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8화
화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틀라스와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한동안 일기장과 내 정보기록지를 펼쳐 다시한번 원작의 내용을 복기했다.
물론 스타더스와 관련된 어지간한건 다 외워놓기는 했지만, 딱히 연관없는 엑스트라들은 좀 가물가물하긴 하다.
그런 의미로 지구상의 빌런 단체의 수장들이 거진 다 모이는 카테달에 가기 전, 그 빌런들에 관한 정보를 다시 숙지해두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좀 힘들어하다가 정신차리고 부랴부랴 원작의 내용을 잊기전에 싸그리 다 자세하게 적어놓았기 때문에, 다시 읽으니 기억이 다 새록새록 나는 수준.
"...자바포시즈, 레이트레. 아니, 이름들이 왜 다 이따구야?"
국산 빌런이 아니라 그런지 이름부터 매니악한 이들. 그래도 카테달 회의장에가서 어리버리까면 안되는 만큼, 미리 이름과 외향, 능력, 원작에서의 행적들을 다 숙지하는건 기본.
"아! 감사합니다. 네, 그럼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옙. 들어가십쇼."
그리고 때마침 그런 준비를 하던 찰나에, 아틀라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셀레스트로부터 빌런들의 회의 카테달에 초대를 받았고, 그런 김에 나도 강력히 추천해서 껴넣었다는 그. 껄껄 웃으며 알려준 날짜에 오라는 그의 말을 끝으로, 나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휴, 그래도 가장 큰 고비는 넘겼군. 역시 인맥빨이 최고다. 아틀라스가 수상할 정도로 나한테 호감을 보여서 다행이지...
사실 내가 아틀라스 이 양반한테 한건 그렇게 크지 않다.
그냥 그의 해양 확장 사업에 깊은 공감을 해줬을뿐. 아, 덤으로 도시 박살나게 생긴것도 미리 경고해주고 다 죽어가던 그의 딸도 살려줬다, 그정도?
음, 생각해보니 은근 큰거 같기도.
하여튼, 그렇게 날짜가 잡히고.
나는 바다건너 좀 갔다온다고 미리 일행한테 말해줬다.
"응. 잘 갔다와. 올때 메로나."
서자영은 손을 슥슥 흔들며 쿨하게 나를 배웅해줬지만.
"...다인씨, 그거 위험한거 아니에요?"
"오빠. 전세계 모든 빌런들이 다 모인다니까 불안한데요..."
수빈씨와 서은이는 살짝 걱정하는 기색을 보여, 내가 걱정말라고 안심시켜줘야 했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걱정할 만 하기도 하다. S급 빌런들 중에서도 최정예, 그것도 다른 빌런들을 이끄는 대표들만 오는 자리 아닌가. 그 강한 능력자들이 우글우글 모인 그 틈에서 까딱하면 목이 잘리는거 아니냐고 걱정하는건 이상한게 아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래도..."
물론 나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줬다.
왜냐하면 그야, 원작을 통해서 그 회의장이 어떤 분위기인지 대략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이지.
빌런들끼리 모인다고 하니까 왜인지 막 싸움나고 폭탄터지고 그럴거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나름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애초에 그 자리에 오는 놈들은 다 하나의 조직을 이끌며 아직까지도 협회에 안잡힌 똑똑한 이들인데, 당연히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빌런 앞에서 사릴 지성은 있다. 뭐 애초에 안그러고 나대던 놈들은 나중가서 죽으니...
거기에다가 나 혼자 딸랑 다니는게 아니라 그 빌런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큰편인 아틀라스와 함께 가니, 더욱 걱정할게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드디어 약속의 때가 왔고.
카텐달에 가기전, 아틀라스와 함께 가기로 한 나는 해양도시로 출발했다.
휴, 빌런들의 모임이라...
사실 갈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스타더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다시 마음먹은 나는 오랜만에 라피스단을 불러서 비행선을 타고 날랐다.
아틀라스 아재, 저번 만남 이후로 오랜만에 보겠구만.
***
북대서양 바다아래 어딘가.
그 곳에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설계된 비밀스러운 수중 도시가 있다.
바로 S급 빌런 아틀라스가 지은, 아틀라스 시티.
청록색의 바다 유적같은 석조건물들과 전부 투명한 유리로 지어진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신비한 도시.
바다의 확장을 노리는 라티스단이 거점을 삼아 지내고 있는 이 도시. 그곳의 한복판에 지어져있는 석조건물에서. 나는 한 아저씨를 만나고 있었다.
"하하! 에고스틱, 우리 에고스틱! 반갑네, 잘 지냈는가?"
"예 아틀라스씨도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얼굴 뵙는거 같네요.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아닐세! 자네도 바쁜데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이번 기회에 다시 얼굴 보니 좋구만 그려!"
껄껄 웃으며 내게 그렇게 말하는 아틀라스.
이내 그는 아래로 길게난 자신의 복실복실한 푸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게 진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혹여나 시간 남으면 언제든지 여기 오게. 우리 라티스단은 언제나 자네를 환영하니. 우리 딸아이도 자네를 보고싶어 하고."
"하하, 알겠습니다. 나중에 아틀라스씨도 한국 한번 오시죠. 제가 잘 대접하겠습니다."
"껄껄, 내 꼭 그러지."
호탕하게 웃는 아틀라스를 향해 나도 웃어주었다.
파란색 바디슈트 같은걸 입은 근육질 아저씨와 바다 깊은 곳에서 웃고있는 나였다.
거대한 신전같이 생겨서, 밖에는 유리벽 사이로 바다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게 보이는 이곳.
동화속 바다왕국 같은 이곳. 아니, 실제로 아틀라스 아재가 왕좌에 앉아있는걸 보면 나름 왕국이 맞다. 아직 지상을 정복을 못해서 문제인거지, 사실상 바다는 이 아재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래. 그래서 준비는 다 됐나?"
"네."
"좋아, 그럼 이제 갈 준비를 하세."
이내 그 말을 끝으로 아틀라스가 자신의 육중한 몸을 왕좌 위에서 일으키던 그때, 그의 시선이 순간 저 먼쪽으로 고정됐다.
뭔가 하고 나도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돌아보니, 어떤 인영이 기둥 뒤로 숨는게 보였다.
그래도 완전히 숨지는 못해 살짝 반쯤 보이는 긴 푸른색 머리카락.
그런 그 인물을 향해, 아틀라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리엘! 그 뒤에서 뭐하니! 아빠 이제 간다!"
아, 누군가 했더니 아리엘이구나.
아틀라스의 말에도, 여전히 기둥 뒤에 숨어서 나올 생각을 안하는 그녀.
"허허, 내가 미안하네. 원래는 안저러는데, 자네만보면 부끄러운지 이러는구만."
"괜찮습니다 하하. 아리엘씨랑은 다음에 왔을때 따로 더 친해져봐야겠군요."
나는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기둥 뒤에 숨은 아리엘을 힐끔 바라봤다.
아리엘. 아틀라스의 딸이자, 원작에서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인물이다. 그녀를 내가 살려내서 아틀라스의 호감을 얻기도 했고.
하여튼 기둥뒤에 숨은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리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봤더니 그녀도 능력이 꽤 강했다. 물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강하다고 평가받는 원소능력들 중에서도 물은 특히 특별한만큼, 내가 은근 눈독들이고 있기도 하다. 어케어케 잘 설득해 에고스트림에 은근슬쩍 넣으면 참 좋을거 같은데.
...근데, 저번에 만났을때는 나랑 멀쩡히 웃으면서 대화했으면서 지금은 왜 저러는거야?
나는 속으로 의아한 마음을 품으며, 고개를 살짝 내민 그녀한테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자 살짝 귀가 붉어지더니 다시 숨는 그녀.
...멀쩡히 다 큰 여자가 왜저런데. 여기 애들은 원래 그런가? 생각해보니 여긴 무슨 물고기인간들만 보여서 잘 모르겠다.
"자, 하여튼. 이제 가세. 이 편지를 잡게나."
아틀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편지 하나를 건냈다.
빨간 인장이 가운데에 있을뿐인 편지지.
이게 바로 카테달에 직통으로 갈 수 있는 그것인가.
그의 말을 끝으로 내가 편지지 한쪽을 잡자, 아틀라스는 가차없이 편지를 반으로 부욱 찢어버렸다.
그순간 우리쪽에 무언가 푸른색의 기운이 흩어지며.
화악-
순간 흩뿌려지는 하얀 연기들과 함께, 분명 그전까지만 해도 대리석 위에 서있던 우리들은 어느새 딱딱한 검은색 벽돌위에 서있었다.
"흠... 이런 원리인가."
연기를 손으로 휙 휙 흩어낸 아틀라스. 그렇게 시야가 탁 트이자, 우리 앞에 검은 공간이 드러났다.
"어서 오십시요 아틀라스님. 그리고... 에고스틱님."
그리고 그 옆, 하얀 로브를 입은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음, 이게 그 유명한 셀레스트의 하얀 사제인가.
"그래. 여기는 어디인가?"
"이곳은 카테달의 모임회관인 대성당입니다. 이 앞의 복도를 쭉 따라 가시면, 회견실로 바로 향하실 수 있을겁니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실때는 아무쪼록 다시 이쪽으로 와주시길."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는 내가 대답했다.
이내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뒤쪽으로 빠졌고, 나와 아틀라스는 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흐음. 이번에 셀레스트를 만날 수 있겠구만. 에고스틱, 자네는 셀레스트에 대해 아나?"
"어느정도는 압니다만, 저도 이렇게 만나보는건 처음이로군요."
"하하! 여기에는 그녀만큼이나 강력한 빌런들도 많을걸세. 긴장하지 말고. 뭐, 자네야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하하..."
나를 향해 깊은 신뢰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아틀라스. 나는 그런 그에게 애매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아니, 이 양반은 나를 대체 왜 이렇게 고평가 하는거야? 물론 아틀라스도 해양 전체를 컨트롤 해 전세계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이곳에서도 분명 손에 꼽을 강자긴 하니...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뻥 뚫린 원형의 문.
그 앞으로 걸어나가자.
"호오..."
거대한 방이 펼쳐졌다.
양옆에 쫙 깔린 스태인글라스, 위에 떠있는 큼지막한 샹들리에.
그리고 그 방 가운대에 커다랗게 놓여진 원탁.
이미 다수의 빌런들이 꽤나 앉아있는 그곳에서.
저쪽편에, 하얀 베일로 눈앞을 감싸는, 마치 판타지 게임에 성녀와도 비슷한 복장을 한 백발의 여성이 보였다.
저 여자가 바로...
S급 빌런들 중 제일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이이자, 동시에 가장 비밀스러운 빌런. 그리고 원작에서는 최후반부에서야 나서는 여자. 셀레스트.
그런 그녀의 주위에 원탁을 둘러싸 앉아있는, 혼자서 나라 하나는 손쉽게 멸망시킬 수 있는 빌런들.
그리고 그 틈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흠...'
그래서, 여기는 어떻게 먹어야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