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화
화깊어지는 싸움
서자영.
그녀는 오랜만에, 좀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흐응..."
"크흑."
어두운 밤하늘.
이미 사람들은 전부 대피한 도심 위에서, 서자영은 일종의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만 그 불꽃들이 전부 보라색이고, 사람을 향해 발포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서자영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늘 반쯤 감긴 눈에서 알 수 있듯,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는거랑 자는걸 제일 좋아하는 그녀.
그래서인지 지금 하늘에 떠있는 상태에도, 약간 바람에 눕듯 비스듬하게 앉아있듯 떠있었다. 한손은 후드의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으로 능력을 쓰면서.
[아니ㅋㅋㅋㅋ 월케 테러를 대충하는거 같냐ㅋㅋ]
[이게 강자의 여유?]
[ㄹㅇ섀도우워커를 상대로 이렇게 여유로운건 처음이네]
[진짜 섀도우워커 극상성인듯ㅋㅋㅋㅋ]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진짜 대충 하고 있던건 아니다. 부담가지지 않고 놀듯이, 가볍게 할뿐.
그렇게 그녀는 잠시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순간 시간이 느려진듯한 감각 속에서, 차갑게 식은 몸의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한 손에 집중되는 감각. 이내 오른손 위쪽이 점차 뜨겁게 듫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 위에 작게 피어오르는 보라색 불꽃.
약한 열기를 내뿜은 채 피어오른 불꽃을 한바퀴 돌린다는 느낌으로, 그녀는 손을 살짝 움직인다. 그러자 점차 빠르게 회전하며, 더 살이 붙듯 더 강하게 타오르는 불꽃. 그렇게 스스로 회전한 그것은 이내 작은 불꽃이라기보다는, 불타오르는 보라색 화염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다. 에너지가 집중되어서인지 강렬하게 터질듯 부풀었다 수축했다를 반복하는 그것.
이내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손 위에서 터지기 전에 화염구를 앞쪽으로 밀어내듯 손을 돌려, 팔을 전방으로 뻗었다. 그런 상태로,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그녀. 그렇게 손바닥 앞에는 홀로 작렬하듯 타오르는 보라색의 화염구가 떠있었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녀는 앞쪽으로 쏘아버린다는 감각으로 힘을 주었다.
"파이어볼,"
이내 그녀의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작은 마법진같은 것이 그녀의 손바닥과 불꽃 사이에 생겨나며. 그 순간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화염구가 빠르게 발포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은 섀도우워커와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찰나에 일어났다. 잠시 미스트, 그녀가 손을 휘젓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쏘아지는 보라색의 파이어볼. 이내 어두운 밤하늘에 자주빛 자취를 남기며 쏘아진 그것은, 어둠 속 섀도우워커가 있는 곳으로 작렬했다.
"크흑..."
그림자 속에 숨은 섀도우워커가 몸을 피해가며 막아보지만, 그 첫발이 끝이 아니었다. 한방을 막아내기가 무섭게 또다시 날아오는 한방, 또 한방.
물론 섀도우워커가 가만히 당하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바람에 기대듯 누워 한손을 흐느적 거리며 불꽃을 날리고 있던 서자영. 그런 그녀의 주위가 순간 어두워지더니, 솟아오르는 그림자들.
이를, 그녀는 몸을 불꽃에 감싼 채 빠르게 피했다. 몸이 작은건 이런 장점이 있다.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거.
그런 감상을 하며, 서자영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코앞까지 온 섀도우워커를 바라보았다. 그의 공격을 피하며, 주머니에 넣어놓은 다른 손도 비로소 꺼낸 그녀. 그러해 두 손을 그녀가 움직이자, 거대한 원 모양의 보라색 불의 고리가 자신과 그 사이에 생겨났다. 이내 불의 고리가 쏘아지자, 다시 그림자에 숨어 몸을 피한 그.
그렇게 어두운 밤하늘 위에 날아올라 몸을 움직이며, 그녀는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이렇게 밤하늘을 날며 움직이는건 꽤 재밌었다. 평소에는 별로 쓸 일도 없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도, 불꽃의 소용돌이에 누워 하늘에 떠있는것도. 전부.
사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던건 전부 에고스틱의 덕이기도 했다. 그와 빡세게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오래 못버티지 않았을까. 아마 불만 좀 쏘다가 도망갔을거다.
역시 에고스틱의 제안을 받아들인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녀가 스스로 뿌듯해할 때 쯤, 자신의 눈앞에 달려드는 섀도우워커의 모습이 보였다.
...쟤가 그렇게 강하다던 섀도우워커신가.
그러나 역시 에고스틱이 말한 대로, 자신의 불꽃 앞에서는 어째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물론 그래도 밤에는 무식할정도로 강한게 좀 너프된거지, 아예 약한건 아닌지라 꽤나 정신을 집중해 싸우고 있는 편이었다.
...근데, 시간이 언제까지 있더라?
서자영을 그렇게 또다시 불꽃을 날리며, 잠시 에고스틱의 말을 떠올려봤다.
'너가 지고있을때 내가 구해주러 올거고, 만약 너가 만약 이기는 방향으로 간다해도 어차피 얼마 안가 지원이 올테니 그때도 내가 구하러 데리러 갈꺼야. 그러니까 이기든 지든 사실 상관없으니 적당히 너 하고싶은대로 해도 돼.'
...그는 그렇게 적당히 해도 된다고 말했었지만.
서자영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적당히도 좋지만, 이왕 나섰는데 이겨야지.
그렇게 어두운 밤하늘 아래, 보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미소지었다.
....다인. 그는 딱히 내색은 안했지만, 분명 그녀가 이길거라고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밀릴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지.
...그런데 자신이 만약 섀도우워커를 이긴다면, 다인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깜짝 놀라려나,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하려나.
그것이 궁금해서, 그녀는 더욱 눈을 빛내며 열심히 나섰다.
그래,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
그렇게 그녀는 자사의 손가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또다시 기하학적인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보라색 불길은 더욱 타오르며.
전투의 열기는,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
밤에 섀도우워커를 이길수 있는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은, 한은그룹의 거대로봇이 섀도우워커의 능력을 완벽하게 씹어버리며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의 멘탈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 로봇이니까. 거대로봇은 어쩔 수 없지. 저건 너무 크고, 첨단과학의 결정체에, 아예 빌런 집단이 만든 궁극적인 병기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으로 버티던 그의 멘탈은, 폭풍과 함께 등장한 월광무녀의 등장으로 기어코 박살이 났다.
아! 이제는 그 대단했던 내가 저녁에도 단신의 빌런 하나 못이기는 퇴물이 되었구나. 내 영광의 시대가 정말 가버린건가. 이젠 어떻게 살아야하지?
안그래도 낮에는 거의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는 사실에 은근 자격지심이 있던 그는, 이젠 밤에도 밀린다는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실제로 멘탈이 와장창 깨져 한동안 모두와 연락을 끊고 집에 홀로 칩거했을 정도로.
물론 그렇게 홀로 좌절하던 그는, 여자친구의 도움 덕에 어느정도 회복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사실 멘탈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을 밤에도 이길 수 있는 빌런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면 좌절감이 느껴졌으니.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에게.
또, 자신의 능력을 어느정도 무시하고 공격을 하는 빌런이 나왔다.
아마 평소라면, 좌절감이 또 빡세게 왔을거다.
아마 얼마 싸우다가 포기하고, 다시 집에 칩거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 테러의 목적을 알았기에.
에고스틱이 그런 나약한 자신을 성장시키기위해 특별히 준비해 준것이란걸 알기에.
그는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그래. 앞으로도 이런 빌런들이 더 나올 수 있지.
그때마다 좌절만 하고 있을건가?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걸음 앞으로 내딛어야할때. 그것이 에고스틱이 나에게 바라는 것일 것.
사실 에고스틱은 아무 생각 없이 한거였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섀도우워커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크흑... 아이고."
계속해서 날아오는 불의 공격.
원래대로라면 별것도 아닌, 그의 그림자로 손쉽게 방어가 되는 거였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림자를 뚫는 그 공격으로부터, 섀도우워커는 급히 이동하느라 바빴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검은 후드를 입고있는, 체구가 작은 보라색 긴 머리카락의 여자.
손을 휘두르며 불꽃을 날리는 그녀의 공격을 피하다가 가끔 자신도 공격을 하며.
그는 점차, 싸움의 방향을 가다듬고 있었다.
"흐응... 아까부터 본격적으로 가본다더니, 이게 다야?"
"크흑... 네년..."
그렇게 저 멀리 떠서 자신을 찍고있는 카메라를 의식함과 동시에 약간의 진심을 담아, 짜증을 살짝 낸 그는.
이를 악물고, 손에 그림자를 농축시킨 채 다시 한번 저 불의 마녀한테 달려들었다.
사실 저 여자가 저렇게 허세를 부려도, 초반보다 살짝 지친게 이미 눈에 보이고있다.
즉, 기회가 있다는 소리.
기필코 이긴다!
그렇게 에고스트림과 히어로 협회 구성원들의 대결 중에선 최초로, 양쪽 모두 상대를 무조건 쓰러트리겠다는 각오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고.
그에 맞추어 전투는 끝을 모르겠다는 듯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계속, 계속.
좀 오래.
***
[와ㅋㅋㅋ 이번 전투 ㄹㅇ 역대급이네ㅋㅋㅋ]
[개치열하게 싸우는wwwwww]
[아이고 건물 다 터진다 터져!]
[지금 저 근처 사는데 난리남 하늘 막 번쩍번쩍 하고 굉음 들리고ㅋㅋㅋㅋ]
[섀도우워커가 이렇게 이악물고 싸우는건 처음보는 듯]
[에고스틱은 무슨 신규영입 빌런이 A급 히어로를 상대로 단순 무력만으로 호각으로 싸움ㅋㅋㅋ 저정도면 바로 S급 아니냐?]
[얘 근데 미스트인가 저 여자 왜이렇게 귀엽고 이쁨?? 스타망고고 아이스망고고 뭐고 보라돌이망고가 골인할거 같은데?]
[응 아니야 스타더스가 더 이뻐 음해ㄴ]
[위에 채팅들 인식저해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면서 뭔얘기하는거냐ㅋㅋ 얼굴 당당히 까고 싸우는 아이시클이 잣으로 보임?]
[아이스망고 붐은 온다]
[왜 싸움 얘기는 안하고 이런 채팅만 하냐고ㅋㅋㅋ]
[근데 ㄹㅇ싸움 치열하기는 하다 오래가네 일렉트라때는 한순간이었는데]
[지금 누가 이기는거임? ㄹㅇ박빙이라 잘 모르겠네]
[섀도우워커가 중반부터 폼 돌아오더니 약간 이기고 있는듯?]
전투가 이미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음에도, 아직도 활발한 채팅창.
이제는 하다가 지쳐서 어느순간 해설도 멈춘 나는, 약간 당황한 채로 싸움을 보고 있었다.
아니, 애들아. 왜 이렇게 최선을 대해 싸워? 적당적당히 해도 되잖아...
특히 서자영은 만사 게으른 애가 왜 저렇게 열심히 싸우는지 모르겠다. 대체 무엇을 위해?
하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이렇게 싸움이 길어지고 치열해지면 그녀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는거지.
그리고 역시 그런 내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시야에 누군가 잡혔고.
나는 사전에 준비한대로, 카메라를 음소거 하고 다른 쪽으로 돌린 채, 내 쪽으로 다가온 반가운 인물한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역시 오셨군요."
"...에고스틱."
어두운 도심 위에,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내 쪽으로 오는 나의 히어로에게.
나는 씨익 웃으며 인사하며, 속으로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되나.
그럼 답은, 계획해둔 플랜 B다.
참고로, 오랜만에 본 스타더스는 여전히 이뻤다.
그냥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