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05화 (205/328)

멸망하는 세계.

그리고, 곧 시간이 돌아가 없어질 세계.

그곳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에 옥상에서, 나와 스타더스는 함께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 줄 아십니까?"

"하하, 그때 나도 놀랐었어."

"특히 거기 갇혔을때는..."

어차피 시간이 돌아가, 이 모든게 없던 일이 될 것인만큼 나는 그냥 편하게, 편하게 떠들었다. 딱히 말할때 실수할까봐 눈치볼 것도 없이, 그냥 가볍게 이것 저것.

"....흐응. 그랬구나."

스타더스 또한, 가볍게 미소지으며 대화에 어올려주었다. 사실 우리끼리 할 얘기가 뭐가 있겠는가. 그냥 지금까지 서로 함께 공유했던 여러 일들. 이제는 마치 추억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에 대해 떠드는거지. 한은그룹 지하에서 둘이 같이 만났던 일, 부산 호텔에서 있었던 일...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히어로와 빌런이 둘이 나란히 웃으며 붙어앉아 이때까지의 일들을 얘기하다니.

나야 원래 스타더스를 좋아했던만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겼지만, 솔직히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건 의외였다. ...그래도, 뭐. 내가 내 정체를 밝히기도 했고, 세상은 멸망하는데다가 지금 우리 둘이 뭘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 스타더스또한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옥상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몇시간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평상시에는, 서로 싸우느라 바빠서.

서로가 서로의 신분에 얽메여,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의 속마음을 억누르며, 미쳐 나누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세계가 멸망하고 없어지게될 이 순간에서야, 우리는 그제서야 서로 웃으며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시간이고, 멸망중인 세상으로 우리는 여러 얘기를 나눴다.

"짜잔. 안녕하십니까. 저희 구면이죠?"

"와... 하하, 그래. 내가 진짜 그럴 줄 알았다."

그러던 중, 어차피 잊게 될 시간선인 만큼 내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기도 했고.

"나도 널 다인이라고 부를테니까, 너도 날 하루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하루씨."

서로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기도 하고.

"...잠깐, 그때 다인 너. 해변에서 이설아가 나한테 널 소개주지 않았었어?"

"앗."

"흐응...?"

...신하루가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이설아와 나의 관계를 사근사근 묻길레, 본능적인 위기를 느낀 내가 열심히 변명하기도 했고.

"아니라고?"

"당연하죠! 저희는 가족같은 사이입니다. 생각하시는 그런건 아예 없어요!"

"...다행이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거기서 뻗어나가 나와 에고스트림 여성 멤버들 간의 사이에 무슨 썸띵이 있는거 아니냐는 스타더스의 의혹에 해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은근, 끊이지 않는 대화거리들.

"하하, 진짜? 그때 내가 보고싶었다고?"

"크흠. ...네."

"아하하. 하하하하."

"아... 그만 웃으세요. 쪽팔리니까..."

그렇게

그녀와 함께 웃으며 떠든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푸른 하늘이, 점점 주황색이 되가고 있을 정도로.

"..."

사실 중간에 월광교가 살아남으려고 발작을 일으켰는지 갑자기 밤이 된 적도 있었는데, 실패했는지 다시 낮으로 돌아왔다.

하여튼 이제는 점점 노을이 지는 무렵.

...본능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우리는. 어느덧 입가에 선선한 미소만 지은채 주황색으로 물들은 하늘을 구경했다.

옥상 난간에 앉아, 두 손을 난간에 두고.

그렇게, 멸망하는 세계 맨 꼭대기에 앉아. 곧 돌아가게될 시간을 기다리며.

'....음.'

그러는동안 난, 대화가 멈춘 그 순간에야 살짝 제정신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와 나눈 대화를 진지해진 마음으로 조용히 복기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는 있다. 지금 상황이 특수하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 내가 정체를 밝히기도 했고,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순간이니까. 어쩌면 심리적으로 매몰린 그녀에게 내가 오는 손길을 내밀었던만큼, 흔들다리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하루는 내게 너무 사근사근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히어로와 빌런 사이가 아닌, 오랜 친구사이였던 것처럼.

마치, 그녀가 나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단 것처럼.

'.....'

...나는 스타더스를 좋아했다. 처음부터, 당연히. 그러니 나는 그녀와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는?

사실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

시간이 돌아갈거란 내 말을, 그녀가 한번의 의심도 없이 바로 받아들여주지 않있나. 마치 나를 처음부터 신뢰했던 것처럼.

...빌런인 나임에도. 어째서.

그리고, 그때.

"있지..."

"네?"

내가 그런 의문을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 그때.

문득,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운 채 지는 해를 바라보던 신하루가, 입을 열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주홍빛으로 물든 채.

무언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게 말을 하는 그녀.

"...이제와서 생각한건데 말이야."

"네."

"난 사실 다인 널, 그러니까 에고스틱인 널."

"처음부터. 애초에...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

"....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휙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여전히 주홍빛 지는 하늘쪽을 보며 선선히 미소만 짓고 있는 하루.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시선을 하늘 쪽에 두며, 말을 이었다.

"...사실, 있잖아. 난 어쩌면 널 그냥 의식적으로 싫어하려고 했던거 같아."

"빌런이니까, 테러를 일으키는 악당이니까. 그리고 난, 히어로니까. 영웅이니까. 당연히, 싫어해야지... 이러면서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내가 혼란에 빠져있던 말던, 하루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이제와서 생각해보니까."

"나는, 언제부터일까. 비행기가 떨어지는 그날, 너가 나한테 전화를 건 그날일까?"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의 확신에 차서, 말을 하는 그녀.

"그때부터. 널."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던거 같아."

"오히려. 오히려 말이야."

...아닐거야.

에이, 설마.

"여러 시간이 흐르고. 네가 나를 위해주던 그때, 있지. 그때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난, 네가....."

....

그리고 하루는, 조용히 중얼거리듯. 내게만 들리게, 말끝을 흐렸다.

"...."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가에 약간 작은 물기가 맺혀있는 그녀.

그리고 하루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하, 웃기지? 모든 것의 끝에서, 어차피 다 사라질. 없어지게 될... 이 순간에서야, 내 마음을 깨닫다니. 그리고... 지금에서야 너한테 말하다니."

"....."

여전히 약간 붉어진 눈으로 하늘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신하루를 보며.

그렇게.

신하루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된 나는.

"....."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거지.'

대신 나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나는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영원한 악으로. 숙적으로 남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거지.

하지만, 나도 빌런은 처음이었기에.

무언가 미숙한 부분이 있었을거다.

...그래.

비행기가 떨어지던 그때, 그녀에게 연락해서 응원을 했으면 안됐던걸까.

그날 지하에서, 그녀를 구하면 안됐던걸까.

한은그룹이 거대병기를 타고 침공했을때, 탈취하면 안됐던걸까.

월광교에서 폭풍을 일으켰을때, 나서면 안됐던걸까.

그날 마왕성 앞에서 그녀를 대신해 상대했으면, 안됐던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돌아갔어도, 나는 분명 그렇게 했을거 같다.

그렇지만.

'....이걸, 알려야하는데.'

나는, 시간을 돌려서라도, 미래의 내게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됐다고.

스타더스의 아치에너미. 영원한 숙적. 악독한 빌런이 되는 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단단히 잘못됐다고.

빌런으로 남으려면, 지금이라도 계획을 바꿔야한다고.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전할 수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은, 아무리 별의 힘을 가진 나라고 해서 거스를 수 있는게 아니었기에.

그렇게 내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그때.

...툭.

난간에 올려놨던 내 손에, 무언가 닿는게 느껴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툭. 툭.

내 왼손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의 손가락.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나는,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신하루의 푸른 눈동자와 그대로 마주했다.

"....안돼?"

작은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묻는 그녀.

...어차피, 마지막이잖아.

다, 없던 일이 될 거잖아.

주홍빛 태양에 비추어져, 눈물에 빛이 반짝여 숨이 막힐듯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내 손에 조심스럽게 맞닿는 그녀의 손가락.

이내 하루의 손이 내 손등 위를 완전히 덮을 정도가 되자.

나도, 손을 살짝 움직여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

그러자, 살짝 놀라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그래.

나는 스타더스를 좋아했다. 처음부터, 당연히.

그러니. 상관없는게 아닐까.

...몰라. 미래의 일은 미래의 에고스틱이 알아서 생각하겠지. 빌런이고 뭐고,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 걔도 눈치가 있다면 나중엔 어련히 알아서 전략을 새로 짜거나 해겠지. 어차피 없어질 시간선의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럴거야.

그리고.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다, 없던 일이 될거니까.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도 되는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은채, 그냥 웃어주었다.

그러자, 그런 나를 보며 하루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

퍼어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엉.

"...이제, 슬슬 끝인가 보네요."

"응..."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옥상 위 노을 아래에서, 터져오는 폭발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

...오늘의 하루도, 이제 이렇게 끝나겠지.

세상은 완전히 멸망하고.

시간은, 다시 되돌아갈꺼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일도 우리 둘 모두의 기억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지겠지.

그리고, 다시 서로 싸우는 날들로 돌아갈꺼다.

어느때와 다름없이 나는 테러를 하고, 그녀는 막고. 나는 웃으며 방송을 키고, 그녀는 사람들을 구하고. 그런 날들로.

"...하하."

"왜 웃어?"

"...그냥요."

나를 향해 의문어린 시선을 던지는 그녀에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다시한번 꽉 잡아주었다.

그러자 뭐야...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여전히 붉어져있는 그녀의 귀.

...근데 뭐, 나라고 다를건 없을거 같았으니 가만히 있었다.

퍼어어어어어엉.

"...끝이 아닐겁니다."

"...응?"

그렇게, 점점 폭격음이. 버섯구름 같은 것들이, 우리 앞으로 점점 가까이 오는 와중에.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돌아가도. 결국 우리 둘이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다른 손을 들어,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살며시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울지 마세요."

".....응."

그리고 그런 내말에.

하루는 붉은 눈으로도, 약간 웃어주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는, 그녀의 얼굴에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리고.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렇게.

.....

시간이,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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