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화
화그와 그녀의 싸움
오늘도 평화로운 서울의 거리.
전에 있었던 월광교의 커다란 테러 전 후로는 별다른 테러가 없었기에, 시민들은 안심하고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근처 휴대폰 매장에서 들려오는 최신 팝송과, 커피 판매점에서 들려오는 음악등 상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수많은 음악들과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경적소리까지.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살아 숨쉬는 길.
온갖 다양한 음악들이 섞인 그 길을 걷던 중.
"......?"
가게주인과, 눈치가 빠른 몇몇 사람들은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매장 스피커에서 나오던 음악들이, 갑자기 전부 시끄러운 락음악으로 바뀌었다는걸.
아까까지만해도 걸그룹의 발랄한 노래가 나오던 가게는, 어느새 일렉기타의 괴랄한 독주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점점 더.
점점 더, 커지는 소리.
"으윽..."
이제는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막을 정도로 시끄러워진 음악은.
비로소, 거리에서 떠들며 길을 걷던 몇몇 사람들도 잠시 멈추어 무슨 이벤트인가 하고 고개를 돌아볼 정도가 되었다.
-징지지지지지지지징.
무슨 근본없는 락 공연장에 온 마냥, 한순간에 콘서트장이 되어버린 거리.
사람들은 이제 다들 멈추고 수근수근거리며 주위를 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거리를 찍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스피커들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락음악을 내고있는 기상천외한 광경.
이제는 사람들이 모두 어느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몰카가 아닐까? 라면서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을때.
쿵.
멀리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길거리에서 무언가 터지며, 연기들이 거리에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깨닫고 사람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할 때.
쿵-.
쿵-.
"으아아아악! 이게 뭐야!"
갑자기 무슨 철제 망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가둬버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영화는 봤어도, 하늘에서 거대 철장이 떨어진다면이라는건 못들어본 시민들은 쇠창살을 붙잡고 흔드며 으악!을 계속 연발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커다란 락음악은 시끄럽게 울리고있었고.
혼돈의 도가니탕이 된 거리에 경찰차들마저 출동해 뛰어왔지만, 그들마저 하늘에서 떨어진 철조망에 갇혀 쇠창살을 무력하게 흔들 뿐이었다.
지이이이이이잉.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일렉기타의 무아지경에 오른 라이브.
그리고 그 가운데, 새장에 갇힌 새들마냥 짹짹거리고 있는 사람들로 찬 철장들이, 하나 둘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한 가운데.
이내 하늘위로 떠오른 철조망들은, 허공 한가운데서 둥글게 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HAHAHAHAHAHAHAHAHA
터질듯한 음량으로 시끄러운 락음악이 나오고있는 스피커들에서, 갑자기 한 남자의 광기에 젖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괴할정도로 끊임없이 반복재생을 하는 웃음소리와, 거대한 락음악. 철조망에 갇혀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
저 먼 도시까지도 울리는 거대한 소음의 한복판.
몹시도 혼란스러운 그곳에서.
갑자기, 모든 음악이 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터질듯한 음량으로, 모든 스피커들에서 동시에 기계음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WELCOME TO THE SHOW-
그리고 그에 맞추어, 허공에 뜬 철조망들이 있는 곳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분홍색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가운데에서, 한 남자가 하늘 위에 어느새 떠있었다.
철장들이 허공에 둥글게 떠있는 그곳 한복판.
이제는 여러 카메라들마저 그 주위를 또한번 둥글게 맴돌고 있었고.
그에 맞추어, 그 하늘의 원 한가운데 서있는.
검은 모자, 검은 로브, 검은 망토로 무장한 회색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의 한쪽 손에 들려있는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 뜬 모든 카메라들이 동시에 켜지며.
입을 연 남자의 목소리가, 거리 전역에 거대하게 울려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빌런 에고스틱의 테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에고스틱.
이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걸 넘어서, 일부는 추종자들까지 생긴. 히어로 협회 한국지부 창시 이후로 제일 영향력 있는 빌런 TOP 1.
그리고 나는,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최근들어 너무 본업을 소홀히했나.'
빌런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밉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꽤나 화려하게 저지르지 않았나?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하더라도 기차탈선, 비행기 추락, 다리 박살 등등 꽤나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러는거냐고.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저번에 여론조사를 보고 충격을 조금 받았다.
아니, 이제는 내가 하다하다 A급 히어로보다 인기가 좋은게 말이 돼? 나는 대한민국 뒤에서 암약하는 빌런이지, 아이돌이 아니라고...
특히,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보면 더욱 안좋다.
애초에 내가 빌런이 된 목적이 뭔데. 다른 원작 빌런들을 거진 내가 해치우니까, 내가 직접 스타더스의 '시련'이 되주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이렇게 되버리면, 시련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해진다. 아니, 히어로보다 인기많은 빌런이 어딨냐고 대체.
그리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테러, 테러. 더 많은 테러다.
그것도 위협적인.
그런 이유로 지금.
나는 거리에 한복판에 허공에 떠서, 철망에 갇혀 오들오들 떨고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거리에서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락음악.
귀가 시끄러울 지경이다. ....서은이의 센스가 많이 가미되어 있기는 한데, 참. 얘도 나를 닮아서 그런지 화려하게 일치는거 좋아한다니까.
[다인 오빠. 준비됐어요.]
귀에 꽂은 인이어 이어폰쪽에서 들려오는 은월이의 목소리.
저 철장 드는건 내 혼자힘으로 무겁기에, 달의 무녀인 은월이의 마법에 도움을 좀 받았다. 저쪽 건물 옥상에서 조작하고 있는 그녀.
하여튼, 준비가 되었다니 이제 나서야겠지.
나는 그렇게 카메라를 키고, 허공에서 커다랗게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말하기가 무섭게 해킹한 상가 스피커들에서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
허공에 뜬채 씨익 웃으며, 살랑이는 바람을 맞아가며 나는 채팅창을 살폈다.
[망고스틱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벌써??? 뭐냐고 젠장!!!!!]
[수상할 정도로 테러를 자주 일으켜주는 에고양ㄷㄷㄷㄷㄷ]
[왔다 내 야동ㅋㅋㅋㅋㅋ 딱대ㅋㅋㅋㅋㅋ]
[ㅅㅂ소리 존나 시끄럽네ㅋㅋㅋㅋ 이어폰끼고 보고있는데 밴드 둥둥거리는게 귀에서 울림ㅋㅋㅋㅋ]
[철망안에 사람들은 뭐냐 인간 동물원임?]
[늘 우리의 상상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망고좌ㅋㅋㅋㅋ]
좋아, 방송은 제대로 나가고 있는거 같네.
채팅창을 확인한 나는, 다시 테러에 집중했다.
아, 일단.
이거부터 해야지.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수많은 총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철망안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히익....!"
총구가 자신들을 향하자,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
역시 리얼 건 앞에서는 공포를 안느낄 사람이 없는 법이다. 그래, 내가 실수로 저 방아쇠만 눌러도 죽는건데 얼마나 쫄리겠어. 진작에 인질들을 이런식으로 다뤘어야 했다. 지금까지 너무 풀어줬어.
그와 별개로, 내 앞에서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을 보니 살짝 미안하기는 했다만, 어쩔 수 없지. 이제는 기강 좀 잡을 때가 됐다.
"아이고 여러분! 겁먹지 마세요, 겁먹지 마세요."
총을 휘두르며 그렇게 말하는 나.
날도 좋아서인지 여전히 선선한 바람이 내 망토를 약하게 휘날리게 하는걸 느끼며.
나는 살짝 웃어주며 말해줬다.
"제가 뭐 나쁜짓을 하려고 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한시간 후에 이 총을 여러분께 쏘려고 하는거 뿐이죠."
"히익....!"
아니야, 사실 안쏠꺼긴 해.
그러나 그런 티를 내는건 하수. 일류악당은 언제든 '저놈은 진짜 총을 쏠수도 있다'라는 광기를 보여줘야한다.
"하하!! 여러분 죽기 한시간 전입니다! 생전 한시간의 모습을 제가 방송으로 전국에 쏴주고 있으니, 마지막 인사나 나눠보십쇼! 제가 예전부터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했거든요."
"히이익...!!!"
더욱 더 떠는 사람들.
그래, 내가 보여주는 광기가 잘 먹히고 있는거 같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하는거지? 마음이 아픈데. 슬슬 와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다, 에고스틱!"
어째 꽤 오랜만에 듣는듯한, 고함을 지름에도 불구하고 미성인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를 굳이 감추지 않은 채. 시끄러운 락음악을 끄고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방해꾼이 오셨군요."
전신에 달라붙는 빨간 라텍스.
치렁치렁 휘날리는 금발.
그리고 살짝 하늘빛을 띄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는 그녀.
그래. 스타더스. 그녀다.
"뭔짓을 하는거냐 네놈!"
그래, 이런 분노의 대화도 뭔가 오랜만이라 정겹네.
나를 살짝 화난 듯 노려보는 그녀한테, 나는 실실 웃으며 말해줬다.
"네, 네 스타더스씨. 오랜만입니다. 어째 자주보는거 같네요? 저를 따라다니시는거 같기도 하고... 헉, 혹시 저를 스토킹하는건가요!"
"뭐? 대체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냐! 네놈이 지금 하고있는 짓을 봐라!"
내 말도 안되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쏘아붙이는 그녀. 도발에 약한건 여전하구만.
나는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뭐 어쨌든간에. 저를 막으러 오신거죠? 그럼 와서 막아보시죠."
근처 철장 하나에 올라타 앉아 다리를 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나를 보며,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의도인지 감안하듯이.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를 못이기는건 당연하거든. 베히모스를 쓰면 10초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뿐. 상대도 안된다.
그런 내가 그녀를 도발하자,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째려보는 그녀.
그러나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저멀리 서있던 자리에서 박차올라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자 서은아, 너 차례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갑자기 우리 둘 사이의 공간에 그림자가 지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녀로부터 나를 가로막듯, 거대한 회색빛의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마치 거대한 슈트처럼 생긴, 양옆으로도 두껍고 위아래로도 두꺼운 그것.
갑작스러운 그것의 등장에 공중에서 급정거한 그녀를 향해, 나는 다시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이번에 당신의 상대는 제가 아닙니다!"
"자, 소개합니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병기. '스타버스터'입니다!!"
팔을 활짝 벌리며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터미네이터 자세에서 일어나 나오는 목소리.
[스타더스, 내가 상대해주마!]
....기계음이 섞인거치고는 숨길 수 없는 어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서은아... 그리고 왜이렇게 연기가 어색하니?
어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지금 스타더스 눈이 불타오르는게 중요한거지.
자, 시작하자.
"과연 제 스타버스터를 상대로 당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자, 스타버스터. 돌격!"
[으아아!]
그렇게 서은이의 스타버스터가 강철의 주먹을 스타더스에게 휘두르며.
싸움의 막이 올랐다.
***
스타더스, 신하루는 지금 기분이 매우 안좋았다.
첫째는 에고스틱이 또 잔인무도한 테러를 벌였다는게 그 이유고.
둘째는.
[흐아아! 아줌마, 이게 최선이야?]
....이 여자애는 뭐야?
에고스틱의 새로운 동료로 추정되는 빌런인 저 여자.
또 여자를 동료로 들인 에고스틱. 그건 그렇다고 쳐도...
...어째, 말하는 모양새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매우.
분노를 삼키며, 그녀는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똑같이 주먹을 날렸다.
...안되겠다.
이 빌런은 오늘 이 자리에서 잡아가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