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화
화어두운 밤
분홍빛의 폭풍이 서울의 도심을 박살낸지도 벌써 몇시간.
月光
어두운 저녁 하늘에, 분홍색으로 빛나는 두 글자의 한자가 쏘아지는걸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빌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불러일으킨 분홍빛 기운과 함께.
그리고, 그 빌런이 떠난 자리에선 히어로들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이 내가... 밤에... 이렇게 무능하다니.... 이건 말도 안된다고오!! 으아아아... 그냥 나가 죽어야겠다. 왜 살지?"
구석탱이 한쪽에서 쭈구려 앉아 혼자 땅을 파고 있는 섀도우워커.
"아니.. 다인씨는 왜 전화를 안받는거야? 하아... 좀...."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 휴대전화를 얼굴에 갖다댄 채, 초조한 표정으로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며 중얼거리는 아이시클.
그리고 그 한가운데.
누구보다 침통한 표정으로, 그 빌런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스타더스가 있었다.
"......"
폐허가 되어버린, 그 빌런이 있던 자리.
오늘 낮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번창하던 이 도시가, 단 하룻밤만에 이렇게 망가졌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쓸쓸한, 잔해만 나뒹구는 이곳에서.
신하루는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도시가 박살난게 문제가 아니다. 건물들이야 다시 지으면 되는거니까.
문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저 빌런을 잡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월광, 이라는 단어만 하늘에 쏜 채 사라진 저 빌런은 아마 높은 확률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저 빌런이 다시 돌아와 테러를 일으킬 때, 자신은 그때도 여전히 이를 막지 못할것 같다는 거였다.
"....."
그 사실을 다시금 자각한 순간.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절망감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저 빌런은 아마 돌아오겠지.
그리고 또 사람들을 해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할거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이렇게 무능력하게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런 좌절감을 예전에도 느낀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누군가가 자신을 북돋아 주었었다.
그리고 어떨때는, 스스로 직접 나서서 사전에 막아주곤 했다.
그리고 그때는 잘 몰랐었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던거라는걸.
그가 없다면, 얼마나 일이 끔찍하게 흘러가는지.
그가 없는 이 순간에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
그리고.
이번엔 그가 오지 않는 다는걸 깨달은 그녀는.
아마 다음번에도 오지 않을 것 같다는걸, 깨달은 그녀는.
그 사실이, 자기도 모르게 서러워서.
전혀 서러워 할 일이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래서.
그저 어두운 밤하늘 아래 서, 앞에 펼쳐진 폐허를.
멍하니.
계속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테러 이후 밤하늘을 밝힌 月光(월광), 무슨 의미?]
[몇시간동안 계속된 테러, 히어로들은 어째서 막지 못했나.]
[[단독]섀도우워커 현재 집에서 칩거하고 있는걸로 밝혀져...]
[협회. 비상상황시 시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비상대책메뉴얼 확립 예고.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월광이라 밝힌 무녀복을 입은 여성의 정체는? 협회 통칭 월광무녀, 그녀의 정체를 찾아서.]
서울의 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핑크 폭풍 사태.
범인의 정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오직 월광. 이 두글자밖에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뒤집어놨다.
이미 빌런의 테러에도 꽤나 익숙해진 한국이 이정도로 뒤집어진 이유는 단 하나.
A급 히어로 3명이 달라붙었는데도, 이기지 못했기 때문.
그것도 그중 한명은 밤에 한해서는 거의 무적으로 일컬어지는 섀도우워커였기 때문에, 시민들의 충격은 더 컸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사상자는 많지 않았지만, 다음에도 이럴꺼라는 확신은 만무.
3명의 히어로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협회가 대응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론에 말하고는 있지만, 그게 끝이였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들끓고 있었고.
그건 커뮤니티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
[아니 ㅅㅂ 월광무녀인가 뭔가 쟤가 그렇게 쌔냐?]
얼굴 잘 보이지도 않네.
혼자서 도시 전체를 무슨 분홍색 토네이도 같은걸로 물들인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스타더스랑 섀도우워커가 달려들었는데도 짐?
애초에 섀도우워커가 어떻게 진거냐 이해가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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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애초에 섀도우 걔 그 빌런이 있는 곳까지 접근도 못했다는데? 걍 쪽도 못쓰고 당했음]
[전문가들 말로는 그 무녀인가 뭔가가 히어로들 능력을 약화시키는 무언가를 가졌을 확률이 높대더라]
ㄴ[그럼 ㅅㅂ 혼자서 태풍도 일으키고 별도 쏘고 무력화 능력까지 있다고? 그걸 어케이김?]
ㄴ[그러니까 못이긴다고 지랄 난거잖아 지금]
ㄴ[심지어 전자기기도 근처에서는 안통한다는 얘기도 있음ㅋㅋㅋ]
[이지경이면 해외에서 S급 히어로 빌려와야 하는거 아니냐?]
ㄴ[무력화 능력이라 아무도 안온다는거 같던데... 거기에 애초에 스타더스는 거의 S급이고 섀도우는 밤에는 사실상 S급인데도 털린거보면...]
[그냥 좆된듯]
*
[이시각... 제일 그리운 사람...]
부산에서 호텔테러 있을때 혼자서 한방에 처리한 '그사람'
미친 거대 지렁이가 기어다닐때 미리 다리 부숴둔걸로 막은 '그 사람'
한은그룹이 미쳐서 거대 로보트로 서울 침공할때 탈취해서 막은 '그 사람'
이 시대 최고의 GOAT
"망고스틱" 그리우면 우리... 개추 눌러볼까?
[추천]3807 [비추천]127
=[댓글]=
[아아...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S급 히어로 애플망고 돌아와 제발]
[에고스틱 ㄹㅇ 어디감? 에고스쿼시인가 스쿼드인가에 빨리 저 여자좀 캐스팅해서 데려가!!!]
[하 시발 이번 테러로 집 부숴졌는데 피해 보상금 신청 할 데가 없더라... 에고스틱은 매번 해줬는데]
ㄴ[애초에 ㅅㅂ해주는게 이상한거 아니냐? ㅋㅋㅋㅋ]
[에고스틱이 테러할 때가 제일 좋았지]
[하 망고야 진짜 눈딱감고 한번만 도와주면 안되냐? 스타더스 섀도우워커 아뭐시기 다 망하고 이제 남은게 너밖에 없다....]
ㄴ[아니 ㅅㅂㅋㅋㅋ 에고스틱은 빌런이야 이새끼야 정신차려!!]
ㄴ[에고스틱이 이번 테러에 끼어들면 저 월광무녀인가 뭔가를 도와주겠지 왜 히어로를 도와주겠냐]
***
어. 도와줄 예정이야.
"하아... 그냥, 다음 테러때 바로 나설까?"
"오빠. 분명 2번까지는 그냥 가만히 있는다음에 3번째 테러때 나선다면서요? 왜이래요?"
"아니... 크흑! 우리 스타더스가 저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니!"
"다인씨... 그래도 일단 마법진들중에 저 빌런의 능력을 강화시키는거는 부숴놔가지고 피해도 적잖아요."
"그래. 야, 너가 전부터 계속 뭐라 말했냐. 스타더스 쟤 성장시킬려면 이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원래 4번은 냅둘꺼 2번으로 줄인거라며. 근데 한번하면 뭔소용이냐?"
"알았어... 알았어."
나는 항복의 의미로 두손을 들고 소파에 털썩 등을 기댔다.
그래. 이게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기는 하다. 요즘 스타더스가 한방순삭 하는거 보면, 정말로 이렇게 구를 기회가 흔치않은 만큼 뽕 뽑아먹어야 하는건 사실. 거기에 마법진도 내가 따로 관리하고 있으니, 난이도 조절까지 가능하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안전한 성장찬스다.
다만, 하루가 구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이게 된다는게 문제인데... 에휴. 그래. 앞으로 한번만 참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쯤, 하율이가 내 방쪽에서 폰을 들고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다인오빠. 이설아라는 사람한테서 계속 전화오는데요?"
"아니. 걔 아직도 그래? 그냥 전원 꺼버려."
"그래도 되는거에요?"
머리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하는 하율이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꺼져버리는 휴대폰.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이설아 쟤한테 진실을 얘기하면, 신하루가 감각적으로 이설아 안의 여유를 눈치챌 수도 있기 때문.
3번째 테러는 내가 직접 나서서, 멈출것이라는걸 전해주면 이설아 마음이 편해서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사실 이설아가 원작의 북쪽으로 올라가 베히모스 때려잡는 이벤트가 사라진만큼, 이번 기회에 쟤도 성장해도 나쁠게 없으니.
...근데, 물론 이번 사태가 다 끝난 이후에 한소리 들을거 같긴 하지만.
"...하아."
티비에 나오는 스타더스의 이를 악문 표정을 보며, 나는 또 한숨을 삼켰다.
미안하다 하루야. 내가 다다음번에는 꼭 갈게.
그러니까, 다음번까지만 참자. 알겠지?
"크흑!!"
"하아... 이제 이번 일 끝날때까지 얘 계속 이러는거냐? 큰일났네..."
옆에서 최세희가 뒷목잡고 쓰러지는걸 들으며, 나는 티비에 집중했다.
스타더스의 열성 팬으로써, 앞으로의 시간은 정말 끔찍할거 같은 예감이 들 뿐.
에혀.
***
그렇게 그 사건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스타더스 사진 정리해가며 팬카페에 올릴때 또 눈물 한바가지 쏟고.
스타더스가 폐관수련하고 있다는 말 듣고는 또 쏟고. 하루야, 너가 그래봤자 못이겨!
협회가 대응책과 비상대피요령을 다시한번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월광이라는 의미가 월광교라는, 베일에 싸인 종교와 관련이 있는게 아닌가...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며.
내가 협회에 또 한통의 편지를 쓰고 난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결국 또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거대한 분홍색 소용돌이가 등장하며.
월광교, 달의 무녀의 두번째 테러가 시작되었다.
"아이고!! 하루야!!!"
"오빠... 제발..."
그리고 신하루랑 친구들은 또 탈탈 털리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