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78화 (178/328)

EP.178 해명

텅빈 공간.

그곳을 채우고있는 새하얀 빛.

그 기묘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아이야... 너만이... 할 수...

부탁한다.

부디... 이 세계를..

...미안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온 마지막 말과 함께.

다시, 시야가 바뀌었다.

붉게 물든 하늘.

황폐해진 거리.

쓰러져있는 건물들.

'....빠....오빠!... 일어나...니!...빨리... 언니... 해봐...'

'...못해 ...못해요...아무것도...제...힘으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들.

그리고.

'쿨럭...죄...합니다....'

'...랍....세..째줄....꼭.... 제가 없이도... 부디...'

중얼거림과, 다시 들려오는 흐느낌.

'지...마...죽는거....니지?...흐...흐윽....'

'.......'

'....미안...'

'안돼....포기...못해....못보..내....'

귀를 매우듯 사방에서 들려오는 찢어지는 소음.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 그와 동시에 밝아지는 하늘, 어두워지는 주위.

그리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허억! 헉, 헉."

마지막에 그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나는 잠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건, 땀으로 젖은 몸.

하 시발, 또 개꿈 꾼거 같은데.

그렇게 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때, 어디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윽."

갑자기 내 옆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겨우겨우 눈을 떴다.

"하아... 하아. 다인오빠,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내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애써 미소짓는 하율이가 보였다.

"흐윽... 오빠..."

"아이고 서은아, 이제 오빠 괜찮아. 왜 또 울고그래."

"흑, 제, 제가 조금 더 잘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갑자기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서은이.

거기에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저쪽편에 있던 모두들 다 모여서, 또 방안이 금새 북적북적해졌다.

그렇게 내가 깨어난걸 확인한 후에야 다들 안심했고.어느정도 진정되고 겨우겨우 서은이도 달랜 뒤.

일어나보니 좀 배고픈거 빼고는 몸이 멀쩡하다는걸 깨달은 나는, 수빈씨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네? 제가 쓰러진지 벌써 5일이나 지났다고요?"

"맞아요. 다인씨,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약간 붉어진 눈으로, 수빈씨는 이례적으로 언성을 높인 채 지난 일들을 설명했다.

스타더스와 내가 치열하게 싸우는중, 나로부터 특별한 지시가 없어 계속 싸우는걸 걱정스럽게 지켜봤다고 했다. 그러다 불의의 순간에 내가 갑자기 스타더스의 필살기를 맞고 박살나니까 너무 놀라서 곧바로 달려온 것.

은월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 바로 구해내서 겨우 산것이지, 아니였으면 정말 큰일날뻔했다고 수빈씨는 설명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절해서 왔는데, 막 뼈 박살나고 내장 파열되고 그랬대나. 하율이가 안간힘을 써서 겨우 치유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치료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내가 또 일어나지 못한 것. 그렇게 다들 뜬눈으로 나를 지켰다고 그녀는 말했다.

"...오빠, 앞으로는 이제 어디든 혼자 못가요. 갈거면 앞으로 우리랑 가요. 알았죠?"

나를 붙잡고 부은 눈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서은이.

그리고 드물게도, 옆에 멍하니 앉아있던 서자영도 거들었다.

"그래... 서은이 말이 맞아. 넌 너무 몸을 막 굴려."

내 팔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옆에 앉아있던 최세희도 동의한다는 듯,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는 몸을 함부로 안 굴리겠다는 약속을 병상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벌써 몇번이나 한 약속같기도 한데...

하여튼 다시 얼마간 몸 좀 추스르고, 죽도 먹고. 다들 돌려보내고 좀 쉰 이후, 내 깜짝 서프라이즈 테러의 반응이 어땠는지 수빈씨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좀 처참히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타더스랑 용호상박으로 싸웠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은근슬쩍 수빈씨한테 물었고.

그런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네? 에고스틱 사망설이 돈다고요?"

나는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개똥같은 낭설이...

내 그런 반응에, 옆에 앉아있던 서은이가 눈을 샐쭉하게 뜨더니 휴대폰을 두들기며 말했다.

"당연하죠 오빠. 오빠 다친게 방송국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봐봐요."

서은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곳에 실린건 한 기사.

[A급 빌런 에고스틱 중상... 에고스트림은 '노코멘트'.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망 의혹 잇따라...]

그 자극적인 제목 밑에 있는건, 한장의 사진.

멀리서 찍은걸 확대했는지 화질이 좀 구렸지만, 그래도 대충 내 모습과 흥건한 피는 아주 잘 보였다.

"지금 난리났어요 오빠. 사람들 막 다 오빠 죽은거 아니냐고."

"아니... 내가 그렇게 쉽게 죽겠어? 다들 왜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죽을뻔 했다고요! 하아... 하여튼, 그래서 막 뉴스에도 나오고 난리에요."

"...그래?"

그렇게 서은이는 나한테 다른 것들도 몇개 더 보여주었다. 실시간 트렌드에 에고스틱 사망이 올라와 있다던지, 국내 유튜브 실시간 인기영상 1위를 아직도스타더스와 로봇탄 내 영상이 차지하고 있다던지 뭐 그런것들. 그냥 어이가 없을 지경.

....큰일인데.

나는 그걸보고 당황했다. 아니, 빌런이 뭐 테러하다 보면 다칠수도 있지. 그게 왜 죽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비약하는거야. 빌런은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도망친 뒤에 다시 등장하면 말끔히 치료되어있는게 상식이잖아? 적어도 내가 본 히어로물에서는 다 그랬다.

하여튼 나도 내 폰을 찾은후 급히 여론을 검색해봤다. 실제로 에고스틱이 죽었다는 썰이 꽤 돌아다니는 모습. 심지어 에고스틱 팬카페는 막 활활 불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안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빌런이 부캐파서 놀다가 쳐맞고 죽었다? 이건 너무 이미지 실추잖아...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면 또 새로운 빌런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제 2의 에고스틱이 되겠다고. 원래 이 빌런판도 다 인지도 싸움이다. 인기끌기 어려운데,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도는 이때가 어그로끌기 최적의 기회. 내 공백기에 무슨 일이 알 수가 없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이 나라는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당연히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스타더스가 저걸 믿으면 좀 곤란해지기도 하고.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는 나를 주적으로, 그녀가 강해져야할 목표로 삼아야하는데 그런 내가 뜬금없이 죽으면 뭐가 되겠는가.

그렇게 대한민국 1위 빌런의 사망 의혹에 단체로 이상증세를 보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며,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안되겠다. 바로 방송 하자."

"...방송이요? 지금?"

"그래. 그냥 나 살아있다는 것만 알리는 방송. 하도 난리나서 안되겠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뜬금없이 터진 이 논란을 빠르게 끝내기로.

아니, 이번일은 그냥 뭐 별것도 아니고. 다음에 일어날 메인이벤트 맛보기 하나였는데 왜 이 난리가 난거야.

...물론 몸 상태가 이런데 무슨 방송이냐고 도끼눈을 뜨는 수빈씨한테, 의자에 앉아 말만 하는거라고 설득을 한 다음.

나는 카메라를 켜, 방송을 시작했다.

자, 장난도 여기까지다.

나 멀쩡하다고 이것들아.

***

에고스틱 사망의혹 첫 보도 이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일개 빌런의 사망 의혹 하나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커뮤니티쪽은 에고스틱 팬카페 망고단과 스타더스 팬카페에 대치도 일어나며, 그야말로 난장판.

거기에 전문가들 또한 만약 에고스틱의 사망이 사실이라면 그에 의해 억제된 다른 빌런들의 범람과 해외 빌런들이 대한민국으로 침입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해, 일반인들도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리더를 잃은 에고스트림이 폭주하면 어떡하냐는 우려까지.

그리고 그렇게 무언가 폭발할 것만 같았던 그때.

그냥 갑자기, 뜬금없이 에고스틱의 방송이 켜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정말 뜬금없이 켜진 방송.

그곳의 화면에는 멀쩡해보이는 에고스틱이 의자에 나른히 앉아, 말을 하는게 나왔다.

뭐 장난좀 쳐봤는데 실패했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이 꼭 이기겠다는 내용.

그리고 그 말만 하더니, 테러는 계속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냥 방송이 꺼졌다.

갑자기 켜져 갑자기 꺼진, 몇분 되지도 않은 방송.

그러나, 그 파급력은 어마무시했다.

[[속보]에고스틱 생존 보고... 건강에 이상 없어보여]

[에고스틱의 죽음, 낭설로 밝혀져...]

[에고스틱, '앞으로 테러 더 열심히 할 것.' 누리꾼들, 안심.]

그야말로 방송이 끝난지 몇분만에, 수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기사들.

그렇게 단 몇시간만에, 에고스틱 사망 의혹 사건은 해프닝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

[자기가 에고스틱 죽었을거라고 한번도 생각도 한적 없으면 개추ㅋㅋㅋㅋㅋ]

그래 ㅅㅂ 우리 망고스틱이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질리가 없지ㅋㅋㅋㅋㅋㅋㅋ

의심 한번도 안했으면 개추ㅋㅋㅋㅋㅋㅋ

[좋아요]3884

=[댓글]=

[개추ㅋㅋㅋㅋㅋㅋㅋ]

[좋아요 올라가는 속도봐라 ㅅㅂㅋㅋㅋ 여기가 어제까지 망고 진짜 죽은거면 어캄? 올라오던데 맞냐? 가슴이 옹졸해진다...]

ㄴ[아ㅋㅋ 그건 걍 해본 말이었다고ㅋㅋㅋ]

[솔직히 이번 방송보고ㅈㄴ안심했으면 개추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

ㄴ[망고스틱 얼굴보자마자 걍 미소지어짐ㅋㅋ]

ㄴ[진짜 망고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어 절대안됨 ㄹㅇ... 삶의 의미가 반이 없어진다]

[빌런이 죽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살았다고 좋아하는건 대체 뭐냐고ㅋㅋㅋㅋ]

ㄴ[? 이번 사건은 A급 히어로가 S급 히어로한테 하극상 일으킨 사건인데 무슨 소리?????]

ㄴ[이녀석 별먼지카페 분탕종자 아님??]

ㄴ[갈!!!!!!! 자고로 신앙이란!!!]

*

그렇게 대한민국이 언제 난리 났냐는듯 다시 빠르게 안정을 되찾던 그때.

"....아."

어두운 방 안, 침대에 홀로 앉아있던 신하루는, 뉴스 기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다행.

"다행, 다행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젖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히어로가 빌런이 살아있다고 안심하는건, 평소에 그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런걸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그가 쓰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녀는. 오직 그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