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원작에서 나름 이름 좀 날리던 녀석이 그렇게 빛의 세례를 맞고 허무하게 인생 하직한 이후.
놈을 친히 다시 저승으로 돌려보내준 나는, 나름 한가하게 집안에서 지내고 있었다.
'...다인씨, 분명 무리하는건 아니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하하.'
물론 위험한 일 없다고 말하고는 마왕과 창들고 일대일 맞다이를 한 것에 대해 수빈씨의 걱정을 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몸 안다치고 이기고 돌아왔으니 된 거 아닐까?
'다인 형, 정말 멋졌어요!'
물론 차윤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런말을 했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면서도 무슨 입시공부 하듯 열심히 공부만 하면서도 내 테러는 직관한 모양. 학교에서도 내 얘기를 애들이 종일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게 뭔가 싶기는 했었다. 빌런을 좋아하는 애들이라...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은가?
하여튼 또 나와 스타더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며, 이제는 시즌 4호 열애설을 펼치고 있는 채널들을 피해 나는 주로 해외 뉴스쪽에 티비를 맞추어놓고 있었다. 이쯤되면 이설아한테 연락해 방송국에 에고스틱 미화 보도금지 부탁할까 싶기도 한데... 뭐, 사실 결국은 스타더스만 날 싫어하면 되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거 같아 내비려 뒀다.
참고로 요즈음은 우리 PMC에 영입할 능력자들 고르는게 일. 은근 신청자가 많이 와서, 쓸만한 애들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었다.
그렇게 밖에 데스나이트가 가꾼 정원이나 거실에서 가끔 애들이랑 놀아주며 일하는게 요즘 주 업무. 빌런도 일해야지 사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틈틈히 해외 소식을 확인하는 것도 당연한 일.
[현재 일본에서 제일 큰 빌런 조직인 삼협파가 정부군과 협회의 군사작전에 계속 패퇴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렇게 뉴스를 백색소음 틀어놓듯이 놓고 일하던 중, 마침 내 이목을 끄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옆나라 이야기. 거기에 뉴스에 나오는건, 바로 카테달 빌런 회의 멤버 얘기.
나는 바로 티비 소리를 키워, 더 자세히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일본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빌런연합 삼협파는 최근에 계속 전술적으로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데요. 이에 정부군은 '올해 안에 그들의 수장인 카타나, 그 여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있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본 국민들은 이에 대해 탐탁치 않아한다고 하는데요. '썩은 정부밑에 있을바에는 야쿠자 밑에 있겠다.'라고 답하는 응답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자의 말이 끝나고.
나는 때마침 들려온 소식에, 잠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역시, 원작대로 털리고 있네.'
일본.
한국이 스타더스와 섀도우워커라는 두 책임감 강한 히어로와, 정부를 꽉 잡아버린 이설아로 인해 나름 분열없이 안정되어있는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일본은 조금 불안정했다.
빌런집단인 야쿠자들의 모임, 삼협파가 나라 절반정도를 먹은 것. 그래서 늘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애초에 정부 자체도 썩어있는 바람에, 그냥 개판인 상황.
물론, 원작을 보면 이 상황도 오래가지 않는다.
나름 정부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삼협파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정부에 밀리기 시작한 것.
그렇게 내 기억으로는 원작에서 결국 삼협파가 정부군에 의해 괴멸된다. 삼협파의 수장인 S급 빌런 카타나, 그 여자도 붙잡히고.
"....."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결국 나라를 다시 되찾은 일본 정부랑 협회가, 경쟁 세력도 없자 그냥 상상 이상으로 썩어버린 것.
애초에 저 카타나라는 여자가 빌런 연합을 만든 것도 이 썩어빠진 나라를 바꾸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만큼 썩어있던 정부로 인해, 삼협파가 없어진 뒤 나라가 다시 평온해지긴 커녕 그냥 골로 가버린다. 나중에 월광교 게이트 이후 한국을 도와주기는 커녕, 지네 나라 망하게 생겼다고 한국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쓰읍..."
그래서 지금, 고민이 되는거다.
저대로 저 삼협파라는 야쿠자 놈들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살아있어서 정부 견제하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심지어 저 수장이 카테달 빌런회의에 참석도 하니, 나중에 어쩌면 우리 에고스트림이랑 협력 할 수도 있고. 카타나 그 여자가 나름 의리가 넘친다던데.
사실, 협회와 나름 잘 싸우던 삼협파가 갑자기 진 이유는 하나다.
'...배신자가 있었지.'
그래. 심지어 수장인 카타나, 그 여자의 왼팔이라고 불리던 핵심 세력이 배신해서 정부에 붙었다. 걔가 모든 정보를 협회에 스파이짓 해서 알려줬고. 사실 얘만 없었어도 밀릴리는 없었다.
...그래. 다음 회의에 카타나 그 여자를 만나면, 이 정도 정보는 따로 얘기해 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지 며칠 안돼서.
바로, 초대장이 날아왔다.
"오... 이게 그 초대장인가 뮌가야?"
거실.
갑자기 허공에 사뿐히 내려앉은, 하얀 편지를 다들 모여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음... 감회가 새롭네."
나도 편지지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셀레스트의 편지. 저걸 약속된 날짜에 찢으면 그대로 카테달이 열리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사실 저번에는 내가 아틀라스 아재의 빽으로 막판에 들어간 바람에 내께 없어서 아틀라스 아재의 수중기지까지 가서 같이 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이 내 집에서 곧바로 쾌적하게 갈 수 있다는게 좋은점.
그런고로 아틀라스와는 그 회의장에서 따로 만나기로 했다.
'허허, 우리 딸이 자네를 보고 싶어하던데 안타깝게 됐구먼. 다음에 꼭 놀러오세.'
물론 사족이 좀 붙긴 했었지만. 하여튼 그때가서 보면 될거고.
그렇게 편지까지 받고, 드디어 약속된 날짜가 되었다.
"갔다올게."
"바이바이."
"오빠, 몸조심해요."
그렇게 나는 편지를 찢어버렀고.
그대로 몸이 이동하는 감각과 함께, 어디론가 빨려들어갔다.
***
카테달.
현재 S급 빌런들 중 1위라 평가받는 빌런, 셀레스트가 창시한 빌런연합 수장들의 회의.
세계에서 영향력을 꽤나 행사하는, 빌런연합의 수장들로 이루어진 이 회의의 특징. 그것은 서로가 정보를 하나씩 교류한다는 것이다.
다들 자기 밑에 S급 빌런을 몇명씩 둔 리더들인만큼 귀중한 정보를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 그걸 서로 매 회의마다 모두와 공유해, 빌런들끼리 교류하자는게 셀레스트가 이 회의를 창시한 목적이라고 한다. 뭐 실상은 좀 다르긴 한데, 대충 그렇긴 하다.
어쨌든 전세계의 S급 빌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 협회 견제도 되고 그런거지. ...물론 나는 아틀라스 아재 빽으로 온거긴 한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영향력을 펼치는게 내 목표니까.'
스타더스가 지키는 대한민국에 이상한 애들이 침공오는걸 막으려면, 대충 여기서 내 몸집을 부풀릴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아무도 모를 충격적인 미래를 미리 예견해... 마치 그걸 내가 일으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던가. 뭐 그런식으로.
그리고 오늘이 아마, 내가 처음으로 중요한 정보를 푸는 날이 될꺼고.
"이쪽으로 와주시길."
"흠."
그런 내 짧은 생각을 끝으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펼져진 어두운 복도.
그 앞세서 나를 안내하는, 하얀로브를 쓴 셀레스트의 하얀 사제의 뒤를 따라 나는 원탁의 회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좀 걷고 원형의 문을 지나자, 바로 나온 뻥 뚫린 공간.
양옆 벽에 스테인글라스가 가득하고, 거대한 샹들리에 있는 이 곳. 카테달 본회의실에 나는 도착했다.
"음...."
좀 일찍 왔는지, 아직 다 차진 않은 모습. 아틀라스와, 회의의 주체자인 셀레스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곧 다들 오겠지 뭐.
적당한데 자리나 잡고 앉아있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충 양옆자리 비어있는 곳 아무데나 털썩 앉았다.
...조금 있으면 시작하겠네.
쓰읍, 잠깐. 근데 여기 막상 오고나니까 뭘 까먹은 기분이 드는데.
의자에 앉고보니 떠오른 생각에, 나는 곰곰히 생각을 복기해봤다. 가면도 썼고, 정보도 챙겼고. 뭐 잊은게 있나?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그 빨간 모히칸 머리가 안오겠구나?
나는 그제서야 놈을 기억해냈다.
하이킥인가 하이킨인가, 그 독일의 양아치같던 S급 빌런 놈. 저번에 나보고 A급이라고 시비걸길레 그냥 내 정보푸는 타이밍에 걔 보면서 독일에 뭔 일 생길테니 몸 조심해라? 이랬던 기억이 난다. 걔가 어차피 원작에서 이번 회의 전에 죽는 놈이었거든.
...지금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만.
불쌍한놈. 막상 죽게될 때 내가 한말 떠올리고 나때문에 죽는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아니야, 너 그냥 원작에서 죽는 캐릭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고있자 마침 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한테 컵에 담긴 차를 내어주는 모습. ...이거 마셔도 되는거겠지? 셀레스트가 여기다 뭐 약같은거 넣어논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미심쩍어 하며 찻잔을 바라보던 그때, 한쪽편에 원형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빌런 수장이 들어왔다. 아틀라스 아재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고.
엥?
빨간 모히칸 머리를 한 그놈을 보고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왜 살아있냐?
그리고 그놈을 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걔또한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살짝 눈이 커지는 모습.
그러더니 그놈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 다가왔다.
저벅저벅.
내 의자 앞에 바로 선 그놈.
그러더니 그는, 허리를 그대로 90도로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
이건 또 뭔 상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