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화
화방비책
"다인씨. 저한테 미안해요 안 미안해요?"
"미안하다..."
유성그룹 서울 지부의 사장실.
나는 거기서, 이설아한테 사과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저한테는 말씀 해 주실 수 있었던거 아니에요? 제가 그걸 어디가서 가볍게 말하고 다니겠어요?"
짐짓 화난양 나한테 툴툴거리는 그녀.
사실 서운한건 맞을거다. 서울이 완전히 개박살나는 와중에 나한테 급히 연락했더니, 나는 그냥 잠수를 타버렸으니까. 그러다가 중간에 말도없이 방송키고 등장해서 문제를 뚝딱 해결하고, 다시 잠수타버리고.
하늘색 머리카락을 옆으로 휙 돌리며, 어째 흥!이러는 소리가 아른거릴 정도로 나한테 삐졌다는 티를 팍팍 내는 그녀.
....그리고 물론, 이건 다 연기일거다.
애초에 이설아가 누구인가. 원작에서 아예 대한민국을 꿀꺽 집어 삼킬정도로 능력있는 사람. 그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그녀인만큼, 저렇게 애처럼 행동하는 것도 다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 그냥 뇌를 비우고 진짜 삐져서 저렇게 행동하는 걸수도 있고. 애초에 그녀입장에서는 충분히 서운할 수도 있다. 나야 애초에 스타더스를 위해 모든걸 계획한만큼, 이설아한테 말해주면 혹시나 스타더스가 특유의 감각으로 눈치챌까봐 그냥 잠수탄거지만. 그녀가 그걸 알리는 만무.
그러니 일단은 미안하다고 하는게 내 최선이다.
....사실 전화해서 처음 목소리 들었을 때는 사람 하나 담굴 분위기였는데, 지금 정도면 많이 나아진 편이다.
"흥."
"알았어, 알았어. 내가 진짜 미안해. 앞으로 안그런다니까."
"....진짜죠?"
"그래."
거짓말은 아니다. 주어가 빠졌으니까.
다만 내 난입이 끝나자마자 바로 연락을 안준건 미안하지만, 그 전에 미리 연락을 안해준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다만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는건 하수. 여기서는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보는거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인씨가 잘못한거 맞죠?"
"그래."
"그러면.... 저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아까보다는 살짝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뭐지? 무슨 부탁?
순간적으로 불길함이 몸을 휘감았다.
그 이설아인데. 대체 무슨 부탁을 할지 모르겠네.
"그래. 뭐든 들어줄께. 말만해봐."
그래도 일단 지르고 봤다.
...너무 이상한 부탁을 하면, 기절시키고 튀어야되나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얼굴 보여줘요."
"응?"
"저도! 당신 가면 벗은 맨얼굴, 보여달라고요..."
이런말을 하는게 살짝 부끄러운듯, 말끝을 흐리며 살짝 얼굴이 붉어진 이설아.
....그렇게 나를 겁박하더니, 결국 결론은 얼굴 보여달라는 거였다고?
자기가 말해놓고도 내가 거절할까봐 힐끗힐끗 내 눈치를 보는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고는 그냥 가면을 벗어줬다.
"자. 됐지?"
"어...."
내가 너무 쉽게 벗자, 살짝 당황하는 그녀.
그러나 그러기도 잠시, 이내 눈을 반짝이며 내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기 시작했다.
"....야, 너무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면 좀 부담스러운데."
"아니, 신기해서요."
"...뭐가. 내 얼굴이?"
"아니요. 평소에 인식저해 있는데도 가면쓰고 다니시길래 무슨 얼굴 한쪽에 큰 흉터라도 있는줄 알았더니, 없네요? 그럼 얼굴 한쪽에 가면은 왜쓰고 다니시는 건가요?"
"이 가면이 평범한게 아니야. 수많은 기능들이 있지."
하지만 다들 안쓰이고 주로 채팅창을 보는데 사용되지.
그런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어쨌든 좋아요. 이제 얼굴도 봤으니까, 절 집에 초대하는 일만 남았네요. 초대해 주실거죠?"
"...그건 나중에."
나는 일단 선을 그었다.
...아무래도 집 위치까지 노출하기는 좀.
애초에 얼굴을 맘놓고 깐것도, 이번에 새로온 달의 무녀, 백은월이 자체적으로 강력한 인식마법을 걸어줄 수 있어서 깐거다.
"알았어요."
그렇게 대답하는 이설아의 얼굴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얼굴까지 본걸로 만족하는 모양. 아까 붉어졌던 얼굴은 다시 멀쩡해진지 오래.
....당한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전, 그녀는 마침 기억났다는 듯 나한테 말했다.
"아. 그리고 다인씨. 문제가 있던데요."
"뭔데?"
"지금 인터넷도 그렇고 전체적인 여론조사도 그렇고, 다들 에고스틱을 좋아하는 분위기에요. 거의 히어로 수준? 이러면 문제되는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나한테 우려의 시선을 건네는 이설아.
"....심지어 저희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저보다 당신이 호감도가 더 높더라고요."
그게 포인트였냐.
결국에는 서은이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그래? 그정도라고?"
"네. 인기가 아주 하늘을 찌르던데요. 무슨 망고거리면서요. 심지어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어요. S급 히어로들도 망설이던 테러를 A급 빌런이 혼자 처리했다고."
해외 뭐시기가 국뽕티비의 어그로가 아닌 실화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당황스러운 말에 나는 이게 살짝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걸 느꼈다.
흠... 이러면 나가리인데.
"아니 근데 다인씨. 상식적으로 서울 전국민이 망하게 생긴걸 단신으로 구해내셨는데, 인기가 안오르면 오히려 이상한거 아닐까요?"
"난 빌런인데?"
"...스스로 빌런이라고 호소한다고 해서 빌런이 되는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설아였다.
"...쓰읍."
역시, 바로 테러를 일으켜야 하나.
그래. 내가 빌런임을 증명하려면 테러만한게 없기는 하지.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너무 인기가 많아서 고민이라니, 참 부럽네요. 하아."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는 그녀였다.
그뒤로도 우리는 몇마디를 나눈뒤, 헤어졌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꼭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그렇게 내뱉고 봤다.
근데 뭔가 찝찝한데, 기분탓이겠지.
***
"휴우...."
에고스틱, 다인이 떠난 사장실.
그곳에서 다시 홀로 남은 이설아는, 한숨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에고스틱. 그가 딱히 자신을 그렇게까지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걸.
이설아. 그녀는 스스로 눈치가 빠르다고 자부한다.
애초에 자신의 비상한 머리가 없었다면, 이 위치까지도 오르지 못했었을거다. 할아버지를 상대로 이 회사를 장악하는거부터 어린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즉, 사람을 상대로 한 눈치는 자신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그가 본 다인은, 자신을 믿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사실 그녀는 그게 의아했다.
...그녀가 뭘했다고, 그렇게까지 믿지 않는걸까.
애초에 그녀는 에고스틱, 그에게는 잘해주기만 하였다.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딱히 없고.
그러나 수상할정도로 그는 그녀를... 뭐랄까. 아무리 마음을 연듯해도 약간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자신이 다가가도, 늘.
마치 그녀 자신도 모르는, 그녀에 대한 무언가를 아는것처럼.
'...답답하네.'
정보의 공백.
아무리 눈치가 빠른 그녀여도, 그 점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딱봐도 그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그녀의 행보에 불만을 품는거 같지는 않다. 애초에 지원하기까지 했는데.
그러면 대체 왜지?
'...스타더스는 그렇게 믿으면서.'
그리고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스타더스에 대한 헌신.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도 다 스타더스를 위해서라고 하니 거의 중증이다. 어찌보면 인생을 애초에 스타더스를 위해 바치고 있는 셈. 엄청난 순애보다.
'하루가...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정도인가?'
따지고보면 그녀나 자기나 둘다 같은 A급 히어로인데, 어째서 이렇게 차별대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를 알아봐주지도 않는 그녀보다는, 자기가 낫지 않나?
하루가 뭐가 잘났다고.
"....아니지."
생각이 너무 우중충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녀는 숨을 한번 내쉬운뒤,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어차피 늘, 마지막에 이기는건 나였다.
한번 손에 넣기로 한건 늘, 어떻게든 쥐어왔던 자신이기에.
".....두고봐."
언젠가 에고스틱.
당신이 스타더스가 아닌, 나만 바라보도록 만들어드리죠.
***
아이시클은 꿍꿍이를 꾸미고, 에고스틱은 다음 테러에 대해 고민하던 그때.
에고스트림의 본부로 쓰이는 큰집. 그곳과 연결된, 원래 본부였던 지하기지에 두 소녀가 걷고있었다.
"....서은씨.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건가요?"
"너한테만 보여주는거니까, 따라와봐."
벽면이 다 새하얀 지하의 통로.
전등이 깜빡깜빡 거리는 그곳에서, 백은월은 한서은의 옷을 잡고 불안하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한테, 말을 하는 서은이.
"너, 이제는 에고스트림에 대해 알지?"
"네. 다 배웠어요. 다인씨가 창시한, 빌런 연합이라면서요?"
"그래. 오빠가 만들었지. 근데 거기에 초대 멤버가 누구였는줄 알아?"
"누군데요?"
"수빈 언니랑 나였어."
거기까지 말한 서은이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세상 사람들은 수빈언니만 알고 나는 몰라. 심지어 이번에 하율언니도 세인티스인가 뭔가 하는 이름으로 데뷔했는데, 오빠는 나만 감싸돈다고."
"저런, 왜죠?"
"아마 내가 어리거나, 무력이 없다고 생각해서겠지.참나, 애초에 나도 이제 고2인데, 고2면 어른 아니야?"
"....어, 어른이 아니긴 하죠?"
"아니지! 이정도면 솔직히 충분히 어른이지."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자신들의 앞에 놓인 거대한 철제 문 앞에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내 쿠웅-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서은씨? 저 깊숙한 곳에서 저를 버리고 갈 생각은 아니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따라와봐."
여전히 불안하다는 듯 눈을 기울이는 백은월의 앞으로, 한서은은 걸어갔다. 여전히 말을 하며.
"하여튼, 나이는 오빠의 착각이니까 넘어가고. 무력. 그게 문제겠지 아마. 내가 주체적으로 테러를 못한다고. 특히 내가 스타더스, 그 무식하게 힘만 쎈 여자는 상대할수 없어보이니까. 아, 스타더스는 알지? 그 오빠가 이상하게 신경쓰는 여자."
"네. 들었어요."
"하여튼, 나랑 세희언니랑 같이 내가 스타더스를 직접 상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었어. 그리고... 그게 이번에 완성되었지."
그렇게 말하며 한서은은 또다른 철제 문의 보안을 풀었다.
이내 끼이익- 하며 거대한 차고같은 문.
그리고 그 뒤로 넓고 어두운 공간이 보였다.
"자, 소개할께. 이번에 내가 만든거야."
그 말이 끝난 뒤 씨익 웃으며, 그녀는 불을 켰다.
이내 불이 탁 켜지고.
위이잉-.
그 공간 한가운데 있는 것이 백은월의 앞에 보였다.
대략 사람 키의 두배정도는 되보이는.
강철같은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슈트같은 것이.
팔 다리 몸통 전부 아주 크고 단단해 보이는, 회색빛의 거대한 기계덩어리가 주는 위압감에 백은월은 입을 헤하고 벌렸다.
"....와. 이게 뭐에요?"
감탄하는 백은월을 보며, 한서은은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쥤다.
"내가 입을 슈트... 그러니까, 거대 병기야. 이것만 있으면, 나도 그 여자를 직접 상대할 수 있겠지!"
"대단하네요. 직접 만드신건가요?"
"그래. 이름도 붙여줬다고."
"뭔가요?"
궁금하다는 듯한 백은월의 질문에, 서은이는 씨익 웃으며 답해줬다.
"스타버스터."
"스타더스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궁극의 무기지."
그렇게 말한 서은이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여전히 자신만만한 기색으로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스타더스 그 여자를 내가 직접 쓰러트리고 말겠어. 어때?"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어, 파이팅?"
백은월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
"....수빈씨, 서은이는 또 어디갔나요?"
"아마 이번에도 지하실에 간거 같아요."
"...걘 대체 맨날 거기서 뭘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