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0화
화도발
원탁.
수많은 빌런들이 모여있는 그 엄숙한 자리에서, 저 맞은편에 앉아있는 빨간 모히칸머리의 남자, 히치칸이 지랄을 하고 있었다.
뭐, 무료해진 회담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저러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원래 이런거 구경하는게 제일 재밌기도 하고.
근데 문제는 나한테 지랄중이라는거지.
"아니, 다들 생각해보자고. 여기가 어디야. 다 한 조직을 이끄는 S급 빌런들이 모인 곳, 아닌가? 그런데 저런 A급 빌런이 이곳에 오는게 말이 되냐 이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는 빨갱이.
갑자기 진행되는 일에 무슨 일인가 하고 몇몇이 이쪽을 보고 있는 그 상황에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빨갱이를 향해, 나는 그냥 별 대꾸없이 조용히 미소만 지어주었다.
왜냐고?
"네이놈!!!!!"
옆에 있는 우리 아틀라스 아재가 대신 나서주고 있으니까.
원탁을 주먹으로 쾅치고 거의 숫제 몸을 일으킨 아틀라는, 분노를 폭발시키며 놈에게 소리쳤다.
"뚫린 입이라고 아주 아무말이나 지껄이는구나! 감히 이 아틀라스의 친우한테 그따위 망발을 지껄여? 네이놈!!!"
"...아니, 거 참. 내가 뭐 틀린말 했습니까?"
"갈!!!!!!"
이제는 빨갱이를 후두려패기 위해 나서려는 듯 거의 의자에서 반쯤 일어난 아틀라스 아재. 샤우팅이 얼마나 큰지 번역마법을 뚫고 그의 욕설이 원어로 들릴 지경.
그런 그에게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빈정대는 히치칸이였으나, 딱봐도 좀 당황한게 보인다. 여기서 아틀라스가 나설 줄은 몰랐나보지.
...아니, 내가 여기 앉아서도 아틀라스랑 속닥이며 대화 주고받기도 했는데 그것도 못봤나? 하여튼, 아틀라스가 이제는 하다못해 창마저 소환해 싸우려 하는 그 순간.
"그만."
원딱 저 끝에 앉아있던 셀레스트의 맑은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울려퍼졌다.
"...신성한 회의에서,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다들 진정하시지요."
"....흠, 쯧."
"...."
무슨 하얀색의 둥근 베리어같은게 원탁 주위로 생겨나, 둘 사이를 막었다.
거칠게 혀를 차며 다시 의자에 앉은 아틀라스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은 히치칸.
...뭐, 결국 셀레스트가 개입해서야 일이 끝났다.
휴. 갑자기 뭔 난리레.
특히 저 빨간 모히칸 머리를 한 녀석은 여전히 심기가 안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이 계획대로 안풀려서인거 같은 모양. 그래도 전세계 도시를 동시에 습격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아틀라스한테 대들 깜냥은 없는지,혀만 차고 가만히 있는 모양이다.
음, 이래서 사람은 역시 빽이 있어야돼.
그렇게 뜬금없는 둘의 싸움도 끝나고, 갑작스러운 사건때문에 원탁위 분위기가 어색해질 만도 하였으나... 다들 관심도 없었다는 듯,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거처럼 통성명은 계속되었다.
역시 모두들 닳고 닳은 노련한 빌런이라 그런지, 뭔 일이 터져도 별 신경도 안쓰는 모습. 아마 이런 아사리판에는 다들 익숙한가보다.
하여튼 그런식으로 다시 무탈하게 회의가 흘러갔으나,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나를 향한 은근한 시선들이 몇개 생겼다는건가. 정확히는 '저놈은 뭔데 아틀라스랑 친분이 있지?' 그런 시선이다.
아틀라스. 겉보기에는 아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기라성같은 빌런들 틈사이에서도 강함으로 따지면 한손안에 드는 그. 그런 그가 대신 분노까지해줄 정도인 나는, 대체 무슨 사이인건지 궁금하겠지. 심지어 A급인데.
곤란하다. 오늘부터 이런 관심을 쏠리는건 예상못했거든.
...아니지, 오히려 이렇게 된 이상...?
물론 내가 그러든 말든 이 회담의 대표자 셀레스트는 그 이후로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뭐, 애초에 아틀라스가 날 추천한거니까 그와 내가 친분이 있다는걸 그녀는 알고 있을테니.
어쨌든 셀레스트에서 시작한 순서는 다시 돌고 돌아 셀레스트 바로 옆에 앉아있는 짧은 금발의 기사한테 까지 왔다.
"...제 이름은 아서. 세븐헤븐즈 나이트의 수장입니다."
짧게 소개를 마친 그 남자.
갑옷을 입고 있는게 눈에 띄기는 하지만, 얘보다 더 기상천외한 복장이 많아서 별로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만은 그에게 주목했다.
아서. 세븐어쩌구의 수장이라는데,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셀레스트 심복이다. 애초에 세븐이 셀레스트의 연합 에테리아의 하위 조직인걸. 애초에 셀레스트 옆에 앉아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참고로, 저 남자의 능력은 그가 입은 갑옷을 포함한 기사복장때문에 싸움 관련된거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건 위장이고. 그는 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상대의 위험도. 즉, 강함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걸 알 수 있다는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인해 그는 곧바로 셀레스트의 핵심 심복이 되었다. 아마 셀레스트의 이번 회담의 목적중엔 다른 빌런들의 위험도를 측정할 이유도 있었을거다.
물론 연약하고 무해한 나는 전혀 신경쓸게 아니지만. 대충 순간이동이나 염동력.. 검은 촉수? 이런걸로 무슨 평가를 받겠어. C급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게 없다. 그런즉슨 셀레스트가 오늘 날 신경쓸리도 없으니, 여기서 영향력을 보일려면 나중에 다른식으로 아가리를 털어야하고.
내가 그런 생각은 하고 있을 때쯤, 드디어 한바퀴 돌아 다시 셀레스트에 차례가 돌아왔다.
"저는 에테리아의 수장 셀레스트. 그리고 이 모임 카테달의 개최자입니다."
굳이 모두가 아는 사실을 한번 더 말한 그녀는, 이내 신성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해서 서로 통성명도 끝났으니."
-이제는 제가 이 모임을 개설한 이유이기도 한, 메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셀레스트는 여전히 청량하면서도 성스러운 맑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카테달. 모든 빌런들이 주기적으로 한번씩 만남을 갖는 모임.
이 모임의 기본적인 원칙은, 서로 하나 이상씩 자신이 알고있는 고급 정보를 공유하는 것.
여기있는 모든 이들은 조직을 운영하며, 듣는 귀가 많은 만큼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협회의 동향이든, 초상능력에 관한 정보든, 정부나 국제정세든 뭐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자.
각 국가의 지부마다 서로 유동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히어로 협회처럼, 빌런들도 함꼐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을 갖자는 소리.
그런 그녀의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다.
다들 하나의 도시를 넘어 나라와 대륙에 영향을 끼치는 이들만큼, 정보의 소중함에는 공감하는 것.
즉, 다시 말해 이 모임은 모두에게 좋은 만남이다.
비록 자신도 하나의 고급정보를 털어놓아야하지만, 그만큼 수십개의 정보들을 얻어갈 수 있으니. 거기에 셀레스트가 관리하여 정보의 질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계속 질낮은 정보만 풀면 모임에서 퇴출당할테니.
어쨌든 그런 셀레스트의 설명에 납득한 분위기.
그러면서 그녀는 오늘도 일단 정보공유의 시간은 갖되, 이번시간만은 풀 정보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설명하며.
그녀가 준비해온 정보를 하나 풀기 시작했다.
"여러분. 다들 아실껍니다. 전세계적으로 능력자의 숫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말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뉴스만 틀어도 나오는 사실이니.
그리고 셀레스트는, 거기서 충격적인 정보를 풀었다.
"이에, 히어로 수급이 전보다 원할해진 국제 히어로협회가 미합중국등 히어로 대국의 S급 히어로들을 다른 국가로 파견시킨다고 합니다. 다들 각별한 주의를 해주시길."
그 말에 빌런들의 표정이 굳었다.
자국 히어로 유출을 극도로 자제하던 미국이 그런다는걸 못믿는 분위기. 그러나 셀레스트가 공유해 준것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어서, 다들 표정만 굳은 모양세다.
물론 원래 알고있던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그런다고 한국에 파견보낼리도 없고. 나야 스타더스만 잘 상대하면 되지.
하여튼, 정보를 푼 셀레스트는 이어서 다들 돌아가며 혹여나 풀 정보가 있으면 풀어보라 했고.
대다수는 그냥 패스했다. 뭐, 오늘은 굳이 풀 필요가 없으니까 다음에 푼다는거겠지. 준비도 안됐고.
그래도 몇몇은 자기가 알고있는 정보를 풀기는 했다. 그마저도 짧고 간단한, 추측성 정보였지만.
그런 사이에, 어느덧 내 차례가 코앞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살짝 고민했다.
원래라면 나도 첫날부터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용히 패스하려 했지.
그런데.
"..."
나는 여전히 건들건들하고 있는 저 붉은 모히칸 머리를 바라보았다.
...음, 어차피 저놈때문에 이미 어그로 끌렸는데.
그냥 나서도 되는거 아닐까?
그렇게 내 차례가 왔고.
나는,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래. 뭐, 영향력 확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심지어 제물감도 있고.
저 히치만인가 뭔가하는 빨갱이, 어차피 3개월뒤에 죽잖아?
"음..."
잠시 침묵한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저도 그냥 들은 정보인데, 유럽에 독일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운을 땠다.
자기가 살고있는 독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돌려 관심을 가지는 빨갱이.
그 상태에서, 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독일에 큰 일이 들이닥친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당분간 독일에 갈때는 조심하시는걸 권해드리죠."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고개를 살짝 그 빨갱이 쪽으로 돌렸다..
"...특히, 독일 사시는 분은. 더욱 조심해주세요."
그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놈을 향해.
그런 그를 행해 나는 웃는 낯으로, 미소지은 채 다시한번 말해줬다.
"3개월안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놈을 향해 피식 웃으며 말한, 명백한 도발.
이에 빨갱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자식! 감히 나를 위협하는거냐!"
책상을 쾅 친 놈.
그리고 이에 질세라 아틀라스도 책상을 쾅 치며 나서줬다.
"네이놈!!! 이제는 그가 충고를 알려줘도 시비인 것이냐! "
그렇게 다시 일어날뻔한 싸움은, 셀레스트가 한숨을 쉬며 다시 막아며 중재되었다.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아서 여전히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째려보는 히치만. 물론 나는 미소지은 채 무시했다.
뭐, 잘됐다.
저놈이 내 말을 믿을리도 없고, 3개월뒤에 어차피 그 사건으로 죽을테니, 이제는 더 신경쓸것도 없겠지.
그렇게 내 차례는 넘어갔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들 방금의 소동엔 별 관심을 안가지는 모양이었다.
그냥 으레있는 빌런들의 기싸움이라고만 생각하는 모습.
...물론 저놈이 3개월뒤에 그 일로 죽어오면, 그때가선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누가봐도 걔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연관도 없을테니, 이걸 말했다고 놈을 죽인게 나라고 몰아갈수도 없을거다.
다만 이상하게는 생각할거다. 내가 그게 일어날지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론 얻어맞춘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내가 정말로 무언가 조치를 취한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딱봐도 아무 상관 없어보이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고도의 수를 쓴게 아닐까라는 의심.
그리고 그런 의심이, 나를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거고.
그래.
이것이 바로 약자의 방식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험한 놈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거. 실제보다 강해보이게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그리고 우리 빨갱이가 그 희생양이고.
뭐, 어차피 난 진짜 아무것도 안할테니까 그건 아닌가.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동안, 정보공유의 시간도 끝이 났다.
4개월뒤에 다시 만나자는 셀레스트의 말을 마지막으로, 해산.
그렇게 다들 각자에 자리에 일어나, 왔던 복도로 되돌아갔다.
가는길에 빨갱이가 나를 또 째려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그냥 미소로 무시해줬다. 이놈을 실물로 보는것도 마지막이네. 잘살아라. 남은 3개월간.
"에휴. 이상한 놈때문에 자네가 좀 곤혹스러웠겠지만,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만남이었네. 특히 자네의 마지막 도발은 아주 훌륭했어! 속이 다 시원하더구만. 하하하하!"
"하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곤란할 뻔했는데, 아틀라스님 덕분에 잘 물렸습니다."
"하하하! 아닐세 아닐세! 내 당연히 도와야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우리는 왔던 검은 복도를 다시 되돌아갔다.
음, 이제야 집에 가겠네.
큰일도 끝났으니, 푹 쉬자.
오늘은 비록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뭐. 다음부터 천천히 하면 되니까.
***
모두가 떠난 원탁.
어두운 그 자리에서, 아서는 자신의 상관인 셀레스트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네 셀레스트님. 이중에서 에고스틱, 이라던 그 자가... 제 능력에 의하면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됐습니다."
"...에고스틱."
셀레스트는 자신의 백발을 매만지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