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화
화선포
[히어로 여론조사... 빌런 에고스틱 순위에 '깜짝등장'.]
월광무녀의 테러 이후 치루어진 히어로 여론조사가 공개되었다.
어느 히어로가 제일 믿음직스럽나? 라는 질문을 통해 치루어진 이번 여론조사에는 상당히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1위]스타더스
2위]섀도우워커
3위]에고스틱
4위]아이시클
5위]보더맨
(사진: 한국 ARS리서치 랩 여론조사 결과. 신뢰수준 95프로에 오차범위 ±3.0프로)
평소와 같이 A급 히어로들이 줄지어 상위권에 위치한 모습이지만, 특이한 점은 빌런인 에고스틱이 순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
여론 조사 기관도 당황하여 두번이나 다시 확인해봤다는,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에고스틱이 빌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
아니. 대체 히어로 여론조사에 왜 내이름이 있어? 애초에 누가 여론조사를 할때 내 이름을 박아놨다는 소리 아니야?
이게 뭐야....
"쓰읍...."
"오빠. 무슨 생각해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소파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 나한테, 서은이가 아이스크림 한통을 들고 거실로 오며 내게 물었다.
"테러..."
"네?"
"아무래도 이번에 바로 새로운 테러를 일으켜야 할꺼 같은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이번 사건의 파급력이 큰 바람에, 바로 조치를 취해야 될 상황이 왔다.
아니... 그냥 빌런 한명이 다른 빌런 영입한걸 가지고 이렇게 난리날 줄은 몰랐지.
솔직히 나를 원래 좋아하던 사람들이야 난리날건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정도 일진 몰랐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방송도 켰었는데, 대체 어째서...
역시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테러를 바로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그래, 본업으로 돌아와야지. 너무 오래 외도를 했다.
다시한번 매콤한 K-빌런의 맛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다.
...어떤걸 할까나.
그렇게 내가 무슨 테러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내 말을 듣던 서은이가 갑자기 아이스크림 통을 내려놓고는, 슬며시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새로운 테러를 일으킬꺼라고요?"
"그래. 대충 뮤지컬 난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오빠, 그것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자신만만하게 웃는 서은이.
"제가 이미 다 계획을 세워났으니까요!"
"...너가?"
갑작스러운 서은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서은이가 웬일로 이런 기특한 일을?
"....이제는 공개할 때가 됐네요. 오빠, 저 따라와요."
여전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손짓하는 서은이.
그렇게 나는 영문도 모른채 지하기지까지 끌려왔다.
대체 뭘 공개한다는 거야?
그런 내 궁금증은 지하기지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더욱 심화됐다.
"....서은아, 대체 어디까지 가는거니?"
"거의 다왔어요. 자!"
마지막으로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불이 켜지며 그녀가 공개한건.
"...이게 뭐야?"
"스타버스터. 제가 만든 대 스타더스 전략병기에요!"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그녀의 뒤로 보이는, 대략 사람 키의 두배는 되보이는 두꺼운 철갑의 슈트.
위쪽에 사람이 쏙 들어가면, 아랫쪽에 놓인 거대한 철제병기를 조종하는 구조같았다. 거기다 왜인지 익숙한 이름답게 익숙한 외형까지.
이게 뭐람.
"....이걸 너 혼자 만든거야?"
"전체적인 설계는 제가 짜고, 세희 언니가 조금 도와줬죠."
무슨 비장의 신무기를 소개하듯 코끝을 쓰윽 훔치며 말하는 그녀.
정황상 지금까지 맨날 둘이서 지하실 내려가있던게, 이거 만든다고 였던거 같다.
"어때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 본 채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한테, 나는 일단 칭찬을 해줬다.
"멋지네. 진짜 잘 만들었는데?
"훗. 역시 그렇죠?"
이제는 뿌듯함을 숨기지도 않은 채 미소짓는 서은이. 귀엽네.
근데, 귀엽긴 한데...
여전히 엣헴-거리고있는 서은이한테, 나는 가장 중요한걸 물었다.
"그래서. 이건 누가 타는거야?"
"당연히 저죠!"
자신만만하게 답하는 서은이를 보며, 나는 이마를 탁 짚었다.
"....안돼."
"뭐라고요?"
아까까지만 해도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굳어지는게 느껴졌다.
표정을 굳히고 나를 바라보는 서은이. 투지로 빛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나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걸 느꼈다.
아. 애 키우는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어요.
***
"서은아, 넌 너무 어려. 아직 미성년자라니까? 너를 테러에 내보내면 무슨무슨 죄로 내가 잡혀가요."
"하. 지금까지 이미 저 데리고 테러 같이 기획하고 다른데 해킹한것도 이미 잡혀가기 충분하거든요?"
다시 집.
그곳에서, 서은이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너가 위험할 수도 있어서 안돼. 애초에 이걸로 스타더스를 상대할 수는 있어...? 걔 너 생각보다 훨씬 강해."
내 의문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하는 그녀.
"오빠. 그 여자가 얼마나 강하던, 제 스타버스터는 못이겨요. 이게 뭘로 만들어졌는줄 알아요?"
"....철?"
"무슨 소리에요. 제가 그런걸로 스타더스를 상대하려 했겠어요?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철보다 몇십배는 더 단단한 물질로 만든거에요. 웬만한 주먹은 다 버텨낼껄요?"
아니, 그렇게 말해도 몹시 불안한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최세희가 나와서 서은이를 어시스트 해줬다.
"야. 내가 이거 쟤랑 같이 만들었는데, 진짜 튼튼하긴 하더라. 내가 아무리 공격해도 흠집 하나 안난다니까?"
"맞아요. 그리고 오빠, 솔직히 저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에요?"
갑자기 그런걸 묻는 서은이.
나는 그러는 그녀한테, 잠시 생각을 해본 뒤 답해줬다.
"...이제 거의 3년 됐나?"
"맞아요. 제가 그 에고스트림 멤버 누구보다 먼저 오빠 옆에 있었다고요. 근데 이거 봐봐요."
그렇게 말하며 나한테 자기의 휴대폰을 건네는 서은이.
그 화면에는, 어딘가 익숙한 카페 대문에 게시글이 하나 있었다.
*
[빌런연합_에고스트림_정리 (최신판)]
에고스틱: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인지도의 빌런. 얘가 지금까지 혼자서 일으킨 일들만 봐도 다 TOP에 들어간다.
일렉트라: 전기능력자. A급 빌런이다.
데스나이트: 스타더스랑 일대일로 맞다이를 뜨기까지 한 유?령. 아마 부활가능한걸로 추측됨ㄷㄷ
월광무녀: 이번에 전국민 앞에서 소개한 그 여자 맞다. 능력은 이번에 봤듯이 압도적. S급임.
세인티스: 역시나 이번 방송에서 처음으로 나옴. 능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음. 아마 마법, 버프, 힐링 관련으로 추측됨.
거기에 거대한 비행선을 가진 레피스단까지.
라인업이 벌써 ㅎㄷㄷ함
*
"....이게 뭐가?"
갑자기 서은이가 내민 이걸보고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서은이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제 이름이 없잖아요 제 이름만! 심지어 하율언니도 이번에 들어왔는데, 저만 없는게 말이 돼요?"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만.
그런 내 생각은 그녀에 의해 가로막혀졌다.
"안돼요. 제가 오래 참았는데, 이제는 저도 전면에 나서야겠어요.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고 말거에요. 제가 있다는걸!"
아니, 왜 이렇게 나서고 싶어하는거야?
나는 그게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활활불타는 서은이의 눈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서은이가 이렇게 먼저 나서서 뭔갈 요구한건 처음인거 같기도 하고.
"...그래, 알았다."
"진짜요?"
내 승낙에 곧바로 태세전환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서은이.
원래라면 반대 하려고 했는데.
....저정도로 나서보고 싶어하는데 그래. 한번은 기회를 줄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래. 대신, 무조건 나도 같이 가는거다?"
"당연히 같이 나서야죠. 저 혼자 가면 무슨 의미겠어요?"
그렇게 답하며 씨익 웃는 서은이.
...뭔가 많이 걱정되는데.
"아 그리고. 이번이 드디어 제 첫 데뷔전이니까 연출은 제가 맡을께요. 그래도 되죠?"
"어... 너 마음대로 해라."
"후후... 스타더스, 제가 직접 쓰러트리고 말거에요..."
이상하게 의욕을 불태우는 서은이.
...대체 스타더스가 뭘 했다고 저렇게 쓰러트리겠다는 의욕을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응원해주기로 했다.
나는 마지막에 어떻게 서은이를 구해낼지나 생각하고 있어야지.
***
신하루의 집.
오랜만에 그곳에 돌아온 신하루는, 침대에 몸을 털썩 뉘였다.
".....에휴."
요즘따라 더욱 심란해진 그녀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였을까.
....거기서 멈칫한 자신은 뭐고.
그래도.
압도적인 폭풍 앞에서 모든 희망을 잃고 쓰러져있을때.
그가 등장한걸 보고.
솔직히 말해서, 그때 약간 가슴이 뛰었다.
".....벽에 아예 붙여놓을까봐."
에고스틱 사진하나 붙여논 다음에 옆에 나쁜놈이라고 커다랗게 써놓을까- 그런 황당한 생각마저 드는 자신이었다.
...어차피 그 상황에서 난입한것도, 자신의 빌런연합을 키우려고 한걸텐데. 아마 별다른 의도는 없을텐데.
아니다. 혹시 모른다.
정말로, 사실 세계를 파괴할 생각이 없는 놈이라면?
"으으...."
그녀는 혼란스러움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에고스틱. 그만 생각하면 늘 이랬다.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
그래.
일단은, 다른거에 집중하자.
어차피 에고스틱. 그가 테러를 일으키는건 거진 3개월에 한번이니, 다음에 그를 볼려면 멀었을 것이다.
이제 벌써 대학교 4학년인데, 슬슬 졸업하고 뭘할지도 생각해 봐야된다. 히어로 활동 가끔하는거 때문에 남는시간을 다 놀 수는 없으니.
그래. 에고스틱에 관한건... 그가 돌아오기 전 그때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비비던 그녀한테, 책상쪽에서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지...하며 침대에서 일어서 다가간 그녀가 본건, 휴대폰 화면에 커다랗게 표기된 '협회' 두글자.
뭔가 하고 받아본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소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빨리 출동해 주세요!]
"네...?"
아니, 벌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