도 있을거라고 예측할 수도 있고.

물론 그런 생각은 그냥 단순한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넘길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카테달은 다르겠지.'

그래.

나는 저번 카테달에서 미리 경고를 했었다.

차원의 경계가 무너져, 다른 차원에 사는 괴수들이 넘어올 수 있다고.

하여튼 오늘 결판이 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티비를 봤고.

그렇게 기다리기를 몇분.

마침내, 속보가 떴다.

[실시간 글로벌 소식입니다! 현재 프랑스 상공에서 기묘한 무언가가 떠있다고 하는데요, 한번 보시죠!]

"....."

그리고 뜬 화면.

드디어 직접 보게 된 게이트.

[

.........

]

그것은, 확실히 기묘한 광경이었다.

사람 키 2배 정도의 크기의 원이, 하늘에 떠있는 광경.

그러나 그것은 기묘하게도, 하늘에 떠있다기 보다는 마치 하늘이 '깨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포탈 너머로 보이는 우주.

아니, 정확히는 우주같은 무언가라고 해야할까. 새까맣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묘한, 안쪽에 작은 별빛들이 이 보이는 그런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포탈 주위를 도는 푸른 기운들.

내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계속해서 앵커의 말이 들려왔다.

[네. 그리고 현지 언론에서 전한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2개의 괴수가 튀어나왔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사상자가 나오기 전에 히어로들이 진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죽어있는 괴수들의 사진.

푸른색에 보라빛, 검은색이 섞여 이루어진 마치 도마뱀같은 그것들.

누가봐도 지구의 생명체가 아닌 그것을 띄운 채, 앵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현지 협회는 이 일을 빌런의 소행으로 규정한 뒤 해당 능력을 사용한 빌런을 찾고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네티즌들은 '신기하다' '무섭다'등의 반응을 전했으며...]

그렇게 끝난 뉴스를 보며.

나는 티비를 껐다.

"휴우...."

결국, 원작대로 흘러가는구만.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비볐다.

저건 당연히, 월광교가 저지른 짓일거다. 아마 슬슬 차원의 구멍을 내는 법을 연구중이겠지. 오늘이 첫 성과일거고.

물론 어차피 쟤네가 없어도 결국 열릴 게이트긴 하니.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도 수십개월 남긴 했다. 미리미리 대처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소리.

"...역시, PMC 애들 성장시키는걸 더 빨리 해놔야겠네."

내가 최대한 막아도 어차피 어느정도는 뚫리게 되어있다. 그때가되면 대한민국 땅을 전부 스타더스가 지킬 수 있을리가 없겠지. 원작에서도 그렇고.

즉, PMC 애들을 키워서 괴수 처리는 이쪽이 도와주게 해야한다. ...슬슬 얘네도 이설아를 통해 어떻게 스타더스와 연결시켜야되나.

그렇게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던 나는.

문득 스타더스를 떠올리고는, 다시 마음이 좀 초조해졌다.

...그래, 월광교에서 게이트 열리는건 다 좋다 이거야. 어차피 어느정도 계획이 있긴 하니, 이건 플랜대로 가면 된다.

다만, 그 보다 더 훨씬 중요한게 있으니.

"... "

아직도 저번 테러에서 스타더스가 보여준 그 울먹이는 모습이 신경쓰인다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이설아가 곧 만난다고 했으니, 그것만 기다리는 수밖어에 없으려나.

"씁..."

아 신경쓰여.

아니, 월광교보다 이쪽이 더 직감적으로 불안하다고...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대한민국 어딘가, 숨겨져있는 비밀스러운 곳.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텅 빈 교회같은 어두운 그곳에서.

뒷짐을 서고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향해, 푸른 기운이 감도는 사제복을 입은 남성이 고개를 숙인채 말을 전했다.

"...교주님,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신이 계신 그곳의 통하는 차원과 문을 이국의 선교자들이 열어내었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수치와 결과를 상세히 전한 그.

허공의 화면에 비춰 괴수의 모습과 외차원에 대한 사세의 설명이 끝나고.

이내 다시한번 고개를 숙인 뒤, 물러간 그.

이내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그 얘기를 듣기만 하던 노인, 월광교주는.

이내 뒷짐을 지었던 손을 푸른뒤,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드디어 그날이 다가오는구나."

월광교주, 천월황은 자신의 주먹진 손을 들어올린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드디어, 이 비루한 세계를 정화할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이 어긋난 신을 섬기는 이들을 심판하고, 구세계를 무너트릴 새로운 신이 이 우주에 강림하는 순간.

세계는, 자신들의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 월광의 의미가 무엇인지, 뼛속깊이 깨닫게 될것이니.

"크흐흐.  크흐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마치 마른 기침을 터트리듯, 광기어린 노인의 갈라진 웃음소리가 텅 빈 교회를 가득 울렸다.

"쿨럭, 쿨럭. 그래...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그때가 되면, 과연 아해들이 어떻게 발버둥칠지, 기대가 되는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펼쳤고.

그렇게 갈라진 노인의 손에는, 검은색의 작은 구체가 마치 주위의 것들을 빨아들이듯, 블랙홀처럼 웅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험은 성공했다.

지금은 단 하나지만. 곧 있으면, 세계 모든 곳에 차원의 연결통로를 만들 수 있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모든 이들이 외차원의 심판앞에 무력하게 짓밟힐 것이다. 그를 배신하고 떠난 무녀도, 그녀를 데리고 간 씹어먹어도 시원치않을 그 놈도 전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쓸려나가겠지.

결국 마지막에 웃는 것은, 달의 신의 인도를 받은 우리 월광교가 될 것이다.

"크흐흐. 크하하하하하!"

아무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차원의 통로도 못알아본 채, 멸망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도 상도도 못한채 무력하게 심판의 날에 죽어나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월광교주는 홀로 텅 빈 교회 안에서.

홀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

[프랑스에서 열린 포탈에서, 괴수들이 튀어나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능력들과는 이질적이어 보이는 이 사건에 대해 프랑스 협회 측은 '엄정히 조사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협회측이 올린 sns글도 화제가...]

"아. 저게 다인씨가 말한 그 차원의 통로인가 뭔가인가?"

유성기업 건물 최상층, 회장실.

그곳에서 뉴스를 틀어 보던 이설아는, 월광교의 비밀 병기를 한방에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월광교라는 놈들이 지들끼리 준비한다던 그거겠구나."

긴 하늘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채, 월광교주가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만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녀.

이내 그 사건의 모습의 확대 사진을 보던 이설아는, 잠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사진속에 보이는, 하늘에 떠있는 다인씨가 말했던 일명 포탈. 차원문의 모습.

마치 막 포토샵을 배운 어린 아이가 하늘사진에 원모양으로 우주를 합성해 놓은 것처럼, 이질적인 풍경에.

그녀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니까. 결국 저런게 전국 곳곳에 생긴다고 했었지?'

다인씨에 말에 의하면, 저것들은 월광교가 뚫어낸 외차원의 문. 나중되면 언젠가 저런것들이 전세계를 뒤덮을거라 말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괴수들. 히어로 몇명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정도로 많이 나온다 했었지.

'그래서 그가, 예전부터 히어로들의 수를 늘려야한다고 했었고.'

앞으로 사회가 더 혼란해질 만큼, 강한 초상 능력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스타더스나 섀도우워커, 그리고 자신 셋이서 괴수들의 습격을 다 막을 순 없을테니.

그래서 다인씨가 1차적으로 준비했던게 그 PMC.

벌써 어느정도 훈련이 마무리되어서, 이제 슬슬 실전 연습만 남았다고 했었다. 그리고나서 2기생을 뽑는다고 하고.

그렇게 이설아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그때.

때마침, 비서가 노크소리와 함께 일정을 알렸다.

[이설아 회장님. 지인분과 약속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 그래요. 이제 슬슬 가야겠네요."

그래. 오늘은 오랜만에 하루를 만나기로 한 날.

이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빈틈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녀였지만, 몇 안되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늘 시간을 내는 그녀였다.

그리고...

'다인씨의 부탁도 있었으니까 말이지.'

그가 일으켰던 저번 테러에서, 스타더스. 하루가 왜 표정이 그리 안좋았었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좀 슬쩍 물어봐달라는 그의 말도 있었고하니.

그렇게 이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향했다.

***

그로부터 몇시간 뒤.

이설아는, 어느 카페에서 신하루와 함께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여기 참 괜찮지 않아?"

"응, 맛있네."

조각케이크를 포크로 한조각 베어먹으며, 설핏 미소짓고 있는 신하루. 그런 그녀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있는 이설아.

그런 그녀들의 주위로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애초에 이설아가 카페 전체를 그냥 대관해버렸으니까.

둘 다 신상을 가렸다고해도, 푸른 머리칼과 노란 황금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인 둘이서 앉아있으면 모두의 시선이 쏠려서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당연히 히어로 관련 대화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적부터 이설아와 함께 지낸 신하루도, 그녀가 그런 성격인걸 알기에 별말없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만나고 밥을 먹은 뒤, 이내 이렇게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수다떨기를 한참.

신하루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인지 꽤나 풀어준 모습을 보이며, 가끔가다 웃음도 흘리는걸 보고.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던 이설아는, 이내 은근슬쩍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맞다, 하루야."

"응?"

포크를 내려놓는채, 약간 미소지으며 대답하는 하루.

그런 그녀에게 이설아는 이내 본론을 꺼냈다.

"별건 아니고, 저번 테러 있잖아."

"저번 테러? 그 황금 날개 달고 창 휘두르던 그 빌런?"

"아니... 그거 말고, 에고스틱이 한 테러 있잖아."

"아."

그 얘기를 듣자, 살짝 미소가 흐려진 하루.

그러나 이설아는 그걸 눈치 못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번에 그때 협회에서 테러 이후에 너 얼굴 봤을때, 좀 안좋아보이더라고. 무슨 일 있었어?"

슥 지나가듯, 걱정스럽다는 듯 자연스럽게 물은 이설아.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신하루는 얼음이 잠긴 잔을 잠시 빨대로 뒤적뒤적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냥...."

"그냥?"

"그냥. 그때 잠시 고민이 생겼어서."

이내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녀.

그러더니 신하루는 잔에 담긴 음료수를 빨대로 한모금 더 마시더니, 약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 했다.

"고민이 됐었거든. 좀 답답하기도 하고, 막 이유없이 부정적인 감정이 요동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내 말끝을 흐린 그녀는, 설핏 웃더니 이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는, 대충 해결방안을 찾았어. 그러니 걱정 안해줘도 돼. 고마워."

"어... 해결방안을 찾았다니 다행이네. 무슨 고민 생기면 나한테도 말해줘."

"응."

다시 미소지으며 컵을 들고 음료수를 마시는 하루.

그런 하루의 모습을 보며, 이설아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봐도, 더이상 말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걱정하지말라고 못박았으니, 더 묻지 않아도 괜찮다는 소리겠지.

뭐, 일단은 지금은 괜찮아 보이긴 하니까.

그렇게 이설아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잡담을 나누다 에고스틱 얘기를 기점으로 히어로 업무 관련 얘기를 시작한 둘.

"맞아. 부산이랑 이 근처는 빌런이 진짜 별로 없던데, 이상하게 서울은 빌런이 많더라? 덕분에 하루만 고생하는것 같아 내가 미안하네."

"뭘, 오히려 난 다행이라 생각해. 따로 멀리서 일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까이서 테러가 일어나는게 낫거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설아는 PMC 얘기도 꺼냈다.

"맞아. 내가 저번에 얘기 했었지? 내가 능력자 애들중에 좀 강한애들 모아서 키우고 있다고."

"아... 어. 기억나는거 같아."

"이제 슬슬 얘네들도 현장 투입 시켜볼까 하는데, 혹시 나중에 시간날때 도와줄 수 있어?"

하루가 바쁠때 좀 약하면서도 B급 히어로들이 상대하기에는 좀 힘든 적들은, 이들이 해결 할 수 있을거라고 덧붙이며 이설아는 살짝 물어봤다.

"어. 당연하지. 사람들 지키는 거잖아? 내가 시간날때 봐줄게."

"진짜? 고마워."

그리고 역시나, 신하루는 선선히 수락했다.

아무리 누가 뭐라해도 누구보다 히어로답고 사람들 지키는 일에 진심인 그녀인만큼, 치안에 도움이 된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던 것.

그로부터 몇십분 더 수다를 떨다, 이내 만난 시각으로 한참을 지난 후로부터 둘은 헤어졌다.

그렇게 다시 호위인력들의 경호를 받으며, 차 뒷좌석에 탄 이설아.

"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오늘 나눴던 대화를 복기했다.

오랜만에 만나 하루와 웃으며 떠드니, 큰 힘이 되었다. 역시 친구와 만나 떠드는 것만큼 스트레스가 풀리는 일이 없지. 거기에 나중에 꼭 PMC도 들리겠다는 약속도 받았고.

다만...

"......음."

이설아는, 침음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카타나 손을 잡고 나타난 에고스틱의 테러 이후 왜 힘들어보였냐는 자신의 질문에 고민이 많아라서라고 답했던 하루.

그 말을 할때만 해도 좀 어두워보였던 그녀였으나...

해결 방안을 찾았다고 말하더니, 다시 싱긋 웃는 하루였다.

'....해결 방안이 대체 뭔거지?'

애초에 고민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는만큼,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도 미지수.

다만 그렇게 말하는 하루는, 굉장히 후련해보였다.

"...."

이설아는 특유의 사업가의 감각으로 살짝 불길함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에이 설마. 뭐 별일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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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빌런이란 무엇인가.

주로 창작물 속에서 나오는, 주인공과 대적하는 악한 인물. 특히 이들중 메인 빌런들은, 주인공과 끝까지 대적하며 그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이 이길 수는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흑막처럼 보이는건 덤.

그리고 나는, 이제 와서 따지고보면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스타더스랑 끝까지 대적하고 그녀마저 자신의 주적이라 인정했는데 내가 메인 빌런이 아니면 뭐겠어?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 연합이자, 능력자들만 모인 우리는.

"이게 무엇이더냐?"

"솜사탕이에요."

...솜사탕을 만들어 먹고있었다.

아니, 사람이 가끔은 달달한것도 먹고 살아야지.

저택 앞 정원. 우리 데스나이트 아재가 소일거리로 만든다고 하고는 완전히 갈아엎어 만든 그 정원에서.

대체 어디서 솜사탕 기계를 구해온 최세희와 서자영.

그렇게, 때아닌 솜사탕 먹방이 정원 앞에서 펼쳐졌다.

"....굉장히 신기하구나."

제일 관심을 가지는건, 우리 수백년 산 신령씨.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에 비녀를 꼽은, 인물이 눈을 빛내며 솜사탕을 먹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물론 나도 솜사탕 하나를 들고 있었다.

분홍색의 솜사탕. 대충 뜯어서 입에 넣어보니 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

...어렸을적에 놀이공원 놀러가서 먹은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에 먹어보는거 같은데.

"하하하! 무료 솜사탕 나눔의 시간이 왔네! 다들 줄 스게나!"

만드는 방법을 배우더니 신나서 솜사탕 기계 뒤에서 솜사탕을 열심히 만들고있는 데식이 아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옆에서 혼자 집채만한 솜사탕을 뜯어먹고 있는 서자영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이건 어디서 찾은거냐?"

"음? 인터넷 보는데 팔더라고. 그래서 하나 덥석 사왔지."

벤치에 누워 그렇게 솜사탕을 하나 더 입에 넣은 채 말하는 서자영.

눈을 감고 행복하게 미소지은 채 우물우물하고 있는게, 솜사탕이 몹시 마음에 들었나보다.

"오빠. 거기서 뭐해요? 이리로 와요."

그때 내 팔을 잡고 끌어들이는 누군가.

봤더니 손에 하늘색 솜사탕을 쥐고 있는 서은이였다.

"이 맛도 먹어봐요. 맛있어요."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솜사탕을 때서 내 입에 넣어주는 그녀.

그렇게 들어온 솜사탕은,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녹듯이 흩어졌다.

"어때요?"

"맛있네. 달아."

사실 분홍색이든 하늘색이든 맛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하나는 딸기 맛이고 이건 블루베리 맛이라 했었는데... 대체 왜지?

하여튼 둘다 달달하니 맛있긴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저택 앞에서 펼쳐진 일종의 피크닉.

발단은 솜사탕 기계였지만, 어쨌든 다들 밖에 나와서 웃음꽃이 핀 모습이다. 보기 좋네.

그김에 아예 본격적으로 돗자리까지 깔아서 쉬는 와중에.

옆에서 솜사탕 먹는 모습을 열심히 사진 찍던 서은이가, 내게 문득 물었다.

"오빠, 근데 있잖아요?"

"응?"

"우리도 sns 해보는건 어때요?"

"sns?"

무슨 소리냐고 묻는 내 질문에, 서은이는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충 정리하자면, 인지도도 높일겸 에고스트림 공식 계정을 만들어 막 테러 사진이나 일상의 모습을 찍어 올리자는 소리. 예를들어 지금처럼 이렇게 노는 모습을 얼굴 가리고 올린다던가.

"...그리고 이런 우리 모습을 보면, 히. 그 여자도..."

마지막 말은 작아서 못들었는데, 하여튼 비슷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하여튼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글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싶다. 이미 국내에서 내 인지도는 엄청 높고, 세계급으로는 일본 말고는 내 존재도 딱히 없을텐데. 거기다가 괜히 그거 운영하면 시간만 뺐기고.

"딱히. 당장은 필요 없을거같은데?"

"힝... 알겠어요."

살짝 실망한 듯한 서은이였으나, 내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말로 겨우 안심시켰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내가 테러 그만두고 은퇴한 후에는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고.

하여튼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차를 가져온 수빈씨와 함께 차를 마쉬며 난 쉬고있었다.

....이 혼란스러운 시국에 솜사탕 먹고있으며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었지만, 뭐. 가끔씩은 이렇게 쉬어줘야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거 아닐까. 어차피 곧 있다가 또 다른 빌런 잡으러 원정 떠나야되는데.

내가 그렇게 쉬고 있을 때쯤.

"음...?"

때마침 이설아한테서 연락이 왔다.

***

"아 그래? 흐음..."

[네. 뭐 해결방안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일단 기분은 나쁘지 않아보였어요.]

"그래. 고맙다...."

[아 맞다. 그리고 PMC도 허락 받았거든요? 조만간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아마 실전 연습 시켜주려는 계획같던데요?]

"진짜? 그건 잘됐네."

이어지는 말에 나는 반가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우리 PMC도 미리미리 성장시켜 놔야지. 스타더스의 도움이면 큰 밑거름이 될거다.

[네. 나중에 일정 같이 잡으면 될 것 같아요. 저도 한번 내려가서 애들 좀 보고... 자연스럽게 스타더스도 소개하면 될 것 같네요.]

"그래. 날짜만 잡으면 될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그 이후로도 PMC와 월광교에 대한 얘기를 더 한 뒤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 슬슬 우리 PMC 쪽에도 말 해놓으면 되겠네. 한번 보러 가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마쳤다.

***

*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좋아하는 101가지 이유]

1. 첫 활동이 빌런 죽이는 거였는데, 그때부터 '스터더스에게' 라고 메세지 남겨놓음

2. 첫 배 테러부터 바로 스타더스 콜링ㅋㅋㅋㅋㅋㅋ

3. 기차 테러도 스타더스 부르더니, 테러 막아낸 스타더스 칭찬하면서 쓰다듬어줌 << 이게 안좋아하면 가능한??? 스킨쉽???

4. 갑자기 서울시 한복판에 악어빌런 나타났는데 스타더스가 멀리있었는지 안나타나자 그냥 자기가 나서서 물리침ㅋㅋㅋㅋ 스타더스 욕먹는거 완전차단ㅋㅋㅋㅋ

5.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같이 산다고 언급됐는데 대다수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염문설 한번 없음

6. 빌런 처리도 보면 대부분 서울지역에 몰려있음ㅋㅋㅋㅋ 그냥 스타더스 대신 해준거ㅋㅋㅋㅋ

*

*

*

99. 그 마왕성 빌런 등장했을때도 곧바로 날아와서 스타더스 구해줌... 이게 뭐다? 이쯤되면 '사랑'이다

100. 그리고 쓰면서 생각난건데 이름부터 에고(이)스틱 스타더스(트)로 줄인것까지 같음 헉....

101.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데식이빼고 다 여자인 것도 뭐다? 알고보니 스타더스가 다른 남자랑 싸우는거 보기 싫어서 그랬다는게 학계의 정설

위의 이유로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좋아하는건 '상식'이며

스타더스는 조속히 대한민국을 홀로 몇번이고 구해준 S급 히어로 에고스틱의 대쉬를 거절하지 말고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개추ㅋㅋㅋㅋㅋㅋ

=[댓글]=

[ㅅㅂ제목보고 설마하고 들어왔는데 진짜 101가지를 다 써놨네 무친련ㅋㅋㅋㅋ 정성추 준다]

[이거보니 ㄹㅇ 에고스틱이 스타더스 좋아하는것 같네 ㅅㅂㅋㅋ 뭐냐 좋아요 눌렀다]

ㄴ[왜냐면... 그게 맞으니까!]

[ㄹㅇ 오히려 스타더스가 에고스틱 안받아주면? 더 나쁜거 아닐까? 둘이 안이어지면 죄악이다]

[...일리있는 말인거 같네요.]

[SSS급 히어로인 에고스틱은 스타더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 근본인 에고스트림 전원과 먼저 이어지는게 '상식'이잖아?]

ㄴ[ㄹㅇㅋㅋ에고스트림 멤버들도 포기 안할거 같은데ㅋㅋㅋ]

ㄴ[말도안되는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어이가 없어서 정말.]

ㄴ[@Newday313 헉... 이분은 볼때마다 스타더스 편만 드네..... 혹시 스타더스임?]

ㄴ[......]

ㄴ[에고스틱 팬카페인데 스타더스가 왜 있겠냐고ㅋㅋㅋ 멀쩡한 회원 괴롭히는 전기망고구이단 수준ㅉㅉ]

ㄴ[나 일렉트라단 아닌데? 월광망고단인데?]

ㄴ[에고스트림=일렉망고 월광망고 보라망고 해커망고 다 있음 스타더스=혼자. 자 누구랑 이어지는게 맞지?]

ㄴ[왜 아이스망고는 빼먹음? 이게 근본이거든요...]

ㄴ[요즘 떠오르는 일본망고 무시함?]

ㄴ[ㅅㅂ 대체 왜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좋아하는 101가지 이유 게시글에서 에고스틱 애인 누구인가 토론이 벌어지냐고ㅋㅋㅋㅋ 진짜 지랄났다!]

*

"...."

"야, 이세검. 너 뭐해?"

"음?"

유성그룹 소속 PMC.

메인 건물.

스마트폰을 집중해서 보고있던 PMC멤버 1호 이세검한테, 뒤에서 얘기를 나누던 2호 서채영이 말을 걸었다.

"별건 아니다. 무슨 일이지?"

"나 참. 오늘 다인쌤이 해주신 얘기 말이야. 우리가 드디어 스타더스 볼 수 있다는거. 스타더스님을 직접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지 생각해봐야지."

약간 툴툴거리면서도,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을 가진채 말하는 주홍빛 단발머리의 그녀.

다인의 지속적인 스타더스=최고 세뇌에, 동경하던 이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3호와 4호도 마찬가지.

물론 1호도 기대되기는 했다. 스타더스가 현 대한민국의 정점 아닌가. 직접 그 능력의 편린을 엿보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

그렇게 다같이 모여, 상의를 시작한 그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다인이 스타더스에게 자신의 얘기는 왠만하면 꺼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거. 스승을 소개하고 싶었던 그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꽃이 계속 피고있을 때.

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그, 이세검은. 홀로 조용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늘 스타더스가 최고라고 말하시던 다인 스승.

스타더스를 좋아하는 이유만 101가지가 있다던 에고스틱.

늘 티비에서 에고스틱을 볼때마다 그가 느꼈던 익숙한 기분.

이상할정도로 현 1위 빌런인 에고스틱에 대한 언급을 피하던 다인.

그렇게 이세검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내, 그는 결단을 냈다.

자신의 추측을, 동료들과도 공유하도록.

"근데 왜 다인쌤은 우리보고 스타더스에게 자기얘기 하지 말라고 한걸까?"

"그러게..."

"아무리봐도 진짜 숨기고 있는 정체가 있으신거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

"분명 히어로 아니면 빌런일거 같은 느낌인데."

그렇게 2호와 3호가 주고받던 이야기를 듣던 1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대충 다인 스승님의 정체를 알 것 같다."

"응?"

갑작스러운 이세검의 말에 눈을 깜빡이는 나머지 셋.

그렇게 그는,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그녀들에게 말했다.

"내 추측인데, 다인 스승님은 아무래도."

"-A급 빌런, 에고스틱인거 같다."

"....엥?"

그렇게.

다인, 그가 모르는 사이.

PMC에는 작은 파문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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