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7 중상
"크흑... 쿨럭."
개박살이 난 병기 안.
나는 그곳의 뒤에 기대, 쿨럭하고 피를 토했다.
쓰읍... 죽겠네.
나는 겨우 숨을 고른뒤, 어두운 기계 내부에서 잠시 몸을 살폈다.
딱봐도 좋지 못한 상태.
피가 철철 흐르는걸, 우리 베히모스로 어떻게든 지혈하고 있는 상태다.
...아니, 이게 나름 베히모스로 충격 좀 완화한건데도 이 정도면, 정통으로 맞았으면 진짜 좆됐겠는걸?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 살았으니 된 거 아닐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피를 하도 쏟아서 머리는 잘 안돌아갔지만.
...사실, 이건 딱히 의도한게 아니다.
아니, 나는 그냥 대충 능력 딱 성장할때까지만 좀 싸우다가 이제 어느정도 됐으면 에고스틱인거 밝히고 '좀 색다르게 놀아봤는데, 재밌었네요. 이번에는 비록 제 패배였지만, 다음에는 다를겁니다!' 이러고 도망가려 했지. 이미 대사까지 다 짜놨었다.
근데 문제는 그... 내가 좀 몰입하다보니 스타더스 조금이라도 더 성장시켜보려다 도망가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도 있고.
스타더스의 필살기, 일명 스타-펀치의 시전 타이밍을 잘못 예측한 것도 있다. 아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빛이 번쩍하면서 주먹이 날아오는데, 이걸 어떻게 피해.
이미 그녀의 전투패턴을 다 꾀고 있는 나조차도 방심시킬 정도라니, 정말 이 짧은 순간에도 다이나믹하게 성장한거 같다.
스타더스... 난 너가 자랑스럽다...
"쿨럭."
쓰읍.
나는 피를 또 뱉고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제는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
나는 쓰러질거같은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다음 일을 생각했다.
일단 지금 상태는 손가락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정도.
지금 베히모스 조종하면서 지혈만 겨우 하고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순간이동을 쓰면...?
'좆되겠지.'
진짜 죽을 수도 있다. 특히 여기서 곧장 집으로 멀리멀리 순간이동한다? 패널티받고 과다출혈로 즉사다. 하율이 치유능력이 부활까지 커버 해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나. 아직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바로 존버전략.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나 구하러 와줄때까지 존버를 타는거다. 애들아. 나 좆됐어. 살려줘.
물론 문제는 당장 언제올 줄 모른다는거. 그때까지는 여기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쓰읍... 아마 스타더스라면 바로 벽면부터 뜯고 내 정체를 확인하려 들텐데.
나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내 몸을 다시 돌아봤다.
그래도 옷이랑 가면은 다 갖춰입은 상태. 이미 정체를 밝힐거라고 상정해놔서 이정도는 되어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밝히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나는 피투성이가 된 옷을 슬쩍 바라본 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어떻게든 입을 털어 시간을 끌어야한다. 스타더스가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틈을 타 입을 털어 나를 쓰러트리지 못하게 해야한다.
...근데 이꼴이 된 나를 보고 스타더스는 무슨 반응을 보일려나. 아마 스타더스 전문가인 내가 봤을때, 소 뒷걸음질 하다 쥐 잡듯 어쩌다가 에고스틱 잡았다고 그냥 좋아할 것 같다는 기분. 오랜만에 스타더스가 웃는걸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차라리 그게 다행이지, 잘못하면 괘씸하다고 여기서 갑자기 처리해 버리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하루는 빌런한테 즉결처형을 최대한 안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혹시 모르는 것. 역시, 무엇보다 내가 입터는게 중요해질거다.
나는 그렇게 잘 안돌아가는 머리로 대비를 단단히 하던 그때.
드디어 벽 너머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 앞에 서는게 느껴졌다.
이내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뜯기기 시작하는 벽면. 서프라이즈 3초전인 상태.
그리고, 이내 밝은 햇볕이 어두운 공간에 들어오며.
스타더스의 모습이, 내 앞에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와 눈이 마주친 스타더스.
"......아...?"
"쿨럭. 안녕하세요, 스타더스씨. 하하.. 쿨럭."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물론 중간에 그녀의 눈앞에서 피를 토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는 불상사가 생기긴 했지만... 이정도는 넘어가주겠지.
머리에서도 피가 한줄기가 흐르고있어 눈앞이 잘 보이지가 않아 스타더스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은 들렸다.
"....아니야, 이럴, 이럴수가..."
...뭐가 아니야?
나는 의아한 기분에 억지로 초점을 맞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 보였다.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앞에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그녀. 음, 왜 저러는거지. 갑자기 로봇 안에서 내가 튀어나오니까 좀 당황했나?
저러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당장 나한테 달려들어서 쓰러트리지 않고 있다는건 큰 호재다. 입을 계속 털 수 있다는 소리지.
그래서 나는 애써 입을 열어, 그녀에게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원래 이런식으로 정체를 밝히려던건, 쿨럭,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조금 장난좀 쳐볼려고 한건데... 쿨럭."
아니 시발. 계속 각혈이 나와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말을 하며, 빛에 익숙해져 조금 선명해진 눈으로 다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
눈에 초점이 나간 채, 무슨 영혼이 나간 것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잘 보니까 어째 손도 좀 떨리고있는거 같은 모습이다.
...진짜 뭐지..?
내가 의아함을 느낄 때쯤, 순간 그녀가 몸을 흠칫 떨더니, 다시 눈에 초점을 맞추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며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일단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래 치, 치료를..."
그렇게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내 앞에 다가오는 그녀. 쓰읍, 잠깐. 왜 오는거야. 이대로 잡아가려는건가. 아니, 진짜 목숨걸고 순간이동이라도 해야되나.
그런 내 고민은, 다행이도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왜나하면, 거대한 보라색 마법진이 그녀와 내 사이에 나타남과 동시에 거대한 바람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크흑?"
순간적으로 불어닥친 강풍에 스타더스가 손으로 앞을 가리며 밀려나는 그 순간.
내 눈앞에 작은 마법진이 여러개 생기더니, 분홍색 구름과 함께 작은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오빠!"
검은색 머리와 대비되는 하얀 무녀복을 입은 채, 내 앞에서 폴짝 뛰어든 그녀. 은월이.
다행히 시간내에 와줬구나.
"쿨럭. 왔구나, 다행이다."
"오, 오빠... 몸 상태가... 어떡해요. 히잉."
나를 보자마자 울상을 짓는 은월이.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몸쪽을 붙잡고 글썽거리며 빠르게 나를 확인한 그녀는, 이내 내 몸을 옆에서 껴안았다.
"오빠, 바로, 바로 갈게요. 집으로."
"그래, 쿨럭. 가자."
"말하지마요! 피, 피 계속 나오잖아요. 일단 빨리..."
그렇게 정신없이 중얼거린 은월이는, 이내 허공을 몇번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주위에 생기는 기하학적인 마법진들.
휴,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진짜 어쩌다보니 큰일 날뻔했네. ...이 몸 꼬라지로 집 돌아가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아득하다. 걱정시켜서 미안할 따름.
그렇게 내가 생각하던 순간.
바람이 걷히고, 다시 스타더스의 모습이 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런 스타더스의 모습을 확인한 은월이 역시, 나를 껴안은 채 이를 악물더니, 이내 나를 더욱 꽉 껴안은 채 스타더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행히도 빛이 나기 시작하며 작동되는 마법진들.
그 가운데에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스타더스를 바라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려 노력했다. 원래라면 엔딩 멘트도 날려줘야하는데, 정신 붙잡기도 힘들어서 거기까진 못하겠다...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나는 스타더스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날 코앞에서 놓쳐서 좀 속상해할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간신히 스타더스를 바라봤다.
그렇게 확인한, 나를 내려다보는 스타더스의 표정은...
"....아."
손을 내쪽으로 뻗으며, 뭔가 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아마 나를 코앞에서 놓치는게 그렇게나 아쉬운 모양이다.
하하... 역시 히어로 스타더스 답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바닥의 마법진에서 빛이 번떡였고.
순간 눈앞이 하얘짐과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이정도면, 오래 버텼지.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이 광경은 전부, 한 방송사의 헬리콥터에 탄 기자의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
[[속보][1면]A급 빌런 에고스틱, 현재 중상... 생존 여부는 현재 확인 안돼...]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의 클로즈업 사진이 실린 기사 내용 전문)
아니 뭐임 시발
그 카오스 뭐시기인가 하는 빌런이 에고스틱이라는데????
지금 중상입었다는데 진짜 뭐냐
=[댓글]=
[???????????]
[ㅅㅂ 갑자기 뭔데]
[아니 이런게 어딨어 우리 망고 죽으면 안돼 갑자기 뭔데 아니 시발?]
[왜 밥먹고왔는데 뜬금없이 이런 소식이 에이 장난이지?]
ㄴ[장난 아니다 지금 신문사들 메인사이트에 전부 하나 둘 올라오는중]
ㄴ[진짜네ㅅㅂ]
[아니 왜 갑자기 방송도 안키고 이상한 로봇타고 나서더니 중상입고 오는데 망고야 왜!!!!]
*
갑작스럽게 언론에 보도된, 에고스틱의 중상 보도.
정말 뜬금없이 들려온 소식에, 대한민국은 술렁이기 시작하고, 에고스틱 팬층은 불타기 시작했다.
방송도 키지 않았기에, 카오스ㆍ디스트로이어가 에고스틱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야말로 전무한 상황.
그렇게 에고스틱이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이 뜨겁게 불타기 시작했고.
스타더스는 다음날, 협회에 출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