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화
화악당의 하루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는 능력까지는 없다.
그래서 현재 섀도우워커가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딱히 모르는 일.
....그래도 원작에서 나온 그놈의 단순한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나를 믿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아마 몇번만 더 하면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걔의 그리 단순한 성격때문에 나중에 사기당해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건 나중일이니 일단은 보류하자.
그렇게 제일 급한 불이던 섀도우워커 여친 살인사건을 막고, 거기에 섀도우에게도 호감작까지 해뒀더니.
음. 마음이 편안하네.
그래도 한시름 놨다고 할 수 있다.
살짝 긴장이 풀리는 느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룬 업적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역시 제일 중요한건 스타더스를 원작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시켰다는 것. 결국에는 스타더스가 알파이자 오메가인만큼 이게 제일 크다.
그리고 스타더스의 스트레스도 원작보다 훨씬 덜해졌을 거라는 것또한 큰 장점. 원작 만화에서는 이미 이 시간대 쯤이면 멘탈이 가루가 되어있을 그녀다. 그러나 지금은? 원작에 비하면 아주 해피할꺼다.
또 뭐가 있을까.
그래. 나 때문에 죽지않은 사람들이 벌써 수십, 수백명에. 지켜진 도시들도 몇개나 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섀도우워커의 흑화도 막았고.
그리고 빌런 연합 창설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나 순조롭나면, 저번에 수능을 본 하율이가 드디어 대학이 확정났다.
"연희대 간호학과?"
"네! 여기는 별로 기대도 안했는데 붙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기뻐하는 하율이었다. 사실 이미 S급 능력인 치유능력이 있는데 대학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래도 뭐 본인이 가고 싶다는데 굳이 말리진 않았다. 대학도 하나의 경험이니까.
그런데 연희대면 스타더스, 신하루가 다니는 곳인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멈칫했으나, 생각해보니 연희대는 1학년은 나머지 학년과 다른 캠퍼스를 쓴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하루가 이제 4학년이지? 어차피 만날 일도 없겠네. 심지어 내년이면 졸업이니까.
....없겠지? 응, 없을꺼야 설마.
그래. 거기에 스타더스는 우리 하율이를 한번도 직접 본적은 없잖아? 괜찮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슬슬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언젠가 스타더스가 충분히 강해지고, 빌런 연합이 나 없이도 잘 굴러갈 정도라면... 나는 그만 쉬어도 되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아니, 세상이 진짜 나름 평온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이제는 원작의 그 피폐한 세계관이랑은 아주 많이 달라진지 오래. 이정도면 치유물..?
물론 아직까지도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월광교와, 아직 수없이 남은 빌런들을 생각하면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하여튼.
결국 중요한건, 내가 알기로 한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을거라는거.
그러니까 두다리 쭉 뻗고 쉬어도 된다, 이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뭐 별일 있겠어.
***
며칠후, 화창한 낮.
따뜻한 태양볕이 창문을 통해 거실을 은은하게 밝히는 그곳의 소파 아래쪽에 앉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준비됐어?"
"당연하죠. 오빠, 질 준비나 해요. 제가 1등일꺼니까."
"하. 서은아, 미안하지만 1등은 이 언니꺼란다."
가운데에 앉아 컨트롤러를 쥔 채 준비를 하고 있는 나.
그리고 내 양 옆에 앉아 같이 컨트롤러를 각각 하나씩 쥐은 채 미소짓고 있는 서은이와 세희.
그리고 심판을 보는 은월이까지.
그렇게 긴장한 내 앞에 티비화면에서는.
숫자가 카운팅 다운되고 있었다.
[쓰리- 투- 원-]
[고!!]
그와함께 화면에서, 동시에 각자가 조작하는 자동차가 출발했다.
우리 셋이 하기로 한 내기. 게임에서 세개의 트랙을 모두 돌아 1등으로 도착한 사람의 소원을 나머지 두명이 들어주기.
그렇게 빌런들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아악! 등껍질 맞았어요!"
"미안하다 서은아! 그거 내가 쏜거다!"
"아니, 오빠. 진짜 그럴거에요?"
"쓰읍... 이거 왤케 빡시냐..."
피튀기는 빌런들의 한판 승부.
그렇게 첫번째 트랙이 끝나고.
승부는 더욱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말 그대로의 의미로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최세희 주위로 정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거든.
"아니! 최세희! 너 그거 정전기 어떻게 좀 해봐!"
"쓰읍. 나 지금 집중하고 있잖아, 말시키좀 말아봐."
"아니! 언니! 저 슬슬 팔이 진짜로 따가워지고 있어요!"
전기타입 능력자 특징. 집중하면 전기를 제어를 못함.
이대로는 승부에 심각한 영향이 갈꺼라는 판단이 든 나는, 비상한 상황에 맞는 비상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뭐긴 뭐야. 런이지.
"아니 오빠, 어디가는거에요!"
"서은아 미안하다! 나는 살아야겠다!"
나는 그렇게 순간이동해 소파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순간이동 최대장점. 게임할때 화면에서 눈을 안때고 자리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어째,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정전기가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다?
"야 최세희! 대체 왜 여기까지 정전기가 나는건데?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쓰읍... 난 아무것도 모른다. 묻지마. 흐."
순간 삐끗하면 나락으로 가는 게임인만큼 고개를 돌려 최세희를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안봐도 쟤가 웃고있는건 알 수 있겠다.
....좋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렇게 정전기의 억까속에 나는 꼴등을 하고 있는 상황.
그래. 이대로는 안된다.
아까 말했듯,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법.
나는 염동력을 발휘해 컨트롤러를 띄워올렸다.
물론 내꺼 말고 쟤들꺼.
"아니 야!"
"오빠!!! 왜 저한테까지 그래요!!!"
집중해서 게임하다가 갑자기 컨트롤러가 두둥실 떠오르는 살아생전 하기힘든 놀라운 경험에 그녀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억까에는 억까로, 능력에는 능력으로.
내가 무능력자인줄 알어? 나도 염동력이라는 능력을 가진 어엿한 듀얼능력자라고.
....물론 서은이한테는 좀 미안했다. 못난 어른들이 미안하다 서은아.
그렇게 방해공작 끝에 내가 다시 1위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참고로 두 어른에 억까에 휘말린 서은이는 꼴찌가 되어버린 상황.
"....그래, 다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죠?"
이를 갈던 서은이는, 갑자기 달리는걸 멈추고 컨트롤러를 이상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격투게임을 콤보 누르는 마냥 아무키나 누르기 시작하는 그녀.
나는 순간 드디어 서은이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게임을 접어버렸나? 라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내 차가 달리다 말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찰리와 유리엘리베이터를 탄 것마냥 트랙을 떠나 저 먼 우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나의 차!
"아니 이게 뭔일이야!!"
"쓰읍 서은아! 이거 네가 한거지!!"
"하. 이건 언니랑 오빠가 먼저 시작한거에요! 저는 능력 없는줄 알았죠?"
그렇게 무슨 코드를 입력해 우리를 우주로 보내버리고 유유히 텅 빈 트랙을 1등으로 질주하고 있는 서은이.
황급히 드디어 땅으로 돌아온 나와 최세희가 애를 써봐야 역부족.
이대로 가면 백프로 진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저쪽에 있던 최세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의 생각을 꿰뚫은 우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지. 어차피 스포츠맨쉽은 저 아래 땅바닥에 쳐박혀있는지 오래. 이제와서 점잖을 떨어봤자 위선일뿐.
서은아. 인생은 실전이란다. 저 바깥의 세상으로 나가면 너의 적들은 공정하게 룰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사하고 더럽게 널 옭아맬거란다. 그런 세상의 험악함에 서은이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미리 교육을 시켜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서은이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찌릿한 정전기기가 그녀의 등에 닥침과 동시에 손에 들고있던 컨트롤러도 미친듯이 진동하며 컨트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언니!!! 오빠!!! 진짜 이럴거에요!!!"
"크흑... 미안하다 서은아.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라!!!"
"쓰읍.... 난 아무것도 안했어 서은아. 언니 믿지?"
"야 임마."
"아니 진짜!!!! 아니!!!"
그렇게 서은이가 얼타는 순간 다시 우리 둘이 순식간에 따라잡았고.
"으으...!"
"쓰읍... 간다!"
"제가 질거같아요?"
드디어 마지막 결승선을 셋 중 한명이 통과하려던 그때!!!
-파앗.
갑자기 티비 화면이 검은색이 되며 꺼졌버렸다.
"...."
"...."
"...."
그렇게 순간적인 침묵이 거실을 감싸고.
우리 셋이 모두 갑작스러운 사태에 굳어있을 때.
소파 위에서 멍하니 우리가 일으키던 생쇼를 지켜보던 은월이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이렇게 되면 무승부네요."
"...."
"...."
"쓰읍... 서은아! 아까 네가 이상한거 하더니 티비가 고장난거 아니야?"
"아니 언니. 여기서 제탓을?!"
"푸흣... 아니. 크흑, 진짜 웃겨죽겠다. 우리 진짜 지금까지 대체 뭘한거냐? 엔딩봐라."
이제는 아예 폭소를 터트리는 최세희.
그런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보던 서은이도, 이내 이 상황이 웃긴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웃음을 지었다.
...아, 이렇게 뇌 비우고 놀던게 진짜 얼마만이지?
괜사리 나도 웃음이 터지는 기분.
...그래. 이게 행복이지. 사실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다. 이렇게 다같이 모여 웃고 놀며 떠드는게, 진정한 행복 아닐까.
비록 언제까지 이렇게 다른 생각 안하고 웃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별일이 없을테니까, 상관없다. 지금 이렇게 이 순간을 즐기자고.
내가 그렇게 미소지으며 생각하고 있을 때, 아까 꺼졌던 티비가 드디어 다시 빛을 내며 켜지기 시작했다.
"어? 저거 다시 켜지는데?"
내가 손으로 티비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니, 나름 좋은 티비를 갔다가 썼는데 왜 고장나고 난리인거야?
켜졌다는 불이 들어오긴 하지만, 여전히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인 화면.
그런 티비를 지켜보던 나는 제일 먼저,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잠깐. 이거 고장이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입증하듯.
갑자기.
거대한 검은색 티비 화면에서.
달이.
하얀색 달이, 중앙에 떠올랐다.
"....저건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최세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뒤에 있던 은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 말했다.
"월광..."
"응?"
"저 달이, 월광교의 상징이에요...."
살짝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은월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면에서는, 어떤 늙은 사람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해들이여...]
[월광교의 교주, '천월황'이옵니다....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강녕하시옵니까....]
그렇게 지직거리는, 긁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얼굴을 굳혔다.
아니 시발.
원작에서 이런 일은, 분명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