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87화 (187/328)

펑. 펑. 펑.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빛들.

마치 섬광탄이 터지듯, 마왕이란 놈이 있던 자리는 하얀 빛으로 번쩍번쩍 터졌고.

[끄아아아아아악----!]

이에 맞추어, 아름다운 하모니도 들려왔다.

그래, 마왕이 녹는 소리 말이다. 홀리-캐논빔을 수십방 쳐맞고 있는데, 안녹고 배기겠어?

그렇게 무슨 나라 하나 멸망시킬 비쥬얼이었던 마계의 왕이 부글부글 녹고있는 동안, 나는 그 빛의 예술을 등지고 카메라를 향해 서 내 쇼를 지켜봐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크으으으으으르읅---- 으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진짜 광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는 오히려 우리가 해야하는거 아님?ㅋㅋㅋ]

[아니 대체 저건 언제 준비한건데ㅋㅋㅋ]

[마왕놈 살살 녹는다~ (진짜 녹음)]

[(대충 제리가 인사하는 짤)]

[뭐임? 진짜 끝난거임? 이렇게 쉽게???]

*

그러던 중, 문득 채팅 하나가 보였다. 어허. 이렇게 쉽게라니. 이거 준비하는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치 캠프파이어를 관람하듯 끄아악 거리면서 빛에 녹고있는 마왕을 지켜봤다. 역시, 약점이 확실해서 참 좋단말이야. 원작에서는 약점을 늘 사건 다 끝나고 알아차리는 바람에 아무 의미 없이 허무함만 남겼었지만... 그래도 이 세계에는, 다행히 그 지식을 전부 가지고있는 내가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달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운치있는 기분을 느끼며 마왕이 잘 녹는 모습을 구경했다.

...얘가 내 기억에는 아마, 이 페이즈의 마지막 중간보스급 빌런이자 거의 마지막으로 스케일 큰 이벤트일꺼다. 이제 이거 다음 메인이벤트가,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광교일꺼거든.

참 멀리도 걸어왔구만.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이 세계에 떨어졌을때는 대체 나보고 뭐 어쩌라는건가 싶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음 월광교 포탈 사건, 게이트 사건등 온갖 이름으로 불리는 그 테러만 막아내면, 이젠 정말 슬슬 쉴 수 있겠지. 물론 스타더스를 잘 키우고나서 얘기지만...

[.....난 ....크르륽, 돌아...올거다...]

"오, 이제 끝났나봅니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있을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왕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은이한테 지시해 공세를 멈추게 한다음,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서 검은 웅덩이로 변한 마왕의 모습만이 보였다. 깔끔하게 갔네.

"난 돌아올거다... 라니."

피식.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응 아니야, 너 못돌아와. 저승에서 다시 잘 살어.

나는 그렇게 나름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준 마왕에게 짧은 묵념을 보냈다. 봉인에서 풀리자마자 죽은게 좀 황당하긴 한데, 얜 어차피 원작에서도 결국 죽긴 죽잖아? 내가 없었어도 어차피 죽었을거다. 대한민국에 피해만 더 내고.

...근데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달의 신 아래 있는 애들은 봉인당하고 풀리자마자 죽는게 전통인가. 이 마왕이란 놈도 그렇고, 원작에서 은월이도 그렇고.

뭐, 어쨌든 결론은 오늘 드디어 큰 산을 넘은거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죽은 마왕의 유해를 내 홀리-스피어로 뒤적였다. 역시나 보이는 월광석. 내 이럴줄 알았지. 월광교 이놈들은 안 끼는데가 없어.

대충 그걸 카메라 안보이게 몰래 창으로 박살낸 나는, 가루로 흩날리는 그걸 보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네, 여러분! 이 이상한 남의 영업 공간 방해하는 아저씨도 잡았으니, 오늘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런 질 낮은 테러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품격 테러로 돌아올테니 다들 긴장하시길 바라며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

[안돼 왜 여기서 끝내!!!!!!!]

[도시 하나 박살내려는 빌런을 막자마자 쿨하게 퇴장하는... 이게... 빌런?]

[고품격 테러는 또 뭔데 ㅅㅂㅋㅋㅋㅋ]

[오늘도 이 빌런은 나라를 구했습니다]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를 살고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여전히 난리난 채팅창을 뒤로 한채, 나는 카메라를 끄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쟤네는 어차피 며칠 불타다가 또 까먹을꺼니 상관없고... 아이고, 오늘 큰일했다 큰일했어. 오랜만에 몸썼더니 피곤해 죽겠네.

...근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는 일단 쓰러져있던 스타더스에게로 향했다. 아까 봤을때는 지친것만 빼고는 나름 멀쩡해 보였는데,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돌아간 내 눈에 보인건, 여전히 아까 그자세 기대로 폐허의 벽 한쪽에 몸을 기댄채 누워있는 그녀. 눈을 감고있는걸 보니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잠깐, 설마 아니겠지?

혹시 모르는 만큼 나는 빠르게 달려가 땅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했다. 휴, 다행히 잘 쉬는 모습. 물론 당연한거지만, 혹시 모르는거니까. 잘못됐으면 저승이라도 내려가서 그녀를 구해와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쓰러진 채 숨을 새액새액 쉬고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사람이 싸우다가 폐허에 흙투성이가 되도 이렇게 예쁠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게 그 주인공 버프인가 뭔간가?

하여튼, 힘들었는지 기절까지 한 그녀. 원작 후반부에서 강해진 다음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몸을 못움직일 뿐 정신을 잃은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진짜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하긴, 오늘 정말 고생하긴 했으니. 아침부터 무슨 에너지바 하나 먹으면서 지하에서 악마들 다 때려잡지를 않나, 거기에 저녁에는 마왕이랑 싸우지 않나. 다시한번 생각해도 이게 오늘 하루만에 그녀가 다 이루어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정말 원작이랑 많이 달라지기는 했네.

"...수고하셨습니다, 스타더스씨. 역시... 당신이네요. 하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속삭이듯 전해주었다. 좋아, 이제 갈까. 몇십분안에 곧 협회 직원들도 올거같으니. 거기에 헬리콥터 소리도 들리는게 슬슬 방송국들도 상황 끝난거같으니 가까이 다가오는거 같고.

그렇게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일어나서 가려던 나는, 문득 폐허에 홀로 누워있는 스타더스가 눈에 밟혔다. ...안그래도 날도 쌀쌀한데, 이러고 있으면 감기 걸리는거 아니야? 물론 곧 협회가 오긴 하겠지만... 그동안은 어떻게. 걱정되는건 걱정되는거다.

잠시 고민한 나는, 이내 등에 망토를 벗어서 스타더스의 위에 덮어주었다. 뭐, 집에 망토는 많으니까.

물론 깨어났을때 그녀가 이걸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싶긴 한데... 어차피 빌런 혐오적인 그녀의 사고회로라면 대충 내가 티베깅 하는거라고 생각할거 같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여기서 누워있다고 조롱하는거냐!' 뭐 그렇게 생각하며 분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은 뒤 다시 일어나 그녀를 등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이동을 하러. 아으, 집가서 또 수액 맞아야겠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순간이동했고.

그렇게 바로 가버렸기에, 그때의 나는 몰랐다.

"...."

내가 떠난 뒤, 스타더스가 살짝 움직이더니.

-꼼지락.

자신의 위에 놓인 망토를 한손으로 꼬옥, 붙잡았다는 것은.

***

[충격! K-빌런 에고스틱, 또 대한민국을 지켜내다? 그의 의외에 능력에 네티즌들 '경악'!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실시간 인기 영상 전부 에고스틱이 싹쓸이.]

[경악! 사실 에고스틱은 막타만 쳤을뿐?! 악마성 붕괴부터 마왕 제거까지, 홀로 모든걸 해낸 스타더스! "대한민국은 스타더스가 있기에 굴러갑니다." 익명의 협회관계자가 눈물을 흘리며 스타더스를 극찬한 이유는? 재조명받는 그녀의 선한 인성!]

오늘도 또 도시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는걸 겨우 겨우 막아낸 대한민국은, 또 다음날부터 바로 그 이슈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사실 나라가 망할뻔하다가 기적적이게 살아난게 한두번도 아닌데, 겪을때마다 늘 새롭고 짜릿한지 아주 미친듯이 기사를 뽑아내는 언론들. 물론 이번에 자칭 마왕이라는 놈의 스케일이 어마무시했기에, 따지고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마왕이 강림하고, 검고 붉은 구름들이 모여들며 그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는 장면은 지금봐도 소름돋는다는 사람이 많았으니.

하여튼 결국 마왕도 죽고, 악마성으로 변했던 무역센터도 마왕이 죽자마자 그 검은색의 끈적이는 액체들이 싹 다 사라지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물론 싸움으로 박살난 것들은 다시 지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선방한 셈.

그렇게 나라도 다시 평온을 되찾자, 사람들의 화제는 당연하게도 이 테러를 막아낸 에고스틱과 스타더스였다.

[[단독]월광무녀를 배출한 테러집단 '월광교'가 이번 테러에 관련있을 수도 있다? 채나영 기자의 독점 보도!]

물론 이번 테러의 진상을 밝히려는 참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중은 이미 지나간 테러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지상파는 빌런이라 초상권도 없는 불쌍한 에고스틱의 지금까지 영상들을 무한으로 틀어주고 있었고, 히어로와 협회의 인기가 오르는걸 귀신같이 파악한 협회장의 지시에 의해 역대까지의 스타더스 활약 영상들도 미친듯이 올라오고있었다.

거기에 팬카페인 망고단이든 별먼지단이든 서로 나란히 가입자수가 폭증하고, 아예 국회의원들은 바로 이슈를 물어서 스타더스를 S급으로 승격시킬걸 협회본사에 청원하자고 난리치고...

그렇게 혼란하던 시간이 계속되던 나날.

그러던 말던 그런 소란에서 멀리 떨어진, 평온한 큰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 이제 곧 2차 카테달 회의 시작이네?"

달력을 보기 전까지는.

아, 오랜만에 또 우리 전세계 S급 빌런들 보러 가야겠구만.

"아틀라스 아재, 다시 보겠네."

나는 사과 한조각을 바닥에 누워있던 서자영 입에 넣어주고, 나도 한입 먹은뒤에 중얼거렸다.

...재밌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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