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84화 (184/328)

원작.

내가 늘 이 세계를 살아가며, 매번 길잡이로 따르는게 바로 원작이다.

이 세계는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나는 그걸 통해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있다.

즉, 어지간하면 원작에서 일어난 일은 거의 무조건 일어난다는 소리.

물론 원작과 이 세계는 하나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건 바로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던, 에고스틱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거. 그래. 내가 원작과 이 세계의 유일한 차이다. 그거 빼고는 없고.

즉, 결론은 원작에서 일어나는 일들, 타이밍. 내가 따로 건드리지 않은 뭐 그런거는 웬만하면 전부 원작대로 흘러간다는 소리다. 빌런이 원작에서 이때쯤 처음 등장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도 정확히 이때 등장한다. 특히 아예 내 영향력이 안미치는 해외는 완벽하게 원작에서 본대로 거의 다 흘러가고.

...근데, 물론. 내가 일으킨 것들로 인해 나비효과인지 뭔지가 생겼는지 가끔 원작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의 그 악어빌런이 예상보다 일찍 테러를 일으킨 거라던가, 월광교가 최종전에 쓰일 괴물을 미리 쓴다든가 뭐 그런 것들.

그래서 나는 그때 이후론 원작을 기반으로 계획을 짤 때, 혹여나 원작대로 안 흘러갈 가능성을 늘 어느정도는 대비해둔다. 물론 일어날 일이 거의 없으니 대충 러프하게 스케치만 해놓는 정도로. 당연히 왠만한 모든 일들은 플랜 A대로 흘러가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러프하게 짜놓은 플랜 B, C를 활용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어둠에 잠식된, 건물의 시시티비 화면이 전부 보이는 그 방.

나는 그곳에서, 밑도 끝도 없이 지하로 내려가는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며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저러면 안된다니까?"

[뭐가 안돼요. 지금 신나게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거 같은데.]

카메라가 달린 해파리 로봇이 화면을 보고 꿈틀거리며, 전하는 서은이의 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서은이의 반응과 다르게, 대충 미래를 아는 나는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이벤트는 저렇게 하루만에 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

정확히는 스타더스가 거의 일주일정도는 고전하며, 협회에서 쉬었다 다시 찾아올때마다 바뀐 길에서 해매며면서 주위에 떨어진 모든 악마 생성장치를 다 박살내고 나서야 최종보스가 있는 방으로 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봉인하고 있는 빌런의 힘을 약하게 만든 상태에서야 겨우 상대가능한게 현실.

그런데 지금, 스타더스는 무작정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원작에서는 안그랬으면서 왜 그래...

그 모든 광경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나는, 이내 다시 정신차리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베스트는 그녀가 그 최종보스인 빌런이 있는 방안에 도착하기 전에 마음을 돌려먹고 다시 협회로 돌아가는 것.

그러나 지금 성큼성큼 정확하게 최종보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루트로 잘 가고있는 그녀의 모습을 봤을때, 그럴 가능성은 좀 적어보였다.

즉, 그녀가 이대로 데몬즈가 있는 곳으로 오늘 안에 내려간다는 최악의 가정 하에 움직여야 한다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스타더스가 데몬즈와 싸워서 이길 확률은..?

'...힘들거 같은데.'

아무리 스타더스가 원작보다 더 강해졌다고 해도, 지금 상황 자체가 원작보다 더 나빠졌다.

원작에서 데몬즈는 영양분인 다른 휘하들인 악마들이 거진 다 쓰러지면서 힘이 약해지기도 했고, 봉인도 반도 못풀어서 원래 능력의 절반정도로 약해졌다. 근데 그런 그마저도 원작의 스타더스는 못이겨서, 결국 악마 몇마리들이 펄럭펄럭 빠져나가게 되고.

거기다가 지금의 스타더스는 계속된 전투에 지친 상태다. 거의 쉬지않고 내려가고 있으니. 대체 왜 저러는건지는 모르겠다. 특히... 밑으로 내려갈수록 저 어두운 촉수들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속삭인다는걸 생각하면. 몸 상태가 별로 안좋을거 같다. 과연 저래서 싸울 수 있겠냐 이거지.

근데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스타더스가 실제로 저 최종보스를 줘 팰수도 있다. 이번 싸움에서 한단계 더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걸 내가 함부로 막아도 되는걸까.

"...."

그렇게 악마성 지상층 한쪽에서.

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지금이라도 내 홀리-십자가를 들고 최종보스 방으로 순간이동해 잘자고 있는 놈 심장에 말뚝박아서 이 사단을 끝낼지.

아니면 스타더스를 믿고, 지켜볼지.

그리고 나는 짧은 고민 후,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일단은 믿어보자.

나 스스로를 스타더스의 아치에너미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내 정적인 히어로를 응원하시 않아서야 되겠어?

물론, 질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싸우는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거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일단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 그리고 또 혹시나 스타더스가 마음을 돌려 협회로 돌아갈 수도 있는거니까.

다만 그래도, 미리 준비는 해놔야지.

나설 준비를.

나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서은이한테 말했다.

"서은아, 이거 지금 스타더스가 나오는 화면 가면에 띄워줄 수 있어? 그 해파리 기계 카메라랑 연동해서."

[어... 한번 해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무언가 뚝딱뚝딱하더니.

이내, 가면을 쓴 내 눈쪽에서 스타더스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이러면 이제 스타더스가 무사한지도 한눈에 확인 가능하고. 좋네.

그럼, 슬슬 미리 할일을 하러 가자.

나는 홀리-십자가를 챙겨들고, 서은이에게 말했다.

"서은아, 나 지금 집에 다시 잠시 들릴거거든?"

[엥? 왜요?]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수도 있을거 같아서. 내 신성 폭탄이랑 홀리 캐논같은거 미리 다 챙겨놓자."

[아... 그거 창고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고있을게요!]

서은이의 대답을 들은 이후, 나는 등을 돌려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잘하면 오늘 곧바로 다시 스타더스를 볼 수도 있겠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거 같거든.

"좋아, 뭐. 이 기회에 또 저번에 스타더스한테서 탈탈 털려서 떨어진 내 이미지도 회복하면 되겠네."

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빌런. 그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만약 스타더스가 데몬즈한테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방송키고 난입해서 스타더스 대신 놈을 해치우면... 대충 내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되지 않을까? 뭐 나선거에 대한 변명이야 적당히 생각해두면 되고.

사실 내가 강한게 아니라 그냥 그 데몬즈라는 놈에 약점을 찌르는 무기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 그런거지만, 이것도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몰라.

그렇게 나는 잠시 집으로 돌아와서 재정비 후, 다시 악마성쪽으로 향했고.

그렇게 해가 지고 나서, 내가 막 도착할 때쯤.

콰과과과과과과광-.

[감히, 누가 이 몸을 깨우는가 ------!!!]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악마성이 된 무역센터에 붉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내, 마치 판타지 게임의 마왕같은 비쥬얼을 가진 거대한 몸집에 무언가가, 붉은 창을 들고 건물 천장을 말그대로 박살내며 튀어나왔다.

"쓰읍... 결국 이렇게 되네."

몰려드는 검은색 안개,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 솟구치는 먼지구름. 터지는 폭발음.

실시간으로 난장판이 되고있는 무역센터를 보며, 나는 근처 건물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지켜보고 있었다.

끝내 봉인이 풀렸군.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하루도 안되서 풀리는걸 보니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근데 진짜 하루만에 풀렸는데, 이정도면 힘을 비축하기도 힘든 짧은 시간 아니야?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리고 잠시뒤에 지하에서 튀어나온 스타더스.

화가 난듯 거대한 붉은 창으로 근처 건물들을 박살내던 데몬즈. 정확히는 마왕화 능력을 불완전하게 사용하는데 성공한 그것은, 붉은 눈빛으로 스타더스를 향해 소리쳤다.

[나를 깨운게 네녀석이냐 ------!!!]

[감히, 이 몸의 계획을, 망가트리다니....]

[너를, 지옥으로 보내주마ㅡ!]

대지를 울리듯 소리치는 녀석.

힘을 모았다가 대한민국 전체를 마계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좌초되자 몹시 분노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진짜 스타더스가 전보다 훨씬 강해지기는 했어. 진짜 설마설마 했는데 하루만에 뚫어버리네.

[[속보]협회, 무역센터 인근에 1급 경보 발령, 일대 전부 접근금지]

[[현장사진]악마의 형상을 한 빌런 등장... 전문가들, S급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능력자. 기도해야.]

[[실시간 영상]나타난 빌런과 함께 맞서 싸우는 스타더스... 패배시 서울 전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

*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나 서울 사는데 저거 뭐냐? ㅅㅂ 왜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데ㅋㅋㅋㅋㅋ]

[걍 시발 안그래도 작은 나라에 왜 저런것들이 계속 튀어나오는데ㅋㅋㅋㅋ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한국을 멸망시키려는 계략이다...]

[스타더스만 믿는다 별먼지야 제발... 한번만 이겨주세요...]

대충 기사 알림들과 방송사 채팅창을 보니, 다들 갑작스러운 소란에 난리가 난거 같다.

쓰읍. 비쥬얼은 진짜 역대급이긴 하네. 무슨 생김새만 보면 쟤가 원작의 최종 빌런인줄 알겠어. 실상은 월광교 전에 나타나는 중간 보스격 빌런인데.

그런 내 감상과는 다르게 주위는 벌써부터 마계 침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스멀스멀 지상에 기어올라오는 검은 촉수들. 우리 베히모스가 친구생겼다고 좋아할 것만 같은 광경.

[...오빠, 이거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쟤 너무 강해보이는데? 스타더스가 문제가 아니라 오빠가 걱정이에요...]

"걱정하지마 서은아. 지금은 진짜 다칠리 없어."

나는 불안해하는 서은이를 안심시켜줬다. 얘까지는 약점이 확실해서, 그것만 쓴다면 일반인인 하율이 동생 차윤이도 잘하면 쓰러트릴 수 있다.

다만 그런거 없이 쌩으로 이기기는 쉽지 않을거 같은데... 그래도, 혹시나!

그렇게 나는 옥상에 서서 전투를 지켜봤다.

여기서도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고있는 녀석. 그리고 노란 머리를 휘날리며 그것에 맞서고 있는 스타더스,

검은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 빛이 번쩍번쩍 하며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고.

그걸 지켜보던 나는, 점점 얼굴이 굳었다.

누가 봐도 스타더스가 밀리는 모습.

...스읍. 역시, 안되는건가.

그렇게 또 얻어맞고 구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침음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나서야겠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 순간.

"...어?"

번쩍-

[크아아아아아악 -----!!!]

멀리서도 보이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리던 스타더스와.

처음으로 들린 놈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한순간, 어두운 밤하늘에 마치 섬광이 터진거처럼, 노란 빛으로 밤하늘이 순간 밝아진 뒤.

콰과과과과과광.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데몬즈, 일명 마왕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쾅. 쾅. 쾅.

그것에 맞고 박살나는 건물들.

"뭐야, 뭐야?"

그 모든 광경을 본 나는,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며 몸을 앞쪽으로 뺐다.

그렇게 더 가까이서 보자, 더욱 잘 보이는 광경.

마치 거대한 에너지에 맞은 듯, 일자로 날아가있는 건물들과, 저쪽 한구석에 쳐박힌 마왕.

그래.

우리 스타더스가, 기어코 저 맷집도 좋은 마왕한테 한방 먹여줬구나.

[와....]

[방금 뭐냐?]

[별먼지! 별먼지! 별먼지! 별먼지! 별먼지!]

[이게 히어로고 이게 영웅이지ㅋㅋㅋㅋ]

연동해둔 채팅창이 희망으로 떠들석한걸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칠 뻔했다. 그래. 믿고있었다고! 마 이게 우리 스타더스다!

그러나 그렇게 활발하던 채팅창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 시발. 좆됐네.]

쓰러져있던 마왕이,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붉은 창을 들고 일어났기 때문.

그에 비해 우리 스타더스는 마지막 일격에 기력을 다했는지 한쪽편에 등을 기대고 간신히 숨만쉬고 있었다.

그렇게 무력해보이는 스타더스를 향해, 마왕이 한발자국씩 가까이 걸어오는 상황.

시청자들의 불안이 극에 다한 그때.

나는, 조용히 가면을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래... 스타더스. 고생했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다 된 밥에 숟가락 올리기. 실로 악랄한 빌런다운 행위. 모두가 공포에 떨게 당연...!

대충 판단을 마친 나는, 카메라를 들고, 홀리-웨폰을 들고 건물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자. 히어로의 시간은 갔다.

이제부터는, 악당의 시간이다.

"짜잔!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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