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61화 (161/328)

제 161화

화수확

카테달.

S급 빌런, 그들중에서도 세계 단위로 노는 최강자들이 모인 빌런 회의.

그곳에서 갔다온 나는, 다시 정겨운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웠던 집에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으어어..."

그래. 이거지.

역시 집이 최고다, 집이 최고야.

"다인씨,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수빈씨."

수빈씨가 타주신 따뜻한 캐모마일 허브티를 마시며, 나는 만족에 겨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어쩌면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지 않을까? 역시 밖에서 고생고생 하다가 오면 집 생각이 간절해지는 법이다.

"오빠. 그래서 어떻게 된거에요?"

"뭐가?"

"이번에 다른 빌런들 만나고 온거요. 별일 없었어요?"

옆에서 묻는 서은이의 질문에, 나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별 일 없었냐고? 별 일 없었지. 3개월뒤에 죽을 빨갱이가 시비털어서 겁준거 말고는 별로 한거 없다.

"음..."

...별거 아닌거 맞겠지?

하여튼, 이 얘기까지 해서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대충 별일 없었다고 답해줬다. 실제로 그건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비하면 별거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서은이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안심시켜준 다음에야, 나는 다시 편안하게 차를 음미할 수 있었다.

"...."

거실의 커다란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

그 아래에서 노곤하게 햇빛을 맞으며 차를 한 모금씩 한 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겨 이번 회의를 다시한번 복기해봤다.

세계 정상급의 빌런 셀레스트의 주도로 이루어진 빌런회의, 카테달.

첫날이니 만큼 별 얘기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다들 강하다.'

사실 뭐... 능력이야 원작을 통해 다 알고있었으니 새로울 건 없지만, 개념적으로 알고만 있는것과 실제로 만나서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냥 딱봐도 느껴지는 심상치않은 기운.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안에서만 있어서 잘 몰랐었지만, 역시나 이번 회의장만 봐도 외국쪽이 얼마나 개판일지 짐작 가능하다.

물론 그쪽은 S급 빌런들이 많은 만큼, 히어로들 또한 그에 상응할 정도로 많아서 어찌어찌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는 있는 상태. 아직 S급 히어로가 한명도 없는 대한민국과 S급 히어로 수십명을 보유한 미국. 둘만 놓고 비교해봐도 그냥 기준이 다르다는걸 알 수 있다.

특히 셀레스트는. 역시나 원작에서 언급한대로 그냥 격이 다르다는 느낌. 하얀 성녀복에 눈쪽을 희미하게 가리는 베일로 얼굴을 장식한 그 모습이 성스럽고 거룩하게 보일 지경이니 말 다했다. 백발을 늘어트린 그 아름다운 모습만 보면은 히어로로 보일 지경. 실상은 협회에서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한 빌런이지만.

물론 다른 빌런들도 그녀에 비하면 좀 덜할 뿐이지, 기운이 만만치 않은건 똑같았다. 강자들은 원래 기를 뿌리고 다니나? 하긴, 아틀리스 아재도 처음에는 위압감 넘쳤었지.

...뭐, 사실 이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그 S급 빌런들 중 대표격들만 모인 카테달,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지.

"....흠."

나는 차를 한모금 더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인정할건 인정해야한다.

그들중에서 내가 제일 약하다는걸.

애초에 나는 초대받지도 못한걸, 아틀라스를 이용해서 간신히 들어간거니.

'...아마,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겠지.'

내가 아틀라스랑 친한거에 살짝 호기심을 느낄 뿐.

그 외에는 별거 없다고 생각해 빠르게 관심을 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셀레스트는... 아틀라스의 권유로 나를 초대하기는 했지만 못마땅해 할수도 있다. 별로 강하지도 않은 애가 왜 들어온거지- 하고. 애초에 편지도 부족하다고 안줘서 아틀라스랑 같이 왔잖아.

"즉, 나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펙트지. 아마 온갖 능력자들을 나 만나봤을 다른 빌런들은, 고작해야 A급인 나한테 큰 관심이 없을거다.

그리고 이걸, 나는 오히려 이용할거고.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건, 날 별로 경계하지도 않고 나에대한 정보도 없다는 소리다. 애초에 히어로-빌런 사회에서 한국은 약간 주류 범죄집단이랑 동떨어져 있어 애초에 정보라는게 없을테고.

즉, 나의 목표는 다른게 아니다.

바로 빌런회의, 카테달을. 천천히, 야금야금 먹어가는 것.

그들에 비해 모든게 딸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것은, 정보와 미래.

그리고 이건,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 누구보다 위험해 보이게 만들어줄 최고의 도구들이다.

말 몇마디로, 저 날고기는 S급 빌런들을 농락할 유일한 방법.

그리고 그 시작이, 독일의 히치칸을 비명횡사 시켜버리는 것.

사실 그냥 나 없어도 죽을 놈이 죽는것일 뿐이지만, 그걸 그들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모종의 작용을 했을거라고 의심하는 이들이 분명 생길거다.

그리고 나는 그 의심을 역으로 이용해, 실리를 챙길거고. 내가 A급인게 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A급을 셀레스트가 이 모임에 불렀다는건, 무언가 그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는게 하고-. 뭐, 그들은 내가 아틀라스 빽으로 들어온것 까지는 모르니까.

...어차피 이 모든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거다.

천천히, 가랑비에 옷 젖듯. 그들은 뭔가 이상하다는걸 알게 되겠지.

"....."

그렇게 나는 한동안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앞으로 카테달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을 짰다.

아틀라스는 있으니, 그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중국과 일본 빌런들도... 어지간하면 끌어들이는게 좋을테고. 셀레스트는 한동안 날 신경쓸리가 없으니 걱정 꺼도 되고... 이번 카테달 참여 빌런 리스트를 국제 히어로 협회 총장이 입수하기는 하지만, 원작을 보면 어차피 별 문제는 안될거고...

한참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컵이 텅 빈걸 확인하고는 잠시 멈췄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사실, 지금부터 걱정할 문제는 아니기는 했다. 어차피 다음 모임까지는 무려 4개월이나 남았으니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문득 앞을 보았다가 저 아래에 있는 서자영이랑 눈이 마주쳤다.

"...?"

"끝났어?"

멍한 눈길로 나한테 그렇게 묻는 그녀.

내가 무슨 소리인가 생각할 때, 서자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너가 혼자 막 중얼중얼 하길래 재밌어서 보고 있었지. 이제 생각 다 끝났나봐?"

"...음. 그렇지."

헛기침을 하며 답한 내 말을 들은 서자영은, 한층 더 진하게 웃었다.

아니. 그걸 보고있는 사람이 있을줄은 몰랐지.

서자영은 늘 거실 바닥과 거의 동화되어 있어서, 가끔씩 서자영이랑 같이 있어도 그녀의 존재를 잊을 때가 있다.

"흐응..."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보라색 머리.

처음 봤을때처럼 여전히 신비롭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눈동자로. 그녀는 내게 물었다.

"근데...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던거야?"

"그냥 뭐. 일 생각이지 뭐겠어. 빌런회의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그런것들."

"그래..."

내 말을 들은 서자영은, 이내 금방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머리를 바닥에 기대고 뒹굴뒹굴 했다.

뭔가 더 말하려고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망설인거 같은 분위기인데, 기분탓이겠지?

하여튼 나는 컵을 정리한 뒤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이제 이 다음에는 뭘 해야 할려나.

어차피 테러는 꽤 최근에 해서 상관없고... PMC준비나 하면... 당분간은 별 일 없으려나.

그렇게 결론내린 나는, 서은이가 있는 지하실이나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스타더스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며 열과 성을 다해 만들던데, 잘 되고 있으려나.

은월이와 세희도 돕고 있는걸로 아는데. 나도 얼굴 좀 비춰야지.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 이번에는 좀 쉬자. 애들이랑 놀기도 하고. 저번에 놀이공원 가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데, 한번 유원지나 대리고 갈까. 최세희랑 수빈씨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고.

나는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내려갔다.

...스타더스가 좀 걱정이긴 한데, 그거 빼고는 별 문제 없으니까 뭐.

당분간은 별일 없을거다. 응.

***

미국에 위치한, 국제 히어로 협회 본사.

총장실에 그곳에 앉아있던 여성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서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

국제 협회의 주적, 셀레스트의 주도하에 열렸다는 빌런회의.

그 회의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을 입수한것.

...그리고 역시나, 그녀가 예상했던 인물들은 전부 들어가있었다.

"...역시."

조용히 중얼거리는 총장.

일전에 공개되었던 대로다. 큰 변동사항은 없는 모습.

이걸 어찌해야할까.

과로에 의해 눈가 밑에 생긴 다크서클. 그걸 꾹꾹 눌러가며, 협회 총장은 조용히 생각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고, 건드려봤자 긁어 부스럼이니 일단은 넘어가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이미 사전에 예측되었던 유명 빌런들만 다 모여있어 딱히 특별할것도 없었다. 다만 이들이 뭘 할지가 문제인데... 그건 사후에 대처하는게 최선이겠지.

그렇게 한숨쉬며 서류를 읽던 협회장은, 문득 한 인물의 이름에 멈칫하였다.

"잠깐... 에고스틱?"

얘가 누구였더라.

빠르게 기억을 복기한 그녀는,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A급 빌런이라는걸 기억해냈다. 저번에 아틀라스, 그와 협약을 맺은 대한민국의 빌런.

"....A급이 여기 껴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것이, 에고스틱 빼고는 전부 세계단위로 난리치는 S급빌런 수장들인데, 뜬금없이 그만 A급에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빌런인 것.

그렇게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잠시 시간을 내어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에고스틱에 대한 정보를 찬찬히 읽어봤고.

시간이 지난후, 이내 결심을 내렸다는 듯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연락했다.

"...어, 협회장. 여기 위로 지금 시간 남는 S급 히어로 한명 불러봐요."

아무래도 이번에 어디로 출장좀 보내야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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