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06화 (206/328)

미국 협회 본부.

지상으로부터 깊은 곳에 숨겨진, 지하 벙커.

극히 일부만 이 장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설령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이곳.

외부와 차단되고 격리되어 있는 그곳은, 그 어떠한 능력자의 침범도 막기 위해 모든 종류의 보안이 되어있었다.

혹여나 이곳으로 이동하는 이들이 있을까.

거울은 없고, 티비도 없다. 어둠이 있는 한 자유롭게 이동가능한 능력자가 있다는 말에 이곳은 항상 밝으며, 또한 순간이동자들을 막기 위한 장치도 기본적으로 전부 되어있다.

이곳은 바로,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지켜야할 히어로가 머무르는 곳.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 '엑스 마키나'의 거주지였다.

그리고 그는.

현재, 그곳의 벽에 손을 기댄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쿨럭, 쿨럭."

하아, 하아.

깊은 한숨을 쉬며 숨을 헐떡이는 그.

갈색이던 머리는 노랗게 물들었고, 피부는 공포때문인지 하얗게 질린 상태에서.

그는 비틀거리며, 지하 깊숙한 곳의 복도를 걷고있었다.

'....막아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쿨럭. 또한번 나오는 피.

떨리는 손을 힘겹게 부여잡고, 다리를 질질 끌며, 그는 그렇게 간신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어온 자리를, 피로 물들며.

"하아, 하아."

쿨럭.

이내 기어코 방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은 그.

엑스 마키나. 본명, 제임스 마키나.

그는 피를 쿨럭이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뒤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이 모든 일은 끝난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다. 자신의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돌릴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벗어났다.

이제 돌린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한다. 그토록 인류의 위험을 막기 위해 지켜오던, 그의 목숨을.

하지만.

'...큭. 우습군. 이미 인류가 다 멸망했는데, 무슨 소용이겠어.'

그래.

최후의 생존자가 오직 그로 추정되는 만큼. 더이상 의미도 없었다. 종말을 막기위해 지금껏 목숨을 지켜왔다고? 그래. 지금이 그 종말이다. 이걸 막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거다.

다만.

"다음번엔..."

제임스는 떨리는 눈으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창백히 중얼거렸다.

...그는 모든걸 알아냈다. 이 사태가 일어난 발단과, 그 해결방법까지. 이제 시간을 돌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밝혀낸 그 '장치'를 틀어 멸망을 막는 것으로 그는 소임을 다할거다.

비록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겠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히어로니까.

사람들을 지키는, 세계를 구해야하는 히어로니까.

자신의 목숨따위는.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돌려 보냈지만.

...다음번에 저것이 또 돌아온다면.

그때는, 누가 저것을 막을 것인가.

과연, 막을 수는 있을 것인가.

"신이시여... 이 세계를 구원하소서..."

그는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그 신이 아닌, 자신의 신을 향해.

그리고 이내 그는, 자신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고.

그 순간, 하얀 지하실은 눈이 멀 정도의 노란 빛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지하실뿐만이 아닌, 모든 세계가 다 노란 빛으로.

멸망한 세계가, 전부. 다 노란 빛으로 가득 찼고.

이내.

시간이, 다시 되돌아갔다.

***

에고스트림 본부, 큰집.

"흐아암..."

"오빠, 뭐해요?"

"응? 아, 티비보고 있지."

"...저게 대체 뭐길래 저렇게 집중해서 보는거에요?"

서은이는 의아한 표정을 한채 포크로 사과를 한조각을 집어먹으며, 내게 그렇게 물었다.

아침의 거실.

때마침 모두가 모여있는 그곳에서.

나는 집중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멸망의 순간을, 느끼기 위해.

[이시각 미국은 미국 지부 협회 창설 주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아직도 축제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앵커의 말과 함께 화면에 잡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

나는 그걸, 집중해서 보고있었다.

그래, 이제 곧이다.

내가 멸망하는 시간대에 걸리는지 안걸리는지가 결정되는 순간이.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갑자기 폭발하며, 비극이 시작되었다.]]

원작에서 분명히 언급되었던 그 말.

머리가 폭발하면 이제 멸망이 시작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

만약, 폭발하지 않는다면?

그 소리는 이미 멸망은 이루어졌고, 엑스 마키나의 희생으로 시간이 돌아온 상태라는거겠지.

나는 이미 모든 멸망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돌아가 기억을 못한채 이 자리에 앉아있단 소리고.

자, 그러니.

터지냐. 안터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그렇게 집중하여 티비를 봤고.

마침내, 분침이 정시를 가르킨 그 순간.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밤의 미국에서 전해드린 김유미 기자였습니다.]

"휴우..."

나는 소파에 그대로 허물어졌다.

...다행히, 내가 짬처리를 안해도 되는 시간대인가보다.

아니 뭐. 따지고보면 이미 과거의 내가 짬처리를 했다는 소리겠지만. 어차피 그건 없던 일이 됐을거니까 내 알바가 아니다. 과거의 내가 어련히 잘 했겠지.

"...다인오빠, 어디 아프신데 있어요?"

"응?"

"아니, 아까부터 막 한숨을 쉬시길래..."

그때 내 맞은편에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은월이.

나는 그런 그녀에게 걱정말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안도의 한숨이었어 은월아.

나는 그렇게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느껴지는 동그란 공 모양의 무언가.

아마 저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터지고 멸망이 시작되었다면, 나는 제일 먼저 이 수면가스가 든거부터 터트렸을거다.

다만 지금은 그 시간대가 아니므로, 이제 그럴 필요는 없고. 다시 내 방 어딘가에 둬야겠네.

"자영 언니, 그거 제가 먹던건데..?"

"에이. 서은아. 네꺼 내꺼가 어딨니. 다 우리꺼지."

"흠. 사과 맛이 달구나. 예전에 마지막으로 먹었을때는 이정도로 달진 않았던거 같은데."

"신령씨. 하나 더 깎아드릴까요?"

그렇게. 시끌벅적한 거실 가운데서.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인터넷을 봐도 별다른 얘기가 없는 걸보니, 결국 멸망은 이대로 비껴간게 맞는거 같다. 아마 엑스 마키나가 스스로를 희생해 광범위하게 시간을 돌렸겠지.

원작에서 제대로 이 사태의 원인이 뭔지, 마키나가 어떻게 막은건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알 방법은 없지만... 하여튼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결국 일은 벌어졌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해야지.

...아마 조만간, 갑작스럽게 전세계에 엑스 마키나의 사망 소식이 밝혀질거다. 철저히 비밀로 하던 그의 정체가 아마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찌어찌하다 공개된걸로 기억한다.

하여튼, 뭐. 그건 이제 며칠 후의 이야기니까 됐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생각거리가 있었다.

"....."

그건 바로, 멸망한 그 시간선에서 내가 무엇을 했느냐.

일단 내 계획상으로는 시간이 돌아가는걸 모른채 괴로워하는 스타더스를 만나, 그녀를 잘 달래서 괜히 마음고생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잘 했을지 모르겠다. 스타더스가 내말을 안들었을 수도 있고. 아마 영원히 모를 일이겠지.

...하지만, 만약 잘 풀렸다면.

그녀가 내 말을 믿고, 내 곁에 있었다면.

아마, 나는 내 비밀을 숨기지 않고 다 말해줬을거다. 어차피 없어질 시간대니까.

잊혀질 기억이니까.

"하하... 스타더스의 반응이 궁금하네."

"응? 스타더스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내 조용한 중얼거림에 무슨일이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서은이에게, 나는 웃으며 얼버무린 뒤 잠시 실례한다 말하고 내 방으로 걸어갔다.

...과연 스타더스는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화냈을까? 경멸했을까? 아니면 당황했을까. 어쩌면 황당해 하면서도 웃었을 수도 있겠다.

뭐.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니.

나도 당연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다만.

"......"

방의 문고리를 잡은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살짝 아려오는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순간이 모여서...

"....쓰읍. 이거 왜이래. 부정맥인가."

난.

난, 네가.....

"....."

잘 모르겠다.

왜 계속 가슴이 아려오는지.

무언가 잊어서는 안되는 걸 잊은거 같은 기분이 드는지.

어째서, 심장이 계속 뛰는건지.

"진짜, 모르겠네."

나는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시간 회귀의 부작용인건가? ...내가 회귀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네. 그냥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다만. 문득 드는 생각.

어째서인지 갑자기 문득 든, 그런 생각을.

나는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중얼거렸다.

"...스타더스, 보고싶네."

***

-달칵, 달칵.

한국 히어로 협회 본사.

스타더스의 사무실.

그곳에 앉아서 볼펜을 잡고 딸깍거리고 있던 신하루는, 달력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살짝 내밀었다.

"...거짓말쟁이."

...뭐, 다음번에는 금방 다시 볼 수 있을겁니다.

마지막 테러에서 용을 타고온 에고스틱이, 그 말을 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금방 다시 볼거라더니,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뭐가 금방인가. 평소처럼 또 세달뒤에 오고는 그게 금방이라고 할 셈인가?

"에휴..."

그렇게 신하루는 한숨을 살짝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무실 반대쪽 벽에 걸려있는 티비의 화면.

[이시각 미국은 미국 지부 협회 창설 주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아직도 축제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화면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고.

그리고.

"......"

그녀는 어쩐지, 그 화면에 눈을 땔 수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그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밤의 미국에서 전해드린 김유미 기자였습니다.]

"....."

뭐, 딱히 별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정상적이게 축제하는 모습만 보여주다 끝난 뉴스방송.

...내가 저걸 왜 보려고 한거지.

그렇게 다시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는 다시 업무를 봤다.

그리고.

그녀가, 그러던 그때.

-툭.

"....어?"

갑자기 문서에 떨어진 물방울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어디서 떨어진거지?

그렇게 의문을 가진 그녀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눈가에 손을 가져다갔고.

"....뭐야."

그리고 그녀는 그때서야.

꺼져있는 컴퓨터 화면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기의 눈 한쪽에서, 눈물 한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뭐야. 왜, 히끅. 왜이래."

...내가 미쳤나.

신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눈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

...무언가를, 잊은거 같다.

끝이 아닐겁니다.

시간이 되돌아가도. 결국 우리 둘이니까.

무언가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감정이 침전한다.

"....진짜, 왜이러지..."

...기억하고 싶었는데. 잊고싶지 않았는데.

이대로 잊으면. 영원히 서로, 알지 못할까봐.

꼭 기억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잊은거 같은, 이 기분.

그리고.

그 기분과 더불어.

그녀는, 갑작스럽게 어떤 강한 충동이 들었다.

...이대로는 놓칠 수는 없어.

이 감정만이라도. 제발, 기억해.

꼭.

언젠가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기도 모르게 든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어느덧 눈물을 멈추고. 어지럽던 머리도 정리하고. 혼란스럽던 감정도 정리하고.

이내. 조용히 의자에 기대 앉았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눈물이 왜 난건지도 의문.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건가 라는 추측만 할뿐.

다만.

아까부터, 드는 어떤 생각.

그 혼란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생각 끝에 떠오른 그녀의 마음을.

신하루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에고스틱... 보고싶다."

대체, 갑자기 어째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에고스틱이 보고싶었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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