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화
화심란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자주 하던 충고가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먼저다. 건강부터 챙겨라. 몸이 제일가는 자산이다, 뭐 이런 얘기들.
그리고 매번 느끼는거지만.
어르신들 말씀은 틀리는 법이 없다.
"........"
"........"
도시의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하늘.
그곳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다.
하 시발. 이래서 무리하면 안되는건데.
진짜 자동차를 코앞까지 끌고왔는데, 이정도 순간이동했다고 피가 나올줄 몰랐다.
그나마 각혈까지 한건 아니라는게 다행일까.
하여튼,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있는 스타더스.
그래,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악당이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혼자 입가에 피를 주륵 흘리고 있으니까. 누가 보면 이미 그녀가 몇대 때린 줄 알거다.
아무것도 안하고 혼자 공중에 둥둥 떠있다가 입가에서 피나 흘리는 나를 보며, 얼굴이 굳은 스타더스. 얼마나 어이가 없어하면 얼굴이 굳는걸까. 속으로 '이 병신은 뭐지?'라고 생각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혀 씹었다고 생각하는거 아니야?
하지만 오히려 이럴때일수록 당황하면 안된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져도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웃으며 넘기는게 프로. 나는 마치 먼지를 닦듯 자연스럽게 얼굴 아래 묻은 피를 닦은 뒤, 아무 일 없던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튼, 이번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스타더스씨! 연휴 마지막날을 기념해 제가 준비한 깜짝 테러를 이렇게 쉽게 막으실 줄이야, 역시 상상 그 이상이군요. 쿨럭. 잠깐 실례."
마지막 순간에 기침이 나온 나는 자연스럽게 한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다시 팔을 내리면서 슬쩍 손을 확인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어코 피가 묻어나온 모습.
그래, 내 이럴줄 알았다. 안가렸으면 전국민 앞에서 각혈하는 모습을 보여줄 뻔했네.
그렇게 자연스럽게 팔을 내린 뒤 나는 은근슬쩍 손을 뒤로 보내서 가렸다. 참고로 그러는동안 스타더스의 눈은 내 손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위로 올라왔다. 뭐야, 남의 손은 왜보고있어?
하여튼 여기서 더 있다가는 피를 계속 토할수도 있고, 스타더스도 언제 나한테 달려들을 지 모르니. 빠르게 끝내자.
다시 커흠, 하고 헛기침을 한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확실히 당신의 전력을 알았으니... 다음번에는 오늘같지 않을겁니다. 그럼, 아디오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손가락을 탁 튕김과 동시에 미리 준비해놨던 연막탄을 쐈다.
순식간에 공중에 솟아나 내 몸을 가르는 회색빛 연기.
그전까지 굳은 얼굴로 내 손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스타더스가 황급히 나한테 달려들었으나, 이미 나는 순간이동한지 오래.
왜 스타더스가 저렇게 얼타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칠 기회였으므로 나는 도망쳤을 뿐이다.
하아, 힘든 하루였다.
집에 좀 가자 집.
***
연휴 마지막날 에고스틱이 일으킨 테러.
역시 대략 3개월만에 일어난 이 테러는, 또다시 히어로 빌런 관련 커뮤니티에 뜨거운 화젯거리가 되었다.
주로 나온 이야기들은 새롭게 등장한 스타브레이커에 관한 이야기, 이번에 일렉트라와 데스나이트의 조합 등등이었으나.
역시나 사람들은, 마지막에 일어났던 해프닝에도 주목했다.
*
[에고스틱 ㄹㅇ 어디 아픈거 아니냐?]
아니 멀쩡히 서있다가 입가에 피가 주륵 흐르는데
ㄹㅇ몸이 정상이면 그러겠음?
애초에 그날 한것도 별로 없는데 왜 그러겠냐고
걱정되네
=[댓글]=
[막 기침 계속 할때부터 좀 걱정스럽더니 피까지 흘리는거 보고 ㄹㅇ섬찟함]
[망고 오래 오래 살아야되는데 그러니까 걱정되긴 하더라]
[근데 뭐 사실 빌런이나 히어로들이 피흘리는 별일 아니긴 해... 라고 생각하는 중]
ㄴ[맞긴한데 망고 이번에 폭탄 뿌리기 말고는 아무것도 안하지 않음? 갑자기 피흘리는거 보면 몸이 그냥 어디 안좋은거 같은데]
[생각해보니까 요즘들어 테러도 직접 안하고 다 자기 멤버들이 대신하지 않았음? 설마 그 이유가? 헉...]
ㄴ[갈!!!!!!!!!!]
ㄴ[어어 왜 추측이 점점 진화하냐]
[에고스틱 시한부인거 아님? 피토하고 그러는거 시한부나 그러던데]
ㄴ[진짜 지랄하지마]
ㄴ[이건 좀 망상이네ㅋㅋㅋㅋ 아주 저주를 하지 그럼?]
ㄴ[누가보면 각혈이라도 한줄ㅋㅋㅋㅋㅋ]
*
[기사도 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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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에고스틱 '건강이상설?'
A급빌런 에고스틱의 건강이상설이 새롭게 도마 위에 올랐다. 어제 오후 4시경 진행된 테러에서 대국민 생방송을 하던 에고스틱이 입에서 피가 한줄기 흐른 것. 이에 네티즌들은 '건강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날 에고스틱은 연휴 마지막 기념이라는 방제(방송제목)로 자신 사단의 빌런 3명과 테러를 하던 도중 A급 히어로 스타더스에 의해 격파되어 도주했다.
-유중뉴스 이기영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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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도 꽤 많더라
=[댓글]=
[기자게이 망붕이였음?]
ㄴ[이미 다른 커뮤에서도 이번일 꽤 많이 다뤘다...]
ㄴ[아니 방송3사 생중계를 때렸는데 다들 많이봤지ㅋㅋㅋㅋ]
ㄴ[뉴스 댓글엔 다 어르신들일텐데 에고스틱 욕하는거 아님?]
ㄴ[아니. 댓글보니까 이러면 에고스틱 테마주 떨어진다고 슬퍼하면서 망고보고 빨리 나으라고 덕담해주던데?]
ㄴ[ㅅㅂㅋㅋㅋㅋㅋ 그놈의 주식은 진짜ㅋㅋㅋㅋ]
***
"....."
신하루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한숨과 함께 소파에 놨다.
지금 그녀의 머리는 거의 터지기 직전.
그리고 당연히 그 이유는, 에고스틱 때문이었다.
소파 앞의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그녀는 복잡하게 얽힌 생각을 정리했다.
해변에서의 남자가 에고스틱인가?
그녀는 이제 그것을 확신하기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자기가 느끼기에... 아무 근거는 없지만, 그저 에고스틱 같았을 뿐. 사실 집에와서 그 감각이 사라지고 생각해보니, 그녀가 한건 그냥 망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그녀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 에고스틱은 이미 다른 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었다는거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에고스틱이 아니라는건 입증된다.
자신의 근거없는 망상과. 실제로 있는 명확한 알리바이.
히어로로써, 나라의 녹을 받는 영웅으로써.
그녀가 믿어야할건 정해져있었다.
'...그래, 그냥 내가 착각한거겠지.'
애초에 자신의 직감이 맞은적이 없다.
괜히 애꿎은 남자였다면 그렇게 추궁한게 미안할지경.
...물론 어느정도 찝찝함은 남아있었지만, 지금처럼 아니라는 근거가 명확한 상황에서 자신의 망상만으로 몰고가는 것도 히어로로써는 못할 짓이었다.
거기에 다인에 대해 따로 조사해보자니 그건 고위공직자의 민간인 사찰이라 안되고.
사실 그것보다, 그녀가 더 신경쓰는게 있었다.
바로 테러를 일으키던 에고스틱이, 갑자기 입에서 피를 흘린것.
처음에 입가에 피 한줄기가 흐른 것만으로도 어째서인지 그걸 본 그녀의 가슴이 철렁하였다. 이유는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눈치지만.
그가 마지막에 기침을 했을때, 얼핏보면 손에 피가 묻어있는걸로 보였다.
자신의 착각일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왜 그런거지.
뭔가 무리라도 한걸까.
"...내가 이걸 왜 생각하고있지."
그렇게 심란해하던 신하루는, 순간 얼굴을 굳혔다.
....또 이런다.
정신차려 신하루, 아니. 스타더스.
쟤는 악당이야, 너는 히어로고.
'쓰레기같은 악당이라기엔 착한 일도 했는데.'
머릿속에서 든 반박은 무시했다.
착한일을 했다고 나쁜일을 하는게 정당화되는건 아니다.
실시간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악당을 붙잡고 무찌를 생각은 하지 못할 망정, 누가 누굴 걱정하는거야?
방금전까지만 해도 테러를 하던 빌런을 걱정해?
'....그래. 악당이 어떻게 되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야.'
혼자 가만히 앉아서 갑자기 의지를 되세길 때, 마침 티비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그러니까, 에고스틱 그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패거리를 끌고 와 또 간악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겁니다. 국가는 뭐하는 겁니까? 협회는 뭐하는 겁니까? 저런 쓰레기를 감방에 하루빨리 쳐박지는 못할망정!...]
[자, 자.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진정하시고.]
[지금 진정하게생겼습니까! 저런 사이코패스가 도시에서 폭탄을 들고 활개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거리를 못돌아다니게 생겼습니다! 저런 쓰레기를 당장...]
그걸 듣던 신하루는 그냥 리모컨을 들고 티비를 꺼버렸다.
...악당은 맞긴 한데, 쓰레기는 아니다.
그리고 저 여자,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던거 같은데.
"에휴...."
에고스틱은 악당이니까 걱정해줄 필요도 없다.
에고스틱이 아프든 나한테 중요한게 아니다.
에고스틱이 아프다.
왜 아프지?
"....."
순간 어제 입에 피를 흘리던 에고스틱과, 예전에 자신을 대신해 괴물에게 공격당해 피를 흘리던 에고스틱의 모습이 겹쳐지며 철렁한 그녀는.
다시 고개를 털었다. 왜이러지, 그만 생각하자. 에고스틱 생각은 그만.
...그렇게 에고스틱의 생각을 그만하니, 다시 다인의 생각이 났다.
해변에서 자신과 웃으며 떠들던 그. 그녀로써는 오랜만에 처음 본 사람과 대화를 하며 즐거움을 느낀 일이었다.
에고스틱이 아닌거같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했지만.
아니, 근데 진짜 비슷했는데.
"...아오! 진짜!"
어째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같은 생각만 돌고돌며 하는걸 깨달은 신하루는, 이내 괜히 옆에있는 쿠션이나 내리쳤다.
...이러다가 진짜 사람 미치겠다. 생각이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도 없는데, 결국에는 에고스틱 생각 뿐이고. 안그래도 월광교를 비롯해 다른 빌런들도 신경쓸거 많은데 자꾸 이 생각만 들고.
그래.
생각해보니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때는, 늘 설아와 상담했었지.
그러고나면 어느정도는 정리됬었다.
"...설아한테 전화나 걸어볼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하루는 휴대폰을 들어 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받네."
...사실 어제 왜 에고스틱이 테러 일으킬때 안왔는지, 그것도 궁금했는데. 다인에 관해서도 좀 묻고싶었고.
지금 바쁜가?
***
-따르릉.
"설아씨."
"네.."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
일하느라 바쁘가보지, 뭐.
나중에 다시 전화하자.
신하루는 그저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