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08화 (108/328)

제 108화

화Miss Me?

두번에 걸친 월광무녀의 테러.

히어로들이 애쓰는게 무색할정도로 쉽게 박살나는 도시.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말 압도적인 강함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거기에 더 무서운 점은, 이 테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

협회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해외에서 다른 S급 히어로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월광무녀가 보여주는 변칙적인 마법, 그리고 그녀의 폭풍속에 진입하는 순간 능력이 약화된다는 소문은 모두가 겁을 먹게 만들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무력하게 앉은 채로 그 빌런에 당하게 생긴 것이다. 빌런의 이름이건 이런 짓을 하는 이유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렇게 쉽게.

이제는 정치권에서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그렇게 모두가 불안, 걱정, 좌절, 무력감, 절망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가장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 빌런을 막아야하는 의무가 있는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

서울 히어로 협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매우 어두운 그곳의 사무실에, 한명의 여성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래서, 아마 익명의 제보에 따르면 그 지역에서 오늘 중으로 테러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네. 그러니 계속 대기하도록.]

마지막 테러가 일어난 지 일주일 후.

그때 월광무녀의 세번째 테러가 일어날꺼라는 제보를 받은 그녀는, 자리에서 대기중이었다.

아마도 오늘 안으로 벌어질 테러를 막기위해.

....

그래. 막는다라.

"...하하."

거기까지 생각한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막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하아."

테러리스트로부터 시민들을 지킬 수 없다는, 공포.

단 한명에 의해 무력하게 유린당하는 도시를 지켜만 봐야한다는 절망.

그 모든것이 어우러져, 그녀의 낯빛을 그림자지게 만들었다.

정녕 희망은, 없는건가.

계속해서 월광무녀의 테러를 상대하며, 그녀는 느꼈다.

이건 자기 혼자선 절대로 안된다는걸.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서울은 이대로 계속 파괴되기만 할거라는걸.

그러나.

누가, 누가 그녀를 도와준다는 말인가?

그 순간, 그녀의 눈길이 예전에 북마크했던 한 카페로, 자신도 모르게 향했지만.

그녀는 그 망상을 털어냈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자신이 상대하는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제발.

누군가, 도와줬으면.

그렇게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을 하는 동안.

갑자기 협회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며, 순식간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기 시작했다.

[서울 동부쪽에 분홍색 폭풍우 발생! 월광무녀의 세번째 테러입니다! 스타더스씨, 지금 바로 출동해 주세요!]

다급하게 흘러나오는 스피커의 목소리.

그걸 들은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두운 밤하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하늘까지 솟아오른 진분홍의 폭풍.

찬 밤바람을 맞아가며 하늘을 날아가며.

신하루는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이라고, 무슨 변화가 있을까.

자신은 여전히 지고, 저 빌런은 도망가고, 서울은 또 파괴되고, 시민들은 다치고. 그게 그저 반복 될 뿐 아닐까.

결국 오늘도, 전과 똑같을 뿐이 아닐까.

달라질 게 있을까.

***

지금까지와 똑같이, 휘몰아치는 월광의 태풍.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자. 다들 준비 끝났지?"

서울의 외곽 어딘가.

오늘따라 찬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나는 내 밑에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넵! 끝났습니닷!"

"출항 준비 완료입니닷!"

아주 군대식으로 경례하며, 이륙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우리의 토끼 헬멧 아이들.

"좋아. 그러면 다들 비행선에 올라타! 그리고 하율아, 자. 가자."

"네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하율이를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새하얀 로브를 갖추어입은 하율이.

마치 판타지 게임에나 등장할법한 마법사나 사제가 입을 것처럼 생긴 옷을 입은 그녀는, 자기가 입은 옷이 어색하다는 듯 옷을 꾹 꾹 잡아당기고 있었다.

"...근데 오빠, 이거 꼭 입어야돼요?"

"당연하지. 이게 너의 첫 데뷔인데, 컨셉은 필수야 필수."

"....네."

여전히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옷을 바라보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는 비행선 위로 떠올랐다.

우리 하율이. 나름 서은이와 수빈씨 이후 원년부터 함께한 멤버인데, 한번도 대중한테 알린적이 없다.

물론 이하율의 능력이 전투쪽이 아닌 치유라 딱히 테러에 쓰일 일이 없었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이번에 드디어 할 일이 생겼기에, 이렇게 드디어 데뷔하게 되는 것이다. 에고스트림의 멤버로도 정식으로 발표하고.

...어쩌다보니 서은이 빼고 전부 에고스트림 사이트에 멤버로 등록되어 있는거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어느새 비행선 위에 올라와있는걸 확인했다.

하율이의 하얀 로브는 뭐, 사실 이번에 그녀의 능력을 자세하게 밝힐 생각은 없기에 최대한 있어보이는 걸로 입혔다. 왜인지 신비스러워 보이게 말이다. 그래야 대충 보고도 '아, 쟤는 뭔 능력이 있나보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하여튼, 중요한건 이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핵심은, 우리 스타더스를 구하러 가는거지.

그렇게, 비행선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저 멀리, 분홍색 회오리바람이 작게 보이는 그곳을 향해 본격적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스텔스 모드로 하늘에 뜬 채, 순식간에 날아간 비행선.

"에고스틱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흠. 심상치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만.]

비행선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분홍생 폭풍이 도시를 집어삼킨 곳.

그 근처까지 도달한 나는, 조용히 그 살풍경한 광경을 응시했다.

월광교의 달의 무녀가 일으키는 수십번의 테러 중 하나.

끝내 서울을 멸망시켜, 원작을 시궁창 직전의 완벽한 피폐물로 만들어버린 그 테러.

이 세계에서 내가 꼭 막기로 결정했던 메인이벤트.

그리고 현실이 되어버린 이 일에서.

나는 처음 두번은 나서지 않고, 오롯이 스타더스에게 맡기기로 했다.

내가 원작에서 벌어졌어야 할 모든 피폐이벤트를 부숴버리고, 심지어 스타더스마저 그보다 훨 강하게 성장시킨 덕분에.

지금 시점에서 등장하는 빌런들은, 스타더스에게 한주먹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

그렇기에, 고난을 겪는만큼 성장하는, 이 만화의 주인공이 스타더스인 만큼.

원래대로라면 수십번에 걸쳐 이루어졌을 테러를, 내가 중간에 나서서 막는 대신에

딱 두번. 두번만, 스타더스 혼자 상대하게 했다.

....솔직히, 각오는 했지만 신하루가 혼자 구르는걸 보는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애가 멘탈이 실시간으로 무너지는게 보였다고.

그러나, 꼭 한번은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만큼 눈물을 꾹 참고 나서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리고 이제는 세번째 테러.

드디어, 드디어 나설 때란 말이다.

그렇게 그 세번째 테러가 일어난 즉시, 나는 비행선을 끌고 문제의 현장으로 향했다. 자, 빨리 후딱 달의 무녀만 납치해서 도망치자.

그런 생각을 하며, 실시간으로 분홍색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그곳에 도착한 내가 본것은.

태풍에서 튕겨져나오는 신하루의 모습이었다.

"....아."

튕겨져나와 땅을 몇번 부딪히더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지친 표정.

지금까지도 구르는 신하루를 화면 너머로 지켜보는 것맛으로도 눈물을 훔쳐왔건만.

이렇게 그녀가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내눈으로 본 나는.

생각보다.

너무.

너무, 가슴이 조여왔다.

"다인오빠?"

"하율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이 그 자리에서 튕겨져나가는걸 느꼈다.

저 큰 폭풍에 비하면 너무 작아보이는 그녀.

지친 표정으로,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반쯤 쓰러져 앉은 채 멍하니 폭풍우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그녀 모르게 바로 뒤까지 날아간 나는.

순간, 울컥이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조용히.

그녀의 머리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고생하셨습니다."

***

"크으윽..."

벌써 이 일이 벌어진지도 몇시간.

분홍색 폭풍 안, 강풍 속에서 수십개의 마법진들을 홀로 상대해가며, 그녀는 신음을 삼켰다.

여전히, 그녀 혼자 상대하기에는 너무 막강한 적.

이미 전의 두번의 테러로 깨달았지만, 역시.

그녀 혼자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었다.

절대.

"하아... 하아..."

그러나, 뭐라도 해야되었기에.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와, 이 폭풍우를 뚫기 위해 발버둥 치고는 있지만.

이미 그녀는 속으로는 생각했다.

아. 역시.

안되겠구나.

오늘도.

그리고, 다음에도.

"....흐익!"

그녀의 옆쪽에 갑자기 생겨난 마법진에서, 쏟아져나오는 보라빛 광선들.

가까스로 팔을 돌려 막아보았으나, 옆에서 폭발하는 구체는 막지 못한 그녀는.

끝내 튕겨져, 하늘을 날았다.

....아.

역시 안되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없을거같네.

이번에도.

다음에도.

"...크윽."

공격에 맞고 끝내 폭풍 밖까지 튕겨져나온 그녀.

땅에 몇번 부딪히며 끝내 멈춘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한쪽 무릎을 땅에 굽힌 채.

지친 눈길로, 여전히 맹렬히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바라보았다.

이길 수 없다.

죽을 것 같다.

"....하아, 하아."

일반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 히어로가 나타나 구해준다.

그럼 히어로들은.

히어로들의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구해줄 인물은 있는가?

전에도 생각했었지만.

있을리가 없지.

"......"

그렇게. 깊은 절망감을 품고.

그녀는, 멍하니 폭풍우를 바라보았다.

결국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다.

그냥 저것은, 계속해서 도시를 파괴할거고.

이대로, 천천히, 모든건 끝나고 말거다.

결국, 체념의 빛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

여기까진가보다.

이제는 어떠한 이변도, 일어날 수 없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폭풍우를 바라보던.

그때.

갑자기 따스한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위에 올라왔다.

"....고생하셨습니다."

"....?"

그렇게 풀린 눈으로,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로. 멍하니 고개를 올린 그녀가 본것은.

"....에고스틱?"

"네. 접니다."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숨긴채.

따스한 손길로, 자신을 향해 숨길 수없는 걱정의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그였다.

***

"....네가, 왜, 여기 왔어?"

너무나, 지친 상태인만큼.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나한테 말을 건네는 신하루.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안에서 복받아 오르는 무언가를 꾹 삼킨 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히어로가, 이러고 있는데. 숙적인 빌런으로서 당연히 와봐야죠."

"....하하."

"웃을 힘은 아직도 있으신가 봅니다? 허...."

여전히 지친 표정으로 작게 웃는 그녀를 향해.

그렇게, 나는. 여전히 안에서 솟구치는 무언가를 삼킨 채.

그녀한테 살짝 웃으며, 조용히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정말. 잘싸우셨습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러니."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해줘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억지로 안올라가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은 뒤.

나는 그녀를 쓰다듬던 손을 떼고, 그녀가 뭐라 입을 열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폭풍속으로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그래.

이제는.

이 지랄맞은 일을 끝날때가 됐다.

***

다, 끝난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체념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에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 위를 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의 손이 있던 곳에서, 여전히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결국.

모든게 끝인거 같은 순간.

더이상 꿈도, 희망도 없을 때.

나를 위해 나서주는 건.

"....."

그녀는 조용히, 폭풍쪽으로 뛰어가고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맞추어 펄럭이는 그의 망토.

....그래.

그런거였구나.

...결국, 그였구나.

그렇게 앉아있던 그녀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폭풍 안쪽으로 사라질때까지

계속

계속, 지켜만보고있던

그녀의, 심장은.

두근-

자기도 모르게, 작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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