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화
화최후의 일격
영혼포식자.
굉장히 직관적인 닉네임의 이 괴생명체는, 원작의 2부 최종장에서 등장하는 월광교의 최종병기들 중 하나. 즉, 당연히 첫등장도 2부 최종장인, 원래라면 아직 나올 놈들이 아니다.
"....근데 왜 벌써 나온거냐?"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밑에서 들려오는 귀곡성을 들으며, 나는 건물 옥상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네... 이새끼가 이때쯤 나올 애가 아닌데...
이때까지는 헐레벌떡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느라 몰랐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다. 왜 월광교가 원작과 달리 쟤를 벌써 내보냈을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 때문인가?"
아무래도 월광무녀인 은월이를 테러 중간에 NTR해서 빼앗어버린게 좀 큰 느낌.
원작에서 교주가 월광무녀를 시켜 테러를 일으킨게 월광교를 무서움을 모두에게 알리기위해 했던거란걸 생각하면...
흠. 그냥 나때문에 방해받은게 꼬아서 한번 더 일으킨건가..?
솔직히 교주가 그거 가지고 별 신경쓸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좀 빈정이 상했나보다. 아니,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왜이리 속이 좁아. 대인배처럼 넘어갈수도 있지, 참.
하여튼, 여전히 건물 아래에서 포효를 하며 개판을 치는 보라빛의 영혼포식자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저거 한개체만 내보낸거 보니까 애초에 전력이 다 모이지도 않은거 같겄만, 왜 이렇게 무리했데?
"에휴... 그 영감탱이."
너 때문에 나만 쫄았잖아.
저 영혼포식자가 위협적이려면, 셋중 하나여야 한다. 여러 개체거나, 영혼을 충분히 먹어 진화한 상태이던가, 은이 약점이라는걸 모르거나.
그러나 지금은 단 한개체에, 색도 아직 보라색인걸 보니 진화도 안됐고, 심지어 나는 여러 개체들이 나온줄알고 은도 한가득 가져왔다.
그러니까 뭐. 게임 끝이란 소리.
".....이제 뭐하지."
그렇게 옥상위에 서서.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니. 솔직히 그냥 은탄 큰거 한발 쏘면 끝인데 뭘해. 솔직히 원작에서도 은이 약점이라는거 알기전에만 털렸었지, 알고 난 이후에는 그냥 역공해서 쟤들은 다 잡았다. 최종장에는 쟤보다 더 문제인 그놈이 있었으니.
하여튼, 좀 허무해지려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오히려 좋아.
".....역시 밀리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고있는 스타더스의 모습. 아무리 그래도 최종병기는 최종병기다보니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저놈 저거 주위에 사람들 또 두둥실 띄운다음에 영혼 빨아들이는 것좀 봐라. 계속 저렇게 체력회복을 해대니 스타더스가 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그래. 오히려 좋아."
지금 저 영혼포식자가 스타더스보다 일방적으로 강하다는건, 그만큼 스타더스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소리.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지는 그녀이니만큼, 이 기회에 또 성장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거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나는 총구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지금 다들 정신도 없는 상황.
즉, 스타더스가 결정적인 공격을 날릴 때 내가 이걸 뒤에서 몰래 쏴버리면.
사람들은 스타더스가 쓰러트렸다고 생각하고 스타더스를 다들 찬양하지 않을까?
거기에 내 정체도 안드러나니 일석이조.
그래. 바로 이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총구를 겨누고 타이밍을 노리기 위해 존버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탈탈 털리고 있는 스타더스를 직관하며.
크흑, 눈물이 나올거같지만 참았다. 그러다 오인사격하면 안되거든.
그래도 스타더스 열심히 싸우는거 보니까 역시... 절망적인 상황에저도 저렇게 희망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봐라. 그래. 그런 그녀를 봐서라도 제일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자.
그렇게 조준을 마친 내 밑에서는.
끔찍하고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답이 없다.'
그것이 스타더스가 내린 결론이였다.
-
끼에에에에에에에!!!
다시 그 괴수가 휘두른 팔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스타더스는 슬슬 한계가 오고 있다는걸 느꼈다.
쾅-. 쾅-. 무너지는 건물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하아..."
쾅-.
또다시 그것의 일격을 겨우 피한 그녀는, 잠시 그것과 거리를 벌려 떨어졌다.
그녀가 숨을 간신히 고르는 그때, 다시 울부짖는 괴수.
끄끼아아아아악!!!! 끼야이에아악!!!
귀에 꽂히는 소름끼치는 소리.
폐허가 된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오직 하늘 위 밝은 달만이 그 아래를 비추는 그곳에서.
보라빛의 괴수가 괴음을 내지르자, 그에 맞추어 허공에서 끌려와 그것 주위를 원형으로 맴도는 허여멀건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비명. 뽑혀져나오는 영혼. 몸에 힘을 잃고 인형처럼 쓰러지는 사람들. 붉게 타오르는 그것의 눈동자.
어두운 하늘 밝은 달 아래.
끔찍한 괴음을 내지르며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는 그것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스타더스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콰앙.
다시 둘이 맞붙으며, 엄청난 굉음이 났고.
역시나 스타더스는 막기에 급급하였다.
쾅. 쾅.
가끔 스타더스가 공격을 날려보지만, 무의미할뿐.
끄떡도 없이 계속해서 달려드는 그것을 상대하며, 스타더스는 점차 지쳐갔다.
"하아, 하아."
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엑!!!
쾅.
"흐윽..."
그리고 이내 그것이 휘두른 공격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스타더스.
엄청난 충격에 그대로 튕겨져나간 그녀는, 이내 벽쪽의 건물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체 차리기도 직전, 그녀를 향해 쏘아지는 분홍색 레이져.
그 검은 하늘을 가르는 광선을 보고 가까스로 몸을 날려 피한 그녀.
콰아아아앙.
스타더스가 아까까지 있던 자리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다시 그녀가 비틀거리며 날아올랐을때는, 이미 다시 그 괴수가 저 멀리 도망치던 사람들을 염력으로 자기 주위로 끌고 와 영혼을 빨아먹고 있는 순간이었다.
"헉... 헉...."
스타더스는 뿌연눈을 한손으로 부비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애썼다.
자신이 이대로 쓰러지면 안된다, 쓰러지면...
그리고 다시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보라빛의 그것.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쥔 그녀는, 다시 그것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나 역부족.
타격은 거의 못준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한 그녀는, 이내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그녀는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뒤에 보이는 폐허가 된 도시, 어두운 하늘.
다시 가까워지는 보라빛의 흉측한 그것.
인생은 원래 한순간이라더니.
정말로, 끝은 이렇게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구나.
"크흑."
그것이 내지른 주먹을 다시 한번 막아보았지만, 역시나 역부족.
머리까지 울리는 충격에 비틀거리며, 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게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분명 오늘 전까지만 해도, 늘 평소와 똑같은 하루였는데.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하루가, 계속 될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다 끝나는구나.
다시 어두운 밤하늘을, 그것의 공격을 전보다 훨씬 느리게, 간신히 피하며.
스타더스는 생각했다.
....싸우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더라.
아마 꽤 됐겠지.
그녀는 전투중에 간신히 옆을 힐끔 보았다.
아마 저쪽 어딘가에서 섀도우워커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겠지.
그러는 동안, 자신은 어떻게든 이것을 붙들고 막아야한다. 이것이 이 도시를 떠나 다른곳으로 가게되면, 더 큰 재앙이 될테니.
그러나.
'......못이겨.'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자리에서 절대로 저것을 이길 수 없다.
이미 계속되는 공방으로 몸은 지치고, 눈은 계속 떨릴 지경.
자신이 이렇게 빈사사태가 되는동안, 저것은 여전히 저렇게 쌩쌩한 상태.
이대로 계속 싸우다간 죽는다.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어쩔까. 자기 혼자 도망칠까?
"....."
저 쓰러진 사람들을, 여기에 버려두고?
그런 자신을, 히어로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
이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맞서싸워.
단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는것.
그것이, 히어로다.
그렇게 다시 마음먹은 그녀였으나.
"크윽..."
역시나 계속되는 공격에, 이제는 버티지 못하고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점차 그녀의 몸에 힘은 빠지면서도, 공세는 더욱 강해지는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맞서싸웠다.
"헉... 헉..."
"으윽."
어떻게든.
"하아, 하아... 젠장, 하아..."
계속해서, 맞서 싸우던 그녀는.
"으으윽, 크흑!"
그렇게 계속 막고, 막고 맞서다.
시간이 꽤 지났을때.
그때 결국,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제.... 한계다.'
더이상은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다.
아무래도... 여기까지같은 느낌.
여전히 괴수는 괴음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달려오고, 더이상 몸을 움직여 피할수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슬슬 최후가 다가온다고 느끼던 그때.
스타더스. 그녀는 마치 주마등처럼, 이전의 기억들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걸 느꼈다.
어린시절 부모님을 잃은 기억, 이설아를 처음 만난 기억, 히어로 협회에서 처음으로 히어로로 인정받은 기억, 처음으로 빌런을 쓰러트린 기억, 자신이 구해낸 시민들에게 감사를 받던 기억, 쓰러짐에도 다시 일어나던 순간의 기억.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마지막에 떠오르는게 에고스틱의 모습이라니.
끼에에에에에에엑!
"큭...."
다시 커다란 충격에 튕겨져나간 그녀.
그렇게 다시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띄우며.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들을 복기했다.
배를 폭파시키려 들던 에고스틱.
비행기를 자신보고 구하라고 격려하던 에고스틱.
다리를 무너트린 에고스틱.
자신을 대신해 공격을 맞던 에고스틱.
인질들을 잡고 협박하던 에고스틱.
쓰러진 그녀를 쓰다듬은 뒤 폭풍으로 향하던 에고스틱.
"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다시 그녀에게 쇄도하는 보라빛의 괴물을 피하며.
그녀는 조용히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늘, 자신이 절망할때나 위기에 몰렸을때는 에고스틱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곁에 있었지.
이번에도... 그랬으면...
하. 무슨생각을 하는거야.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것보다는.
자신은 끝끝내, 에고스틱의 비밀을 풀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는구나.
모든걸 체념한 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문득, 분노가 치솟는걸 느꼈다.
...저 쓰잘때기 없는 괴물놈 하나때문에 끝내 그에 대해 전혀 알아내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다니.
"......"
...안돼.
억울하다.
그건 말도 안된다.
그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육중한 보라빛의 괴수.
그런 그것을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지 오래. 곧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인 그녀였지만.
"....갈땐 가더라도, 반드시 네놈은 쓰러트리고 간다!"
그렇게, 이미 다 쓰러져가는 몸을 이르켜.
그녀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것을 향해 날아가며.
힘을 쥐어짜, 주먹을 쥐고 그것을 향해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최후의 일격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한테 이거 한방은 먹이고 가겠다.
끄예예예아아아악!!!
"흐읏.....!"
그렇게 이를 악문채 쏘아지던 그녀의 주먹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하며.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
스타더스의 주먹을 중심으로 빛나는, 노란색의 빛.
"....지금이다."
굳은 얼굴로 전투를 계속 지켜보던 나는, 그 빛을 본 순간 그대로.
겨누고있던 총구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렇게 밤하늘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커다란 빛이 번쩍이며.
작은 총소리만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울려퍼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