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화
화사차원
급변하는 정세, 몰려드는 폭풍.
현재 대한민국을 제외한 세계는 그렇게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아직 한국은 나름 해외에 비해 안전하지만, 그건 내가 뒤에서 계속 막고있었어서 그런거고. 내가 손 때면 다시 금방 개판될거다. 그래도 스타더스가 원작보단 강해져서 그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하여튼 결론은, 앞으로 생각하면 무력이 중요하다는 것.
물론 지금도 우리 에고스트림은 강하다. 강하긴 한데... 따지고보면 아직 실질적으로 무력이 있는 사람은 일렉트라랑 월광무녀, 데스나이트뿐. 심지어 데식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단 둘이다.
그러니까 더 강한 사람이 필요하다는거지.
즉, 새로운 빌런을 계속 영입할 필요가 있다는거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이 개판이 되간다는걸 증명하듯, 점점 더 많은 능력자들이 나올텐데. 이들은 아예 내가 다른 신분으로 모아서 관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근데 일단 이건 중요한게 아니고.
지금은, 새로운 빌런을 영입할 때다.
그렇게 수많은 빌런들 중, 나는 2명을 추리고 추렸다.
갈색머리에 남자 한명, 그리고 보라색머리의 여자 한명.
그리고 하율이 동생한테 누가 더 마음에 드냐고 하니까 옆의 여자가 마음에 든다 해서 최종적으로 그녀를 영입하는걸로 결정났다.
"흑령..."
원작에서 흑령이라는, 깔끔한 이름으로 불린 빌런.
보라색 머리라락에 보라색 눈, 늘 입는 검은 후드로 꽤나 유명했던 빌런 중에 한명.
인식저해고 뭐고 당당히 얼굴을 까고 돌아다녀서, '요즘_빌런_미모.jpg' 짤이 돌아다니는 꽤나 인기 빌런 중 하나였다. 안그래도 특유의 반쯤 감긴 눈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독자들한테도 인기가 많았고. 피폐물인 원작에서 4차원에 유쾌한 그녀만 나오면 분위기가 좋았던것도 있다. 나처럼 절대 사상자가 안나오는 테러를 하기도 했고.
원작에서는 밤에 보라색 도깨비불을 허공에 늘어틀이며 등장. 밤에 테러를 한것에서 봤듯이, 한은그룹과 월광교에 이어 3번째로 섀도우워커의 능력을 씹으며 등장한다. 이때부터 '밤은 섀도우워커가 지배한다'라는 명성이 깨지기도 했다.
하여튼, 능력 자체가 꽤나 사기인 여자라 꼭 영입해야할 1순위 중 하나. 주 능력은 도깨비불인데, 이렇게 능력이 설명이 적을 수록 강하다는 속설처럼 능력의 운용이 무궁무진한 여자다. 보라색 불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이게 꽤나 사기라.
".....그래서, 영입을 어떤 방식으로 하나가 문제인데."
그래. 제일 큰 문제가 그거다.
어떻게 우리 멤버로 들어오게 꼬시냐 이거지.
'오빠, 또 여자 꼬셔요?'
...꼬신다라는 표현을 쓰니 오늘 아침에 서은이가 나한테 한 말이 떠올라 순간 흠칫했지만,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일단은, 나는 지금까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어떻게 영입했었나나 찬찬히 복기해보았다.
서은이. 한은그룹을 박살내주겠다는 제안으로 영입에 성공했다. 참고로 제일 오래걸렸었다. 거의 삼고초려급으로 설득했었지. 서은이의 마음에 빗금을 푸는게 쉽지가 않았다. 지금은 뭐, 제일 친해졌지만.
하율이. 하율이는... 원래 영입 계획이랑 틀어졌어서 거의 납치하다 싶이 하긴 했는데, 솔직히 운이었다. 하율이 동생이 날 그렇게 좋아할지 어떻게 알았겠어. 남매가 열심히 공부하는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최세희. 세희는 그냥 전기라이팅해서 영입에 성공했다. 요즘도 보면 맨날 전기 펑펑 날려서 뒷산 나무정리 하는 재미로 사는데, 예전엔 참느라 얼마나 답답했겠어.
데식이는 그냥 경매장에서 샀고, 은월이는 월광교주의 저주로 부터 해방시켜주며 영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 불꽃 능력자인 자영. 원작에서는 흑령이라는 인물로 불렸던 인물.
이 여자의 성격은, 한마디로 4차원.
일단 집에 있는걸 제일 좋아해서 집에만 있고, 그러다보니 심심하다면서 테러를 일으킨다는 것만 봐도 범상치 않다는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여자를 꼬실 방법을 연구한 내 결론이 뭐냐.
'...그냥 에고스트림에 들어오라고 하면 되는거 아니야?'
그래. 그냥 그거였다.
아니, 어차피 원작에서도 심심해서 테러한 인물이잖아. 그럼 그냥 심심함 해소를 위해 우리랑 같이 테러하자고 담백하게 제안만 해도 되는거 아닌가?
아마 지금 시기쯤이면 충분히 심심한 상태일거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수확하러 가야지.
"...가볼까."
그렇게 짧은 생각을 끝으로, 나는 순간이동했다.
아니, 이건 실패할 수가 없다니까?
***
"심심하다."
그게 자영이 내린 결론이었다.
뜨뜻한 방바닥에 검은색 후드 하나만 입은 채 이불만펴고 대자로 누워있는 그녀.
이렇게 등이 뜨뜻하다보니 좀 더워서, 에어컨을 키는 기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아래는 따끈하고, 위는 시원하고.
하여튼 그런 오묘한 상태에서, 특유의 보라빛의 멍한 눈동자로 천장을 보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심심해..."
그렇다.
그녀는 심심했다. 매우.
사실 집에 누워만 있는것도 처음에야 즐겁지, 날이 가다보면 심심해지는게 당연.
거기에다가 스마트폰으로 그 흔한 인터넷이나 게임마저 안하는 그녀였기에, 그냥 티비 틀어놓고 멍하니 천장 바라보는게 낙이었다.
물론, 그냥 천장만 바라보는건 아니고.
"...흐응."
거실 한복판.
그곳에서 그녀는 보라색 불을 허공에 소환했다.
열이 없는 불꽃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허공을 떠돌고.
그것들을 여러개 만들어 원처럼 굴린 그녀는, 이내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청소나 할까... 청소도 다했구나."
집에만 있고 취미도 없다고니, 결국 하게되는건 청소였다. 청소 재밌잖아.
이미 집에 대리석 바닥은 거의 광칠을 한것마냥 빤딱빤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도 닦아서 그런가.
거기에 물론 밥을 끼니걸러 먹는 그녀라 하루에 많이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번 할때는 거의 예술의 경지로 요리하는 편이었다.
"심심해."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또 심심하다고 중얼거린 그녀.
이내 그녀는 한치수 큰걸 입어서인지 품이 큰 후드 소매에서 낑낑대며 팔을 꺼낸 뒤, 리모컨으로 티비에서 유튜브에 진입했다.
그냥 메인에 맞춤영상 뜬거 아무거나 튼 뒤 라디오마냥 백색소음으로 틀어둘 생각으로 들어간 사이트.
그곳의 메인으로 떠 그녀의 이목을 끈 것은, '에고스트림 하반기 테러 하이라이트 모음' 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흐응..?"
테러라.
관심을 가진 그녀가 리모컨을 조작해 영상을 틀었고.
이내 거기선, 하늘을 날아다니며 히어로랑 맞서는 에고스트림 빌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밌어보이네."
왠일로 고개를 돌려 멍한 눈빛으로 영상을 시청한 그녀는, 이내 보면서 그런 짧은 감상평을 냈다.
테러. 테러라.
"흐응..."
최근에 그녀가 한 생각이 그거였다.
테러나 하면 어떨까.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는걸 극도로 귀찮아하는 그녀였기에, 오히려 신념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게된다면, 힘들게 나온만큼 뽕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테러같은 일을 한다면, 충분히 밖에 나가서 몸을 직접 움직인 만큼 재미를 줄거 같다.
"...근데 귀찮아."
하지만 그건 밖에 나갈때 얘기고.
일단 귀찮기 때문에 그녀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만약 너무 너무 심심해져서, 나가게 된다면 모르지만. 일단은 집이 최고. 요리 재료들도 다 배달이 되는데 밖에 왜나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요즘들어 심심함의 강도가 점점 세진다는 거다. 슬슬 나가서 몸을 움직이고 싶을 정도로.
"그래. 테러나 해볼까..."
그래서 그녀는 요즘들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체 뇌에서 어떤 논리회로가 거쳐지면 심심하니까 테러를 하겠다는 결과가 도출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삘 받는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 보라돌이 불꽃들을 이용하면 쉬울거 같았다.
"근데 지금 당장 심심한데..."
근데 그건 나중에 계획해서 한다고 해도.
지금 심심한건 어쩌지.
그녀는 멍하니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뭐 재밌는 사건 안터지나.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던 그녀에게, 진짜로 뭔가 사건이 터지긴 했다.
"안녕하세요. 에고스틱입니다."
"...이건 예상 못했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를 보며,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옷에, 검은색 망토에, 회색 가면에.
따지고보면 재밌긴 하네.
그렇게 컵에 우유를 담아 제티를 타다, 갑자기 자신의 집에 쳐들어 온 괴한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거 마실래?"
불쑥 컵을 내밀곤 그렇게 제안했다.
그냥. 갑자기 빌런들도 제티를 마시는지 궁금해져서.
***
자영.
이미 원작에서도 4차원에 온갖 기행을 보여준만큼,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게 된 그녀.
원작에서 묘사된대로 보라색 머리카락에 보라빛 눈동자, 반쯤 감겨 멍해보이는 눈까지.
그녀의 집에 다짜고짜 초인종 누른 뒤 쳐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뭔가 특유의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그녀는.
나를 보더니 컵을 내밀었다.
"마셔."
그렇게 난 얼떨결에 초코우유를 받았다.
...시작부터 어질어질하네.
근데 반쯤 감긴 눈으로 이쪽을 하도 흥미진진하게 봐서,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음, 다네.
"어때?"
"다네요."
...대체 내가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거지.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에 살짝 당황한 나는, 정신을 붙잡고 여기 온 목적을 상기했다.
그래 영입. 영입해야지.
"자영씨. 혹시 요즘 심심하지 않으십니까?"
"흐응? 심심하긴 하지?"
"그러시다면..."
나는 그렇게 10분에 걸쳐 에고스트림 영입 제안을 열심히 했고.
그런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입술에 손가락을 올린채 짧게 고민하더니.
"싫어."
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음, 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