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09화 (209/328)

신년이 찾아온 뒤 얼마뒤.

나는 카테달에 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아니, 무슨 벌써 열려."

다들 할거 없나?

나는 대충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야 뭐 풀 정보도 많고, 가서 아틀라스 아재도 오랜만에 보고 하니 좋긴한데...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아니면 자주자주봐서 그만큼 친해지자는 셀레스트의 큰 뜻인가? 저번에 보니까 옆자리 앉은 이들끼리는 은근 서로 인사한다음에 속닥속닥 한걸 보면 그렇게 친해지는거 같기도 하고. 원작에서도 자주 열렸다고 나오긴 했었으니.

물론 나는 처음부터 아틀라스 아재 옆에 앉아있었고, 그 다음번에는 우리 빨간 모히칸 머리 옆에 껴있어서 다른 이들을 만날 시간이 딱히 없었다. 아, 한명 있기는 했네. 일본의 S급 빌런인 카타나, 그 여자.

"....."

...음, 근데 그때 그걸 대화라 볼 수 있나? 나를 은근 경계하던 기색인 그녀한테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했을 뿐인데. 하여튼, 그래도 내 조언덕에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돼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였다. 얼마전 뉴스에서는 이제 사실상 일본 협회의 항복 선언만이 남았다고 하나? 이미 민심마저 카타나에게 있다고 했으니 말 다했다.

...근데, 카타나. 막상 나 보면 모른척하는거 아니야? 약간 토사구팽이라고 해야할까. 이제 정보를 얻었으니 입을 싹 씻는거지. 아닌가, 그래도 원작에서는 분명 은원은 확실히 갚는다고 나왔었으니 적어도 아는척은 하겠지...? 카타나에 대해선 정확히 모름으로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뭐. 어쨌든 조금있다가 거기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그래서 나는 옷을 챙겨입은 뒤, 슬슬 셀레스트가 보낸 편지를 찢고 회의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갔다오겠습니다 수빈씨."

"네 다녀오세요... 아, 잠시만요."

따뜻한 햇볕이 비춰오는 거실.

떠나기 직전 인사를 하는 나에게, 수빈씨가 웃으며 대답해주다 말고 내 앞으로 잠시 걸어왔다.

그러더니 내 코 앞에 서서 시선을 잠시 내린 뒤, 내 목 아래 옷깃을 매만지는 그녀.

"이쪽이 약간 삐뚤어졌어요..."

사락, 사락.

내 몸에 닿는 그녀의 손가락 감촉을 느끼며, 나는 잠시 조용히 서있었다. 그녀가 정리를 다 끝낼때까지.

그렇게, 잠시 거실에 우리 둘의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고.

"자, 다 됐어요."

수빈씨는 그렇게 미소지으며, 내 옷깃을 마지막으로 쭉 핀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거리가 가까웠다.

"감사합니다. 이제 갔다올게요."

"네."

수빈씨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해줬다.

...힘내서 갔다오자.

나는 그렇게 피식 웃은 뒤, 손에 든 편지를 찢었고.

그렇게, 눈앞이 다시 출렁였다.

***

"으음..."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님."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아까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거실의 공기와 상반되는 약간 차가운 기운 속에서, 나는 눈을 떴다.

하얀 사제복을 입고 내게 고개를 숙이는 셀레스티아의 사제에게 고개를 작게 끄덕여준 후, 나는 긴 복도를 걸었다.

하얗고 하늘빛으로 물든 대리석 바닥에 울려퍼지는 내 발소리. 벽에 하나씩 걸려져있는 촛불은, 이곳이 일종의 성당이라는 느낌을 더욱 재현했다.

그리고.

'.....음.'

복도를 걸으며 회의장 쪽으로 갈수록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나는 눈가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회의장 바로 앞에 도착해, 문에 건너 들어가보니.

"....오."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탁 트여진 회의장에서는, 아래 복도와 다르게 확연히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전보다 샹들리에도 더 주홍빛으로 밝고, 주위에 촛대들도 전보다 많아진 느낌. 아무래도 날이 추운만큼 셀레스트가 난방에 신경을 썼나보다.

나는 그렇게 커다란 원탁에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기전에 다른 빌런들 몇몇에게 살짝 미소지은채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를보고 흠칫하고 놀라더니, 인사를 하는거였다는걸 깨닫고 그제서야 자기들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들.

...아니, 왜 S급들이 A급을 보고 흠칫하고 그러는거야. 내가 여기서 무력은 제일 약할걸? 해치지 않아요.

그렇게 자리에 앉고보니, 은근 여기저기서 힐끔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저번에 엑스 마키나의 정체를 유출하고, 내가 말하고 나서 몇달뒤 그의 정체가 공개돼서 그런가보다. 아마 저 시선은 대체 쟤는 뭐하는 놈이길래 그런 1급 기밀을 알고있느냐, 뭐 그런거겠지.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라면 내가 그의 정보를 대외적으로 공개한 이후 그가 사망한 것을 두고 모종의 연결고리를 추측할 수도 있고.

뭐, 다 의도된 것이다. 어찌됐던 내 존재감을 높이는게 목적이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일찍 온 모양인지 여전히 좀 텅텅 비어있는 좌석들. 아직 아틀라스나 그 빨간 모히칸머리도 오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고로 난 이 회의장 주위나 구경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번 회의 끝나고 슬슬 스타더스 상대로 테러도 한번 해야되는데, 뭐하지...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넓은 원탁 주위를 둘러싼 하얀색 벽들. 그리고 벽에 은은하게 알록달록하게 있는 스태인 글래스들.

저 한쪽편에 거대한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그것을 내가 잠시 지켜보고 있던 그때.

".....음?"

그쪽편에서, 카타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색의 묶은머리에 하얗고 검은 천으로 이루어진 일본식 무사복을 입고, 일본도를 찬 그녀.

그리고 그런 카타나는, 누군가를 찾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그녀를 지켜보던 나와 눈을 딱 마주치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더니, 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

이내 내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씨."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 내 대답에, 설핏 미소짓는 그녀.

평소에 워낙 무표정한 얼굴이었어서인지, 그렇게 웃는 모습은 굉장히 색달랐다.

그렇게 내게 인사를 하더니, 자연스럽게 내 옆에 의자에 앉는 그녀.

음...?

그렇게 내 옆에 앉아,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내게 감사인사를 건냈다.

"그때, 에고스틱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해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하는 카타나. 눈빛이 아주 진심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바로 옆나라에서 활동하는 동료인데, 서로 당연히 돕고 살아야죠."

"아닙니다.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저희는 아마 전멸했을겁니다. 정말 뭐라 해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

...음, 뭔가 이정도로까지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좀 부담스럽다.

난 그래서 헛기침을 하고,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하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하네요. 전 그저 카타나씨, 당신과 친구가 되고싶어서 그랬을 뿐이니까요."

"친구라..."

오랜만에 들은 낯선 단어인양, 잠시 그 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아주 살짝 미소지으며 내게 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 오늘부터 친구인건가요?"

"네."

난 그렇게 카테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한국-일본 빌런 합작, 이제 이거 아무도 못막거든요... 물론 그 합작과정이 어째 학창시절 새학기에 친구사귀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되기는 했는데 말이지. 이게 나라를 휘어잡는 두 빌런의 대화...?

하여튼 아직 회의 시작하기 전까지도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중에 주목할만했던건.

"이미 이기셨다고요?"

"네.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이미 다 끝났습니다."

바로 카타나가, 이미 일본 협회를 정복한 뒤라는 것.

국제사회의 개입이 있을까봐 정보를 통제하고는 있지만, 이미 장악이 거의 끝났다고 한다. 이전까지 있던 썩어빠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다 처리하고, 아예 갈아치운다는 모양.

대충 계획을 들어보니, 협회는 대외적으로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카타나의 삼협파는 비선실세로 있으려고 한다고 한다. ...뭔가 우리나라랑 좀 비슷한 느낌인거 같기도 하고.

이제 듣고보니 왜 나한테 그리 고마워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사실상 나덕분에 나라를 구했다고, 그러니까 나덕에 그녀가 협회를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보지. 평생의 목표가 그거였으니 그럴 수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내 옆에 앉은 카타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즉, 그러니 제가 에고스틱 당신에게 얻은 은혜는 이렇게 넘어갈만한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러니, 원하시는거 있으면 아무거나 말씀해주세요."

"음..."

그렇게 말해도, 난 딱히 부탁할만한게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뭐든지 해드리겠습니다."

뭐든지?

그 말을 듣자 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뭐든지라고 했지...?

그렇게 내가 입을 열려고 할때.

"여, 에고스틱!"

그순간, 저쪽편에서 큰 목소리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하고 보니 역시나, 커다란 덩치를 한채 오고있는 아틀라스 아재.

이내 허허 웃으며 나랑 인사를 한 그는, 내 옆에 앉으며 나랑 대화하느라 나랑 살짝 붙어 앉아있던 카타나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누구냐고.

"아, 이번에 저랑 새로 친분을 쌓게된 일본의 카타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카타나입니다."

"하하! 그래, 에고스틱의 동료라고? 그럼 내 동료기도 하지!"

크하하!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그렇게 웃은 그는 내 등을 팡팡치며 능력도 좋다고 칭찬했다. ...이건 무슨 칭찬이야?

하여튼 그렇게 내 왼편에는 카타나, 오른편에는 아틀라스가 앉았다. 아까 하던말은 끝나고 해야겠네.

그리고 잠시후.

마침내, 셀레스트가 도착하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 거기 제자리..."

"...."

"아, 아닙니다..."

물론 조금있다가 온 우리 빨간 모히칸 머리가 소심하게 카타나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그녀의 째릿한 눈초리 한번에 쭈구리가 되어 아틀라스 옆에 앉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정말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