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9화
화원탁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커다랗게 있는 원탁을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모인 그 누구보다 강력한 빌런들이 빙 둘러싸 앉아있었고.
그리고 그 틈사이에 연약한 나도 앉아있었다.
예.
'....'
강한 이들을 내 곁으로 모았을뿐 능력 자체는 별거없는 나와 다르게,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하나가 거진 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나라를 망가트릴 수 있는 놈들. 아마 개인의 무력 자체만 놓고 따지자면 내가이중에서 제일 약하지 않을까?
물론, 내 능력은 무력이 메인이 아니니까.
아마 이들 중에서 제일 약한 내가 그들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그뿐이랴. 각 히어로와 빌런들의 약점, 성격, 비밀등 절대로 알 수 없는걸 전부 알고있다. 마치 이 세계의 창조자마냥.
그리고 이 차이점 하나가, 이들에 비해 나머지 면에서 전부 약한 내가 그들과 대등, 또는 그 이상이 되게 해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빌런들을 힐끔 보았다.
내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아틀라스 아재. 그리고 그 옆쪽으로 앉아있는 몇몇 빌런들. 단안경을 쓴 노신사와 뒤에 산소탱크를 달고있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안경을 쓴 초록 머리카락에 미친 과학자까지.
...전부 내가 익히 아는, 빌런들 중에서도 유명한 이들.
그리고 내 왼쪽도, 맞은편도.
전부 다 원작 만화에서 한번씩 삽화로 보았던 인물들이다.
저 빨간 모히칸머리를 한 건달같은 놈부터, 일본식 야쿠자 복장을 하고 칼을 찬 검은 꽁지머리에 여자까지. 그리고 저쪽편에는 붉은 중국식 도복을 입은 땋은 머리에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외에도 도처에 깔린 수많은 강력한 빌런들.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런 빌런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있다가 어쩌다보니 원작과 다르게 '우리 심심한데 한국이나 한번 다같이 쳐들어 갈까요?' 하는 순간 그야말로 작살나는거다. 물론 내가 어케어케하면 막아낼 수야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가 막심할거라는 건 당연한 일.
즉, 그 사단 나는걸 미리 막으려면 여기 이렇게 앉아서 토템처럼 지켜야한다.
스타더스와 같은 히어로들은 할 수 없는, 빌런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물론 그럴려면, 나도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확보해야되고.
....근데 일단 그런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저들이나 봐볼까.
그런 생각을 하여, 나는 아까본 야쿠자와 중국인을 티안나게 유심히 관찰했다.
"...."
이마를 훤히 까고있는 꽁지머리의 남자.
붉은 도복을 입은 저 사람이 바로 중국 정부조차 눈치를 본다는, 대륙 제일의 빌런 리 샤오펑.
역시나 무언가의 기백을 내뿜는 강렬한 눈썹의 그를 보며, 나는 다시한번 그에 대해 복기했다.
중국 제일의 범죄조직 화룡(火龍), 일명 파이어 드래곤의 수장인 그는, 무려 용을 소환한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긴 수염을 가진 불꽃의 용이 등장하면 모두가 떨게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물론 그게 진짜 용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중국에서 꽤나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리고 저쪽편에 앉아있는 검은색 꽁지머리를 한 여자는 일본 아쿠자 조직 중 제일 큰 곳의 수장 카타나. 특징은 신검이라고 불릴 정도의 검술로, 여리여리한 얼굴과는 다르게 홀로 수백명을 상대할 수 있는걸 넘어 건물마저 베어버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여자다. 실제로 사실이기도 하고.
수많은 빌런들 중 내가 제일 주목한 이는 이 두명.
한국 옆에 바로 붙어있는 두 나라의 제일 인지도가 높은 빌런인만큼, 나도 어느정도 둘은 유의해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건드린다는건 아니고, 나중에. 어차피 시간은 많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쿵-
샹들리에의 빛이 켜지며.
"...시작하는건가."
내 옆에 앉아있는 아틀라스가 작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저쪽 가운데에 앉아있던 하얀 성녀와도 같은 복장을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원탁에 울려퍼지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 아니, 청아한걸 넘어 거의 신성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 그런 천상의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셀레스트. 제 초대에 응답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백발을 늘어틀인채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와 동시에, 좌중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쏠렸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예외가 아니고.
얼굴 위를 가리는 하얀 성녀복의 베일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감은듯한 눈. 그리고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신비롭고도 거룩한 분위기.
역시, 원작에서 언급됐던 셀레스트의 모습 그대로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 속에서, 셀레스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초청한 건 다름이 아닌, 함께 친목을 도모하고 뭉치자는 생각에 따름입니다. 여러분."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한번 휘저어 원탁 가운데에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같은 무언가를 만들었다.
이내 원탁 위에 생긴, 한 건물의 환상.
국제 히어로 협회 본사의 건물로 보인다.
"우리들의 적, 협회의 공격은 갈수록 격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인 정세도 굉장히 풍전등화의 상황이지요. 이에 저는, 모든 이들중에서도 특별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았습니다. 각자가 한 도시를 넘어, 한 국가, 한 대륙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장들끼리 모여 서로 정세의 흐름을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면, 어찌 아니 좋겠습니까?"
그런 그녀의 말이 이어지며, 원탁 위에는 지금까지 강력하다고 칭송받던- 빌런 입장에서는 주적 그자체인 히어로들의 형상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다행히 스타더스는 없었다. 음, 그래. 이런데서 튀는건 좋지 않지.
하여튼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손을 한번 더 내젓자, 원탁 위의 형상들은 전부 사라졌다.
이내 셀레스트. 그녀는 다시 차분히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연히 이자리에 모일때의 안전은 제가 보장합니다. 저는 그저 저희들도 함께 연대하면 좋겠다, 라는 순수한 마음일 뿐. 저또한 동등한 일원으로써 여러분과 교류하겠습니다. 혹여나 반대하시는 분 있으실까요?"
"...흠."
"음."
"커흠."
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손짓만으로 즉사시킬 수 있는 소문마저 도는 셀레스트 앞에서 나서고 싶지도 않을테니까.
...근데, 원작으로 미리 알긴 했는데도 진짜 이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적응 안되긴 하다. 무릇 빌런들끼리 모여있으면 금새 서로 사소한걸로 꼬투리잡아서 싸움이 벌어져야 정상아닌가? 무슨 말잘듣는 초등학생처럼 다들 조용하지.
물론 그렇다고 내가 나설건 아니기에, 나는 그냥 조용히 있었다.
뭐. 내가 번역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지 셀레스트가 위압감 넘치게 말했나보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시작해보죠."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말이 끝나며.
마침내, 회의가 시작되었다.
***
S급 빌런.
협회가 히어로와 빌런의 등급을 부여하는 기준이 달라, 상대적으로 적은 S급 히어로와는 다르게 S급 빌런들은 정말 많다. 일단 나만해도 우리 에고스트림에 S급 빌런이 2명이나 있고.
그런만큼, S급 빌런도 다 같은 S급 빌런이 아니다.
간신히 S급 빌런 라인에 끼는 애들부터, 그들과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저 위의 S급까지. 같은 S급 내에서도 사실상의 위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S급 빌런들 중에서도 제일 강력한 이들.
거기에 능력만 강한걸 넘어, 각자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거에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머리도 꽤나 잘 돌아가는 이들이다. 한마디로 협회의 최우선 경계대상, 그야말로 인류의 주적 그자체.
...그런 그들은 지금 현재, 한대 모여 서로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내 이름은 카타나. 일본에서 삼협파를 운영하고 있다."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문 그녀.
뭐, 소개라고 해봤자 저게 끝이다. 이름과 어느 국가에서 조직을 이끌고 있는지만 간단히 통성명할뿐.
뭔가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기보다는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원작에서도 이랬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여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말던, 통성명은 차분히 계속되었다.
"독일의 제일가는 깡패집단, 레드 모터즈의 수장인 하이킨이다. 다들 보니 나보다 약한거 같은데, 잘지내보지."
...물론 저렇게 또라이도 있고는 했다.
대체 누군가 하고 봤더니, 아주 강렬한 빨간 모히칸머리를 하고있는 남자였다.
참고로 놈의 도발에 다른 빌런들이 보인 반응은, 그냥 무시.
다들 어디서 개가 짖나 싶을 정도로 감흥없는 표정들이었다. 뭐, 당연하겠지만 저런 놈일수록 약한 법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참고로 저놈은 3개월후에 죽는다. 원작에서 나오거든.
그렇게 다들 가끔 튀어나오는 이상한 놈을 제외하고는, 다들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고.
"하하! 내가 라티스단의 주인이자 바로 북대서양의 지배자 아틀라스네. 뭐, 만나서 반갑네 그려!"
호탕하게 인사한 아틀라스를 끝으로, 내 차례가 왔다.
나야 뭐, 딱히 첫만남부터 튈 생각은 없었음으로 그냥 평범하게 인사하기로 했다. 조금씩 조금씩 장악해야지, 처음부터 나서면 되는 일도 안되는 법.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에고스트림이라는 빌런연합을 운영하고 있는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다들.."
"잠깐."
그렇게 내가 살짝 웃으며 말을 하던 그때, 누군가 내 말을 끊었다. 뭐야?
누군가하고 봤더니, 이쪽을 보며 사납게 웃고있는 아까 그 모히칸 머리를 한 빨갱이가 있었다.
"내가 너 알지. 에고스틱 아니야? 대한민국의 그 유명한... A급 빌런."
나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미소지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음. 싸우자는건가?
...아무래도 첫날부터 누구 하나 담궈야 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