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9 그녀의 악몽
스타더스 모르게 다른 빌런인척 덤볐다가 박살이 난 이후.
나는 집안의 한 방의 침대에 기대고 앉아, 계속 요양중이었다.
"음... 다네."
나름 밖의 숲이 촥 펼쳐져 보이는 뻥 뚫린 창가 앞.
그곳의 침대에서 블랙펄 밀크티를 마시던 나는, 가볍게 컵을 한번 흔들어 보았다.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얼음들.
손끝에 닿는 차가운 얼음을 느끼며, 나는 빨대로 밀크티를 한잔 더 마셔보았다.
입안에 사악 퍼지는 달달한 맛.
"어때, 맛있지 않냐?"
"어. 오랜만에 단거 먹으니까 좋네."
빨대를 내 앞에서 물고 내게 묻는 최세희한테, 나는 그렇게 답해주었다.
그런 내 대답에 피식 웃는 최세희.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에 팔을 올려 턱을 기댄채 내쪽을 보고있던 최세희는, 이내 시선을 살짝 돌리더니 눈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서자영, 너는 왜 여기 누워있냐?"
"으응... 여기가 편하고 좋아."
침대 옆에서 내 이불을 안고 뒹굴거리고 있는 보라색의 무언가.
여기가 거실보다 더 편하다고 눌러앉아버린 내 말동무 서자영이다.
현재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서은이와 수빈씨, 은월이까지 합세해 방 하나를 개조해서 만들어버린 치료실.
내가 자꾸 다쳐서 오니까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아예 방 하나를 공사해 만들어버렸다. 지하실에서 피로유지 장치 꺼내다 여기 이식하고, 볕 잘들라고 방에 창문 뚫어버리고, 등등.
그 결과 그게 마음에 든 서자영이 나보다 더 이곳을 잘 써먹고 있었다. 침대가 커서 2명이서 눕기도 충분하니 뭐. 나무늘보 키우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다.
그렇게 뒹굴거리는 서자영을 슬쩍 보다가, 나는 최세희한테 슬쩍 찔러보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제 난 괜찮은거 같은데..."
"안돼. 이번주까지는 쉬어."
그러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최세희.
아니, 나 일해야 하는데...
그래도 워낙 저렇게 강경하게 나와, 어쩔 수 없이 쉬기로 했다. ...사실 내가 쓰러진동안 최세희가 울고 난리쳤다는 얘기를 서자영한테 들은 뒤로는, 양심이 쿡쿡 찔리기도 했고.
하여튼 요즈음은 그렇게 평온하게 쉬면서 보내고 있었다.
계속 걱정했다며 내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조만간 찾아갈거라며 역정을 내던 이설아를 달래주고, 날 대신해 충격을 흡수하느라 반쯤 망가져 서은이에 의해 실험관 액체속에서 수복되고 있는 베히모스도 관찰하며, 그렇게 잘 쉬었다.
내 자의가 섞인건 아니긴 한데... 어쨌든.
"으음... 파인애플이 먹고싶다아..."
"파인애플?"
"파인애플 피자..."
"..."
옆에서 자꾸 이불에 입을 대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서자영의 말을 라디오 삼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슬슬 건강도 회복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
그래. 스타더스.
내가 이지경이 되면서까지 파악하려고 애쓴 스타더스의 능력에 관해서 생각해 볼 때다.
나는 밀크티를 한입 더 마시며 저번에 있었던 전투를 평가했다.
...일단 스타더스는 확실히 강해졌다. 심지어 내 예상보다 더.
원래 스타더스가 위기상황일수록 강해지는건 익히 알던 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꽤나 강했다. 애초에 나를 결국 쓰러트리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결론은?
바로 다음에 일어날 메인이벤트, 팬들 사이에서 일명 악마성 사건이라고 불리던 일이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거다. 원작의 스타더스는 못버텼어서 그냥 내가 미리 사전에 그냥 처리해서 테러 자체가 안일어나게 하려 했는데, 스타더스랑 직접 부딪혀 보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
아마 이번 일을 겪고나면, 스타더스가 꽤나 강해질거라고 살짝 기대한다. 특히 다수전에서 강해질거라고.
...물론 원작에서 또 피폐를 찍던 스타더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살짝 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지금의 스타더스는 다르니까 괜찮겠지.
하여튼, 그거는 뭐. 이제 가만히 기다리면 됐고.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걸 떠올려보기로 했다.
바로 내가 스타더스한테 맞고 쓰러진 그날의, 스타더스의 반응을.
"....."
"오, 갑자기 진지한 표정."
옆에서 서자영이 웅얼거리는걸 들으며, 나는 그날의 스타더스를 떠올려봤다.
'....아니야, 이럴, 이럴수가...'
그래.
내가 쓰러진 날 보였던 스타더스의 반응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난 나 보자마자 스타더스가 기뻐하면서 더 공격하던가, 아니면 바로 달려들어 잡아가던가 둘 중 하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날 보자 굉장히 당황한 것 같은 그녀.
왜 당황한거지? 기뻐한 것도 아니고?
뭐, 빌런인 날 걱정했을리는 없고. 그냥 막 눈앞에서 숨넘어가게 생겼으니까 당황한건가? 정보를 더 캐네야하는데 먼저 죽으려해서?
이게 제일 그럴듯 한거같다.
...아니, 뭐 물론 이런 이유가 얘여도 당황할 수도 있기는 하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테러만 몇십번 일으키고 한번도 안잡힌 빌런이 뿅하고 눈앞에 피철철 흘리며 튀어나왔으니까 당황할 수 있지.
뭐, 별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거다.
그렇게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나저나, 지금쯤 스타더스는 뭐하고 있으려나. 눈앞에서 날 놓친걸 땅을차며 아쉽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아니지. 오히려 날 한방 먹였다고 꿀잠자고 있을수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
에고스틱이 자신의 손에 의해 사방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힘 없이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뒤.
신하루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물론 사실 말이 악몽이지, 그렇게 막 잔인하고 끔찍한 꿈은 아니었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과 에고스틱의 예전 일들이었을 뿐이니까.
[스타더스씨.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세요.]
포기한 자신을 진지하게 응원해주던 에고스틱.
[저한테 하나, 빚지신 겁니다.]
자신을 대신해 공격을 맞은 채 피흘리며 웃던 에고스틱.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해줘야되지 않겠습니까?]
이길 수 없는 적 앞에서 자신이 절망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다가와 쓰다듬으며 대신 나서던 에고스틱.
그렇게 꿈은, 그냥 지금까지 에고스틱과 함께한 장면들을 다시한번 보여줬을 뿐이다.
다만.
[....]
그 끝이 늘, 자신에 의해 배가 뚫린채 피를 가득 흘리며 아무말없이 싸늘히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을 보여주며 끝났을 뿐이지.
그 꿈을 꾼 날이면, 신하루는 늘 전신이 땀으로 젖어 헉헉대며 깨고는 했다. 심장이 강하게 뛰는 채로.
그래도 다행히, 그 꿈은 에고스틱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 뒤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컨디션도 완벽히 회복되었고.
"으으음..."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사무실.
그곳에서 신하루는, 따스한 햇볕을 맞아가며 기지개를 폈다.
...에고스틱도 지금 어딘가 있겠지.
걔도 나처럼 이렇게 같은 해 아래에서 햇볕을 받고 쉬고 있으려나.
무의식적으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스스로가 한 생각에 또 움찔 놀랐다.
...내가 왜 또 걔 생각을 하고 있지.
미쳤나봐.
에고스틱의 생존 방송을 본 이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신하루는 요즘따라 기분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난 5일간의 자신이 보여준 추태 때문에.
"...으.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자신도 모르게 볼을 붉힌 채,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의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꼬며, 신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에고스틱이 그런 일로 막 죽...고. 그럴리가 없잖아.
예전에 그 한은그룹 지하실에서 거의 심장까지 꿰뚫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난 애인데. 당연히 자기 기지에 모종의 치료시설이 있겠지.
에고스틱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자, 드디어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온 그녀.
그런 그녀는, 바로 며칠전의 자신을 기억할때마다 막 이불을 차게 되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에고스틱을 본 이후, 그녀는 한동안 자기가 생각해도 좀 이상했었다.
에고스틱의 예전 영상들을 찾아 멍하니 보지를 않나.
'...아니겠지. 괜찮을거야.' 막 이런 말을 혼자 집에서 중얼거리고.
어느날은 막 이유없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떨어지고.
협회도 그냥 출근 안해버리고.
"으으..."
부끄러움에 머리를 쥐어잡던 그녀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뭐 그나마 다행이다.
협회장이나 직원들은 자신이 에고스틱이랑 싸우느라 너무 피곤해지고 따로 요양해서 출근 안한줄 알고 있으니까.
...에고스틱 생각하느라 안나갔다는건, 무덤까지 가져갈 고민이다.
"....."
물론 지금도... 자신에 의해 피를 흘린채 쓰러져있던 에고스틱 생각만 하면 순간 숨이 멎고 머리가 어지럽긴 했다.
그냥 테러를 하는 빌런을 쓰러트린거니, 문제없다... 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고스틱이, 그냥 빌런은 아니지...'
막 이런 생각이 들며, 침울해지는 그녀.
빌런한테 미안하고, 뭐 그런건 아니지만. 아니긴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여전히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땅을 팠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틀비틀 집에 돌아간 그날 저녁.
그녀는 또, 꿈을 꿨다.
[당신만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자신한테 그렇게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웃으며 그녀가 그의 아치에너미라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제 히어로, 스타더스보다 약하시네요.]
방송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스타더스를 그의 히어로라고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그리고, 장면이 바뀌고.
어느새 에고스틱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품에 안겨, 자신을 향해 비웃고 있었다.
[하. 그 빌런이 저인지도 모르고 막 죽이려고 했던게 무슨 제 아치에너미인가요.]
[스타더스, 당신은 이제 제 주적이 아닙니다. 제 히어로는... 이제 이, 아이시클이죠.]
[흐응. 미안해 하루야. 그렇게 됐어. 앞으로 에고스틱 관련된 테러는 다 내가 상대할게. 알겠지?]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그렇게 에고스틱과 그를 껴안은 이설아의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면서.
신하루는, 잠에서 깼다.
"히익. 헉, 헉."
...아니. 이게 무슨 개꿈이야.
신하루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잡으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