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화
화폭풍의 언덕
이질적인 분홍색으로 빛나는 하늘, 눈을 뜨기도 힘들게 휘몰아치는 바람.
스타더스마저 힘겨워 했던, 이 폭풍의 한복판에서. 검은색 옷을 갖춰입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그래, 나말이다 나.
".....이런 느낌이였구만?"
어린아이 하나정도는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날아오는, 수십개의 마법진에서 뿜어져나오는 공격.
그렇게 그 어떤 히어로도, 힘겹게 노력해도 뚫지 못한 그 폭풍을.
나는 마치 아침에 집앞 마당 산책하듯, 편안하고 유유하게 걷고 있었다.
"아니, 날파리들이 왜이렇게 많아?"
염동력으로 날아오는 별 같은 것들을 쳐주는건 덤.
무슨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나 있을 법한게 자꾸 날아오는데, 귀찮아 죽겠다.
그렇게 나를 향해 날아오는 별덩어리들을, 아주 스무쓰하게 손짓 하나로 쳐냈고.
그결과 내가 아닌 땅바닥에 쳐박힌 보라색 별은.
콰앙-
무슨 폭탄 터진 양 엄청난 굉음을 내며, 자신이 떨어진 땅을 그냥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와... 시바...."
그리고 그걸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 역시.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다.
무슨 평타가 저정도 쎄기야?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보았다.
하늘을 다 가릴정도로 높게 솟아오른, 분홍색 폭풍우.
역시, 원작에서 그 어떤 히어로들도 막지 못한 채, 서울을 결국 완전히 파괴시켜버리는 이벤트 다웠다.
이걸 인간이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든다고.
물론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쪽으로 날아오는 보라색 파괴광선을 손을 펼쳐 막았다.
맹렬한 기색으로 쏘아지는 것과는 다르게, 내 손에 닿지도 못하고 사방으로 퍼지는 빛줄기.
나는 그걸 보며 살짝 웃었다.
그래. 달의 무녀. 굉장히 강하고 위협적인 적이다. 단순히 쓰러트리기 힘든 정도로 따지자면 예전 한은그룹의 거대병기보다 더 힘들정도로.
근데 그건 아무것도 모른 채 싸울때 얘기고.
나는 씨익 웃으며, 그대로 펼친 손을 다시 쥐었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퍼엉-.
광선을 쏘던 마법진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버렸다.
그래, 이번 테러의 핵심은 달의 무녀가 아닌, 교주가 사전에 깔아둔 버프기들, 바로.
서울 전역에 놓여진 마법진들.
히어로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달의 무녀의 화력을 강화시키며, 전파 방해에 암흑능력 방지에 마력공급에, 그냥 대충 어마무시한 옵션들이 많이 붙어있다.
사실상, 이 마법진들이 이번 테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의 무녀도 기본적인 마법실력이 꽤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스타더스와 아이시클, 섀도우워커까지 탈탈 털정도로 강한거까진 아니다. 스타더스와 일대일로 싸우면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질정도?
그렇기에, 그녀를 거의 무적으로 만들어주는건 교주의 버프 마법진들.
이게 이번 테러 공략의 핵심이자, 사실상 모든것의 중심이다.
원작에서도 서울 거의 다 박살난 상태에서 겨우 이 비밀을 밝혀내, 마법진을 미리 다 박살내서 달의 무녀를 죽이는데 성공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신을 죽여달라 말하던 달의 무녀의 모습이 또 눈에 어른거렸다. 그래, 그건 개같은 원작일뿐. 이제는 아니지.
하여튼, 나는 아예 여기서 한술 더 떴다.
마법진을 해킹해서 역으로 작동하게 했다는 소리.
그러니까, 서울에 놓인 이 거대한 마법진은.
나를 강하게 해주고, 적을 약하게 해준다.
즉.
이 폭풍 안에서는, 내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해준다는 소리.
"위로 올라가, 그래~"
나를 향해 내리치는 보라색 벼락을 손으로 튕겨, 다시 하늘로 보내버리고.
날아오는 레이저는 그냥 썰어버리고.
별덩이들은 그냥 염동력으로 폭파시켜가며.
나는 유유히, 달의 무녀가 있을 이 폭풍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아, 쉽다 쉬워,
이제 곧 달의 무녀도 보게 되겠구만.
***
"하아... 하아...."
폭풍의 중심부.
그곳에서,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흐윽..."
자신이 일으킨 폭풍 안쪽.
어떤 사람이, 자신이 만든 모든 결계를 다 뚫고 접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거죠.'
자신의 마법을 베이스로, 교주에 의해 증폭된 결계.
그녀가 서있는 곳을 둘러싼 수십, 수백개의 공격 마법진들.
누군가 다 뚫어가며 진격하는게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누구인걸까요.'
저번 두번의 테러에서도, 자신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폭풍의 중간도 통과하지 못한채, 물러났었는데.
지금의 침입자는 마치 제집 드나들듯 쾌속으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히어로겠죠.'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드디어 누군가가 모든걸 멈추기 위해 오는군요.
그래, 차라리 잘됐어요.
그녀는 잠시 멈추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서있는 곳은 태풍의 중심. 바람 한점 안불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은,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런 손을 다른 한쪽 손으로 붙잡으며,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래. 차라리 잘된거에요.
고작 이번을 포함해 단 세번. 단 세번만에.
이렇게, 힘든데. 괴로운데.
과연 내가, 수십번이나 더 이런 짓을 했으면.
그때는, 버틸 수 있었을까요?
계속해서 짓눌리는 죄책감.
월광교회에 갇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자책하며 사는 삶.
그래. 차리리, 그냥 여기서 끝내는게 나을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아가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마 다가오는 저 사람은.
자신을 붙잡거나, 죽이려 하겠지.
그러나 붙잡는건 소용없다. 어차피 자신은 교주에 의해 조종당하니, 오히려 역으로 그들이 이용당하겠지.
그런만큼, 자신은 최대한 반항할꺼다.
그렇게된다면 역시.
이 자리에서, 죽게 되겠죠.
'...죽기는, 싫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사실, 여차하면 목숨을 버릴 각오는 했었다.
그러나.
이게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다.
당장 저번까지만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히어로들 이였던만큼, 최소 몇십번은 더 있다가 올 줄 알았지.
이렇게 바로. 세번째 테러에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었다.
'...무슨 생각을. 아니요, 오히려 잘된거죠.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멈출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 그녀였지만.
역시, 조금 무서웠다.
애초에 그녀도 어느정도 사람들의 반응은 알고있었다.
자신보고 괴물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히 히어로는.
자신의 모든 결계를 뚫을 정도로 강한, 그 히어로는.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노? 혐오? 경멸?
그런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녀한테는,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지만.
"....."
그래도, 그녀는 각오했다.
그래. 죗값을 치뤄야지.
언제까지고 도망만 갈 수는 없다.
히어로가 이곳으로 오면.
살짝 도발한 뒤, 싸우다가,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공격을 그냥 맞아주자. 결정적인 한방이 날아올 때.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죽을건지 플랜까지 짠 그녀는.
자신을 향해 경멸하는 표정을 지을 히어로를 생각하며, 굳은 각오를 한 그녀가 마주했고.
마침내, 폭풍을 뚫고 튀어나온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남자였다.
'....뭐죠?'
***
역산한 마법진을 이용해 아주 쉽게 분홍색 폭풍, 일명 마력폭풍을 뚫은 나는, 마침내 태풍의 중심에 도착했다.
바람이 아주 쌩쌩 불던 주변과는 다르게, 그 많던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중심.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하얀 무녀복을 입고, 붉은 색 끈으로 머리를 묶은 여자가 한명 서있었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인상.
살짝 신비로워 보이면서도, 이런 테러를 일으켰다고는 볼 수 없어보이는 착한 인상.
거기에 서은이보다 약간 큰 정도의 키라, 내려다봐야 돼서 그런지 살짝 서은이 느낌도 나긴 했다.
원작에서 굉장히 불쌍하게 죽는 인물이기도 한 달의 무녀. 이 모든 테러를 일으킨 그녀를, 드디어 만났다.
...무심한 듯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눈동자가 겁에 질려있는 그녀의 모습.
그래서 나는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서 웃으며 팔을 활짝 벌리고 인사했다.
원래 첫만남에는 웃어주는게 첫인상에 좋다. 그렇고말고.
그리고 그 결과.
겁에 질려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음, 어쨌든 바뀌었으니까 된건가?
하여튼, 내 갑작스러운 인사공격에 순간 멈칫한 그녀는, 오히려 정신이 들었는지 얼굴을 다시 굳히고, 나를 향해 냉랭한 얼굴로 쏘아붙였죠?
"....당신은 누구인가요? 아니요, 그건 중요하지 않죠. 저를 막으러 오셨다면, 소용 없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숨을 들이 마쉬었고.
그와 동시에.
지이이이이이잉.
그녀의 주위로 수십개의 마법진들이, 보라빛을 내며 허공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붉은 눈동자를 나를 향해 고정한 채.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녀.
"저는 계속해서 싸울겁니다. 당신이 막으시던지, 그건 중요하지 않...."
"백은월."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백은월. 월광교에서 달의 무녀로 불림. 교주에 의해 주워져 그의 밑에서 길러짐. 달의 신이 준 마법을 쓸 수 있음. 월광교를 좋아하지 않고 교주의 사상에 반대함. 그러나 그가 건 주술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 테러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거기까지 나는 한번에 말했다.
내 말에, 마법을 일으키는 것도 멈추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그녀.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을 못차리고 미친듯이 눈동자만 흔들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해주었다.
"은월씨, 그 사이비같은 월광교는 버리시고."
"저와 함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자.
본격적으로 입을 한번 털어보자.
***
[여러분! 말씀드리는 순간 속보입니다! 에고스틱이 비행선을 타고 현재 월광무녀의 테러 현장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고스틱이 폭풍 안에서 그러고 있는 한편.
대한민국은 실시간으로, 뒤집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