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93화 (193/328)

원작만화 [스타더스트!]의 세계관은 굉장히 어둡다.

능력자들은 거의 다 빌런이 되며, 나라 하나가 기업가의 손에 반쯤 먹히는 등 개판.

파워밸런스도 안맞아서 아무리 주인공이 조금씩 더 강해진다해도 빌런들은 그보다 더 빠르게 강해져 독자들에게 무한한 고통만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이 지랄맞은 만화를 나를 포함한 애독자들이 계속해서 읽어준 이유가 무엇인가. 언젠가는 스타더스가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고문을 계속 하게돼서이다. 솔직히, 세계관이 이보다 더 어두워질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초능력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빌런들이 넘치는 세계관이, 여기서 어두워져봤자 얼마나 더 어두워진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순진한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듯, 역대급으로 지랄맞은 사건이 터진다.

일명 2페이즈의 끝이라 불리는, 월광게이트 사건.

월광교, 이들이 누구인가.

원작에서 월광무녀를 대동해 서울을 반쯤 파괴한 빌런단체. 달의 신을 이 세계에 다시 강림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다른 차원과 이 세계를 연결하려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2페이즈의 끝에, 놈들은 기어코 성공한다. 대한민국과 이 세계에 일렁이는 차원의 문, 일명 포탈을 여는데.

와. 벌써부터 그 차원문을 실물로 볼 생각하니 신이 나는걸?

"시발...."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하아... 생각만해도 또 골때리네.

"...저, 다인 선생님?"

"응?"

"저희 훈련, 하아 하아, 다 끝냈어요."

"아, 그래?"

앞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나는, 턱을 괴고있던 팔을 치우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자 내 앞에 보이는, 땀을 뻘뻘 흘리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의 모습.

3호, 일명 빨강이.

그리고 그녀의 뒤로 주저앉은 채 숨을 헉헉대고 있는 2호와 4호의 모습이 보였다. 1호도 벽에 기대 폼은 잡고 있지만, 어째 숨을 거칠게 휘몰아쉬는게 지쳐보이는 모습.

그렇게 나를 향해 '이제 쉴수 있죠?'라고 말하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빨강이한테, 나는 싱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응. 100세트만 더하자."

"아, 안돼요...."

"돼."

그렇게 이후로 열심히 훈련했다고 한다.

그래, 나중의 미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어지럽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얘들 키워서 대비를 해놔야지.

나는 그렇게, 일대일 피드백을 해주기 위해 따라갔다.

***

내가 누구인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지금까지 코칭해오고, S급 빌런들의 능력을 훈련시킨 경험이 다수 있는 숙련된 코치.

나는 그렇게 손에 익은 노하우로, 지난 일주일동안 우리 PMC 멤버들을 훈련시켰다. 그것도 아주 빡세게 굴려서.

내가 이렇게 일대일로 하루종일 봐줄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다. PMC 애들 집중과외 해준다고 집을 비우자 리더가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에고스트림 멤버들의 분노가 슬슬 차오르고 있기 때문.

즉, 지금이 어렵게 마련된 황금같은 시간.

그런만큼 우리 PMC 애들은 실전압축 훈련을 견뎌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우리 3호, 빨강이한테 다가갔다.

붉은 머리카락을 한 채, 열심히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녀.

사실 원래 원작에서 보면 주먹쥐고 싸웠던 그녀지만, 내 추천으로 서은이가 만든 특제 대검을 들고 있다.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처럼 능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강하면 그냥 공격해도 강하지만, 어중간하다면 도구의 힘을 빌리는게 더 낫기 때문.

그렇게 불타는 대검을 휘두르며 더미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있는 허다희...  아니, 3호.

내가 슬며시 그녀 옆에 다가가자, 그녀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자, 집중해서 앞에보고. 동시에 5마리만 상대해보자."

"...넵! 알겠습니다!"

나름 파이팅 넘치게 대답하는 그녀.

PMC 일원 4명중 제일 힘이 넘치는 그녀는, 운동을 좋아한다고 한게 틀린말은 아닌지 제일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애가 씩씩하기도 했고.

다만 실력이 열정에 못따라가는 느낌이라, 내가 어느정도 방향성을 계속 잡아줘야 하긴 했지만.

"자. 그렇게 휘두르지 말고, 팔을 이렇게 잡고 하는거야. 봐."

"읏... 네."

보다 답답해진 내가 그녀의 뒤에 서 팔을 잡고 검을 휘두르는 모션을 잡아주자, 살짝 귀를 붉히더니 그렇게 답하는 그녀.

"이렇게 하면 됩니까?"

"오, 좋아! 이대로만 가자!"

"넵!"

"이야, 우리 3호가 성장세가 제일 빠른거 같은데? 조금만 더 있으면 막 날아다니겠어!"

"하하, 그렇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신이 난듯 더욱 열성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그녀.

채찍과 당근 전략으로, 피드백을 가득 한 후에는 이렇게 칭찬을 해주는게 중요하다.

그렇게 빨강이를 봐준 나는, 노랑이를 보러 갔다.

탁한, 약간 짙은 베이지색에 가까운 노란 머리를 한 채, 활을 쏘고 있는 그녀.

"잘하고있어?"

"...네, 전보다는 기록이 더 좋아진거 같네요."

휴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활시위를 다시 집중시키는 그녀.

2호. 노랑이. 나름 까칠한 성격을 가진 그녀다.

...물론 일주일이나 붙어다니고, 이미 까칠한걸 넘어 남성 공포증까지 있던 서은이와 마저 친해진 나이기에 노랑이와도 친해지는건 어렵지 않았다.

"어. 쏠때는 대부분 머리를 맞춘다는 느낌으로... 그래, 그러면 돼."

"훗. 나쁘지 않죠? 전보다."

"어. 일주일 사이 훨씬 늘었는걸?"

뭔가 비슷한 말을 해주며, 또 우리 활쏘는 능력을 가진 노랑이도 살살 달래준 이후.

제일 약한 4호도 손봐주고, 바로 1호. 우리 칼잡이에게로 향했다.

"...그래. 그러면 된다."

"넵."

첫날부터 은근 내 말을 열심히 들으며 배운 우리 1호. 회색빛 머리칼을 가진 그.

막 바람처럼 날아가 칼을 휘두르는데,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몇시간동안 서은이가 만든 대련용 로봇 수백개를 해치운 뒤, 드디어 훈련을 끝낸 후 애들 씻긴뒤 식당에 모였다.

"으아...  배고파."

"나도."

일주일이나 지나 어색함도 풀렸는지, 떠들며 걷는 아이들.

탁 트인 하얀 식당에는, 쉐프들이 나와 요리를 미리 해놓고 있었다.

하루종일 훈련만 하는데, 먹는거라도 맛있는거 먹어야지 힘이 나지.

"잘먹겠습니다~."

"오, 이거 맛있다."

"흠..."

그렇게 감탄하며 입에 밥을 집어넣는 애들을 보며, 나도 함께 떠들며 밥을 먹었다.

...이런식으로, 최근에는 이 4명과 모든걸 어울리며 지내고 있다. 이유는 당연히 훈련으로 빠르게 강해지게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서로 친해지게 하기 위해서도 있다.

친분. 이것은 조직을 유지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께 정붙이면, 그때부터는 떨어지기가 어려운게 대부분. 내가 에고스트림 멤버들과 한집에 살며 서로 가족처럼 친해져 강한 결집력을 가진 조직을 만들었듯, 이 4명도 그렇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물론 쟤네 4명만 친해졌다가는 다같이 마음맞춰 탈주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 당연히 나랑도 친해지는게 굉장히 중요했다. 나를 믿고 따라야, 이 에고스쿼드... 유성 PMC가 유지되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한명한명 담당하고, 고민 상담도 해주고, 인생의 조언과 격려도 해주며 그렇게 지냈다. 훈련도 좋지만 제일 1순위는 친해지는 것.  나를 믿고 따르게 한다!

"자, 밥 다먹었으면 훈련 마저 하러 가자!"

"에에에... 조금만 더 쉬어요."

"흠, 그럼 5분만 더 쉴까?"

"예에~."

그렇게 밥을 먹고 훈련을 마저 하고 난 저녁, 나는 애들을 불러모아 작은 강단에서 말을 해줬다. 앞으로 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질거고, 그 사단을 막으려면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유성그룹의 회장이 이 PMC를 만들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너희를 키우는 이유. 그건 바로 히어로들로는 부족하다, 너희가 자경단이 되어 이 세계를 다함께 지키는거다. 그걸 바래서라고.

물론 적당히 약을 친 내용이었지만, 애들은 다들 진지하게 받아들여줬다. 그래, 조직을 지탱하는데에 있어서는 이렇게 목표를 확실히 세워주는게 중요하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 갓 성인이 돼서인지 아직 미성숙한 부분이 있어 슬퍼하기도 하고, 사소한걸로 싸우고 그런일도 있었지만... 내 격려와 응원등으로 다들 많이 나아지고, 때론 성장했다.

사실 이 PMC에 지원한 것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지만, 다들 부모님도 없고 자기편 하나 없이 지내던 애들. 특히 다들 겉으로는 괜찮은척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애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점을 보듬어 주었다, 틈틈히. 예전에 이전 세계에서 교사가 되겠다고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며.

당연히 시간이 좀 걸렸다. 애들과 완전히 친해져야하고, 마음 속 깊이있는 얘기를 나한테 털어놓아야 하니까.

그렇게 훈련도 하며 능력도 성장시키고, 애들 4명끼리 서로 친해지게 하며, 난 애들의 정서불안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어두운 밤.

나에게 숨을 토해내듯, 조직의 사냥개로 사람들을 제거해온 삶을 고백해온 1호.

학창시절 자신을 향해 괴롭히던 여자애를 능력으로 다치게 한 뒤,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탓에 매사에 까칠하고 방어적이 된 2호.

평소처럼 웃는 낯빛으로, 부모님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기억을 씁쓸히 전해준 3호.

그리고 돈이 없어 하루하루 근근히 살던 과거의 얘기를 전한 4호까지.

그렇게 힘겹게 자신의 과거를 내게 전해준 그들에게 나는, 손을 붙잡고 이제 괜찮다고, 우리들이 함께이지 않냐고 그렇게 얘기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려 거의 2달을 우리 PMC애들을 키우는데 온전히 바쳤다. 다행히 그런 내 노력 덕분인지 애들은 짧은 새에 처음보다 괜찮아졌고, 서로 서로 많이 친해졌다. 주말 같은때에 능손실을 감안하고 다같이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이런 곳들을 다닌 보람이 있었다. 거기에 다들 나를 많이 믿고 의지하게 됐기도 하고.

그렇게 두달이 다 지날 무렵.

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돈독해진 그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정도면 내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들 알아서도 잘 할 수 있겠지. 한달에 몇번씩만 와도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금요일 저녁.

나는 애들을 다시 방으로 불려들었다.

"쌤~ 이번 주말에는 다같이 이 영화보러 가요! 마지막 춤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던데!"

"오, 재밌겠다. 그게 뭐야?"

"...흠, 그것보다는 훈련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으, 이세검... 너는 너무 훈련만 좋아한다니까. 차리리 다인 오빠... 쌤, 이번에 불꽃놀이 한다는데 한강가는건 어때요?"

내가 부른 이유가 주말에 어디로 놀러갈 건지를 말하려고인줄 아는지, 신나서 떠드는 애들.

...음, 아니야 애들아. 이제 나 떠날거라는 얘기 하려고 온건데.

뭐, 어차피 나빼고 놀러가면 되니 큰상관 없나?

나는 그렇게 기대감에 찬 아이들의 앞에서, 준비해온 말을 해줬다.

"근 두달 사이, 너희들은 많이 성장했어.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그래서 나는 이만 떠나려고해. 내일부터."

"이제 앞으로 여기서 지내지는 않을거고... 나보다 훨씬 뛰어나신 담당자들이 대신 들어올거니까 걱정 안해도 돼. 나도 한번씩은 너네 잘 있나 보러올거고."

"지금까지 내 말 잘 따라줘서 고마웠다 애들아."

나는 그렇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해줬다.

무려 두달간 함께한 PMC 아이들. 실제로 재밌기는 했다. 애들이 다 약해서 성장시키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

그래도 내 근본은 역시 빌런 에고스틱 아니겠는가. 슬슬 스타더스와 다음 테러도 해야하고, 집에 하도 안들어가 삐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도 달래야하고, 할게많다.

그렇게 나중을 생각하느라,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작별을 뱉은 순간, 애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충격으로 물들었다는 걸.

그렇게 작별인사를 한 내게, 들려오는 무언가의 중얼거림.

"....다인 쌤, 저흴 버린다는건가요?"

"...응? 아니, 그게 아니라..."

어느순간 고개를 숙이고, 긴 노랑빛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감춘 2호.

그녀는 이내 눈에서 안광을 뿜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어딜가요! 못가! 선생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야!"

"맞아요... 다인쌤 집은 여기에요..."

그렇게 날 보며 눈을 번득이는 애들과, 내 다리를 쥐어잡은 2호를 보며.

나는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음, 뭔가 잘못됐을지도?

***

그시각, 에고스트림 본부 큰집.

그곳에서 식탁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고 있던 서은이는 살짝 불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빠, 오늘 온다더니. 왜 연락도 없지?"

"그러게..."

그렇게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걱정하던 그시각.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다인이 우는 애들을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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