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나한테서 테러 협력 약속을 받아낸 이후.
나는 오랜만에 서은이와 함께 지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곧 카타나라는 여자가 우리나라에 온다는거예요?"
"어. 전용기로 오기로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전용기는 우리 이설아가 대주기로 했다. 든든한 유성기업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고마워요 설아에몽...!
하여튼, 내 그런 말에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어이없다는 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젓는 서은이.
"그래요... 오빠는 뭐 늘 그랬으니까. 뭐 어쨌든. 그러니까 테러 위치를 산정하면 된다는거죠?"
"어. 좀 넓직한 공터에, 사람들도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게 서울 도심 근처여야 한다는거죠. 알았어요."
거기까지 말한 서은이는 뭔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냥 대충 정했는데, 이번 카타나는 능력이 상당히 강력해서 좀 더 신경써서 정해야했다.
그렇게 지하기지, 그곳 중심에 위치한 서은이의 작업공간인 이곳.
수십대의 모니터들이 벽면에 붙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을 출력중인 와중에, 몇개의 모니터들이 서울 지도로 바뀌었다.
이내 알아서 혼자 뭔가 조작되더니, 갑자기 이동거리랑 인구밀도랑 등등이 한쪽에서 계산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조금있으면 후보들이 나올거예요."
밀크티를 한잔 마시더니, 빨대를 입에 문 상태로 뭔가를 두들기며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서은이가 자동화시키겠다고 만든, 에고스트림 테러 계획 메이커 2.0이 열심히 작업중에 있었다. 제작자는 당연히 서은이와 수빈씨.
...근데 생각해보니까 빌런의 테러 계획 생성기가 어떻게하면 테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는게 좀 웃기긴 하네.
하여튼 나도 그렇게 서은이가 건내준 밀크티를 마시며, 장치가 굴러가는걸 지켜봤다.
대충 우리 에고스트림의 모든게 여기서 다 진행되는 만큼, 오늘도 열일하는 서은이.
이내 테러 후보지가 몇군데 나왔고.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수빈씨도 내려오셨다.
"아 수빈씨. 오셨어요?"
"네. 다인씨도 먼저 와계셨네요."
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
이내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은 수빈씨는, 역시나 무언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니터에 뜨는 여러가지 팝업창.
...하긴, 수빈씨도 컴퓨터학과 출신이었지. 가끔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총괄느낌이라 그렇지. 사실 해킹 실력도 서은이를 보조해줄 정도는 되는 그녀.
그렇게 우리는 이후로도 회의를 계속 진행했고.
이내 최종적으로 서울 한쪽이 선정되었다. 대충 여기서 진행하면 되겠구만.
"슬슬 방송도 준비하고... 바쁘겠네."
나는 의자에 기대서 말했다.
곧있으면 카타나도 올거고, 같이 테러도 하고, 스타더스도 오랜만에 보고...
뭔가 다시 할게 많은 느낌.
그렇게 내가 앞으로를 생각하고 있을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은이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오빠."
"응?"
"이렇게 언니랑 오빠랑 지하실에서 같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지하기지에서 살던 시절.
웃으며 말하는 그녀.
...옛날이라. 벌써 그게 옛날이구나.
"네가 나한테 형이라 부르던 그때 말하는거지?"
"...윽. 제가 언제요. 전 그런적 없어요. 잘못된 기억이니 빨리 잊으세요."
밀크티를 마시다 내 놀림에 볼을 부풀리더니, 시선을 확 피하는 서은이. 그 탓에 귀끝이 약간 붉어진게 눈에 보였다.
"후후...."
그런 우리를 보며 자상하게 웃는 수빈씨였다.
...하긴 처음 한동안은 나랑 서은이, 그리고 수빈씨 셋이서 거의 모든걸 다 했었지. 이후로 하율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 멤버가 추가되며, 집도 산 위에 대저택으로 옮겨가고. 에고스트림도 세우고. 서은이 키 큰것만 봐도 시간이 꽤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는건 딱히 변하지 않았지만.스타더스 상대로 테러.
다만 이번에는 글로벌 콜라보로 진행되는. 우리 에고스트림은... 진화한다!
하여튼 그렇게 잠시 지하실에서 노닥거리고.
"와. 이 카타나 언니도 이쁜거 봐."
갑자기 인터넷에 카타나를 검색해보더니 투지를 태우는 서은이를 달래 다시 일들을 준비한 뒤.
PMC도 가서 추가훈련 시키고, 뭐도 하다보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타나."
"오랜만이네요 에고스틱씨."
마침내 카타나가 왔다.
***
온다고 한지 한시간만에 슝하고 날아온 카타나.
테러도 식후경이라고 한국에서 그녀한테 밥 한끼 대접한 뒤, 나는 테러 계획을 최종적으로 설명했다.
"알았습니다. 싸우다가 너무 격해지거나 승패가 결정날거 같으면 빠진다."
"네 맞습니다. 애초에 테러 자체가 쉽지 않은만큼,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카타나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특히 혹시나 좀 밀린다 싶으면 적당히 신호주면 내가 끊겠다고. 여기서 갑자기 생사결을 할 수는 없잖아.
그런 내 걱정을 읽었는지, 카타나는 드물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도 제 실력을 증진시킬 겸, 대련은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오랜만에 검을 다시 강적에 맞서 휘두를 수 있겠네요."
허리춤에 찬 일본도를 슥 천으로 닦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하긴, 검술 하나로 일본 최대 빌런조직인 삼협파를 세우고 협회도 무찌른 그녀인만큼, 실력 하나는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가면과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카메라도 다시한번 챙겼다.
카타나또한 도복을 정갈하게 갖춰입고, 늘 그랬듯 검은 머리를 깔끔히 뒤로 묶은 모습.
좋아, 이제 가자.
나는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테러 장소로 향했다.
대한민국 1위 빌런과 일본 1위 빌런의 테러 콜라보, 드디어 시작되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구만.
...스타더스 반응은 좀 무섭긴 한데, 하여튼.
그렇게 나는, 방송을 킬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테러 한번 달려봐야지.
***
A급 히어로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는 최근들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
갈수록 늘어나는 빌런들.
특히 뭔가 이들의 방향성이, 어느 한쪽을 가르킨다는 방향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다 상대가능 했지만, 과연 나중에도? 무언가 큰게 올 것만 같은 느낌.
근데 그보다도.
그녀가 불안감을 느끼는 따로 있었다.
'...에고스틱, 얘는 대체 언제오는거야..."
바로 해가 바꾸었는데도, 아직도 에고스틱이 오고있지 않다는 것.
"...금방 온다며."
'...뭐, 다음번에는 금방 다시 볼 수 있을겁니다.'
그래.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을 향해 웃으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곧 다시 볼게 확실하다는 듯.
그렇게 그는 떠났고.
수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지만,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
최근들어 에고스틱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드는, 흐릿한 감정과 두통.
대체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생각할때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특히 혼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 몇달 전 이후로. 계속.
뭔가 놓친, 잊어버린 기분.
어딘가 아련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
당장이라도 그를 눈앞에서 보면 깨달을 것 같은 이상한 감정.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에고스틱을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오직 감정만은 남았기에.
"음...."
...사실 늘어나는 빌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빌런을 보고 싶어하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녀는 에고스틱은 특별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하여튼 결론은, 최근들어 에고스틱 생각이 전보다 자주 난다는 것.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집 벽 한쪽에 증거용으로 걸어놓았던 에고스틱의 망토를 서서 만지작거리며 대체 언제 오나...라고 한숨 쉴 정도까지 되었다. 물론 다시 정신차리고 나서 그러고있는 자신을 발견한 뒤 황급히 스스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볼때마다 에고스틱은 빌런인데... 라는 생각에 자꾸 멈칫하게 되긴 했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자신은 그냥 담당 빌런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거라고. 아마도.
'정말?'
"......"
...마음의 소리가 때때로 반문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건 그거고. 그녀는 한편으론 주어진 일들은 또 완벽하게 다 처리하고 있었다. 빌런이란 빌런은 싸그리 다 무력화시킨 후 수용소로 보내버리고, 일도 철저히 하고. 협회장이 그녀덕에 협회가 굴러간다고 칭찬할 정도로.
...물론 짬짬히 에고스틱 팬카페에 들어가 그의 동향을 알아보는 시간이 전보다 늘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것도 업무의 한종류라고 애써 정당화했다.
그렇게 팬카페에서 그의 팬이 쓴 예측글도 읽어보고, 일렉망고니 보라망고니 드래곤망고니 별 웃기지도 않는 글에는 비추를 꾹 눌러주면서.
하루하루 달력만 보며 살아가던 어느날.
[안녕하세요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드디어, 마침내 그날이 왔다.
"스타더스씨!"
"네. 알고있습니다."
그녀는 다급히 소식을 전하는 협회 직원 앞에서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며, 출격할 준비를 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를 볼 수 있구나.
마지막으로 본 게...
"....."
순간 그녀의 앞에 노을과 옥상, 탁 트인 하늘이 떠올랐으나. 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처 그녀가 인지하기도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공원. 그래, 마지막으로 본 건 공원이었지. 용을 탄 그가 내린 공원.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보는거겠네...
자기도 모르게 어째서인지 가슴이 아리긴 했지만, 그녀는 애써 떨쳐냈다. 그래. 하여튼 드디어 에고스틱을 보는구나.
'....'
거기에 방송을 살짝 봤을때 그의 근처엔 아무도 없어보여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약간 뛰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그가 혼자 온거같다. 다른 여... 빌런들 없이.
그렇게 신하루는 약간의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날아갔다.
...그때까지는 그녀는 기분이 좋았었다.
그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