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02화 (202/328)

스타더스와 만나서 한 마지막 테러이후, 몇주가 지났다.

"이제 슬슬 겨울이네..."

나는 베란다 밖에서, 이전보다 확실히 쌀쌀해진 바람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올해의 끝도 점점 다가오고, 원작의 스토리 상으로도 점점 중반을 넘어가는 느낌.

벌써 이 세계에 떨어진지 몇년차, 괜히 감수성이 촉촉해지는 낮이었다. 본격적인 빌런 활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꽤 된 상황.

"흐아아!"

그런 감상을 하다가, 나는 밑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아래를 바라보니 보이는 기계장치를 탄 서은이. 숲속에서 훈련하다 여기까지 튕겨져왔나보다.

"어, 오빠!"

그리고 때마침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서은이가 나를 보고는 손을 휙휙 흔들길레, 나도 살짝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웃더니, 다시 훈련하러 달려가는 그녀. 지금쯤 새로 영입한 우리 신령씨가 훈련을 봐주고 있었지, 참.

나는 그렇게 다시 뛰어가는 서은이를 보며, 새삼 추억에 잠겼다.

...서은이도, 처음 만났을때가 중학생때였는데. 벌써 한두달뒤면 고3이다. 시간 참 빠르네. 예전에는 분명 어린애같던 서은이도, 예전과 비교하면 얼추 커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서은이랑 같이 테러를 시작한것만 따지면... 벌써 3년이 다되가는 상황.

"후우."

에고스틱이 되서 테러를 하기로 한 이후로,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영입하고, 스타더스 성장시키고, 해외가서 다른나라 빌런들이랑도 만나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즉, 그 뜻은 이제 슬슬 세계가 하드코어 해질 때가 왔다는 소리다. 사실상 지금도, 안 무너진게 이상한 세계이기도 하고. 히어로들보다 빌런들이 훨씬 많을 뿐더러, 빌런들 능력 하나하나가 굉장하다. 그나마 걔네들이 전부 미국에 몰려있어서 다른나라들이 그럭저럭 평온하게 굴러가고 있는거지.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만 봐도, 초거대기업이 나라의 금융부터 정치까지 다 잡아먹은 상황 아닌가. 듣기로는 이설아 말 한마디면 총리도 바뀐다고 한다. 물론 그 회장은 빌런과 결탁한 상황이기도 하고. 물론 그 빌런이 나다.

하여튼 결론적으로, 이 세상은 언제 무언가 터져도 이상할게 없다는 소리.

그리고 조만간, 그 무언가가 곧 터질거다.

그것도 큰게.

"다인씨?"

"...네?"

그렇게 상념에 잠겨있을 무렵,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다시 뒤쪽으로 돌리자 보인것은, 설핏 미소를 지으며 차를 들고온 수빈씨였다.

"추운데 그러면 감기걸려요.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있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수빈씨한테 감사를 표하고 머그컵에 담긴 차를 손에 들었다.

마셔보니 따뜻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그렇게 차를 나한테 건내고 난 후, 자기도 난간에 몸을 기대더니 내게 그렇게 묻는 그녀.

"뭐,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었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뭐 그런거요."

"으응."

내 말에 살짝 침묵하던 수빈씨는, 이내 옅게 웃더니 내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다인씨...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따뜻한 목소리로 말하는 수빈씨.

음, 내가 요즘 무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나?

내가 그렇게 말을 고를 무렵, 수빈씨는 계속 나에게 말을 이었다.

"다인씨가 많은걸 알고, 또 이 세상을 위해 열심히 뛴다는건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한숨 돌려도 괜찮지 않을까요? 너무 일에 매몰되다 보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다시한번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수빈씨.

...음, 난 딱히 무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정도면 쉴거 다 쉬면서 다 일하는거 아닌가?

"맞는 말이네요. 기억하겠습니다."

그래도 왠지 그렇게 말하면 안될거같은 분위기라, 나는 그냥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살며시 웃더니,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수빈씨. 안그래도 슬슬 추워졌으므로, 나도 그녀를 따라 베란다에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같이 거실로 돌아왔을때쯤, 수빈씨는 설핏 웃던데 내게 농담을 던지듯 말을 걸었다.

"뭐, 아무리 요즘 세상이 불안정하다고 해도 막 내일 갑자기 멸망하고 그런건 아니잖아요."

"....하하, 그렇죠."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애써 웃어보이며, 나도 모르게 복도쪽에 걸린 달력을 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음, 수빈씨.

세상이 내일 당장 멸망하는건 아니긴 한데.

그, 사실 다음주에 한번 멸망할거긴 해요.

물론 나는 그런말은 못한 채 입을 꾹 닫기는 했다.

어차피, 뭐.

없던 일이 될거니까.

***

원작 [스타더스트!]는, 중반부까지 굉장히 피폐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따라가던 독자들이 꽤 있었다.

초기부터 풀린 스타더스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떡밥. 그리고 그녀의 힘의 근윈이 다른 히어로들과는 다르다는 작가의 언급까지.

그랬던만큼, 맨날 빌런들 사이에서 구르는 스타더스를 보면서도 독자들은 희망을 가진 것이다. 그래! 언젠가는 스타더스가 갑자기 숨겨진 힘을 각성해서 다른 빌런들을 다 두들겨 패고 다닐거야!

그런 독자들의 멘탈을 박살나게 만들었던 이슈.

스토리 중간에 아무런 떡밥도 없이 갑자기 진행된, 세계 멸망 에피소드.

에피소드의 내용은 간단하다.

갑자기 세계 각국의 협회와 정부. 그리고 능력자들이 모두, 세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핵폭탄이 날아다니고, 도시는 불타고, 히어로들이 미쳐서 도시를 무너트린다.

그렇게, 세상이 순식간에 망하는 과정을 담은 에피소드. 그게 뜬금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순식간에 멸망하기 시작하는 세계에, 어째서인지 홀로 영향을 받지 않은 스타더스 혼자 고군분투하는 내용.

당연히 독자들은 난리가 났다. 그것도 하루만에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3화에 담았는데, 일주일에 한화가 올라왔으므로 독자들에 무려 3주동안 진행된 에피소드. 그동안 작가가 미쳤다부터 온갖 낭설이 떠돌았다. 지금까지 세상의 멸망과 관한 떡밥은 월광교의 차원실험과 '신'의 존재등 없던건 아니지만, 그것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뜬금없이 세상이 망했기 때문.

그나마 고통의 3주이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 모든게 끝나게 된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미국의 S급 히어로 엑스 마키나, 유일하게 시간조작이 가능한 그가 자기 자신을 희생해 세계의 시간을 돌려서 멸망을 막아낸 것. 그렇게 그 모든일이 '없던 일'이 되어, 에피소드는 끝이난다. 당연히 스타더스를 포함한 거의 모두가 기억을 못하고. 세계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하여튼.'

그 충격적인 에피소드가, 곧 시작되기까지가 머지 남지 않았다.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전무. 트리거가 뭔지 아예 알 수 없다. 정황상 아마 정신오염을 연쇄적으로 시키는 돌아버린 능력의 S급 빌런이 튀어나와 이렇게된게 아닐까라고 추측할뿐. 어디까지나 원작 만화가  그 파트는 거진 철저하게 스타더스의 시점에서 진행되었기에, 알 방법이 없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나는 이 일을 이용해먹기로 했다.

멸망 에피소드에서 시간이 돌아간 이후어째서인지 시간능력자 엑스 마키나의 정체와 그의 죽음이 전 세계에 밝혀져 보도된다.

그리고 나는 그점을 이용, S급 빌런회의 카테달에서 미리 엑스 마키나의 정보를 알렸다. 지금은 다들 반신반의하겠지만, 나중에 공식 정보가 뜨면 그제서야 내 말을 믿게 되겠지. 그렇게 차근차근 영향력을 확대해가는거다.

사실 뭐, 이것말고는 크게 다른걸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이 모든건 '없던 일'이 될거고, 나또한 그냥 평범한 하루처럼 보내게 되겠지. 물론 멸망을 겪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시간 돌아가고 다 잊게될거니까.

그래서 나는 그 전까지 평범한 날들을 보냈다.

우리 PMC 에고스쿼드 멤버들 또 한명한명 코치해주고, 다음 테러 준비랑 카테달에서 풀 정보 선정하느라 고민하고, 미리 처리할 빌런들도 고르고, 멤버들 훈련을 도와주는. 그런 평범한 날들.

물론, 그것말고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놨다.

...비록 이번에 세계가 멸망하는건 그 누구도 기억은 못하지만, 어쨌든 따지자면 겪게 될 일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스타더스는 어차피 나중가면 시간이 역행된다는 것도 모르고 혼자 힘으로 무너지는 세상을 막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애쓰고.

...난 그 광경을 다시 재현할 생각은 없었다.

뭐? 어차피 기억도 못하게될, 시간선에서 삭제될 없는 일이라고?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더라도.

스타더스 또 고생하는건, 못보겠다.

내 힘으로 멸망은 못막아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래서 난 조금씩, 작은 것들은 준비해놨다.

애초에 저번 테러 마직막에 스타더스한테 곧 다시 볼거라고 한 이유가 뭐겠어. 바로 이날 때문이다.

하여튼 그렇게 하다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어느덧.

드디어, 그날이 왔다.

"오빠, 뭐해요?"

아침의 거실.

때마침 모두가 모여있는 그곳에서, 나는 집중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시각 미국은 미국 지부 협회 창설 주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아직도 축제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앵커의 말과 함께 화면에 잡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

나는 그걸, 집중해서 보고있었다.

그래, 이제 5분남았다.

이 모든 멸망의 시작.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갑자기 폭발하며,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래.

여기서 머리가 폭발하면, 모든 멸망의 일이 시작되는 거다.

다만, 폭발하지 않는다면 이미 멸망은 이루어졌고, 엑스마키나의 희생으로 시간이 돌아온 상태라는거겠지. 나는 이미 모든 멸망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돌아가 기억을 못한채 이 자리에 앉아있단 소리고.

자, 터지냐. 안터지냐.

나는 그렇게, 집중해서 티비를 봤고.

분침이 정시를 가르킨, 그 순간.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벙-

[꺄아아아아아아악!]

화면에서 자유의 여신상 머리부분이, 그대로 산산조각나며 폭발했다.

"어, 뭐야 뭐야?"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도 당황하던 그 순간.

"쓰읍."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미리 준비해놓은것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아무래도, 내가 짬처리를 해야되는 시간선에 걸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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