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5화
화다구리
S급 히어로 메테엘이 나를 잡기 위해 친히 한국까지 왔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메테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흐음..."
미국의 S급 히어로, 메테엘.
긴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차갑고 오만해보이는 여자.
주요 능력은 바위를 소환하는 것.
[콰과과과과-.]
그녀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에서는, 대치하고 있는 빌런들. 그들 틈에서 수많은 거대한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쏟아나와 놈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쓰읍. 빡세네."
이 외에도 여러 영상을 돌려본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강했다. 매우.
애초에 S급 히어로니까 당연한 거겠지만은.
S급 히어로.
온 사방에 널린게 S급 빌런이라 별 차이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사실 S급이라고 같은 S급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협회가 히어로들한테는 높은 등급을 굉장히 깐깐하게 주고, 빌런들한테는 후하게 주는 만큼 S급 히어로는 대단한 것.
일반적으로 A급 히어로들이 A급 빌런들 여러명을 상대로 거의 다 이기고, S급 빌런들도 상대한다는걸 생각해보면... S급 히어로가 얼마나 강할지 대충 예상할 수 있다. 특히 히어로에게 S급 등급은 굉장히 신중하고 여러 심사를 걸쳐야 준다는걸 생각해보면.
특히 미국의 S급들은 수많은 S급 히어로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하다고 소문났다. S급 히어로 위에 SSS급 히어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어느정도 기준선만 넘으면 다 똑같은 S급이라. 미국 히어로들은 만약 S+등급이 있었으면 다들 S+등급이었을 거라는게 중론.
아니 근데, 그런걸 다 떠나서.
이번에 한국 왔다는 이 메테엘이라는 애는 그냥 딱봐도 세다.
"오빠... 이거 봐봐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S급 히어로 메테엘 매드무비.
그 영상 속에선, 메테엘이 숲 위에서 팔짱을 낀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숲 밑에서 봉기하는 빌런들.
그들의 위에서.
[...하늘아래, 너희들은 모두 심판당하니.]
오만한 눈빛으로, 위풍당당하게 서서 말하는 그녀.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거대한 돌덩어리. 아니, 운석이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박살나버리는 숲. 찍도 못하고 쓸려나가는 빌런들.
"..."
"..."
나와 함께 그 끔찍한 참상을 본 서은이는, 걱정된다는 듯 내게 물었다.
"...오빠. 이거 이길 수 있는거 맞아요? 좀 답이 없어보이는데..."
살짝 불안하다는 듯 서은이.
그런 서은이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오히려 좋아."
"네?
"담구는 상대가 좀 강해야 담굴 맛이 나지."
내게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당황하는 서은이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듯 쓰다듬어 준 뒤, 나는 일어났다.
"서은아, 애들 불러. 가자."
"어, 어딜요?"
"어디긴 어디야. 작전 회의실이지."
S급 히어로 사냥해야할거 아니냐.
***
사실, 메테엘이라는 이 히어로를 상대하는 방법은 많다.
애초에 나한테는 이설아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니, 그냥 걔 위치를 알아낸 뒤 기습해도 되고, 아니면 아예 테러를 전부 원격으로 하며 존버해도 되고.
그러나, 그런건 3류 악당이나 하는 짓.
일류 악당인 나는, 이미 이 이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애초에 미국 협회가 한국에서만 노는 나를 잡겠다고 쟤를 파견한 이유가 뭐겠어.
아마 내 추측에는 내가 빌런모임 카테달에 참석한 것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S급들 사이에 껴있는 듣보인 A급이 껴 있으니 더 수상하게 생각한 걸수도 있고.
어쨌든간에 결론은 단 하나.
"이번 기회에, 저 미국에서 온 메테엘이라는 히어로를 그냥 작살을 낸다."
회의실 안.
나는 화이트 보드 앞에 서서, 의자에 앉아 나를 보고있는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 앞에서 선언했다.
...사실 뭐 즉석에서 떠올린 것처럼 자신있게 말하긴 했지만, 나름 합리적인 생각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일단, 이 결론을 이해하려면 국제 협회에 대해 알아야한다.
전세계 모든 히어로 협회를 총괄하는 국제 협회. 참고로 이 국제 협회 본사는 미국에 있다. 즉, 사실상 미국 협회랑 한몸이라는 소리.
그리고 미국 협회든 국제 협회든, 그들의 공통적인 방침은 '자국 일은 자국이 해결한다.'이다. 즉, 말만 국제협회지 히어로 원조같은건 안해준다. 자국 히어로를 타국에 파견했다가 죽어돌아오면 여러 문제가 생기고, 아싸리 그나라 협회가 유혹해서 히어로를 빼돌릴 수도 있기 때문.
즉, 이번에 S급 히어로를 한국에 파견한건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왜 A급일뿐인 나를 못잡아먹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앞서 말했듯 카테달 참여때문에 그랬을 확률이 제일 크다. 아니면 라티스와 연합한것 때문일 수도 있고.
근데 사실 이유는 중요한게 아니고.
중요한건 우리집 마당에 남의 집 개가 쳐들어왔다는거.
그리고 그 개를 혼쭐을 내주지 않으면, 분명 또 들어오고 말거다.
미리미리 교육을 시켜놔야지.
그래서 내 목표는 단 하나.
이번에 쳐들어온 S급 히어로를 처참히 발라버려서, 다시 미국으로 고이 보내드리는거다.
그러면 자기보신이 최우선인 국제협회 특성상, 이미 S급 한명이 작살이 났는데 또 보내진 않을거거든. 사실 따지고보면 남의 나라 아니야.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이유고.
사실 진정한 속내는 따로 있다.
'....내가 물건너 온 S급 히어로를 아주 박살내버리면, 반대급부로 스타더스의 인기가 뛰지 않을까?'
벌써부터 머릿속에 국뽕티비 제목이 들려온다.
[미국의 S급 히어로를 무참히 바르는 에고스틱, 그런 그가 스타더스한테 매번 지는 이유는? 스타더스는 이미 미국의 S급 히어로들을 뛰어넘었다! 악독한 빌런 에고스틱의 유일한 억제제 스타더스! 그녀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이미 망했다!] 뭐 이런거 말이야.
...나중에 은퇴하면 유튜브나 할까. 나름 제목 잘 지은거 같은데.
하여튼, 이 모든 과정을 걸쳐 메테엘을 담군다는 결론이 도달했다.
국제협회에 조용히 대한민국에 있는 나 건들지 말라는 경고도 할겸, 이 기회에 스타더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사람들한테 다시한번 인식시켜 줄겸.
그래서 나는 메테엘을 족칠꺼라고 선언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또 멀쩡한 히어로 한명 빌런으로 타락시킬줄 알았는데 그냥 정정당당하게 싸울꺼라니 의외네..."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음해야."
"흐응..."
물론 중간에 서자영의 음해가 있기는 했지만, 뭐. 말도안되는 음해라 무시하기로 했다. 누가 들어도 이상한 소리...
"맞아요. 다행이네요."
"수빈씨...?"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수빈씨의 말에 내가 세상에 배신당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요즘들어 농담이 많아진 수빈씨였다.
...농담 맞겠지?
잠시 헛기침을 한 나는, 이내 다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튼... 얘 잡으려면 좀 고민을 많이 해야돼. 특히 이설아의 말에 의하면 인질 잡아도 신경 안쓴다니 그점도 유의해야하고..."
아니, 생각하니까 또 어이없네. 히어로가 뭐야, 사람을 지켜서 히어로 아니야? 근데 사람을 포기하면 그게 어떻게 히어로인가.
역시 저런 애들을 만날수록 스타더스가 얼마나 대단한지만 늘 다시한번 깨달을 뿐이다.
...그리고 메테엘. 얘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영상에서 나온 그녀의 필살기 거대돌떨구기. 사실상 메테오랑 다름없어 보이는 이것도 문제고. 저걸 사람 많은데서 쓸 일은 없으니 테러위치도 신중히 정해야한다.
그렇게 내가 설명을 했고.
노트북을 두들기며 나와 함께 계획을 짜던 서은이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빠. 근데 메테엘은 어떻게 쓰러트릴거에요? 좀 많이 강해보이는데... "
"아, 어떻게 작살낼거냐고?"
"네."
"아, 그거야 간단하지."
나는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구리 치면 돼."
"....네?"
"아무리 날고 기어도, 6명이 동시에 공격하면 어떻게 이기겠어?"
거기에 이제는 하율이의 버프까지 있으니, 더할나위 없다.
나는 그렇게 하율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줬다.
하율아, 너만 믿는다!
"...오빠, 방금 그렇게 사악하게 웃으며 말하니까 정말 빌런같았어요."
"그야 난 빌런이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답해줬다
정의의 히어로들도 다구리 치는 마당에 사악한 빌런들이 못할게 뭐있어.
히어로든 뭐든 다구리치면 다 한방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은월이 선에서 정리될거 같기는 한데, 빠른 시간내에 완전 박살내는 데에는 다구리만한게 없다.
황망해보이는 서은이의 시선을 뒤로 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상세한 계획을 짜는데 착수했다.
"...처음부터 그러면 곤란하니까, 두 차례에 걸쳐서 나눠하고."
"첫번째 테러는 은월이랑 나만 짧게 전초전 느낌으로 가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기도 하고..."
"휴우, 전 스타버스터 마저 빨리 완성해야겠네요. 아, 근데 상대가 스타더스가 아닌데... 양키버스터라 해야하나?"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계획이 구체화되고, 이설아로부터 메테엘의 계획도 미리 들어가며.
마침내, 대-S급 히어로 테러 계획이 완성되었다.
자, 낚시대는 준비됐으니.
이제 미끼를 걸고 입질을 기다리자.
대어를 낚기 위해.
***
미국의 S급 히어로 메테엘.
그녀는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노점에서 산 닭꼬치를 먹고있었다.
에고스틱인가 뭔가가 테러를 하기 전까지 신분을 숨긴채 서울 관광을 하고있던 그녀.
사실 에고스틱에 대해 별 걱정도 안하고 있었다.
'A급 빌런 따위가 뭐... 빨리 잡고 가야지.'
휘하에 S급 빌런도 몇명 있다고 들은거 같은데, A급 밑에있는 놈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이미 자신의 손으로 수많은 빌런들을 도륙낸 전적이 있는 그녀는, 미국도 아닌 이 나라의 빌런이 그렇게 대단할거란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닭꼬치를 우물거리던 그때.
[메테엘님!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그래? 오케이. 지금 출발. 미리 대기해놔."
드디어 들려온 소식에 막대기를 튕겨 쓰레기통에 넣은 그녀는, 손을 두둑 꺾은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런 그녀의 머리엔.
에고스틱을 상대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하나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