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화
화악당의 건망증
나는 옳은 일을 했다.
이번 월광교의 테러는 막아야하는 일이었기에, 막았다. 원작에서 이번 일로 서울이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서 본격적인 피폐물로 돌입한다는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
또 내가 방송까지 킨건, 월광교를 견제함과 동시에 어그로를 끌기 위함이기도 했다. 원작처럼 서울테러 이후 대한민국 전역에 월광교에 대한 공포감이 깔려 분위기가 굉장히 어두침침해지는걸 막기 위해, 월광교는 별거 아니라는 인식을 준 것. 나같은 A급 빌런한테도 저지당하는게 월광교다 이말이야- 같은, 이런 연출을 의도했다.
또 달의 무녀 백은월. 원작에서 그녀가 죽을때 눈물을 줄줄 흘린 나인만큼, 그녀또한 무조건 살릴 생각이었다. 또 이왕 살리는김에 내가 창시한 빌런 연합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비록 이번에 보여준 모습은 마법진으로 강화된거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공격마법, 환영마법등 다양한 능력을 지닌 그녀를 영입하는건 꽤나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 에고스트림에 무력을 가진게 나를 빼면 일렉트라, 데스나이트 단 둘이 끝인만큼 더욱 더.
그리고 물론. 거기서 스타더스를 쓰다듬은건... 음, 그래. 사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내 최애가 그렇게 쓰러져서 힘들어 하는걸 육안으로 봤는데, 그 상황에서 몸이 안튀어나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불가항력이었다. 애초에 뭐, 이미 그녀한테 그런 적이 이미 여러번인데 뭐 어떻냐는 생각도 있다. 기차때도 그랬고, 비행기때도 그랬고. 어차피 그녀는 짜증만 났을텐데 뭐. 거기에 몇안되는 찍힌 사진들도 해킹해서 다 지워버렸으니, 증거도 안남고 해결!
결과적으로 말하면, 난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비록 대중들 사이에서 내 이미지가 살짝 좋아졌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야 앞으로 테러 몇번 하면 사라질 일. 아무 문제도 없다.
-라고 비슷하게 말해봤으나, 여전히 혼났다.
"오빠, 걱정되서 그래요. 스타더스가 그러다가 오빠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어떡해요? 오빠가 입으로 말했잖아요. 스타더스가 오빠를 계속 적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면서요. 요즘 오빠 하는거보면 스타더스가 언제든 오빠를 의심해도 안이상해요."
진지한 목소리로 나에게 그리 말하는 서은이.
그런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해줬다.
"서은아... 무슨 말인줄 알겠는데,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왜요?"
"스타더스가 얼마나 신념이 굳은데."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에, 이미 세상 모든 불의는 다저지르고 다니는 내가 곱게 보일리가 없다.
...물론,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이상한 낌새를 보이기는 했지.
'.....이걸로, 빚은 갚은거지?'
내게 안긴채 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었다.
...근데 그건 그냥 그녀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그런거지, 다른 의미가 있을리가 없다. 설마 그럴리가.
"하여튼,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 나도 좀 쉬자. 그 폭풍 뚫느라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움찔-.
내가 폭풍을 언급하자, 내 옆에 앉아있던 백은월이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죄, 죄송해요...."
"아니야! 사과할 일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백은월을 바라보았다.
원래 입던 무녀복은 치워버리고, 뽀송뽀송한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녀.
서은이 앞에 있으니 둘이 키도 비슷하고 머리카락도 흰색 검은색으로 정반대다 보니까, 약간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긴건 정 반대지만. 생각해보니 서은이랑 나이도 비슷하니까, 진짜 쌍둥이같네.
참고로 백은월이 집에 온 이래, 서은이와 그녀는 금새 친해졌다.
애초에 서은이와 나잇대가 비슷하던 사람이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었는데, 이번에 온 백은월이 나이가 유일하게 비슷한만큼, 금새 친해진거 같다.
물론 여전히 백은월은 모두에게 존댓말을 쓴다며 서은이에게까지 말을 놓고 있지 않고 있지만.
"....근데 넌 왜 그렇게 오빠 옆에 붙어있는거야?"
"....옆에 붙어있으면 안되나요?"
"아니. 안되는건 아닌데, 오빠가 불편해하잖아."
"진짜요? 정말인가요, 다인씨?"
"아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시네요."
".....흥."
....친해진거 맞지?
하여튼, 백은월도 금새 우리 집에 잘 적응해서 스며들었다.
차가운 월광교에만 있다가, 다들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해프닝도 있었긴 한데. 하여튼.
얘가 월광교 어두침침한 어딘가에서만 쭉 살다보니까, 사소한거에 쉽게 감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번 식사 시간만 봐도.
"이게... 뭐죠?"
"그냥 오므라이스인데. 맛이 어때. 내가 만든거거든. 맛있지?"
".......흑."
"야, 왜 울고 그래? 울지마!"
"세희 언니. 기어코 애를 울린거에요?"
"세희야. 실망이다."
"아니! 왜 다들 나한테 그래. 그렇게 맛이 없어? 나는 먹을만 하던데?!"
"....훌쩍. 그게 아니라, 이렇게 맛있는건 처음 먹어봐서 그래요."
...대체 월광교에서는 뭘 먹였길레 애가 오므라이스 하나에 눈물을 터지게 한거야?
하여튼, 그 이후로 은월이한테 다들 먹을걸 먹여주는 이상한 캠페인이 열리기도 했다. 그냥 밥부터 사이다라던지, 초콜렛이라던지... 뭐 줄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자꾸 먹여주고싶달까. 이게 할머니의 마음?
물론 은월이가 단순히 귀엽기만 한건 아니였다.
"은월아 너가 쓸 수 있는게 너가 저번에 보여준 그런 공격마법이랑, 또 환상마법이라고 했지?"
"네. 예를 들어.... 이런거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손을 휘저어서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어 바로 사슴을 한마리 소환했다.
생긴게 진짜 사슴처럼 뛰는데, 아주 리얼하기 이로 말할수가 없었다. 물론 만지면 바로 보라색 가루로 흩날리기는 했지만.
"대단하네."
내가 칭찬해주자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는 은월이었다.
공격마법에 환상마법에... 하여튼 마법은 딱봐도 쓸모 있어보이니까 뭐. 기본적으로 드디어 우리 파티에 무력이 있는 사람이 추가되었다는게 기쁠 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 메인 이벤트도 하나 깨부셨는데 잠시 이렇게 평온한 시간이 있어야지.
".....이제, 어떻게 될려나."
"다인 오빠? 뭐하시는 건가요?"
"아 은월아."
그리고 그날 밤.
베란다에 나와 난간에 기대, 비오는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는 내 쪽으로 은월이가 다가왔다.
"그냥, 잠깐 경치보고 있었어. 너도 같이 볼래?"
"네."
내 물음에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 같이 밖을 바라보는 은월이를 살짝 쓰다듬어 주고, 나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될려나.
원작의 메인이벤트인 월광교의 서울 붕괴를 내가 저지했다.
그로 인해, 원작과는 다르게 이 세계는 서울이 붕괴하지 않게되었다. 앞으로도 쭉.
그리고 이로 인해, 아마 내가 아는 미래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
원작.
원작에서는 서울이 박살난 뒤에야 백은월이 죽게된다.
그로 인해 폐허가 된 서울을 피해, 수도가 임시로 부산으로 지정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부산에 거점을 둔 유성그룹의 실세이자,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야욕을 품은 이설아에게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렇게 잠시 수도가 임시로 부산으로 지정되고,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관공서랑 기업들이 부산에 내려온 틈을 타 다 포섭해버린다. 정치인들은 회유하고, 기업은 인수하는 식으로.
그렇게 서울 재건이 끝나 다시 신서울로 옮겨갈 즈음에는, 대한민국의 반 넘게가 다 이설아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미래는 내가 서울을 지키는 바람에 없어지고 말았다. 즉, 이설아의 대한민국 흑막 계획이 원작보다 더뎌질거라는 소리.
사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원작과 달라지는 점 제일 큰 하나를 꼽자면, 원래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달의 무녀, 백은월의 몇십번에 걸친 테러로 서울에서 원래 참많이 죽었었다. 특히 4번째 테러부터 그녀가 컨트롤을 포기하며, 더더욱.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즉, 이들이 제일 큰 나비효과.
이들 중 미래의 테러리스트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원작과 어느정도 틀어지는 일이 생길 각오를 해야한다. 아마 원작에서 일어난 일은 웬만하면 다 일어나겠지만, 이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각오도 해야한다는 소리다.
거기에 월광교.
교주의 움직임에도 어느정도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원체 어그로를 끈 바람에.
...물론 아마 내 예상으로는 딱히 신경 안쓸 가능성이 제일 높기는 하다. 애초에 그놈의 이세계와 연결된 포탈을 만들어 신을 불러내겠다는 열망이 가장 큰 인물이라, 따른건 다 겉가지 취급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떤 행동을 할지 대비하고 있어야겠지만.
"이설아, 미래, 월광교. 이거 셋만 주의해야 겠구만."
"네?"
"그런게 있단다."
나는 옆에서 궁금한 듯 바라보는 백은월의 머리를 한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떠올렸다.
이설아, 미래, 월광교라.
....잠깐.
이설아.
내가 이설아한테 연락을 했던가?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든 나는 휴대폰을 켜 통화기록에 들어가봤다.
***
[부재중전화]
이설아(67)
***
"....아. 좆됐네."
"왜 그러시나요 오빠?"
"....은월아, 누군가 너가 건낸 말을 67번 씹으면 기분이 어떨거같니?"
"음... 화가 나겠죠?"
"그렇겠지?"
좆된거 맞네.
나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늦었긴 한데, 그래도 일단은.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지는 않겠지만.
***
하늘에 구멍이 뚫린것 마냥, 비가 퍼붓고 있는.
밤의 부산.
유성그룹 꼭대기층, 사장실.
쿠르릉. 콰앙.
천둥소리만이 울려퍼지는, 불이 꺼진 그곳에서, 전화기가 빗소리를 뚫고 벨소리를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번쩍.
그리고 그순간 번개가 내리치며, 어두운 사무실이 순간 밝아지며.
그곳에 홀로 조용히 앉은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손에 깍지를 끼고 책상위에 올린 채.
조용히 앉아 전화기를 바라보는 이설아의 모습이.
".....늦으셨네요, 다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