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4화
화오만
대한민국 초상 능력자 협회, 일명 히어로 협회.
서울 한복판에 있는 그곳의 본사.
"아니, S급 히어로가 온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는 현재, 난리가 났다.
"말 그대로다. 미국에서 에고스틱을 잡겠다고... 갑자기 S급 히어로를 파견했네."
협회장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 그의 말에 이설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니... 뭐 이런거 저런거 다 떠나서, 갑자기 대체 왜 온대요? 심지어 에고스틱은 요즘 몇달간 테러를 일으킨 적도 없는데?"
"...나도 모르겠네. 그냥 국제 위원회에서 그렇게 결정이 난걸 어쩌나."
"하아..."
이설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꾹 눌렀다.
...에고스틱, 다인. 한배를 탄 동료인 그에게 닥친 위기는 곧 그녀의 위기이기도 했기에, 심란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이해할수 없군."
섀도우워커, 김자현이 중얼거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자다가말고 끌려나온 그.
그래서인지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그가 인정한 사나이, 에고스틱의 일인 만큼 그도 날카로운 자세로 눈을 빛냈다.
"에고스틱과 북대서양 조직인 라티스... 그 둘의 협업 때문이라는게 타당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렇다해도 왜 지금 시점이지?"
"그러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감하는 이설아.
이미 둘은 저번에 만나 대한민국을 뒤에서 지키는 에고스틱에 관한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눈 전적이 있다.
즉, 미국의 S급 히어로가 에고스틱을 잡으러 온다는거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건 둘 뿐만이 아니었다.
"...."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는 이미 그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표정이 굳어있었다.
정확히는, 기분이 나빴다. 미국이 왜? 갑자기 에고스틱을?
그렇게 인상을 쓰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모순됨을 느꼈다. 자신의 안에 있는 정의로운 히어로 자아가 막 소리치는 기분. 뭐가 문제냐고.
사실 따지고보면.... 대한민국의 빌런을 잡기위해 저 먼 미국에서 S급 히어로가 와준다는건 기분이 나쁠 일이 아니라, 고마울 일이다. 심지어 국제협회 자체적으로 보내준거라 딱히 한국에 비용청구를 하지 않을거라는 것도 장점.
즉, 따지고보면 동맹국이 타국 테러범을 잡아주는 거니까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스타더스가 그렇게 혼란을 느낄 때.
앞에 앉아있던 이설아가, 책상을 쾅 치며 협회장에게 따졌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게 맞아요. 아니, 우리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어요? 스타더스와 저희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저렇게 나오는건 대한민국을 무시하는거죠."
"맞죠. 거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당일에 통보식으로 나온다면... 이건 외교적 결례지. 따지고보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섀도우워커.
"아니, 자네들. 왜 나한테 그러는건가..."
자신을 향한 두 히어로의 시선에, 협회장은 골치가 아프다는듯 다시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 동안.
스타더스는 두명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분이 나쁜게 당연한거구나. 내가 이상한게 아니였어.
자신처럼 약간 화나보이는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 둘을 본 스타더스의 결론이었다. 그래. 저 둘이 왜 화내겠어. 화날 상황이니까 화난거지. 저 둘이 에고스틱이랑 같은 편도 아닌데. 누구나 화낼 상황인거다.
그렇게 스타더스는 합리화를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더 생각했다.
...다 떠나서. 에고스틱은 그녀의 담당이다. 에고스틱이 자신의 상대라고 여기는 히어로는 그녀가 유일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우리 둘의 사이에 누가 끼어든다는 말인가.
애초에 에고스틱 전문가는 자신인데.
그렇게 스타더스의 눈가가 한층 더 어두워지고. 스타더스를 돌아본 이설아가 그제야 스타더스의 상태를 눈치채고 살짝 걱정하던 그때.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협회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히, 히어로 메테엘이 미국에서 도착했습니다!"
"어허. 이제 공항에 도착했다고 하나?"
"네? 아니요. 지금 저희 건물에 도착했는데요."
"?"
순간 일행과 협회장이 당황할 때.
복도 쪽에서, 또각 또각 하는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회의실에 문이 벌컥 열리며.
"반갑다. 한국의 히어로들이여."
한 여성이 당당하게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미국의 S급 히어로 메테엘.
그녀가, 한국 협회에 도착했다.
***
긴 회색빛의 머리.
새하얀 피부.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
재킷을 뒤에 걸치고, 팔짱을 당당하게 끼고있는 그녀.
미국의 S급 히어로.
메테엘.
그녀는 현재, 협회장 사무실의 소파에 기대 다리를 꼬고,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금방 오셨소 그려?"
"그래. 날아왔지."
분명 영어로 말하는건데도 싸가지없이 말하는 느낌인 메테엘.
뭐, 이미 해외의 S급 히어로들을 여럿 봐 그들중 일부가 얼마나 싸가지 없는지를 아는 협회장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 에고스틱인가 뭔가를 잡기 위해서다."
"...오직 그 이유때문에 오신겁니까?"
"그래. 위에서 그러라고 시키더군. 그래서 뭐, 몸도 풀겸 왔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고작해야 A급 빌런 아닌가? 놈의 테러기록을 샅샅이 봤는데, 별것도 없더군. 입만 산 광대놈 쯤이야, 나 혼자서 충분히 잡지. 오히려 지금까지 못잡은게 이상한걸."
노골적으로 에고스틱을 무시하는 말에 순간 울컥한 이설아였으나, 여기서 자신이 그를 편들면 그림이 더 이상해지는 걸 알기에 일단은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대신, 그녀는 메테엘을 살펴봤다.
긴 회색빛의 머리칼과, 그보다 진한 회색으로 되어있는 마치 장교복같은 복장을 입은 그녀.
얼굴은 표독스러워 보이는게,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관상이었다. 능력은 바위라고 했던가.
거기에 더해 말투와 행동거지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오만함까지. S급 히어로. 그중에서도 천룡인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S급 히어로여서 그런지 프라이드가 매우 강해보였다.
책상에 앉아있는 협회장은 별 상관 없어보였지만,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이설아는 빠르게 깨달았다. 이 S급, 아주 쉽지 않다고. 와도 좀 착한 애가 왔으면 어떻게 이설아 그녀가 좀 컨트롤 할만 한데, 딱 봐도 독해보이는 애가 오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옆에 있는 하루마저 조용하니 더욱 불안했다.
그리고 그때.
직원이 따라준 차를 한잔 더 홀짝인 메테엘은, 이내 피식 웃으며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 참. 고작 저 입만 산 광대를 2년인가 3년인가 동안 못잡고 있다니. 협회는 대체 지금까지 뭐한건가? 뭐, 이 나라에 있는건 A급 히어로니 이해는 한다만. 하하."
이제는 아예 대놓고 그렇게 맥이는 메테엘.
그 말에 이설아는, 더이상 참지 않고 한마디 하기로 했다.
"저기요."
"흐음? 뭔가."
"...그래서, 그 빌런의 테러로부터 지금까지 쭉 사상자 0명인거 아시죠? 국제적으로 봐도 모든 테러에서 인질의 희생 단 한명도 없이 이렇게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나 보네요?"
마지막에는 거의 빈정대듯 말한 이설아.
...사실 이렇게 세게 나갈 생각은 없었으나, 어쩌다보니 너무 공격적으로 말했다.
뭐, 그것도 다 자신의 뒷배와 그녀를 보고 나름 판단을 한 뒤에 말한거기도 했지만.
그리고 역시.
그 말을 들은 메테엘은 이설아 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더니, 이내 머리를 쓸며 말했다.
"하하... 그래. 인질이라. 맞아, 사상자는 없기는 하더군."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이설아를 바라보며.
정확히는, 신하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가끔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필요가 있네. 더 큰 선을 위해(For the greater good)라고... 모르나? 하긴, 그걸 알았으면 아직도 저런 벌레만도 못한 녀석이 저렇게 활개치게 납두진 않았겠지."
이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끔은 더 큰 선을 위해선, 인질정도는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법이야. 그 과정에서 몇명 죽더라도, 결과적으로 일단 빌런을 잡아넣는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게 아니겠어?"
거기까지 말한 뒤, 메테엘은 하이힐을 또각이며 문 쪽으로 나섰다.
이내 문을 열고 잠시 몸을 멈춘 그녀는, 협회장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협회장, Thanks for the tea. 그리고 다음에 에고스틱 그녀석이 테러할때는 내가 나설 예정이니, 괜히 함부로 나서질 않길. 그까지것 녀석은 나혼자서도 충분하니 그냥 여기서 놈을 반쯤 죽여놓는걸 지켜보고있어. 내가 알아서 해결할테니. 그럼 Bye."
그말을 끝으로 쿨하게, 하이힐을 또각이며 밖으로 나선 그녀.
이내 하이힐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자, 그제서야 이설아는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저 여자 뭐야 진짜? 여기가 자기 안방이야? 어이가 없어서 진짜."
이설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 옆에 앉은 신하루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부터 말 한마디도 없던 그녀.
메테엘이 떠난 뒤, 하루는 소파 앞의 책상에 팔을 받힌 채, 차갑게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루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담글까."
"뭐, 뭐라고?"
"...."
어두운 표정의 하루를 보며, 이설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 그냥 못들은걸로 하자.
***
에고베이스.
이설아의 연락 이후, 나는 이번에 나를 잡으러 미국에서 한국까지 친히 왔다던 S급 메테엘의 전적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그녀의 화려한 커리어.
"오빠. 어때요?"
불안하다는 듯 나에게 묻는 서은이한테, 나는 짧게 대답해주었다.
"안되겠다. 역시 얘는 그냥 담궈야겠다."
"...네에?"
내가 내린 결론에 당황한듯한 서은이.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결정을 끝냈다.
그래. 오히려 좋아. 오래 생각해본 결과, 그냥 물리적인 의미로 담궈버리는게 맞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착수했다.
그렇게 같은 하늘 아래.
히어로와 빌런 둘은,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