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시간이 되돌아가 없던 일이 되어버렸겠지만, 멸망을 비껴나간 그날 이후.
벌써 겨울이 되었다.
"이야... 눈 펑펑 오는거 봐라."
나는 베란다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집이 산골짜기 안에 있어서 그런지, 펑펑 오는 눈.
그렇게 초록빛이던 산들이 뽀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물들은 모습을 보며 나는 하얀 입김을 냈다.
...올해도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는구나.
나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드는 앞으로에 대한 생각.
지금까지 정말 많이 지내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여정이, 슬슬 희망이 보일 지경.
첫 테러를 할때만 해도 이거 월광교 게이트 사건때까지는 살아있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슬슬 그 날도 보인다.
종말 에피소드까지 버텨냈을 정도니까.
'....올해 안으로 PMC 육성 다 끝내고, 2기 3기 모집해야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제 진지하게 월광교에서 이세계 차원문을 열어 괴물들이 판치는 이후의 세계를 고민할 때가 됐다.
원작에서는 그야말로 그때부터 세계가 막장이 됐었지. 원래 막장이긴 했으나, 그때부터는 이게 아포칼립스물인지 히어로물인지 구별이 안되는 지경까지 갔다. 무슨 인구수가 절반넘게 줄었대나 뭐래나.
물론 차원문이 열리는거 자체는 막을 수가 없다. 사실 월광교에서 차원을 안뚫어도 언젠가는 열리게 되는 설정이라고 나오거든. 하지만, 적어도 피해는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나면 이제 최종결전일테고.
"....휴우."
나는 다시한번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일단은, 슬슬 오는게 보이는 월광교나 대비해야지. 그리고 최종결전을 대비해 스타더스도 성장시키고.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건 오직 그녀밖에 없으니까.
잠시 멸망에 대해 떠올린 나는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월광교 이후 원작 최후반부의 그 개판인 상황이 현실로 닥칠걸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지는건 당연.
"오빠. 드디어 혼자 눈보면서 청승떠는건 다 끝났어요? 빨리 와서 코코아나 마셔요."
...그렇게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나는, 서은이의 손에 붙들려 코코아가 손에 쥐어졌다.
따뜻하고 달달하니 맛있긴 했다.
"맛있네."
"맛있죠? 이거 제가 탄거예요."
"진짜?"
"당연햐죠. 저도 이제 며칠뒤면 고3인만큼, 이정도는 이제 수빈언니보다 잘탄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약간 우쭐해하는 서은이. 어째 나한테 신기기를 설명할때보다 더 자랑스러워 하는거같다.
...코코아가 그렇게 타기 어려운건지는 오늘 처음 알았지만, 귀여우니 된 거 아닐까. 고맙기도 하고.
난 그렇게 몇분을 더 감탄해줬고, 서은이는 기분이 좋았졌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랑 시시덕 거리다, 무슨 재밌는게 떴는지 스마트폰을 보는 그녀.
나는 그러는동안 다시 티비를 켜고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별 일 없으려나...
그렇게 봤으나, 딱히 별 특별한 내용은 없어 하품을 하던 와중에.
옆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히히덕거리며 보던 서은이가, 나한테 이거 보라며 자신의 폰을 건내줬다.
*
[막대기가 피곤하면?]
에고스틱
에고... 스틱이니까 엌ㅋㅋㅋㅋㅋㅋ
=[댓글]=
[망하하하하 망하하하하하]
[선생님 대체 어째서 이런 글을 적는 겁니까]
[이거보고 피식한 내가 싫다]
[나만 볼 수 없어서 개추눌렀다 ㅅㄱ...]
ㄴ[나볼없추 멈춰]
*
"....서은아, 재밌어?"
"재밌지 않아요? 아이고... 힘들다 에고.. 스틱. 아하하하."
다시 생각해도 웃겼는지 피식 웃는 서은이.
그걸 보며 나또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우리 서은이, 이런거 좋아하는거 보니 아직 애 맞구나. 아니지, 이건 오히려 아재같은건가..?
하여튼, 그렇게 서은이가 내 팬카페에 웃긴걸 찾아 보여주는걸 몇개 더 보며 나는 코코아를 마셨다.
...그래. 그래도 이게 좋은거다. 사람들이 다들 평화롭게 웃고 떠들고 있잖아. 원래 원작 이맘때쯤이면 한주에 테러가 몇번씩이나 나 매주 수백명이 죽으며 사회분위기가 이미 개판이 되어있다.. 스타더스, 섀도우워커등 히어로들이 무능하다며 규탄하는 시위들이 매일같이 일어날 정도니. 물론 이설아가 권력으로 다 해산시키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평화를 만끽하며 거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때.
[...그리고 이시각, 일본 소식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서기자, 속보가 있다고요?]
때마침 티비에서는 일본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일본. 생각해보니 요즘 종말이니 뭐니 그런걸신경쓰느라 일본은 완전히 잊고 있었네.
나는 그제서야 소파에 등을 기댄채 시선만 티비 쪽으로 향했다.
일본이라. 썩은 정부, 협회와 카타나가 이끄는 삼협파가 매일같이 싸우는 그곳. 원작에서 삼협파가 패배하고 일본이 그냥 망한다는걸 기억한 나는, 카타나한테 살짝 귀뜸을 해줬다. 그녀의 패배 이유인 배신자의 정보를.
그래서 저번에 들었을때는 매일같이 지다가 조금씩 이기고 있다고 들었는데, 좀 나아졌으려나? 설마 아직까지도 지고 있는건 아니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고.
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보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네! 현재 삼협파가 일본 협회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 안으로 일본 협회가 무너질거라고 예측하는 모양세입니다.]
...아니, 뭐야. 너네가 왜 무너져.
당황한 나는 자세를 고쳐앉고 뉴스에 더욱 집중했다.
[이에 일협은 국제 협회에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되었다고 하는데요. 국민들이 오히려 삼협파를 지지하고 일본 정부 및 협회의 부패때문에 국제협회가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한편 삼협파의 수장 카타나는 자신이 승리해도 협회는 존속되고 세계질서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당황스럽네."
나는 살짝 얼떨떨하게 티비를 바라보았다.
아니, 배신자 하나 처리됐다고 저렇게 상황이 뒤바뀌어? 원작에서 매일같이 쳐맞고 결국 조직이 무너진 그 삼협파가?
음... 뭐, 좋은거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비등비등한 상황이 쭉 유지될 줄 알았지, 그거 하나 알려줬다고 이렇게 삼협파가 이길 정도가 되버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그래. 이제는 카타나가 은혜를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게 제일 좋을거같다. 곧 빌런 회의인 카테달이 열리기도 하니까, 그때 만나게 되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또 계획을 세웠다.
...그전에, 일단 월광교 이후의 개판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PMC부터 만나고 올까.
***
"좋네. 전보다 훨씬 많이 늘었는걸?"
유성그룹의 PMC, 유성스쿼드 본부.
그곳 지하의 훈련실에서, 나는 우리 PMC멤버들의 훈련 성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흥. 이게 뭘요. 아직 부족해요."
내 칭찬에 새침하게 답하면서도, 입꼬리가 살짝 씰룩이는 2호 노랑이.
빛의 화살을 쏘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전보다 실력이 훨씬 늘은 모양세를 고였다. 활 명중 정확도도, 그리고 빛의 화살의 위력도 그렇고.
그러니까 이제는 거의 초창기 스타더스랑 비슷할 지경.
물론 초창기 스타더스는 지금의 강해진 스타더스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그래도 A급이었다는걸 감안하면 노랑이의 실력은 대단한 성장세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파워인플레가 지속되었고, 노랑이가 내가 힘들게 찾은 원석인걸 감안해도 말이지.
근데 스타더스 얘기하니까, 요즘 스타더스는 뭘 하고있을지가 궁금하네. 또 빌런잡고 있으려나. 집에 돌아가서 팬카페나 정리해봐야겠다. ...잠깐, 왜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거지. 일단 PMC 애들한테 집중하자.
그렇게 상념을 털어낸 나는, 다시 한명 한명을 봐줬다. 우리 3호 빨강이. 불타오르는 펀치를 주 능력으로 쓰고 대검도 휘두르는 그녀또한 상당히 강해졌다. 서은이가 만든 특제 훈련용 로봇과 싸울때 보면 판단력이나 공격의 위력이 전이랑 비교가 안 될 정도.
"하하, 저 잘했죠?"
"응. 잘했어."
그리고 4호 파랑이. 파랑이도 꽤나 강해졌다. 비록 아직까지 그녀가 만드는 비눗방울 자체는 약했지만... 파랑이는 어차피 다른 이들과 함께할때 진가가 드러나니 상관없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멤버들은 강해지니까.
하여튼, 그렇게 3명을 모두 봐준 나는 이내 마지막으로 우리 PMC에서 제일 주의깊게 보고있는 1호의 실력을 테스트해봤다.
"흐아앗-!"
휘이이이이이잉. 쾅.
폭풍처럼 날아올라 번개처럼 칼을 휘두르는 그.
뒤로 묶은 그의 회색빛 머리가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는 칼을 미친듯 휘두르는 그. 실로 남자다운 공격이었다.
그렇게 멤버들중에서도 제일 빠른 시간내에 적을 처치한 뒤,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그에게 난 고개를 한번 끄덕여줬다.
...역시, PMC 멤버들 중에는 얘가 제일 물건이다.
그렇게 훈련이 끝난 후 멤버들을 불러모은 나는, 치하를 해줬다.
"다들 수고했다. 정말 열심히 훈련한게 눈에 띄네. 이대로만 가면 좋겠다."
진심이었다.
너희들이 어서 강해져야, 2기는 니네들이 가르치지. 이게 바로 영웅 자동화 공장. 1기는 2기를 키우고 2기는 3기를 키워 PMC 능력자들을 복사한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하여튼 내 칭찬에 뿌듯해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오늘 하루는 그들과 어올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래. 또 히어로의 마음가짐과 정신에 대해 얘기해주면 되겠네. 스타더스를 예시로 들면서.
좋아. 교육의 시간이다.
***
그날밤.
다인이 떠난 이후, PMC 숙소.
"하암..."
방에 모인 4인방은, 하품을 하며 앉아있었다.
모인 이들이 나눈 대화거리는 당연히, 다인에 관한 것.
대충 칭찬받아서 좋은 2호, 3호와 앞으로 안심하지 말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1호. 그리고 졸고있는 4호가 모여있었다.
그렇게 모여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히어로들에 대한 얘기로 갔고.
"야, 그거 틀어보자. 스타더스가 저번에 용과 싸운 영상."
"그럴까?"
전투와 실전에 관한 얘기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강한 히어로이자 다인이 늘 입을모아 칭송하는 스타더스에 관한 주제로 흘러갔다. 특히 오늘따라 무언가 아련한 표정을 지어가며 더욱 스타더스를 칭찬하던 그였다.
하여튼 다인의 주입식 사상교육 덕분에 스타더스를 본받아야할 이상이자 목표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
그런 그들이 자연스럽게, 스타더스의 전투영상을 보는건 무리가 아니었다.
"와, 쩐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며 용이랑 맞섰지? 저걸 데리고온 에고스틱도 대단하네."
그렇게 그들이 감탄하던 그때.
화면속 에고스틱을 벽에 등을 기댄채 지켜보던 1호는, 무언가를 이상한걸 깨달았다.
"잠깐, 저 남자..."
역시 보면 볼수록, 뭔가 익숙한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