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세계가 갈수록 여러 빌런들의 등장으로 삐걱삐걱해도, 새로운 해만큼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세계 각국 소식을 알아보는 글로벌뉴스 시간입니다. 미국이 오늘, 시간이동 능력자인 S급 엑스 마키나의 정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더붙어, 그의 사망소식을 밝혀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데요. 발표된 지금까지 그의 공적들을 들은 시민들 사이에서 애도의 물결이...]
그리고 역시나 새해가 찾아오자마자 들려온 엑스 마키나의 사망 소식.
나는 그걸 보고서야 드디어 확신했다. 그래, 확실히 원작대로 시간이 한번 돌려졌기는 했나보구나.
더붙어, 그의 사망 소식으로 정체가 밝혀지며 나에 대한 주가도 뛸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저번에 카테달에서 내가 아무도 모르던 그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았는가. 다들 믿지 않던가 긴가민가 했을텐데, 이번 소식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아! 에고스틱, 이놈이 진짜 뭔가 있구나-라고.
하여튼 그렇게 나에관해 관심이 생긴 놈들은 날 따로 알아보거나 할테고, 그러면 대충 나에대해 알게 될거다. 일단 다른건 몰라도 다른나라 약탈하러 갈때 하필 한국으로 침입해 오지는 않겠지.
어쨌든 그렇게 외국에 소문을 내서, 애초에 이놈들의 침입을 막아 스타더스가 개고생 하는거 막는게 내 목표다. 한국 빌런들중 악질들은 내가 미리 제거하는게 쉬운데, 외국 빌런들은 좀 오래 걸리는만큼 애초에 막는게 제일 좋다.
하여튼 카테달은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히면 끝이다. 앞으로도 정보 몇개 더 푸는식으로 하면 되겠지.
...그래. 일단 이런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잘먹겠습니다."
"네에.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우리는 새해를 맞아, 식탁에서 떡국을 먹고 있었다.
싱긋 웃으며 우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빈씨. 나도 만드는걸 같이 도왔기에, 이미 수빈씨랑 같이 간본다며 한그릇 먹어서 적당히 덜어 먹고있었다.
"맛있어?"
"네. 맛있어요 다인오빠."
생긋 웃으며 그렇게 답하는 은월이.
그래, 잘먹으니까 보기 좋네. 이상하게 요즘들어 은월이가 눈에 밟힌다. 뭔가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기분? 약간 은월이를 볼때마다 약한 죄책감이 생기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 기억나긴 할거 같은데 말이지. 이상하네.
"그리운 맛이구나.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이걸 대접하고는 그랬지..."
한편 옆에서는 갑자기 추억에 잠긴 신령씨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체 언제적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오늘의 식사자리는 훈훈하니 좋은 분위기였다.
밖에는 눈이 내리는 와중에, 따뜻한 집안에서 온 식구가 다같이 모여 떡국을 먹고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보기만해도 마음 속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광경이 있었다.
"...보기 좋네요. 그쵸?"
"네. 다들 잘 먹어주니 좋네요."
내 그런 말에 미소지으며 대답해주는 수빈씨.
우리는 그렇게 다들 먹는걸 흐뭇하게 바라봤다.
"와, 오빠. 저기 밖에 봐봐요. 눈이 펑펑 내려요!"
그때, 내 팔 소매를 잡더니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나는 그 말을 듣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확실히, 전보다 펑펑 내리는 눈.
이번 겨울따라 눈이 많이오는 모습이다. 테러하기 안좋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서은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런날은 눈싸움을 해야해요!"
"응?"
갑자기 나온 눈싸움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이미 그 말을 옆에 앉아있던 최세희와 서자영이 들어버렸다.
"오, 눈싸움이라. 좋은 생각인걸? 어렸을적에 하고 커서는 한번도 한적이 없네."
"....좋아. 오랜만에 최세희한테 누가 언니인지 말해줘야겠네."
"하, 너가 날? 그 반대겠지."
"헤에. 화났어?"
"아니? 널 어떻게하면 눈사람으로 만들까 생각중인데?"
그렇게 갑자기 불붙은 최세희와 서자영.
...사실 서은이가 눈싸움하자고 한걸 듣고 우리 서은이, 아까까지만해도 자긴 이제 고3이라고 거의 성인이라고 주장하더니 이럴때는 애같다고 하려 했는데... 이래서는 누가 어른인줄 모르겠네.
뭐, 이렇게.
자연스럽게 밥을 다먹고 할 일이 정해져버렸다.
***
빌런.
테러를 일으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공포의 존재로 군림되는 이들.
압도적인 이능으로 일반인들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그들은 평소에는 뭘하고 있을까.
답은 눈싸움이었다고 한다.
"에잇!"
"하, 이걸 피해? 이것도 피해 보시지!"
"세희언니, 자영언니. 옆에 조심해요!"
...음, 물론 스케일이 크다는 차이가 있겠지만은.
나는 그렇게 목도리를 하고 날아디니며 눈을 대포알처럼 서로에게 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물론 그사이에서 이상한 로봇 타고 와서 눈대포를 쏘고있는 서은이까지.
...분명 눈싸움으로 시작했는데 왜 불꽃이 튀고 번개가 번쩍이는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들 그러고 놀고 있었다. 이런걸보면 역시 산속에 집을 짓길 잘했단 말이지.
"음..."
그러면 나는 뭐했냐고?
나는 은월이랑 같이 눈굴리고 있었다. 저 험악한 곳에 끼지말고, 우린 조용히 눈사람이나 만들자...
장갑낀 손으로 눈을 뭉쳐 굴리는 은월이. 나도 옆에서 같이 굴렸다. 뭔가 이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 대체 눈사람은 몇년만에 만들어보는거지? 어렸을적 친구랑 같이 제일 커다란 눈사람 만들겠다고 주차장에서 눈 굴리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다인오빠. 이정도면 될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이제 우리 머리 놓을까?"
그렇게 머리도 굴려서 나랑 은월이는 아담한 눈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대략 내 허리까지 오는 눈사람. 심심해보여서 나뭇가지도 주워와 양 옆에 손처럼 꽂아주니 나름 그럴듯했다.
눈사람, 완성!
뿌듯해진 우리는 기념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나서 배시시 웃는 은월이. 그리곤 눈사람을 요리조리 훑어보는걸 보니, 여간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아, 이제 좀 쉴까?"
"네. 다인오빠."
그렇게 나는 숲 사이에 굴러다니는 통나무를 하나 끌고와서 염동력으로 쌓인 눈을 털었고, 그 위에 은월이가 마법을 읊자 가로로 길쭉한 보송보송한 통나무 의자가 어느새 완성되었다.
코 끝이 약간 빨개진 채, 하얀 입김을 내며 의자에 앉은 은월이. 약간 추워보이는 모습.
"은월아, 잠깐 기다려?"
"네? 네."
그걸 본 나는 옷 위에 얹힌 눈을 슥슥 턴 뒤, 집 안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렇게 몇분 뒤, 나는 따뜻한 코코아 두잔을 들고 다시 눈내리는 통나무 의자 앞으로 날아왔다.
"자, 은월아. 마셔."
"아, 오빠.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컵을 받는 은월이.
눈 내리는 숲을 배경으로 긴 검은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 그리고 평소에 입는 무녀복 대신 따뜻해보이는 옷을 입고 붉은 목도리를 한 채 코코아를 호호 불어마시는 그녀는, 딱 나이대에 맞는 소녀로 보였다. 원작의 중간보스격 빌런인 월광교의 병기 월광무녀가 아니라.
"언니....!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겠다 이거죠?"
"응 어쩔 불꽃 어쩔 방패~"
"진짜... 저도 그럼 생각이 있어요!"
한편 우리가 그렇게 평화롭게 눈싸움을 하며 쉬고있던 동안, 저쪽편에서는 거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몸에 불꽃을 둘러 눈이 날아오기도 전에 녹이고 있는 서자영과, 그런 그녀를 보고 응징을 다짐했는지 어디서 대포같은걸 개조하고 있는 서은이, 그리고 이제는 날아다니는 자영이한테 번개같은 속도로 번개랑 눈을 동시에 던지고있는 최세희까지...
"...우린 그냥 여기서 코코아나 마실까?"
"...네, 오빠."
안그래도 추운데 별로 거기 끼고싶지 않던 우리는, 조용히 통나무에 앉아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함께만든 눈사람을 딱 옆에 세워놓고, 따뜻한 코코아나 마시며.
"....."
내 옆에서 따뜻한 컵을 난로처럼 손으로 감싼채 ,조용히 미소지으며 다른 이들이 놀고있는걸 지켜보고 있는 은월이. 나는 그런 그녀를 힐끔 보고는, 코코아나 한모금 홀짝였다.
...백은월.
월광교의 무녀이자, 달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그녀. 그리고 따지고보면, 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달의 마법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은월이를 에고스트림에 영입한건, 순전히 능력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를, 그냥 죽여주세요.
...원작에서 월광교주에 의해 조종당하며,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테러를 일으켜야만 했던 그녀.
그렇게 매일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끝내 스타더스에게 죽여달라 부탁하기까지 이른다. 자신의 힘을 최대한 억제해가며.
그렇게 결국 스타더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그녀는, 이제야 다 끝났다는 듯한 마지막 미소와 함께 숨을 거둔다.
...이 에피소드가 연재될 때, 독자들 커뮤니티에서는 아주 눈물바다였다. 특히 원작 스타더스에서 인물들중에 정상이 거의 없던 시기에, 이렇게 착하면서도 비극적이게 주인공의 손에 끝나는 캐릭은 그야말로 눈물샘 자극. 특히 안그래도 귀엽게 생겼는데 이토록 허무히 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물론 나도 그런 이들중 한명이었고.
그렇기에, 난 처음부터 은월이를 구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다인오빠..."
"응?"
"고마워요."
"뭐가?"
뜬금없이 옆에서 그렇게 말하는 은월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내리는 숲속.
여전히 멤버들이 뛰노는 모습에 시선을 때지 않은채 살짝 미소지으며 말을 잇는 그녀.
"그냥... 오빠가 없었으면, 제가 이런 광경을 평생 볼 수 있었을까 싶어서요. 서은이랑... 수빈언니랑... 하율언니도. 모두, 저 처음 왔을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당연하지. 우린 이제 가족인데."
"가족..."
그런 내 말을 혀에 잠시 굴리던 은월이는, 잠시 저 먼 숲을 바라보듯 하더니 약간 조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인오빠. 예전에, 월광교에서 말이죠..."
그렇게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눈내리는 숲 속 저택 앞에서, 은월이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눈을 떴을때, 저한테는 기억이 없었어요."
다만 교주의 말로 추정하기에, 무녀복을 입은 채 그녀는 봉인에 갇혀있었다고 한다.
월광교를 만난 그게, 그녀의 첫 기억. 유년기의 기억도, 추억도 그 무엇도 없이.
그녀는, 월광교의 생체병기가 되었다.
그렇게 명목상 월광교의 무녀가 된 그녀는, 교주에 의해 월광교의 상징이 되었다. 처음부터 스스로의 자유도 없이 억압되고 통제되며, 마법을 배웠다.
그리고 교주의 꼭두각시가 된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직 다른 이를 해치는 법만 배웠다.
"그래서, 전 다인 오빠한테 정말 늘, 매번 감사하고 있어요. 오빠가 없었으면 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떨리는 은월이의 몸.
나는 그런 그녀를 아무말없이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안심하라고, 이제 괜찮다고.
이내 다시 떠는걸 멈춘 그녀는, 이내 우물쭈물하다 배시시 웃더니 내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래서 전, 다인 오빠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세상 모두가 오빠를 배신해도, 저만은 늘 오빠 곁에 있을게요."
"...그래. 고마워, 은월아."
"헤헤."
갑작스러운 은월이의 고백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녀를 쓰다듬는거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은월이는 눈이 오면 감성적이 되는거 같다.
"앗! 오빠, 은월이 둘만 뭐하는 거에요? 저도 눈사람 같이 만들레요!"
때마침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서은이.
그런 그녀를 향해 우리는 미소지어주었다.
...가족이라. 가족.
좋은 울림이네.
그렇게 그날은 하루종일 눈사람도 만들고, 나랑 은월이도 기어코 같이 눈싸움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느덧, 새해의 첫번째 카테달 회의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