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2 카페
메테엘도 겨우 미국으로 돌려보낸 이후.
나는 다시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인씨. 쉬셔야되요."
"...넵."
...물론 수빈씨가 웃는 얼굴로 쉬라고 말해서 그냥 잠시간은 쉬기로 했다. 사실 한번사는 인생 몸 막굴려도 상관없다 생각하는데... 그런말을 했다가는 수빈씨가 더욱 진하게 웃을까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수빈씨는 웃을 때가 제일 무서워.
하여튼, 그래서 소파에 앉아 잠시 쉬었다. 서은이랑 은월이한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그렇게 빛의 신은 용기를, 달의 신은 지혜를, 별의 신은 사랑을 인간에게 주었어요. "
"오빠. 그거 사이비 아니에요?"
"....!"
물론 내 재미있는 신화 얘기를 서은이가 사이비 취급하고, 사이비라는 말에 사이비 종교의 무녀이던 은월이가 흠칫 놀라는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지만.
뭐, 이런 식이었다.
최세희랑 같이 게임 하기도 하고, 다들 서점 가서 책도 좀 읽으면서 쉬기도 하고.
그렇게 이어진 나름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은 모두와 함께 분위기 좋다는 카페에 왔고.
하율이가 알아온 이 카페. 요즘 인기라고 해서, 사람 없는 시간대에 다같이 한번 와봤다.
"음... 여기 좋네."
분위기가 나름 한적하니 확실히 좋았다.
인테리어도 하얀색으로 이쁘고, 무슨 카페 앞에 잔디같은걸 깔아둬가지고 초록초록한 느낌도 주니 자연과 어울러져 있는거 같은 느낌.
거기에 따뜻한 태양빛도 비춰오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그렇게 다들 만족하고 있을 때, 다들 시킨 음료수가 나왔다.
내가 시킨건 블루베리 스무디. 달달하니 마실만 했다.
"...야. 그거 어떠냐?"
"응?"
그렇게 내가 블루베리 스무디를 빨대로 쪽 쪽 먹고 있을때, 앞쪽에서 서자영이 나른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게 들려왔다.
"어떻긴. 맛있지."
"그래? 나도 한입 마셔보자."
"그래라."
한입 먹어보고 싶다길래 잔을 건내줬다.
한 모금 빨아 마시더니, 다시 내게 돌려주는 그녀.
"...맛있네."
"그치?"
"응."
대충 나른하게 웃으며 내게 잔을 돌려줘서, 받아서 다시 마셨다.
역시 달달해서 좋았다.
"...자연스럽게 같은 빨대...."
"응?"
"아니, 아니에요."
내 옆에 앉아 볼을 부풀린 서은이가 뭔가 내게 말하려다가, 그냥 포기하는게 보였다.
뭐지. 볼은 왜 부풀린거지. 햄스터가 되고싶은건가?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카페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쉬었다.
허니브레드도 먹고, 서은이 망고스무디도 맛보고, 하율이 대학 얘기도 좀 듣고.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평온한 분위기 속에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아니, 뭐야?"
갑자기 건물 저쪽편에서 뭐 무너지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들리는 꺄아아아악! 하는 소리.
"응?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최세희.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아무래도 테러 났나본데?"
"아... 테러?"
그러면 뭐 무너지는 소리나고 사람들 비명 지르는게 테러말고 더 있겠어.
...대체 왜 하필 우리가 나와서 쉬는 그때 테러가 일어나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나는 빨대로 스무디 안의 얼음을 휘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테러 할 만한 애가 있던가...?
음, 딱히 기억에 없는걸 봐서는 별 볼일 없는 애일꺼 같기는 하다.
하여튼 저쪽에서는 저렇게 계속 쿵쾅거리고, 가게 앞에서는 사람들이 뛰며 도망가는 광경이 펼쳐진 상황.
물론 우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전력이면 어지간한 애들 다 이길 수 있거든. 그리고 뭐 바로 코앞에서 테러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얼음이나 잘그락거리면서 앉아있었다.
...근데, 이럴때마다 참. 내가 히어로물 속에 있다는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는 말이지. 무슨 밖은 평화로울 틈이 없다. 이것들도 내가 나름 빌런들 몇명은 걸러낸 건데도.
"...다들 도망가는데, 우리만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우리는 조금 떨어져서 어차피 괜찮을걸? 지금 도망가는 사람들은 아마 현장에 있던 사람들일거야."
"그런가요?"
서은이가 자연스럽게 허니브레드를 한조각 더 먹으며 그렇게 답했다.
근데 진짜 다들 도망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카운터 쪽을 힐끔 봤다.
...하품을 하며 평화롭게 컵을 닦고있는 알바생이 보였다.
저쪽에서 쿵- 쿵- 거리며 건물이 살짝 흔들리는데도 평온해 보이는 모습.
테러의 국가 대한민국에 완벽히 적응한 것 같아보였다. 그래. 이런 사소한걸로 놀라면 대한민국에서 못살긴 하지.
"그럼 곧 스타더스도 올려나요..."
그리고 그때, 나는 하율이가 중얼거린 말에 멈칫했다.
잠깐, 생각해보니 그러네.
테러가 일어났다는건, 곧 스타더스도 온다는거 아니야?
그 생각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애들아. 나 잠깐 구경 좀 하고 올게. 다들 쉬고 있어."
"...그 소리 왜 안나오나 했어요. 에휴. 오빠, 저도 같이 가요. 스타더스 실력 다시한번 확인해보게."
"나도!"
"그래, 그래. 따라와."
"...참 스타더스 좋아한다."
그렇게 서자영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서은이랑 최세희랑 같이 건물의 옥상 위로 올라왔다.
야, 스타더스가 다른 애랑 맞서 싸우는걸 현장에서 직관하는건 오랜만인데.
"쓰읍. 팝콘이 있어야되는데 이게 없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옥상에 올라서자 한 눈에 보이는 도심의 광경.
그리고 저쪽 건물 옆에, 문제의 놈이 보였다.
"크아아아아! 다 파괴한다!"
쾅. 쾅.
대충 서은이의 스타버스터 정도 되는 크기의 커다란 검은색 고릴라같이 생긴 놈이 대충 빌딩 옆쪽을 부수고 있는 광경.
물론 히어로 세계관 속 사람들답게 테러 대비 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다들 빠르게 도망쳐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여튼 위협적인 광경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하이고. 이제는 입에서 불까지 뿜는 모습.
"야! 불뿜는 미친 고릴라다! 고릴라가 불을 뿜어!"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최세희가 신이 났다.
서은이도 가만히 있는데 다 큰 어른이 고릴라 보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모습.
"야. 나 저거랑 싸워보면 안..."
"안돼."
"쩝."
그렇게 주먹에 전기를 튀겨가며 나한테 눈을 반짝이는 최세희의 요청은, 단칼에 거절됐다.
아니, 싸우는거 좋아하는건 알겠는데 여기서 갑자기 나서면 좀 곤란해진다. 준비도 안됐고, 스타더스도 곧 올테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하기도 전.
이미 저쪽에서, 누군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빨간색 바디슈트를 입고,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날아온 여자. 스타더스.
...어째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본게 밤에 서자영이랑 섀도우워커 상대할 때 그때였나?
하여튼. 역시나 바로 날아온 스타더스.
그녀가 고릴라 쪽으로 내려가자, 이내 그놈이 고개를 돌려 스타더스를 확인하는게 보인다.
"갈!!!!! 네놈은 누구냐! 아무도 나 블랙콩을 막을순 없다!"
어찌나 시끄럽게 소리치는지 멀리있는 여기서까지 선명하게 들릴 지경.
그리고 그 미친 고릴라가 배때지를 북치듯 친 뒤 스타더스에게 달려들었고.
그에 맞추어 우리 스타더스또한 주먹을 쥐며 바로 달려들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쿵. 쿵.
멀리서도 들리는 파열음.
나는 그걸 들어가며, 이제서야 기억난 블랙콩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뭐. 별건 없었다. 그냥 원작에서도 스쳐 지나간 엑스트라. 다만 스타더스가 꽤나 걔를 상대로 고생했다는 언급이 나온건 기억하고 있다. 하긴, 원작으로 따지면 스타더스가 싸울때 고생 안한 빌런이 없기는 하지만.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는.
스타더스는 꽤나 저 고릴라랑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놈이 불을 피할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피하고. 달려들때는 주먹으로 맞서 싸우고.
그렇게 차근차근 고릴라를 때리고있는 스타더스.
뭐. 나름 잘 싸우고 있는거 같네.
내가 그렇게 구경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서은이는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스타버스터 mk.3으로 상대가... 될거 같기도 하고 안될거 같기도 하고... 기동력을 늘린다치면..."
뭔가 생각이 많아보이는 모습.
옆에서 나랑 같이 액션 영화보는것 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보고있는 최세희랑은 딴판이었다.
그렇게 막 고릴라가 크게 점프해서 지상에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그걸 피한 스타더스가 놈의 뒤에 발을 휘둘러 차기도 하고.
나름 이어지는 다이나믹한 전투들.
나는 서은이의 짜게 식은 시선을 견뎌가며 스타더스 팬카페에 올릴 사진을 열심히 찍으면서도, 동시에 스타더스의 전력을 분석해봤다.
...원작보다 확실히 강해지기는 했는데, 확실히 조금 아쉽다.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거 같은데. 특히 아직 이정도로는 월광교에서 불러온 괴물 못잡을거 같기도 하고.
뭐,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잘하면 되니까. 아직 걱정할건 아니다.
그렇게 사진 몇장 찍고나니, 어느새 고릴라가 쓰러져있었다. 스타더스는 그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서있었고. 멋져서 사진도 한장 찍었다.
다만.
나는 잠시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이제는 우리가 하필 나온 날마저 테러가 일어난걸 보면. 확실히 테러 빈도수가 많아지긴 했다. 앞으로도 더 많아질테지. 특히 월광교가 포탈열고 나면 더더욱 많아질거고.
즉. 대한민국이 더 개판나기전에 바로 시작하는게 맞겠다.
미루고 미뤄오던 PMC 사업을 이제는, 정말 하는게 맞겠다고.
이내 협회의 차량들이 하나 둘 도착하는걸 끝으로, 나는 다시한번 스타더스를 내려다본 뒤 서은이랑 최세희를 데리고 돌아갔다.
뭐, 그래도 오랜만에 스타더스 보니까 좋았네.
***
"휴..."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는 고릴라 빌런을 잡은 뒤, 놈 위에 올라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슥 닦았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에 붙잡는데 성공했다.
이제 놈은 동부 초상 능력자 구치소에 수감되겠지.
그런데 어째 요즘 테러가 좀 빈번해 진거 같기도 하다.
...에고스틱만 빼고 말이지.
그렇게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협회 요원들이 오는걸 대기하고 있을 때.
'....?'
순간 묘한 기분이 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저쪽편 건물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건 아무도 없이 텅 빈 하늘과 옥상.
....순간 시선이 느껴졌는데.
잘못 느낀건가?
신하루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