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76화 (176/328)

EP.176 죽은눈

사실 나는, 이번 테러는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냥 오랜만에 스타더스도 직접 만나고 싶고, 겸사겸사 스타더스 실력도 한번 제대로 봐볼려고 한거지.

근데, 갑자기 스타더스가 저렇게 나올지는 몰랐다.

"하아... 하아..."

몇차례에 걸친 공방 뒤.

나는 잠시 자리에 떨어져서, 팔로 입쪽을 가린 채 거친 숨을 내쉬는 스타더스를, 병기 안에서 지켜봤다.

지쳐 보임에도, 두 눈만은 명확하게 내 쪽을 바라보며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모습.

거의 내 첫테러 이후로 처음보는, 진심으로 이쪽을 박살내 버리겠다는 듯한 강인한 의지의 표정.

나는 그렇게 뜨겁게 불타오르는 스타더스의 표정을 보며, 좀 당황했다.

...아니, 왜 저래?

표정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니, 어쩌면 저 표정은 정말로 이쪽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짜로 왜 저러지.

분명 내 처음 계획은 정체를 숨긴 채, 스타더스의 능력을 테스트 하려고 했던 것 뿐이다.

사실 정체 숨긴것도 그냥 뭐 하다보니 별 생각없이 객관적인 능력 체크를 위해 그렇게 한 것뿐.

그런데 어째, 반응이 꽤나 격렬했다.

'...생각해보자.'

자, 스타더스 입장에서는 어느날 처음보는 빌런이 갑자기 테러를 일으킨거다. 근데 그 빌런이 자신의 공격 패턴을 다 꾀고있고, 심지어 그녀를 압도하는 수준.

...그거 때문인가?

아무리봐도 그것 때문인거 같다. 정체를 숨겨서인지 경계심이 한층 강화된 느낌. 하긴, 그녀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강력한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거니까.

그래서인지, 어쩐지 나를 진심으로 상대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이것까지는 의도하지 못했는데 상당히 당황스러운 부분. 순간 지금이라도 조종석을 열고 '짜잔! 사실 에고스틱이었답니다!' 라고 밝힌 다음에 튀어야 할지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다만.

"으득."

나를 향해 주먹을 쥐고 또 날아오는 스타더스를 보면서 생각을 고쳤다.

그래. 이런 귀중한 성장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지.

일단 지금까지 봐서는 다음 메인 이벤트인 벰파이어 성 사건을 아슬아슬하게 깰 수 있을 능력은 되는거 같긴 한데, 오늘 여기서 또 성장하고 가면 확실히 깰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체를 움직여 스타더스를 피한 뒤, 그녀에게 4개의 주먹 중 하나를 내질렀다.

이에 그걸 예상했다는 듯 갑자기 아래로 꺼지듯 날아가더니 뒤쪽에서 공격을 가하는 그녀.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깔끔한 동작이었다.

근데 문제는 그걸 맞는게 나라는 거고.

"크헉."

[크헉. ...네녀석, 죽인다!]

아니, 무슨 주먹질이 기계장치를 때렸는데 안에 있는 나까지 타격이 가. 심지어 우리 베히모스도 복부에 둘러놨는데. 베히야, 좀 잘막아봐라.

'뀨잉?'

이제는 베히모스의 환청이 들릴 지경.

나는 골이 띵한걸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컨셉에 맞춰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을 할 틈도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공격. 나는 그걸 피하며, 서은이가 준비해 놓은 기능 여러개를 동시에 사용했다. 플라즈마 폭탄, 화염방사 뭐 이런거 말이다.

"쓰읍..."

말이 조종석이지 사실상 사람 들어갈 공간 겨우 있는 관같은 그곳. 나는 거기서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을 꼼지락거려 겨우 닦았다.

...슬슬 몇방 더 맞으면 정말 몸에 무리가 갈거 같기는 한데, 뭐. 몇방 더 안맞으면 그만 아닐까?

[오늘 너는 이자리에서 쓰러진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이 카오스 디스트로이어가, 네놈을 쓰러트려주마!]

싸움에서 중요한건 기선제압.

그래서 나는 그렇게 우렁차게 소리쳐줬다. 상황이 상황이었음에도,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지만... 한번 컨셉을 잡았으니 끝까지 가야지.

그리고 내 그런 선언에.

스타더스 또한 진지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슥 넘기더니, 간신히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여기서 처리해야..."

아니 시발 무섭게 왜그래요.

지금이라도 짜잔 에고스틱이에요 저는 도망갈거에요를 시전해야하나 진지한 고민이 들었으나, 사나이 다인. 한번 마음먹은건 끝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달릴 수 밖에 없어.

[죽어라!]

나는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드디어 주먹에 노란 빛이 빛나기 시작하는 스타더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 살아 돌아갈 수 있겠지?

***

위험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물론 에고스틱처럼 사전에 나 테러할거에요 광고를 한 뒤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정말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다.

대표적으로 한은그룹의 베헤모스. 일명 검은 파도 사건. 정말 하루아침에 갑자기 튀어나와 서울을 거의 쓸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월광무녀의 폭풍 사건도 있다. 그때도 어느날 저녁에 갑자기 등장했었지.

그리고 그런 때에 느꼈던 기분을.

신하루는, 지금 느끼고 있었다.

'....'

물론 상대가 그렇게 광범위한 인명피해를 입히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 강함만큼은 거의 필적한 지경.

애초에 신하루,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녀는 이전보다 꽤나 강해졌다. 이미 협회장도, 이정도면 S급 중위정도의 실력인거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그런 그녀를, 순수하게 근접전에서 압도하는 빌런이 등장했다. 그것도 저 육중한 기계장치를 이끌고.

그녀가 경각심을 느끼는 것도 당연.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무조건, 여기서 잡아야한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정도로 그녀를 압박하는데, 나중에 데이터가 더 쌓여서 오면 감당 못할수도 있다. 심지어 기계공학자 같은데, 더더욱.

그래서 신하루는, 피곤을 억누르고 사력을 다해 그것과 맞서싸웠다.

눈에 진물이 날 지경으로, 머리를 싸우면서도 계속 굴리며.

위에, 아래, 오른쪽, 오른쪽.

마치 패턴을 익히듯, 차근차근 하나씩.

그렇게 처음에는 그것을 단 한대도 못맞추던 그녀는.

이내 하나씩 하나씩, 저 기계장치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크허억!]

...참고로 은근 타격감이 있었다.

한방 맞을때마다 무슨 세상 죽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녀석.

물론 곧바로 다시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유효타가 들어가고 있다는걸 입증하는 모습이었다. 쭉 이 페이스대로 가면, 놈이 도망치지 않는 한 이대로 쓰러트릴 수 있을거 같은 기분.

다만.

두근. 두근.

".....?"

그렇게 놈을 자꾸 한대씩 때릴때마다.

신하루는, 계속해서 무언가 불안감이 커지는게 느껴졌다.

무언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기분. 나중에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거 같다는 직감. 그리고 그런 불길함에 점점 커지는 심장박동.

'...왜 이러지?'

그 이상한 느낌에, 신하루는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냥 새로 나타난 빌런을 공격하는 것일 뿐인데, 왜 이런 불안한 기분이 드는거지.

그리고 그런 싸한 느낌은, 싸움도중 놈을 한방 더 때리고 그가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차 증폭됐다.

...왜, 처음보는 빌런한테 이런 기분이 드는건지, 그녀는 정말 알 수 없었다.

피곤해서 그런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왜 이런 이상한 직감이 드는거지.

뭔가 불안감을 느낀 그녀가,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생각해 보려고 해도.

"크흑...."

펑. 펑.

자꾸만 쉴틈도 없이 날아오는 공격때문에, 차분히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싸움에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라며 넘기려고 한 하루.

그러나 아무리 그럼에도, 이 까닭모를 찜찜한 기분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단은 계속 싸웠다. 기분탓이라는 말도안되는 이유로 당장 나타난 빌런을 앞에 두고 딴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기에.

그렇게, 놈의 공격을 피해 발로 가격하는데 성공한 그녀.

순간적으로 저쪽으로 튕기듯 밀려난 그것은, 이내 다시 균형을 잡더니 이쪽으로 돌아왔다.

[크흐. 내가 이대로 끝날 거, 쿨럭, 같으냐? 너만은 내가 꼭 쓰러트려주마!]

그녀의 귀를 찌르듯 들어오는, 커다란 기계음.

듣는것만으로도 거슬리는 기계 음성이었으나, 그녀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뭔가, 떠오를거 같기도...

그러나 그 생각은, 다시 또 그녀를 향해 날아온 저 병기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신하루 자신에 의해 팔 하나가 부러져, 세 팔을 들고 달려드는 그것.

척 보기에도 저것의 상태가 영 좋아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건 신하루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격렬한 싸움과 끊임없이 이어진 공방과 정신집중으로 눈에띄게 더 피로해진 그녀.

그렇게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는 계속 싸웠다.

...그래. 저걸 일단 쓰러트리고 나면 이 이상한 기분도 사라지겠지. 그리고 대체 뭐하는 놈인지 보고 나면, 모든 의문또한 풀릴거고.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이상한거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자신의 목표는 저것을 박살내는 것, 그것뿐. 다른걸 생각할 틈은 없다.

두근. 두근.

경고하듯, 더욱 강해지는 심작박동.

그러나 그녀는 그걸 무시했다. 신하루. 그녀는 히어로다. 그리고 히어로는, 빌런을 앞에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싸움이 이어지고.

기어코 놈의 팔을 하나 더 뜯어, 이제 두팔의 기계장치가 더덜더덜 떠있을때.

신하루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이제, 여기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낸다.

그 생각과 함께 별처럼 밝은 빛이, 그녀의 주먹에 번쩍였고.

그대로.

—————————쾅.

[커허억-]

그녀의 마지막 한방이, 그 병기의 몸통 중앙에 꽂힘과 동시에, 놈은 혜성처럼 저 뒤로 날아가 옆의 건물 벽면에 그대로 꽂혀버렸다.

말그대로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벽에 쳐박힌 그것.

이내 모든 동력을 잃었다는 듯, 그것은 다시 땅쪽으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이내 힘을 잃고 그대로 땅에 너부러진 원형의 기계.

이내 두 기계팔을 축 늘어트린 채, 그것은 드디어 쓰러졌다.

"하아... 하아..."

그리고 그 앞에서.

신하루, 스타더스는. 간신히 숨을 내쉬며 한쪽 팔을 부여잡았다.

쓰러트렸다. 간신히 쓰러트렸다.

빌런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어째서, 심장이 이다지도 빨리 뛴다는 말인가.

왜, 이 불안하고 불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단 말인가.

무언가, 큰 잘못을 했다는 기분이 자꾸만 든다는 말인가.

"...이상해."

뭔가, 이상하다.

아니야. 문제가 있을리가 없다. 자신은 새로이 등장한 빌런을 잡았을 뿐인걸.

...그래. 확인해보자.

그렇게 그녀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그 기계장치가 쓰러져 있는 곳을 향해 한걸음씩 발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마다 점점 커지는 이 불길한 감각.

그렇게 그것의 앞까지 도착한 스타더스.

그녀는, 불안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그것의 강철 판막 하나를 잡고 발로 고정한 뒤, 뜯어 보기로 했다. 안에는 사악한 빌런이 들어있을거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강철의 옆면을 뜯어낸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아...?"

"쿨럭. 안녕하세요, 스타더스씨. 하하.. 쿨럭."

피로 물든 안쪽에서, 복부를 부여잡은 채.

입가에 빨간 피를 흘리며, 각혈하는 와중에도 그녀를 향해 애써 웃어보이는 에고스틱의 모습이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스타더스의 눈이, 그대로.

원래의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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