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부터 공포영화를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갑자기 귀신이 까꿍하고 튀어나오면 좀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벌벌 떨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특히 공포영화를 볼때는 영화보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게 더 재밌기도 했다. 저번에 다같이 공포영화를 밤에 거실에 불끄고 봤는데, 서은이가 깜짝 놀라서 거의 천장까지 점프하는게 영화보다 더 재밌었다.
하여튼, 결론은 내가 공포영화를 보고 딱히 쫄지는 않는다는거. 거기에 저번 한은그룹 지하에서 괴물들 틈바구니에서 걸으며, 더더욱 단련된 멘탈.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왜냐고?
그야 여기가 그냥 공포영화 세트장 같거든...
어두운 지하.
무슨 끈적끈적한 검은 젤리같은게 온 사방 벽면에 붙어있는 곳 한가운데에서, 나는 혼자 서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는 아니지.
"...."
내 옆에서 혼자 공중에 붕붕 떠 따라오는 이 해파리같은 기계랑 같이 있으니.
이 위험한 악마성 아래에 갈거면 이거는 꼭 같이 갖고 가달라는 서은이의 부탁... 과 안 가져가면 울거같아보이는 반 협박에 같이 오게된 로봇이다.
특징은 카메라가 달려 이쪽의 상황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정도..? 물론 무슨 무기도 달려 호신용도 된다는데, 잘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까지 오기도 정말 쉽지 않았다.
아직 몸도 다 안나았는데 대체 어딜가냐고, 혼자 갔다가 또 다쳐서 돌아오는거 아니냐고 다들 걱정을 해가지고.
물론 걱정이 나를 집안에 감금시키겠다는 이상한 방향성으로 변하길래, 서둘러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저 빌런을 먼저 죽이려고 했었는데 설마 약점도 모르겠냐고.
물론 이 악마성이 외관 하나만큼은 무슨 게임으로 치면 최종보스가 있을 것만같은 무시무시한 비쥬얼이라 걱정하는건 이해는 하지만...
특히 수빈씨와 서은이가 보기에는 내가 무슨 호랑이굴로 혼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하긴, 내 말에는 늘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던 은월이와 하율이마저 반대했으니...
그래도 여러차례 설득한 끝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식이 아재도 챙기고, 베히모스도 챙기고, 이 해파리달린 로봇도 챙겨간다는 조건으로.
"쓰읍... 그래서, 여기가 어디지."
[오빠. 일단 오른쪽으로 꺾어봐요.]
"그래?"
그렇게 나는 결국, 이 악마성 아래를 걸을 수 있었다.
...바닥이 찐득찐득하고 어두침침한게, 굉장히 마음에 안든다. 아니, 막 무서운건 아닌데... 좀 그래.
[...아니, 오빠. 근데 여기 왜 이렇게 귀신 나오게 생겼어요? 화면으로 봐도 무서운데요.]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서은이의 해파리 로봇과 함께 들리는 서은이의 말.
아니, 서은아. 귀신은 안나온단다. 악마가 나오지.
...뭐, 말이 악마지 그냥 생체조직이 엮인거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점차 안으로 들어갔고.
기괴하게 뒤틀린 지형들을 건너, 끝내 스타더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음. 아직 무사하군.
그렇게 나는 스타더스를 직접 본 이후에야, 비로서 한숨 덜 수 있었다. 하. 원작에서 여기서 막 죽을 위기 몇십번씩 겪은거 생각하니까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훨 났네.
그렇게 나는 몸을 숨긴채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역시나 원작대로, 1층에서는 악마들이 등장했고.
이내 뒤늦게 스타더스가 도착해.
드디어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흐음."
가운데가 뻥 뚫려있던 덕분에,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던 나.
그렇게 몇분간 꽤나 치열했던 전투가, 끝내 스타더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조용히 몸을 털고 나가는 그녀.
원작보다 확실히 잘 싸우던 스타더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제서야 긴장을 어느정도 풀었다. 그래, 그래도 이정도면 무난히 최종보스 전까지는 가겠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니, 떠오른거 하나.
"...."
...음, 나. 괜히 왔나?
생각해보니까 여기까지 헐레벌떡 달려온건 좀 오바였나 싶다. 스타더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긴장이 풀리고 나니 드디어 돌아온 이성.
음, 불안감이 사라지고 나니까 좀 오버한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스타더스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급발진해서 왔으니까.
....돌아갈까?
아무리봐도 내가 너무 과보호했던게 아닐까 싶다. 스타더스라면 어련히 잘할텐데.
[오빠? 가만히 서서 뭐해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정했다.
그래. 그래도 스타더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확인 정도는 해야지. 나중에 일 터지고 나서 후회해봤자 소용 없다. 미리미리 준비해놔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나는 그 생각과 함께, 스타더스가 향하는 곳으로부터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엥? 오빠 어디가요?]
갑작스러운 내 유턴에, 의아해하면서도 졸졸 따라오는 해파리 로봇.
갑자기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내 모습에 서은이가 집에 오기로 결국 마음 굳힌거냐며 잘생각했다고 안심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내가 그게 아니라고 다시 설명하는 바람에 오해는 빠르게 풀렸다.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렇게 난 왔던 길을 다시 걸어올라갔다. 또 그 찐득한 검은색 액체괴물들을 밟으며.
...에혀. 순간이동이 있으면 뭐하나. 비축해야되서 평상시에는 잘 쓰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사람하나 없는 검은 진액에 침식당한 문화센터를 가로질러,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향했다.
흠. 뭔가 이러니까 아포칼립스 세계에 떨어진거 같기도 한 기분이네. 사람하나 없는 파손된 백화점이라... 약간 좀비영화 감성.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주위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확실히, 파워인플레가 진짜 곱창났다. 이게 뭐야 벌써. 예전에 몽키스패너같은 애들이 설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강한 애들이 막 튀어나오고 있다. 예상대로.
...그나마 아직까지는 다들 약점이 확실해서 다행이지, 에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망토를 휘날린 채, 1층으로 다시 돌아왔다. 음, 이제야 검게 물든 창 사이사이로 좀 보이는 햇빛. 그래. 아까는 너무 어두웠어.
이렇게 다시 1층으로 돌아온 이유는 하나.
스타더스가 멀쩡한 것도 직접 봤으니, 이제는 컨트롤센터에서 관람해도 되겠지.
음산한, 뭐 튀어나오게 생긴 지하에 비해 지상층은 뭔가 텅텅 빈 느낌. 그냥 아무것도 없을 것처럼 생겼지만.
사실 이건 함정이다.
여기에 컨트롤센터가 숨겨져있거든.
그 생각을 하며 지상층 저 구석 어딘가로 걸어간 나는 끝내, 구석 어느쪽에 마치 아무것도 없어보이지만 잘 보면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한 문을 기어코 찾아냈다.
그래. 여기란 말이지.
"이리 오너라!"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문을 그냥 발로 뻥 차서 열었다.
-크리엑?
그러자 보이는, 이상하게 생긴 괴물 몇마리.
아까 스타더스가 싸우던 그 악마 비슷하게 생긴 것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무슨 골렘같이 생긴 검은 생명체들이 그 안에 있었고.
-크키에엑!
나를 본 그것들은, 이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홀리 펀치!"
-끄아아아아악?
그냥 내가 미리 준비해 놨던 홀리-십자가를 품에서 휘두르자, 다들 걍 녹아 없어졌다.
휴. 끝!
참 쉽죠?
[...진짜 한번 더 봐도 신기하네요. 오빠, 그건 원리가 뭐에요?]
"음... 과학과 마법의 산물?"
이제 근처에 스타더스도 없으니 말도 편하게 크게 한 나는, 주위를 휘적휘적 뒤져서 앉을만한 의자를 찾아냈다.
이상한 검은색 진액들을 닦고나서, 털썩 앉으니 살거같은 기분.
내 홀리-십자가는 의자옆에 놨다.
원작에서는 이번 임무가 최종적으로 작전 실패해, 악마들이 몇마리가 시중에 뿌려지면서 생태계에 숨어사는 바람에 걔네 잡겠다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개발되는 무기.
물론 나야 대충 그 원리를 알고있으니, 미리 준비해놓은 것들에 덩굴마녀라는 내 일기장에 마법 걸어줬던 그 여자를 다시 찾아가서 만들어놨던 무기다.
뭐, 굳이 십자가 모양일 필요는 없지만 감성이라는게 있으니...
하여튼,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하나.
여기가 이 악마성의 컨트롤센터기 때문.
그리고 그런 내 말을 입증하듯, 앞에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붙어져 있었다. 화질이 좀 구리긴 한데... 어찌됐건 시시티비 비슷한것들로 아래 침식된 공간들이 다 보이는 모습.
참고로 이건 원래 있던게 아니다.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데몬즈라는 놈이 새로 만들었던거지. 지금은 방치됐지만.
".....얘가 난놈이기는 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데몬즈. 앞으로 일어날 마지막 월광교 테러 전 최고의 임팩트를 보여준 이놈. 현세에 지옥을 강림시키겠다는 목적 하나로, 이 지랄을 다 준비한 놈이다. 그전까지의 머리보다는 능력부터 쓰던 다른 빌런들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머리도 돌아가는 놈이고.
참고로 저놈은 지금 이곳 제일 깊숙한 곳에서 자체적으로 봉인에 갇힌 채 힘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아마 저놈이 풀려나는 그날이, 대한민국에 지옥이 강림하는 날이겠지만...
'뭐, 어차피 원작에서도 그건 실패했으니까."
그래. 원작에서조차 저놈은 부활하는데 실패했다. 정확히는 반쯤 부활했는데, 스타더스와 협회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막았지. 물론 악마 몇몇은 풀려났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망하는건 막았으니 된거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어디에 숨겨져있는 조작 패널을 찾고 만져보니, 보이는 스타더스의 모습. 복도를 걷는 모양이다.
[...음, 이건 좋네요. 여기서 이러기만 하면 괜히 오빠가 위험해 질리도 없고.]
"그치?"
안심하는 듯한 서은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지켜보다가 뭔 일 터지면 내려가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스타더스가 첫날은, 중간까지만 내려간 뒤 다시 돌아오니까.'
그래. 이번 이벤트는 거의 일주일 정도 걸리는 대형 이벤트. 스타더스또한 앞에 뭐가 있는지 모름으로, 굉장히 보수적으로 임한다. 계속된 전투로 지치기도 할테니.
즉, 아마 몇시간 뒤면 다시 돌아올꺼란 소리다. 그러니 나도 그때쯤 가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그렇게 몇시간후.
"아니... 왜 계속 가는거야?"
나는 화면에 비친,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가는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며 당황함에 중얼거렸다.
아니, 전투도 아까 이후로 많이 치뤘는데, 슬슬 재정비 해야지. 어디까지 내려가는거야.
나는 슬슬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쓰읍. 플랜 C를 써야하나.
[오빠...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진지한 표정을...]
서은이는 그런 나를 보더니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