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획은 간단했다.
눈이 내리는 이 설산 꼭대기에는 신령이 잠들어있다. 용의 형상을 하고있는 신령이.
그 신령을 설득시켜 에고스트림으로 빌런 타락을 시켜 파티에 합류하게 한다.
좋다. 이론은 완벽했다. 설득을 어떻게 하냐가 살짝 고민이긴 한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그런 행복한 생각을 했었었다...
이 산을 오르기 전까진.
"아니 시발... 이거 진짜 지랄났는데..."
우리가 오르고있는 눈 내리는 설산.
아니, 정확히는 눈이 무슨 겨울왕국마냥 휘몰아치고있는 설산에서, 나랑 최세희는 끙끙대고 있었다.
"야, 다인아! 이거 진짜 안되겠는데?"
나는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최세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낑낑데며 걷고 있었다.
거의 무슨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 분명 오르기 전에는 이정도는 아니여 보였는데, 신령이 무슨 능력을 쓴건지 막상 올라와보니 눈이 미친듯이 내리고 있었다.
"아오... 진짜."
나는 눈앞에 휘몰아치는 눈들을 막기 위해 팔로 앞을 가린채, 힘겹게 눈을 해치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뒤에 서 따라오는 최세희.
"야, 안되겠다! 나 그냥 능력 쓰면 안돼?"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뒤를 돌아밨다.
그러자 보이는것은 발밑에 번개를 파직이며 일렉트라로 막 변하려하는 그녀.
나는 그런 최세희를 황급히 제지했다.
"야, 안돼! 그랬다가는 괜히 또 문제생긴다니까?"
"에잉..."
그렇게 전기를 흩뿌리며 바닥에서 막 떠오르려고 한 그녀는, 혀는 차곤 다시 자리에 내려왔다.
내가 알기론 신령은 이 설산 꼭대기의 동굴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을거다.
그리고 이 산은 전부 그 신령의 관할인만큼, 괜히 능력을 사용했다가는 이를 감지한 신령을 자극해서 깨울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은, 조용히 올라가는게 최선.
"쓰읍... 근데 이거 잘못하다가 길 잃겠는데?"
나는 눈속에서 최세희한테 중얼거렸다. 아니, 무슨 바로 앞도 잘 안보여서 막 옆으로 돌게 생겼어.
그런데 최세희의 대답이 안들리기에 뒤를 돌아봤더니, 저 반대편에서 주황색의 무언가가 혼자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야, 여기야 여기!"
아니, 언제 저기까지 간거야?
결국 눈밭을 해쳐 최세희가 있는 곳까지 간 나는, 다시 그녀를 잡고 돌아왔다.
...그런데 여전히, 눈이 너무 많이 오는 상황.
"야, 앞이 안보여!"
그렇게 뒤에서 소리치는 최세희의 말에, 결국 나는 뒤를 내밀어 그녀에게 내 손을 내밀었다.
"하아, 손잡아."
"잉?"
내가 손을 내밀자, 추위에 빨개진 볼로 훌쩍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그런 최세희한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손잡고 따라오라고. 이러다 서로 놓치겠다."
"으.. 응. 뭐, 그러자!"
내 말에 어째 아까보다 볼이 살짝 더 붉어진 최세희는, 약간 움찔거리며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고, 살짝 앞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 좋아, 가자!"
나와 손을 잡고 나서, 뭔가 일부러 하이 텐션을 올리며 다시 큰 소리와 함께 앞으로 힘차게 걷는 그녀.
목도리를 꼈는데도 귀끝이 살짝 붉어진 그녀를 보며, 나도 피식 웃은 뒤 다시 설산을 함께 올랐다.
맞잡은 손이 따뜻해서, 아까보다 나은거 같기도 하고.
***
우리는 그렇게 설산을 계속 올랐다.
그냥 등산해도 힘들 마당에 추위에 눈보라까지 상대하며 걸으니 힘들어 죽을 지경.
그렇게 한 몇시간 걸어올라간 우리는, 잠시 쉬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근데 어디서 쉬지?"
"그러게..."
여전히 새차게 불어오는 눈폭풍.
그 한가운데서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 오르고 있던 우리는, 쉬고 싶은데 쉴 장소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아니, 눈 맞으면서 이 산바닥에 앉아 쉴 순 없잖아.
그렇게 잠시 머리를 굴린 나는, 이내 반대쪽 손을 튕기며 결론에 도출했다.
"그래, 이 산을 계속 오르다보면 아마 동굴이 있을거야. 그거 찾아서 쉬자."
"동굴? 여기가 무슨 히말라야도 아니고 무슨 지리산같은 느낌의 곳인데 동굴이 어딨어?"
"아니... 내가 이 산 꼭대기에 동굴이 있다고 했잖아. 그럼 중턱에도 동굴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가?"
내 나름 논리적인거 같은 말에 최세희가 설득되기 시작했다. 아니, 나름 그럴듯하지 않어? 그거라도 없으면 못쉬고 계속 끝까지 올라가야한다고...
"그래, 일단은 이쪽으로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왜인지 뭔가 있을거같은 능선을 따라 다시 눈을 해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올랐을까.
"오, 좀 날씨가 괜찮아진거 같기도?"
아까까지만 해도 매서운 폭풍처럼 내리던 눈이, 지금은 꽤나 잠잠해졌다.
물론 잠잠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아까 막 강풍까지 휘몰아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
그래서 우리는 이 산 중턱을 넘은 이후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걸을 수 있었다.
"야, 저기봐봐. 강있다 강."
"진짜네?"
그렇게 우리가 발견한 것은, 얼어붙은 강.
이미 땡땡 얼어 위에 눈까지 쌓인 긴 강을 따라, 우리는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멈춘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며 길을 오른 우리들. 얼어붙은 강을 따라 푸른 소나무에 하얀 눈이 쌓여있는 광경은 나름 운치있었다.
그렇게 비록 몸은 지쳤지만 주위도 둘러보며 도란도란 말을 나누며 최세희와 걷던 그때.
드디어, 우리는 무언가의 굴을 발결할 수 있었다.
"야, 저거 동굴 아니야?"
"어, 진짜네?"
"아싸, 이게 진짜 있네. 드디어 이 눈좀 안맞을 수 있겠어 으."
그렇게 우리는 굴 안으로 들어왔다.
나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 중턱에 뜬금없이 있던 구멍.
그곳에 들어온 우리는 옷을 털려다 아직까지 서로 손을 잡고 있었던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까 눈보라는 진작 그쳤는데, 왜 아직까지 잡고있던거지.
자연스럽게 놓은 우리는, 옷에 묻은 눈을 툭툭 쳐서 치운뒤, 주저앉듯 동굴 벽에 기댔다. 아으, 살겠다...
그렇게 앉아서 내 지친 다리한테 휴식을 선물해주고 있을 때, 최세희가 내게 컵 하나를 건냈다.
"자, 마셔."
"이게뭐지? 아... 챙겨온 그거구나. 고맙다"
뭔가했더니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차. 그걸 보온병 뚜껑에 컵 대용으로 담아 나한테 준거였다.
감사인사를 전하고 컵에 입을 대고 마셔보았다.
어찌나 추웠는지 보온병 안에 있었음에도 살짝 식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시니 목을 중심으로 온몸에 퍼지는 따뜻한 기운.
그 느낌을 만끽하며 몸을 댑힌 나는, 이내 컵 하나를 다 마시고 다시 최세희에게 돌려주었다.. 이내 거기에 다시 차를 따라, 자기도 마시는 그녀.
그렇게 몸도 댑힌채 서로 다리를 뻗고 마주앉아 있던 우리.
잠시 눈내리는 밖을 보며 쉬던 나는, 고개를 돌려 최세희를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오는 주황색 머리를 나처럼 벽에 기댄채, 한손에 빨간 목도리를 든 채 멍하니 차를 홀짝이며 밖을 보고있던 그녀.
나는 그런 최세희에게 나는 말을 건냈다.
"힘들지? 따라오느라 고생했다. 나혼자 갈걸 괜히 고생시킨거 같네."
"응? 아아... 아니야. 나도 오랜만에 이렇게 밖에 나오니 재밌는걸 뭘. 이렇게 눈맞으며 산 타볼 일 별로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는 최세희였다.
긍정적이어서 고맙네.
그뒤로 우리는 잠시동안 좀 쉬었다.
"그때 서자영이 갑자기 어흥! 하면서 은월이 뒤에서 나타난거야. 근데 은월이는 멀쩡한데 오히려 그 옆에있던 한서은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데..."
"푸흐흐."
그렇게 잠시 앉은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충분히 휴식한 뒤, 우리는 다시 출발하기 위해 일어섰다. 배낭도 다시 걸치고, 옷 매무새도 다듬고.
그리고 출발하기 직전, 벗어두었던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맨 채 '자, 가자!'라고 외치는 최세희를 보며 난 작은 한숨과 함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일로와봐."
"응? 왜?"
왜 그러냐는 듯 내게 오는 최세희를 마주보고 난 손을 뻗어, 그녀가 매고있는 빨간 목도리를 살짝 풀어 다시 똑바로 매주었다. 이걸 이렇게 땡기고, 다시 묶으면...
"자, 됐다. 다시 가자."
"으, 응..."
어쩐지 귀가 다시 살짝 붉어진 최세희와 함께, 우리는 또한번 산을 올랐다.
좀 쉰 사이 눈도 더 잠잠해진 것만같은 기분. 아닌가, 계속 오르다보니까 더이상 위쪽은 눈이 안내리는건가?
"야, 이제는 눈도 거의 안내리네?"
"그렇네."
하늘에 손을 올리고 그렇게 말한 최세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쳤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와서 그런지 보이는, 뻥 뚫린 푸른 하늘.
그 위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최정상에 올랐다.
이제는 아래가 내려다보일 지경.
그리고 그렇게 잠시 전망도 본 뒤 우리는, 드디어 거대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거기야? 그 우리가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어. 아마 이 안에 있을거야. 아 그리고, 뭘 보더라도 놀라지마."
"야.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좀 무섭잖아..."
거대하게 뻥 뚫려있는 검은색의 굴에 압도됐는지 살짝 떨며 내 옆에 붙은 최세희와 함께, 나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음. 막상 도착하고 니니까 걱정되기 시작한건데.
...이거, 꼬실 수 있으려나?
***
히어로 협회 본사.
그곳 윗층에 스타더스의 사무실.
"....."
거기에서 자리에 앉아 멍하니 평소처럼 업무를 보고있던 신하루는, 문득 등받이에 등을 기댄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늦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푸른 눈은.
책상 위 모니터 옆에 놓여져있던, 작은 달력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