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33화 (133/328)

제 133화

화알면서

대한민국의 한 해변.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노는, 태양빛이 작렬하는 그곳에서.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히어로와, 제일 유명한 빌런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참고로 빌런은 수영복 차림에 가운 하나 걸친 채 선글라스 쓰고 있고, 히어로 또한 사복차림.

그리고 히어로는 옆의 썬베드에 앉아, 빌런한테 조용히 말을 거는 이질적인 광경.

근데 문제는 내가 그 빌런이라는거고.

아마도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위기.

패닉이 와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 머리는 이런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냉정하고 침착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프로 악당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잡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법.

내 머리는 초속 5cm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설아가 배신했나?'

이설아가 기어코 날 배신하고 신하루한테 달려가 '쟤가 에고스틱이래요~'를 했단 말인가?

원작에서도 온갖 기업들 다 통수쳐서 인수합병해버리더니, 기어코 나도 통수쳤다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 좋던거 아니였어?

그렇게 나는 선글라스 너머로 스타더스를 바라보았다.

음.

아무리봐도 나를 에고스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거 같지는 않다.

아니, 다 떠나서 내가 에고스틱이란걸 알았으면 이미 달려들어서 잡았겠지, 이렇게 세상 어색하다는 듯 나를 보고 인사를 건냈겠어?

'....그래, 이설아가 배신한건 아닌거같고... 그냥 생각이 없던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걔는 딱보니까 스타더스가 초감각 있는지도 잘 모르는거 같던데, 신하루가 날 전혀 못알아볼거라고 생각한건가? 친해지길 바래라도 찍으라는거야 뭐야.

하여튼 신하루가 내 정체를 알아챈건 아니것 같아 보인다.

물론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살짝 변하긴 했는데, 그거야 뭐... 어...

쓰읍. 좆된거같은데.

"신하루씨는 대학교에 다니신다고요?"

"네... 혹시 다인씨는 그 사업하신다고 했나요?"

"아 네. 설아씨와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전 그냥 작은 사업 하나하고 있습니다. 하하."

나는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아예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나한테 계속 말을 시키는 하루.

왜 이래요 신하루씨. 너 막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말시키고 그런 애 아니잖아. 언제부터 그렇게 적극적이였다고....!

나는 마음 속으로 소리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아니, 사석에서 히어로와 대화하는 빌런의 기분을 네가 아니?

괜히 언제 눈치챌까 초조불안해지는 기분.

사실 이미 초감각으로 눈치챘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그런 부정적 생각은 머리에서 지웠다. 말이 씨가 된다고, 괜히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

그렇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일단 무해한 사람처럼 웃자. 저는 빌런 아닙니다. 평범한 민간인입니다.

내가 에고스틱이라는 증거있어? 증거 있냐고!

솔직히 은월이 마법이 얼마나 효과 좋은데. 내가 봤을때 절대 못알아채.

그렇게 신하루는 그녀답지 않게 처음 본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시켰고.

나는 설정상 오늘 처음 본 여자의 말을 끊임없이 받아주는 착한 남자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줬다.

참고로 그녀는 무알콜 칵테일도 하나 시켰다. 아니, 얼마나 오래 앉아있으려고...?

그렇게 대화가 좀 이어지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긴장이 풀어졌다.

이제는 내 말에 살짝 미소까지 보이는 그녀.

그래. 아무래도 잘 넘긴거 같다.

솔직히 인식저해 마법도 걸려있는데 어떻게 알아보겠어. 말도 안되지.

괜한 걱정이었던거지? 그래...역시 내 연기력이란.

그렇게 내가 긴장을 완전히 놓을 무렵.

신하루는 옆에 앉아서 미소 지은 채, 나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다인씨... 맞어요. 저 궁금한게 있어요."

"네, 뭔가요?"

"혹시 에고스틱 아시나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질문에, 나는 순간 얼굴이 굳을 뻔했다.

아니, 그건 왜물어보는거야.

"...하하, 에고스틱이요?"

그렇게 내가 어떻게든 웃어보며 그녀를 슬쩍 본 순간.

턱을 받진 채, 모든걸 안다는 듯 살짝 미소지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아무래도 진짜 좆된거같은데.

'....아니야, 진정하자. 유도신문에 걸려들면 안된다.'

순간 숨이 멎을 뻔한걸 간신히 막고서,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쓰읍. 아무래도 진짜 의심하는건 맞는거 같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그녀가 초면에 이런 말을 할리가 없다. 왜 저런 말을 하겠어.

여전히 내 앞에서 나를 보며 살짝 눈웃음을 짓는 그녀.

...솔직히 그녀의 눈웃음이 내 심장에 타격이 더 컸지만, 프로 악당답게 참아내었다. 일류 악당은 공과 사를 잘 구별해야 하는법.

일단 출제자의 의도를 구별해야 한다.

왜 저런 걸 물었을까? 내 반응을 에고스틱이 맞는지 아닌지 떠보려는 거다. 아니면 내가 에고스틱이라고 확신하는데 놀리려고 물은거거나. 셀프소개 해보라고.

그러나 장난을 잘치지않는 신하루가 그런 말을 했을거같진 않고, 이건 떠보는거다. 아마 아직 에고스틱이랑 나를 엮었어도 의심 단계일 것. 즉. 여기서 내 순수를 증명하는게 중요하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어떤 생각.

지금은 위기 상황. 그러나 위기는 거꾸로 기회. 즉, 오히려 이걸 기회로 생각하는거다.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나는 입을 열었다.

"에고스틱은 정말 쓰레기같은, 사악한 빌런이죠. 당장 붙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네?"

갑자기 나온 내 과격한 말에 살짝 당황하는 그녀.

좋아, 이거다.

나는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인기가 많은거 같던데, 전 솔직히 공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온갖 테러는 다 일으키고 범죄조직을 설립하며 법을 짓밟는 그런 자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그런 사이코패스는 당장 법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 논리정연하고 구구절절 맞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떫떠름해졌다. 아무래도 여기서 자기비하가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 그래. 이래도 내가 에고스틱으로 보이니?

내 말에 살짝 침묵하던 신하루는, 이내 입을 다시 열었다. 아마도 내 말에 동의를 표하고 같이 까서 그런 내 반응을 보려는 모양. 어림없지. 나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깔 자신이 있다. 얼마든지 해보라고.

그러나 내 각오와는 다르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완벽히 다른 말이었다.

"....그래도, 에고스틱이 다른 빌런의 테러들을 중간에 막은 적이 꽤 많지 않나요? 마냥 나쁘다고 하기에는 좀..."

아니 하루야. 왜 거기서 나를 커버쳐주고 있니.

뭐지? 고도의 전술인가? 그래, 흔들리면 안된다.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밀고나가자.

나는 다시 강경하게 말했다.

"아니죠. 그건 다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그러는게 틀림 없습니다. 애초에 빌런들은 관심으로 먹고 사는 존재들 아닙니까? 다리건, 한은그룹때던, 월광교던 놈이 그랬을때, 거기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을 겁니다."

"...거짓말."

"네?"

"아, 아니에요. 말이 잘못나왔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하루야, 잘못말한거 맞지? 그렇지?

나 방금 소름이 돋았거든...?

신하루는 내 말을 듣고 여전히 방긋 웃은 채, 자신이 손에 쥔 칵테일잔을 손가락으로 살살 돌렸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 순간, 그녀는 다시 나한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다인씨."

"네?"

"입으로는 싫다고 하시면서,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 거의 다 알고계시네요? 누가 보면 참, 본인인줄 알겠어요."

"...하하. 저보고 그런 사악한 빌런같다는 건가요?"

"아, 농담이에요. 농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그럼 다인씨, 스타더스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칵테일을 한모금 입에 마신 그녀는, 다시 나한테 웃으며 물었다.

아니 하루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잘 웃는 아이였니... 이런 애 아니잖아... 히어로 활동 할떄가 아닌 사석에서는 소심한 애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나는 거의 정신줄을 놨다.

"스타더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히어로입니다."

"어머, 진짜요?"

"네."

"왜요?"

"....제일 정의롭고, 신념이 빛나기도 하고. 누구보다 사람들을 걱정하는 착한 마음을 지니고, 보상받지 못함에도 끝까지 모두를 위해 싸우는, 제일. 그 누구보다 히어로다운 인물이니까요. 거기에 이쁘고요."

"....아."

내 뇌를 거치지 않고 막 튀어나온 말에 살짝 얼타는 그녀.

그래. 이게 나지.

이게 에카콜라다. 이젠 막나가는거에요 그냥.

살짝 볼이 붉어진 그녀를 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하. 이대로 망한건가.

지금 봐서는 아무래도 좆된거 같은데.

솔직히 신하루가 여기서 언제 나를 덮쳐도 이상할게 없다. 순간이동이 있기는 한데, 몸상태도 안좋아서 멀리 도망칠수도 없다고. 아니, 이미 정체를 들킨 시점에서 이미 좆된거다. 이름까지 까발려졌는데.

그렇게 멍하니 해변가를 보던 나는, 문득 저쪽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바로 여기를 어쩔줄 모르듯이 바라보는 서은이와 은월이에 최세희등 에고스트림 멤버들.

그래. 다들 스타더스가 온걸 눈치챘구다.

애들아. 나 좆됐어. 어쩌냐?

그렇게 자포자기하던 나는, 문득 섬광이 치는 듯한 깨달음이 일었다.

잠깐. 서은이. 최세희. 은월이. 환상마법. 테러. 알리바이. 성공적.

순식간에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깨달은 나는, 몸을 펄쩍 뛸뻔한걸 참았다.

그래. 이 난관을 해쳐나갈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딱 하나. 이것만 통한다면.

"...저, 하루씨?"

"네?"

여전히 볼이 붉어진 채 칵테일을 빨대로 마시던 그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한테 난 말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와도 될까요?"

"...네?"

내 말에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한테 안심하라는 듯, 바로 앞을 가르키며 말했다.

"여기 바로 앞에 있어서. 금방 갔다올게요."

실제로 눈앞에 하얀 컨테이너처럼 서있는, 이 자리에서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화장실.

그런 그걸 보고 살짝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갔다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끝났다.

제일 어려운 부분을 해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앞의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모래성 앞에 앉아있는 서은이랑 잠깐 눈이 마주쳤다.

내가 한쪽 눈을 깜빡이자, 알아차렸다는 듯 어딘가로 달려가는 서은이.

그래. 역시 서은이야. 눈빛만으로도 알아보는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소지으며.

...스타더스야, 스타더스야.

내가 여기서 잡힐거 같으냐?

***

"...."

다인이 화장실로 들어간 이후, 신하루는 조용히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3분. 3분을 넘기면 바로 행동한다.

그녀는 이미 거의 확신에 빠졌다.

그는 에고스틱이다. 확실하다.

그리고 자신이 스타더스인 것도 역시, 아는 눈치고.

그와 몇마디 나눠보며 확신에 가까워진 그녀.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다른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어떡하지?'

이 자리에서 덮쳐서 잡을까? 감옥으로 끌고 가야하나?

....그게 맞을까?

"......"

이런 상황이 오면, 그녀는 자신이 주저하지 않고 그를 감옥에 집어넣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눈앞에 오자.

스타더스는 막상, 고민되기 시작했다.

'...잡아야지. 잡아야지, 그게 맞지... 맞는데...'

"기다리셨어요?"

그녀가 그런 생각에 빠졌을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빨리 돌아오셨네요?"

"그럼요. 제가 뭐 어딘가로 도망칠 줄 알았나요?"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이상하게 그의 앞에만 있으면, 살짝 마음이 풀어진다.

...분명 빌런일텐데.

갑작스러운 기분에 싱숭생숭해진 그때.

다시 썬베드에 앉은 그는,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서. 하루씨."

"네?"

"하루씨는 스타더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녀가 당황하자, 살짝 웃는 그.

....쟤 역시 아무래도 다 알고 하는거 같은데.

자신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그였다.

...얄밉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살짝 이 상황이 웃겼다.

...빌런이랑 히어로가 서로의 정체를 이미 눈치챘는데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황.

자신을 앞에 두고 그냥 막 던지는 에고스틱이나, 그걸 웃으며 받아주는 자신이나.

...둘 다 미친거 같다.

...잡아야지. 공격해야지. 정체도 알았으니 도망쳐도 이제 협회에 보고해 추적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자, 신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게 느껴졌다.

...그래. 이 대화까지만 하고, 덮치자. 아직은 아니고, 이 대화만 하고...

그렇게 스스로와 약속을 하며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저쪽 어딘가 멀리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

갑작스러운 사건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연기.

갑작스러운 사건에 해변가가 술렁일 때, 그녀의 주머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다인씨, 잠깐만요."

[협회]

화면에 띄워진 글자를 본 그녀가 순간 일어나, 한쪽으로 떨어져 전화를 받자.

그곳에서 들려오는,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

[스타더스씨! 큰일났습니다. 에고스틱이 또 나타나 테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신하루는, 고개를 돌려 다인이 앉아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당황스럽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검은 연기가 나는 곳을 바라보는 그. 마치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순진무구해 보이는 모습.

"...에고스틱이 확실해요?"

[네. 틀림없는 본인입니다.]

확신하듯 말하는 그 말을 듣고, 신하루는 갑자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에고스틱이 나타났다고? 그럼 저기 있는 저 남자는 누군데?

***

저편 한쪽에서 눈에띄게 당황하고 있는 스타더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그녀가 모르게 살짝 웃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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