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화
화휴식
스타더스는 떡상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스타더스 팬카페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입자가 요 며칠사이 그냥 폭등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더스의 매력을 알게 되니 내가 다 기쁘다.
물론 그 반작용으로, 내가 거의 죽을뻔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 안죽었으니까 된 거 아닐까?
"쿨럭."
"다인오빠, 여기 손수건이요."
"아, 은월아. 고맙다."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 닦았다.
...아무래도 초장거리 순간이동은 내 몸에 좀 무리가 많이 가는거 같다. 하긴, 따지고보면 수십키로를 한번도 안쉬고 전력질주 한거니 몸이 안망가지는게 이상하지. 죽지 않은게 다행이긴 하다.
...물론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죽을뻔하기는 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피바다를 일으키고는 그냥 쓰러져버렸으니까. 나중에 듣기를 진짜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하율이가 바로 달려와서 치료해주는 덕분에 겨우 살아난거지, 아니였으면 숨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나.
특히 내가 이러는 걸 처음 본 최세희랑 은월이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서은이랑 하율이는 저번에도 내가 칼빵맞고 피철철 흘리며 온적이 있어서인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정신은 붙잡았다는데, 은월이는 듣기로는 기절했대나...?
그 결과가 내 침대 옆에 꼭 붙어있는 은월이다.
"다인오빠... 진짜 괜찮으신거 맞죠?"
"그래. 걱정마, 은월아."
여전히 나를 향해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은월이.
나는 그런 은월이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가 깨어나자마자 본게 세상 잃은듯 펑펑 울던 은월이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안그래도 나한테 서은이만큼이나 많이 의지하는 애인데, 얼마나 놀랐겠어.
그렇게 나한테 붙어 살짝 떠는 그녀를 내가 옆에서 한손으로 다독이고 있자 불편한 기색으로 눈을 흘기던 서은이는, 이제는 갑자기 모함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 백은월 저거 사실 오빠 옆에 붙어있으려고 괜히 약한척 하는거에요. 다 연기니까 속으면 안돼요."
"...아니거든요? 오빠, 저런 거짓말에 속으면 안되요. 제가 진짜 걱정 많이하는거 알죠?"
"당연히 알지."
"이씨....!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내 내 옆에 앉아있던 서은이는, 자신도 내가 반쯤 누운듯 앉아있는 침대에 자기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은씨, 뭐하세요?"
"뭐가. 나도 오빠 걱정하거든? 붙어있을꺼거든?"
"....아까는 저보고 오버하는거라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헤. 솔직하지 못하신게 귀여우시네요."
"뭐라고? 지금 나 놀리는거지?"
"아니요. 귀엽다는 칭찬이에요."
"흥. 그러면 너도 귀여워."
"고마워요."
"...뭔가 이상한데."
오늘도 투닥거리는 서은이와 은월이.
...뭐, 여느때와 같이 친한 둘이었다.
사실 이렇게 으르렁 거리는 것도 둘이 친하니까 가능한거다. 평소에는 둘이서 손잡고 이곳저곳 쏘아댕기며 잘놀더라.
하여튼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살고 있다.
침대 겸 피로회복기에 누워서 지내는 삶.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각혈이 이어지는 걸 본 멤버들이 강제로 여기 눕힌 뒤, 손가락 까딱 못하게 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가끔 피토하는거 빼고는 정말 괜찮은데. 너무 과보호가 심하다.
하여튼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해커망고니 달빛망고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고있는 둘을 중재시킬겸, 나는 입을 열었다.
"....서은아, 은월아. 진정하고. 쿨럭."
"오빠! 괜찮은거 맞아요? 하율언니 또 부를까요?"
"쿨럭. 그정도는 아니야."
이미 최근까지도 내 옆에서 선잠자며 하루종일 내 옆에 붙어서 병간호하다가 이제야 눈좀 감은 애를 다시 깨우자고? 그건 아니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싸우다말고 나를 향해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서은이를, 나는 쓰다듬어 줬다. 그제서야 살짝 눈을 감고 안심하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
휴, 다들 걱정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도 힘들어.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 쉬고싶은 마음 뿐이다. 좀 휴양지 비스무리한 데로.
"우리 조금있다 바로 여행이나 가자. 어디든."
"네? 그 몸상태로요?"
"...서은아, 이제는 진짜 괜찮다니까. 어차피 휴양지 가는거라 나는 누워만 있어도 되고."
"...그런가. 뭐, 그정도면 괜찮을거 같기도 하네요! 언니들한테 말해볼께요."
"....여행..."
여행이란 말을 듣자 눈을 반짝이는 은월이었다.
그래, 빨리 은월이 바다 보여줘야지.
하여튼 그렇게 다같이 누워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애초에 서은이랑 은월이가 이 방으로 오는 이유가 나 혼자 누워있으면 심심할꺼라고 해서인만큼, 양옆에서 재잘거리는 애들.
"그래서 오빠. 이제 거의 다 제작이 끝났어요. 스타버스터 2호기, 버스터를 넘어선 일명 스타브레이커! 이번에는 저번과 확실히 다를거에요. 스타더스가 제 앞에서 무릎꿇기까지 이제 얼마 안남은거죠! 히히."
"...아니 서은아. 대체 스타더스가 너한테 뭘 했다고 그러니..."
"저한테 한게 아니라 오빠한테 했죠. 맨날 그 여자때문에 오빠가 다쳐서 들어오는데, 전 용서할 수 없어요!"
....나 때문이였던거야?
그렇게 스타더스를 쓰러트릴 계획을 말하며 환하게 웃는 서은이를 보며, 나도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서은이는 원작에서도 스타더스랑 사이가 안좋았었다. 역시 원작대로 가는게 이 세상의 순리인가? 그래, 이건 다 원작때문이다. 나 때문이 아니야.
그렇게 스타브레이커가 전의 스타버스터보다 강하고, 튼튼하고, 원격으로도 불러올 수 있고 등 장점을 줄줄 읊던 서은이는, 이내 주먹을 불끈 쥐더니 침대에 일어서서 외쳤다.
"그래! 이럴때가 아니야. 오빠! 저 스타브레이커 좀 더 손 보고 올게요! 은월아, 따라와!"
"....네? 어, 저는 다인오빠랑 좀 더 같이 있고싶은데..."
"응 나없이 둘만 있는건 안돼. 따라와!"
"으에에..."
그렇게 서은이는 은월이의 손을 잡고 질질 끌며 밖에 나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애처롭게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은월이가 좀 딱했지만, 난 말릴 수 없었다.
은월아... 좀 쉬다 와... 나도 스타더스 팬카페 정리해야 돼...
그렇게 둘도 사라지고.
다시 조용해진 방에서, 내가 노트북을 꺼내려던 그때.
-링딩딩~
전화의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하고 보니 이설아.
오랜만이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설아야."
[딸꾹. 안녕하세요 다인씨. 몸은 괜찮으세요?]
"어. 이제 슬슬 괜찮아지고 있어."
[다행이네요, 딸꾹.]
"...야, 근데 나보다 네가 더 안괜찮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 딸꾹질을 해?"
[아, 딸꾹. 술 좀 마셨더니 계속 이러네요.]
"술? 지금 시간이 몇신데 벌써 술이야. 대낮인데?"
[하아... 요즘 이래저래 심란한 일이 많아서, 딸꾹. 이거 마셔주면 그래도 좀 기분이 나아져요. 기업들은 인수도 잘 안되지, 국회는 유성기업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 하아, 딸꾹. 갈수록 점입 가경이에요. 서럽네요.]
...미안하다 설아야. 그거 아무래도 나때문인거 같다.
원작을 너무 바꿨나봐. 원래는 지금쯤이면 한국 반쯤 정복 끝나있어야 되는데.
나는 쿡쿡 쑤시는 양심을 무시하고 어색하게 응원의 말을 건네줬다.
"하하... 야, 너도 힘내라."
[다인씨. 딸꾹. 근데 그것보다 더 서러운게 뭔 줄 아세요?]
"....어, 뭔데?"
[제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동료가 쓰러졌다는데 병문안조차 갈 수 없다는 사실이요. 하하, 뭐 어디 사시는지 저한테 말 못하실 수 있죠. 이해해요, 제가 못미더우셔도.]
"에이, 그런거 아니야."
뭔가 불길함을 느낀 내가 황급히 입을 열어봤으나, 이미 늦었다.
이설아는 살짝 울먹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그래도 조금 씁쓸하네요. 동료한테 믿음 하나 못줘서, 흑, 아직도 집도 모르는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나섰는지. 미안해요 다인씨. ...그냥, 그냥 저는 다인씨 소중하게 생각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그냥 좋아하는데. 흑, 그런 다인씨가 아파하는데 아무 도움도 못주고, 훌쩍, 병문안도 못가고. 하아. 누굴 탓하겠어요, 신뢰감 하나 못주는 제 자신을 탓해야지. 흑, 미안해요 다인씨...]
이제는 거의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녀. 아니, 얘 왜이래?
"야, 야. 왜 그래. 울지마. 뚝."
[하하하... 미안해요 다인씨. 딸꾹. 술 마셨더니 정신이 나갔는지 말이 막나오네. 미안해요, 잊어주라. 하하, 내가 왜이러지. 훌쩍, 감정 조절이 안되네...]
훌쩍이면서도 애써 웃으며 그렇게 이설아.
그러는 그녀한테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와."
[네?]
"병문안 오라고, 주소 알려줄테니까."
[훌쩍,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너 믿지 않는다는 말도안되는 생각은 말은 이제 하지 말고..."
[와! 진짜죠? 무르기 없기에요? 당장 가도 되는거죠?]
"....어. 그래. 주소 보낼테니까, 그쪽으로 와."
[네! 알았어요! 그때봬요!!]
"어... 어..."
그리고 바로 전화가 끊겨졌다.
...뭐지. 이 찝찝함은?
아니, 아직도 이설아가 배신때릴까봐 못믿고 그런건 아닌데.
...뭔가, 당한거 같은 기분이...
"씁. 생각해보니 나보고 제일 소중한 동료라는 대목부터 눈치챘어야 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는 분명, 이설아가 제일 소중히 생각하는 동료는 신하루라고 분명히 말했었거든.
"....."
....거짓말, 맞겠지?
생각해보니 오히려 거짓말이 아니면 더 곤란하네.
하여튼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나는 주소를 보내줬고, 이설아한테서 근시일 내에 찾아뵙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뭐, 그래. 와도 문제될 건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솔직히 이설아가 이제와서 불거같지도 않고.
근데 잠깐.
내가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큰집에서 다 같이 살고 있다는걸, 얘기 했었나...?
***
다음날.
"안녕하세요 다인씨."
"어... 설아야, 안녕. 굉장히 금방왔다....?"
내 방에는 이설아가 서있었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나를 보며 웃는 그녀.
"네. 처음으로 다인씨 집을 찾아 뵐 수 있는데, 당연히 빨리 와야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한층 더 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방까지 오면서 봤는데. 집에, 굉장히 다른 여성분들이 많네요? 동거 하시나봐요?"
"...하하. 어쩌다보니."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웃고있는 그녀.
그러나 그런 그녀의 표정과는 다르게, 방은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물리적인 의미로. 진짜 체감온도가 내려가고 있는거 같은데...
그렇게 서늘한 방안에서.
여전히 웃고있는 이설아를 홀로 마주하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 설아야. 이제 슬슬 추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