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3화
화버프
"에잇!"
집 앞의 숲.
나는 그곳에 캠핑용 의자를 끌고 앉아, 애들이 훈련하는걸 지켜보았다.
전기를 사방으로 쏘는 일렉트라와, 그걸 다 마법으로 막고있는 은월이.
이내 몇번의 합을 주고 받은 뒤.
"헉... 헉... 포기!"
이내 일렉트라- 최세희가 항복을 선언하며, 대전은 일단락됐다.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둘 다 잘했어."
"언니, 이리로 오세요. 제가 힐해드릴게요."
"응. 늘 고마워 하율아."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게 이런것 밖에 없어서 오히려 죄송한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서는 하율이를 바라보았다.
긴 갈색 머리를 늘어트린 채, 최세희의 등 뒤에 손을 갖다대고 치유를 하는 그녀.
이내 아이고 살겠다- 라고 소리를 내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 최세희.
이하율.
원작에서는 악의 성녀라 불리던 그녀. 주 능력은 치유.
원작대로라면 남동생을 괴한들한테 잃은 후 타락해 빌런으로 각성했을 그녀를, 내가 남동생과 함께 구해서 에고스트림에 합류시켰었다.
이에 원작에서와는 다르게 성격도 굉장히 유해진 그녀. 현재는 대학교에 다니며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에게 힐을 해주는 담당 의사인 상태다.
"야, 다시 싹 괜찮아졌네. 땡큐."
"네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감사를 표하는 최세희의 말에, 싱긋 웃으며 그렇게 답하는 이하율.
생각해보면, 이하율은 원작에서 일렉트라랑 굉장히 친했었다. 이하율이 모습을 보인다면 그땐 늘 일렉트라가 옆에서 서있을정도로.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 하긴, 지금도 하율이랑 가장 친한건 최세희지.
역시 원작과 전개가 달라지더라도, 저런건 바뀌지 않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던 나는, 이내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래.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따로있지.
이하율은 은월이를 봐주러 떠나고, 바위 위에 혼자 앉아있는 최세희.
나는 기지개를 켜고있는 그녀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문제가 조금 있다.
바로 최세희. 일렉트라에 관해서.
최세희의 문제는 다른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원작보다 약하다는거. 그게 문제다.
'....이상하단 말이지.'
물론 일렉트라. 그녀보다 약한 애들은 많다.
서은이만 하더라도 아무리 슈트를 많이 만들어도 세희보단 약하고. 데스나이트도 사실 더 약하다 할 수 있다. 대신 둘은 해킹과 부활이라는 점이 더 메인이다보니, 딱히 부각되지 않을 뿐.
그런데 일렉트라는 전기능력 하나니 조금 화력이 약한게 더 티가나는 상황.
그렇다고 지금 아예 약하다는건 절대 아니다. 애초에 나보다도 훨씬 강하니.
다만 그냥 기댓값보다는 약하다는 거다.
같은 단일원소 능력을 가진 아이시클만 보더라도, 얼리기 능력 하나로 스타더스와 섀도우워커와 나란히 A급 히어로인 상황. 그만큼 단일원소 능력은 좋다.
그리고 특히 원작에서는, 지금보다는 확실히 더 강했다. 하늘에서 막 벼락세례 떨어트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래서 아마 훈련을 하면 나아질거라 생각해,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을 시켜봤지만...
싸울때의 센스만 좋아졌을 뿐, 근본적인 화력 문제는 해결이 안된 상태.
이것때문에 사실 요즈음 고민이 많았다.
아, 이럴리가 없는데.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게 있을텐데. 뭐지?
그냥 단순히 시간 문제? 아니면 최세희가 원작대로 감옥에 안 갔다들어와서 그런건가?
원작과 지금의 차이가 뭐지?
내가 머리를 부여잡고 그런 고민을 할 때쯤.
"다인오빠. 괜찮으세요?"
위에서 들려오는 나를 향한 목소리에,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율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잠시 생각좀 하느라."
나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한테 안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보던 하율이는, 이내 자연스럽게 내 뒤에 서서 등에 손 올렸다.
"오빠 요즘 힘드신거 같은데, 제가 피로라도 좀 풀어드릴게요."
그리고 내가 답할 사이도 없이, 바로 힘을 불어넣는 그녀.
이내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게 느껴졌다.
"좋아요?"
"어... 좋네..."
나는 나도 모르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확실히 좋기는 했다. 마치 수액 10개를 압축한게 한번에 혈관에 흐르는 느낌. 등 쪽으로 느껴진 따스한 기운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게 마치 한약먹은 기분이기도 하다.
역시, 내가 서은이 다음으로 제일 먼저 하율이를 영입한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기본적인 치유능력으로 우리 에고스트림의 안전성을 크게 높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잘자잘한 피로회복 같은 것도 가능하고.
거기에 앞으로 월광교 때려잡고 나면 또 새롭게 활약할 수도 있고...
거기에 은월이의 저주를 풀어주었듯, 디버프를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노근노근하게 바위에 앉아 하율이의 전신힐링풀코스를 받던 나는, 이내 무언가가 떠오르는걸 느꼈다.
치유, 피로회복, 디버프 해제등. 이런 류에 관련해서 하율이가 못하는게 없다. 피로회복도 가능할줄은 몰랐지만, 디버프 해제는 최세희가 다른 빌런에게 당한 저주를 풀어주는걸로 나왔었고.
그런데 말이야.
이게 치유라는게, 따지고 보면... 일종의 버프 아니야?
순간 그런 생각이 번득인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꺅!"
"하율아. 잠시만, 일로와봐."
"네? 아... 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하율이를 끌고 최세희 앞으로 다가갔다.
"응? 뭔데. 왜그래?"
역시나 어리둥절해하는 최세희.
나는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하율이한테 설명했다.
"하율아. 치유라는게 따지고보면 체력을 강화시키는거잖아. 그치?"
"네? 어... 그렇죠?"
"그러면 그거랑 비슷하게. 체력 대신 능력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하고 해봐. 가능하지 않을까?"
"어... 글쎄요?"
"한번 해봐. 넌 할 수 있어!"
"...알겠어요. 한번 해볼게요!"
내 부탁에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인 하율이는, 이내 최세희의 등에 손을 올렸고.
그렇게 하율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쿠릉-
하늘에서 떨어진 푸른벼락이, 숲의 한곳에 그대로 내리꽂히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숲 한가운데에, 운석에 맞은마냥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어... "
스스로가 이루어낸 참상에 입을 자기도 모르게 벌리고 바라보는 최세희.
전기가 땅을 이긴 역사적인 광경을 목도하고는 잠시 혼미해보이는 그녀와, 옆에서 힘을 써서인지 허억대는 이하율을 보며.
나도 입을 벌리고 같이 서있었다.
"...."
아니, 솔직히 나도 그냥 찍었던건데.
...이게 왜 진짜인데?
그날, 이하율은 단순한 힐러에서 버프까지 해주는 만능으로 진화했다.
***
"쓰읍. 나는 안되네."
"와... 이거 대박이네 야..."
그날 밤.
이하율과 함께 여러가지 실험을 한 나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첫째. 버프는 능력자 고유의 능력의 성능을 강화해주고, 버프의 강도와 시간은 하율이가 어림잡아 정할 수 있다. 물론 많이 버프하면 그만큼 하율이 몸에 무리가 가게 된다. 아무리 길어야 몇시간. 그마저도 지금처럼 2배이상 강화하면 한시간정도?
둘째. 나랑 은월이는 버프가 안통한다.
"...."
이거야 뭐, 예상했던 사안이긴 하다.
애초에 나랑 은월이는 남들과는 능력의 근원이 다르니까. 아마 저 버프라는건 '초능력'을 강화시켜주는거지, 마법을 강화시키는건 아닌가보다.
아 그렇다고 나랑 은월이가 근원이 같은건 아니다.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것만 봐도 당연하겠지만.
'...내가 안되는걸 보면, 스타더스도 당연히 안되겠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쓸모가 있을 수 있는데, 아쉬운 일.
하여튼. 여러가지 애로 사항이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좋은 일이였다. 내가 생각 못했으면 하율이한테 이런 버프의 능력이 있다는걸 몰랐을거 아니야? 생각해보면 섬찟하네.
...물론 원작에서 보면 이 버프능력으로 최세희를 강화시켜준걸로 보이니, 아마 혼자서도 언제가는 터득했을 수 있을수도.
어찌 됐던 간에 전보다 능력이 2배 이상으로 강화된 최세희를 보는건 즐거운 일이였다. 그래 이거지. 내가 원작에서 봤던 일렉트라가 이거라고. 저렇게 밤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쏘아대는 최세희 말이다.
아 그리고. 이 능력의 다른 수혜자가 있다면...
"와...이거 봐..."
바로 서자영이다.
이미 손가락 위로 무슨 집채만한 불을 뿜고있는지 오래.
자기가 만든걸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뜬 서자영과, 전기 연사하느라 신난 최세희.
그리고 왜 로봇은 버프가 안되냐고 칭얼거리는 서은이까지.
혼란하다 혼란해.
"다인오빠... 저 죽겠어요오..."
"그래 그래. 이제 그만 들아가서 쉬자. 힘들었지?"
"네. 그래도... 제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기쁘네요."
새로운 능력을 시험해본다고 버프를 남발하다 쓰러지려 함에도, 스스로의 능력에 뿌듯한지 얼굴에 미소를 띄운 하율이.
나는 그런 그녀를 부축해 소파로 데려가 쉬게했다.
...다 좋은데, 생각해보니까 막상 하율이가 능력을 많이 사용해서 지치면 대신 치유해줄 사람이 없구나. 애초에 능력남용으로 지친거라 셀프 힐링도 의미없고.
얼마나 지쳤는지 소파에 눕자마자 눈을 감고 코를 쌕쌕고는 하율이한테 담요를 덮어주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달빛을 배경으로 한 밤하늘은 아주 노랗고 보랗고 난리 난 상태.
갑자기 힘이 두배는 강해져서 기분이 좋아보이는 둘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뜻밖의 수확이었다.
물론 저게 오래 갈리도 없고, 애초에 하율이가 금방 지쳐서 만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전력이 상당히 상승되었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룻밤만에 무슨 복권에 당첨된 기분. 심지어 앞으로도 들어올 능력자들은 거진 다 버프받을 수 있을테니 장기적으로도 잘된 일이다.
'...그래. 고민하던 것도 해결됐으니까.'
하율이만 훈련시키고, 쉴까.
다같이 한번 놀러가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다. 그래, 저번에 말한대로 놀이동산이나 예매할까. 푹 쉬고, 그 다음에 방송키고 테러 하나 일으키면 딱 맞겠지.
그렇게 나는, 행복한 꿈을 꾸고있었다.
[다인씨, 다인씨!]
"왜 그래?"
[지금 저도 막 들은 얘기인데, 다인씨를 잡으려고 미국 협회에서 S, S급 히어로를 파견했데요!]
"....뭐?"
...이설아의 연락을 듣기 전까진.
"아... 음."
그러니까 A급도 아니고 S급이 직접 한국으로 온다?
그것도 미국에서?
...좆됐네.
나는 그렇게 짧게 중얼거렸다.
아니. 왜 나는 행복할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