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31화 (131/328)

제 131화

화바닷가

철썩- 하고 들려오는 파도소리.

살그머니 불어오는 푸른 바람.

"하아.... 좋구만."

나는 썬베드에 누워 옆에 있는 음료를 한잔 마신 뒤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오빠. 거기서 누워만 있을거에요?"

"오빠 조금만 쉬다가 갈게. 너 먼저 놀고있어."

"참나... 알겠어요. 빨리 와요?"

"그래. 그래."

모래사장을 뛰어가는 서은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휴, 좋구만.

그래. 이게 인생이지. 바다를 바라보며 모히또 한잔 하는 이게...

그래.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여행을 왔다.

동쪽 어딘가 바닷가로.

***

"와... 이게 바다란 거군요..."

"아니, 너도 바다가 뭔지는 알잖아. 왜 이렇게 놀래?"

"악! 세희언니, 물뿌리지 마요!"

"바닷가에 나왔으면 놀아야지!"

음, 시끌벅적하군.

나는 연두색 모히또 한잔을 빨대로 쭉 빨아마시면서 애들이 노는걸 구경했다.

그래. 역시 바다에 오니까 다들 좋아하네. 이전까지 정기적으로 했던 등산 이벤트때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느낌.

내 몸이 좀 낫자마자, 우리는 바로 바다로 달려왔다.

물론 지금도 조금 무리하면 또 피를 쏟겠지만, 염력이나 순간이동만 과도하게 안쓰면 상관없다. 즉, 별 문제 없다는 소리.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노는 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 썬베드에 다리를 쭉 폈다.

"다인씨, 이거 하나 드실레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음... 오, 이거 맛있네요."

"그쵸? 저기서 줄서서 팔더라고요."

나는 수빈씨가 건내준 닭강정을 오물거렸다.

이거 맛있네.

"여기 놓을테니까 같이 먹어요."

"예. 이따가 애들 오면 몇개 더 사놔야겠어요."

나는 여전히 닭강정을 오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썬베드에 누워있는건 나랑 수빈씨 둘.

어른들은 앉아서 좀 쉬고, 애들은 바닷가에서 즐겁게 놀고있다.

하율이와 그녀의 동생 차윤이는 데식이랑 같이 저쪽에서 모래성을 만들며 놀고있다. 참고로 데식이는 인형탈을 쓰고 옆에서 차윤이랑 놀아주는 모습. 아무래도 검은갑옷을 입은 귀신이 해변에 등장하면 좀 문제가 있을거 같아서 임시방편으로 저리 해놨다.

바닷가에서 물장구치며 놀고있는 애들은 서은이와 은월이. 그리고 최세희다. 쟤는 애도 아닌데 왜 저러고 있나 싶긴 한데... 뭐, 즐거워보이니 됐나. 사실 정신연령은 비슷할 수 있다.

"....날씨가 따듯하니, 정말 신기하네."

애초에 난 이 계절에 바닷가에 갈 수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근데 나도 몰랐었는데 이런 곳이 있더라.

열 능력자가 전담해서 관리하는 해변. 여기만 혼자 동남아마냥 따뜻하다.

물론 히어로로 치면 거의 B급은 되보이는 열 능력자가 상주하고있는 만큼 이용료가 좀 많이 비싸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다시 모히또 한잔을 홀짝였다.

해변에서는 우리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피서를 즐기는 모습.

다만 우리는 전원 은월이가 걸어준 강력한 인식방해 마법 덕분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다. 머리카락이 검은색 흰색 주황색등 버라이어티한데도 다들 눈길 하나 안주는 모습.

그렇기에 나도 간크게 에고스트림 멤버 전원을 데리고 올 자신이 있던거다. 솔직히 걸릴리가 없어.

그렇게 내가 모히또 다시 한잔 하려던 그때, 옆 썬베드에 누워 나와 같이 일광욕을 하고있던 수빈씨가 문득 중얼거렸다.

"...뭔가 추억이네요."

"네?"

"예전에 다인씨랑 서은이랑 같이 부산에 놀러갔을 때. 그때도 저희 둘이 이렇게 썬베드에 앉아있고, 서은이가 바다에서 뛰어놀고 그랬었잖아요. 문득 그때의 기억이 나네요."

"아... 그렇네요. 그리고 호텔가서 잘때 갑자기 테러리스트 나와서 잠깨고."

"그때... 다인씨가 딱 나서서 스스로를 애플망고라고 지칭하셨던게 기억나네요. 푸흡."

"아 제발... 그 일은 잊어주세요..."

흑역사를 다시 떠올리자 지끈거리는 머리.

내가 어지럽다는 듯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자, 수빈씨는 옆에서 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하. 그래도 그때가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네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훨씬 많아져서 떠들석해질지는 몰랐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해변쪽을 응시했다.

나도 썬베드에 등을 기댄 채, 한손에는 모히또를 들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웃고 떠들며 놀고있는 우리 멤버들, 가족끼리 왔는지 아이와 같이 놀고 있는 부부, 뛰어노는 사람들까지.

....원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때쯤이면 다들 삶이 피폐해져서 이렇게 휴양지가 정상 작동이 될 리가 없으니까.

그래. 생각해보니 이게 내가 만든 풍경이네.

뭐... 나쁘지 않은거 같다.

거기에 이번 기회에 원작에서도 안나온 이 해변의 총 책임자인 열 능력자를 알게 됐으니까. 아마 저쪽에 구명조끼 끼고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 쓴 여자인거 같은데, 이만한 해면을 데울려면 능력이 어지간히 강한거 아닌가? 나중에 알아볼 가치가 있을거 같다.

"다인씨. 저희 나중에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요?"

"이 뒤에 펜션에서 다같이 고기나 구워먹죠. 바베큐. 원래 이정도 인원이면 재밌는 법이죠."

"후후. 좋네요. 재료는 준비할까요?"

"아마 최세희가 다 해놨을거같긴 한데... 제가 조금 있다가 확인해 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봤다.

해변가를 바로 마주보고 있는 펜션.

저게 우리가 2박 3일동안 묵기로 계획된 펜션이다.

참고로 저기에다가 별거 다 쑤셔박아 놓았다. 총, 가면, 거기에 심지어 카메라까지. 뭔가 싸한 기분에 일단 다 준비하고 봤다. 저번의 부산 호텔 몽키스패너 사건 이후 이게 버릇이 됐다. 어디에서 뭔 일이 생길지 몰라... 물론 이번에 별일 생길거 같진 않지만.

"오빠! 언니! 거기서 누워만 있지말고 같이 놀아요!"

"그래 이것들아! 여기까지 와서 물 하나 안묻히는게 말이 되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앞쪽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는 서은이랑 세희. 은월이도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습.

"수빈씨, 이제 저희도 좀 놀고 올까요?"

"네. 그래요."

나를 향해 미소지으며 대답하는 수빈씨의 말과 함께,나는 일어났다.

어차피 수영복은 우리 둘 다 입고있으니 위에 걸친 가디건만 벗어던지고 바다로 함께 향했다.

"지금 간다!"

하. 이렇게 머리를 텅 비우고 쉬는게 얼마만인지.

그래. 이때까지 너무 바쁘게 살아왔어, 나도 쉬어야지. 사람이 혹사만 하면 죽는 법이다.

설마 이런 즐거운날에 또 뭔일 일어나겠어?

신이 나를 가엽게 여긴다면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바다로 들어갔다.

별일 있겠어.

***

"....지금쯤 다인씨는, 그 해변에서 놀고 있겠네."

일을 하던 이설아는, 문득 그런 생각에 잠시 펜을 놓았다.

에고스트림 맴버들끼리 놀러간다고 말하며, 자기도 모르게 즐거운 듯이 말하던 그의 기억이 난다.

"...."

에고스틱. 그가 빌런한테 넘어가는건 말이 안된다.

장기적으로 그를 히어로 쪽으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이설아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

심지어 그녀에 대해 과도한 경계심을 보였던 다른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래."

자신의 잔에 와인을 한잔 더 따라 마시며, 이설아는 생각에 잠겼다.

에고스틱. 그는 분명 스타더스에게 살짝 집착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자신이 제일 경계한 것도 그것.

언젠가 하루가 에고스틱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게되고, 에고스틱은 스타더스를 좋아하니.

만약 에고스틱과 스타더스. 그 둘이 한 팀이 되면.

그 사이를, 이설아 자신이 비집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거다.

그런 생각을 하던 이설아는, 이번 기회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스타더스를 견제해야 하는건 맞다.

다만, 그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이 그녀도 모르는 사이 다인을 옭아메고 있었다.

에고스트림 멤버들. 그들이 먼저 다인을 채간다면?

"...차라리 하루한테 넘겨줘도, 그건 안되지."

안된다. 자신을 경계하던 그들과 에고스틱의 유착관계가 더 강해지면, 어쩌면 이설아 자신과 연을 끊으라고 그들이 그를 유도할 수도 있다.

그것만은 안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역으로 생각하는건 어떨까.

다인이 스타더스를 팬으로써든 뭐로써든 일단 특별하게 생각하는건 사실.

그렇다면.

"......."

어차피 인식저해 걸려있을테니 하루는 그가 에고스틱인걸 전혀 못알아볼거다. 다인 그가 멤버 하나가 역대급 인식저해 마법을 익혔다고 그렇게 자랑을 했으니.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더스를 사석에서 실물로 봐 좀 친해지기끼지 한다면, 에고스틱의 마음도 점차 히어로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히어로 애플망고. 영상보니까 귀여우시던데.

그래, 우연을 가장해서...

그렇게 술에 취해 좀 이성적이지 않게 된 이설아는.

에고스틱이 들으면 뒷목을 잡고 그대로 쓰러질 계획을 세운 뒤.

휴대폰을 켜, 하루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하루야. 뭐해?"

"다른게 아니라, 우리 바다나 보러 놀러가지 않을래?"

***

거실, 소파.

오랜만의 휴식시간에 소파에 누워 멍하니 있던 신하루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만 휴대폰에 가있을 뿐, 그녀의 생각은 이미 다른데로 센지 오래.

'....그거 분명 에고스틱 이었던거 같은데...'

자신은 분명 옥상 위에 누군가 있던 걸 봤다.

그런데 아무도 본 적 없다고 하니 속이 답답할 따름.

"하아..."

생각해보니 요즘은 하루종일 이 생각이네.

...그래. 어쩌면 빌런인 그가 그 현장에 나타났다고 믿는 자신이 이상한 걸수도 있다.

...머리아프네.

신하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설아?"

무슨 일이지?

그녀는 의아해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어 설아야."

"뭐 바다? 내일 바로 놀러가자고? 따뜻한데가 있다고..."

갑자기 내일 바다로 놀러가자고 제안한 이설아의 말에, 평소대로라면 거절했을 신하루는 살짝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요즘 에고스틱 생각만 하면서 머리 아픈데.

한번 바다로 가서, 그런것들도 다 잊어버리는 것도 괜찮겠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하루는, 이설아에게 대답했다.

"그래. 갈게, 바다."

***

"아 물총 가져올걸, 깜빡했네."

"아이고 세희야. 네가 애니?"

"뭐, 애? 내가 물총이 없으면 못 뿌릴줄 알지. 에잇!"

"꺄악! 언니, 왜 저한테도 뿌려요!"

"...잠깐. 야! 다인 너 그거 안놔? 능력으로 물폭탄은 반칙이지!"

"응. 인식방해 겹겹이 걸어서 아무도 눈치 못채~"

"잠깐! 항복, 항복!"

즐겁게 놀던 나는 문득 스타더스의 생각이 났다.

...하루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려나.

뭐, 그녀 성격이라면 협회에 출근했거나 집에서 쉬고있겠지.

생각해보니 당분간 내가 다음 테러하기 전까진 또 만날일이 없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최세희한테 물폭탄을 던져버렸다.

"악. 야!"

아. 이거 좀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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