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03화 (203/328)

자유의 여신상이 폭발했다.

즉, 지금의 시간선은 세상이 멸망하는 시간선이라는 것. 아직 엑스 마키나가 시간을 돌리기 전이라는 소리.

그걸 깨달은 나는, 곧바로 행동으로 착수했다.

"오빠?"

갑자기 티비를 보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다들 무슨 일인가 하고 나를 보던 그때.

나는 신속하게 내 주머니에 넣어둔, 필살의 캡슐을 꺼내 그대로 주먹으로 쥐고 터트렸다.

그러자, 갑자기 연기로 차기 시작하는 거실.

"다인씨, 무슨 일이에..."

"야, 뭐하느으..."

"오, 오빠? 윽..."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상증상에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멤버들.

미안하다. 좀 자고 있어.

세계의 멸망. 이 모든 일들은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터진 몇분후 갑자기 전세계 모든 능력자들이 뭐에 홀린듯 도심을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니, 나는 일단 우리 멤버들부터 잠재우고 봤다. 아무리 없던 일이 될 시간대라고 해도, 내 동료들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휴, 이제 다들 잠들었겠지.

그렇게 모두들 잘 쓰러졌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나는, 눈을 깜빡이며 멀쩡하게 서있던 은월이랑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

"......"

갑작스럽게 거실에 내려앉는 어색한 공기.

...맞다. 마법진. 은월이가 가진 마법 중 하나로 자기도 모르게 막았나보다.

그렇게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에 내가 멈칫한 그때.

눈을 굴려 거실에 쓰러져있는 다른 이들을 본 은월이는, 이내 약간 슬픈 미소를 짓더니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믿어요, 다인오빠."

그러더니 숨을 한순간에 들이마쉬는 그녀.

그렇게 연기를 마신 후, 은월이는 그대로 자리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받혀준 뒤, 조용히 바닥에 눕힌 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은월아."

좀 자고 있어.

어차피 잊어버릴, 한순간의 꿈일뿐이니까.

그렇게 거실에 쓰러져있는 모두를 확인한 이후,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어차피 약효에 한계가 있어서, 다들 몇시간 후에는 일어날거다. 신령씨처럼 선천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더 일찍 일어날 수도 있고.

그래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그 몇시간이 안돼 세상은 다 멸망하고, 시간이 다시 돌아갈테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복장을 테러할때 입는 에고스틱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면, 모자, 망토. 전부 체크.

그렇게 카메라를 챙기고, 나는 거실에 잠들어있는 멤버들의 모습을 눈에 새긴 뒤.

조용히, 집을 나섰다.

우리 멤버들의 멘탈은 이제 안전하고.

이젠, 스타더스를 만나야겠지.

***

멸망은 하루 아침에 찾아왔다.

[속보입니다! 미국이 유럽과 중국, 호주, 이집트를 향해 핵을 쐈습니다! 이에 다른 나라들은 요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똑같이 미국에 핵폭탄을 날렸다고 합니다!]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시작된 핵전쟁.

뜬금없이 미국 대통령이 전대륙에 핵폭탄을 쏘기 시작하며, 모든 참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이보다 더 심한 일이 뭐가 일어날 수 있을까 했지만.

이건 그저 신호탄에 불과했다.

[속보입니다! 미국의 S급 빌런 셀레스트가 이끄는 빌런 단체 에테리아가 대규모 공습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미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며 국토가 불바다로...]

[속보입니다! 미국의 혀, 협회가 자국민을 공격하고 있다는 속보입니다! 히어로들이 도시를 박살내고 있으며,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나...]

[속보입니다! 미국, 유럽, 러시아의 초상능력자 수용소가 전부 통제력을 잃고 박살났다고 합니다! 이에 격리되어있던 S급 빌런들이 풀려났다고 하며 인근 도시가 초토화...]

[속보입니다! 북대서양의 빌런 조직 아틀라스의 군대들이 전 세계에 침공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안가쪽에 살고 계신 국민 여러분은 서둘러 대피를...]

[소,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동부 초상능력자 구치소, 이스트 카르케리스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지금 S급 빌런들이 전부 풀려났으므로 국민 여러분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속보입니다. 서울 부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들이 전부 대규모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하, 그냥 저희 다 망한거같아요.]

"지랄났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고층 건물의 옥상.

나는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들으며, 도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폭발음들과,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들.

현세에 강림한 멸망. 종말이라는 단어를 형상화 한다면 이런걸까?

나는 그저 차분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 일은, 애초에 내가 건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이 사태의 최초의 시발점이 어딘지, 대체 무엇이 모든 능력자들이나 정부, 협회가 자국민을 공격하게 만든건지 난 모른다. 아마 최면 능력자, 뭐 그런게 아닐까 추측할뿐. 아니면 신의 작업이던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아는건, 이 모든 일은 전부 '없던 일'이 될거라는 것. 나또한 오늘의 기억을 잊게 될 것이라는거다. 아마 자유의 여신상 지켜보다 안 터지는거 보고 안심한 뒤 그냥 일상을 살게되겠지.

즉,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오프 더 레코드.

내가 여기서 내 비밀을 다 공개하고, 신분을 까발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어차피 다 없던 일이 될거니까. 그래서 지금 나올때 인식저해도 안걸고 나왔다.

"휴우..."

나는 그렇게 잠시 옥상 난간에 기대서, 무너지고 있는 도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뉴스의 내용.

[속보입니다. 유성기업의 이설아가 전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랜덤하긴 한데, 하필 밖을 보니까 여기 방송국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네요. 그래서 뭐, 이게 마지막 방송인거 같습니다. 다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뉴스는 끝났다.

음. 뭔가 펑펑 터지는게 미사일도 꽂히는 모양.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

...뭐, 딱히 별 감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 의미없는 풍경들인데 뭐.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 일상이나 미래에는 별 영향을 안 미칠, 동떨어진 사건들이다. 어차피 없어질 시간선이니까. 심지어 나조차도 이 풍경을 기억 못할테고.

...그래도.

나는 잠시 원작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이 모든게 다 없는 일이 될거라는걸 모른 채, 동분서주하던 스타더스를. 혼자서 애써 부질없는 노력을 하며 고통받던 그녀를.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 꼴은 내가 못보겠다.

그 생각을 하고 잠시 미소를 띄운 나는, 이내 챙겨온 카메라를 염동력으로 띄워서 켰다.

좋아, 전파납치로 티비 모든 채널에 송출 되고있을거고.

이제 이게, 부디 스타더스에게 들리기를 바래야지.

나는 그 작은 소망 하나를 품은 채, 입을 열고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크흠, 크흠.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아이고, 이게 세상이 조금 난장판이네요. 그렇죠?"

"뭐...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이 상황에 대해 뭘 알고있긴 합니다."

"그러니."

"스타더스씨, 부디 이리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설핏 미소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

하루아침에, 세상이 무너졌다.

신하루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합니다!"

"미국이 또 핵을 쐈어요. 이거 막아야합니다! 요격장치 가동해!"

"아니, 협회장님은 대체 어디 계신거야!"

그야말로 미친듯이 움직이는 협회의 컨트롤센터.

그곳에 남은 직원들은, 애써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그렇게 스타더스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멍하게 바라보던 그때, 협회 한쪽에서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들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동부 수용소가 갑자기 뚫렸어요! 빌런들 다 탈출하면서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 서울, 부산, 경기, 전북등 전국에서 빌런들이 튀어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무슨 날잡은 것처럼 빌런들이 날뛰고 있어요!"

"...."

스타더스는 거의 영혼이 나갈거 같았다.

...이제는 이게 그냥 기분나쁜 꿈인지 의심되는 상황.

그러나, 피부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는 이게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와, 이, 이설아 회장이 미사일을 쏴버렸습니다! 유성그룹이 숨겨둔 미사일인거 같아요!"

"뭐라고요?"

그렇게 잠시 멍해있던 스타더스는, 그 소식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이설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후 소리샘으로..]

그러나 가지 않는 신호음.

늘 그녀의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받는 이설아였으나,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전 일단 밖에 가보겠습니다."

"...네. 갔다오세요. 뭐, 저희가 할 수 있는건 더이상 없어보이지만..."

자포자기한 채 중얼거리는 협회 직원을 지나쳐, 스타더스는 밖으로 나섰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사방에서 들리는 폭격소리.

".....아."

신하루의 눈이, 정처없이 떨렸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되지?

그녀는 이미 협회에서 모든 보고를 받은 상태였다.

갑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능력자들이 히어로고 빌런이고 관계없이 모두 미쳐 날뛰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세계 정상들도 다 타락했다는 소식.

온 지구가, 갑자기 멸망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하루 아침에.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대체 어떻게해야 하는가.

대충 날다가 눈에 보이는 빌런들을 다 처리했지만, 그야말로 끝도없는 한명을 잡으면 다른 놈이 튀어나오는, 끝이 없는 상황.

말그대로 압도적인 물량 웨이브에, 신하루는 심리적 절벽에 내몰렸다.

...아무래도, 답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 끝인거 같다.

이미 세상이 다 멸망하고 있는데, 그녀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녀의 머리속에 갑자기 떠오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빌런인 어떤 남자 한명이였다.

"...에고스틱."

그렇게 심리적으로 몰린 상황에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내가, 에고스틱에게 생각보다 많이 의지하고 있었구나.

이 상황에서도, 그를 제일 먼저 생각할 만큼.

...그러나, 그가 도움을 줄 수 있을리가 없다.

당연히 그도 다른 이들처럼 미쳤을게 거의 확실하기에.

그렇게 그녀가 모든걸 놓고, 또 어디론가 날아갈 무렵.

지나치는 무너진 건물의 옆에 전광판에서,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그 방송에서는.

그녀가, 생각치도 못했던.

아니. 생각은 했지만, 차마 기대는 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세상이 조금 난장판이네요. 그렇죠?]

커다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

그 모습에, 그녀는 홀린듯 눈을 고정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말.

[뭐...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이 상황에 대해 뭘 알고있긴 합니다.]

[그러니.]

[스타더스씨.]

[부디, 이리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마치 자신의 눈을 마주치며, 설핏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

그 뒤에 배경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오직, 그를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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