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05화 (105/328)

제 105화

화그녀의 절망

에고스틱의 빌런연합 소속인 데스나이트와 마지막으로 싸운 이후.

스타더스, 신하루는. 나름대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내 이름은 파프리카나! 너를 파프리카로 만들어주으아아아아아악!!!'

가끔씩 튀어나오는 쫄쫄이 입은 정신병자들은, 주먹 한방으로 처리해주고.

'제 이름은 셀레스티언. 스타더스, 당신을 쓰러트리러 왔습니다. 후후, 당신을 여기서 꺾어드리죠!'

...

'....흑흑,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아악! 때리지마세요! 이거 과잉집행이야!'

특수한 능력을 가진 채 덤벼오는 빌런들도, 전부 공평하게 주먹 한방에 처리하며.

"....."

그렇게 아무 무리없이 기계처럼 빌런을 제거하며 사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아."

....그리고 그녀는 그런 일상이 반복되며.

점점 자신이, 무뎌지는걸 느꼈다.

[A급 빌런 에고스틱의 빌런연합이 마지막으로 데스나이트를 출범시킨 이후, 다시 한동안 잠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에고스트림은 분기당 한번씩 테러를 일으킨다는게 정설이 되었는데요. 철규씨, 올해 안에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킬거라고 보시나요?]

[아, 그건 예측할 수 없지요. 사실 매분기테러도 그저 네티즌들 사이에서 근거없이 떠도는 낭설이거든요 이게. 사실 에고스틱이 일으키는 테러를 보면 굉장히 불규칙적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의 테러 주기를 보면 이런 패턴은 확실히 존재하긴 합니다.]

[그게 뭔가요?]

[바로 너무 오래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면, 슬슬 잊혀지기 시작할때쯤 다시 빵! 하고 나온다는겁니다. 그리고 그가 판단하는 오랜시기라는게 대략 3개월에서 4개월 사이로 추정되고요. 즉, 언제 올지는 모른다. 단, 대략 삼사개월동안 오지 않았다면 그때는 무조건 나온다 이겁니다.]

[아하. 그러니까 테러가 일주일 간격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직전 테러와 비교해 4개월을 넘기진 않는다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점은, 그게 꼭 테러는 아니라는겁니다. 자기의 빌런 소개든, 아니면 다른 빌런의 테러를 인터셉트하는 방식이든 어떠한 방법으로도 등장할 수 있죠.]

[결론적으로 저희가 확실히 에고스틱은 이전에 볼 수 있다! 라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그전에는 오고, 그때까지 오지 않는다면 그 시기에는 무조건 나올겁니다.]

삑-

티비에서도 가끔씩 흘러나오는 에고스틱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하루는 조용히 채널을 돌렸다.

...사실 나오자마자 돌렸다기에는 볼거 다보고 채널을 바꾸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녀는 요즘 잡빌런들을 처리해가며, 의도적으로 에고스틱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자신의 의지를 대변하듯, 그녀는 최근들어 단 한번도 에고스틱의 팬카페에 들어가지 않았다.

"......"

물론, 이제는 습관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북마크를 눌러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인기글만 한번 슥 훑어보고 나올뿐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하루야. 너 너무 에고스틱에만 몰두하는거 아니야?'

자신의 친구 이설아가 해줬던 말을 듣고 그녀가 깨달은 것.

그래.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도 하나의 빌런.

세상에 빌런이 얼마나 많은데, 테러 하고 있지도 않는 빌런이 지금쯤 뭘하고 있을지 생각하는건 시간낭비일 뿐.

그렇게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한 생각을 줄여나갔다.

그는 테러를 안할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도.

그의 이름은 무엇이고, 평소에는 어떻게 지낼까, 라는 생각도.

대체 어째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왜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만을 콕찝어서 테러를 한걸까, 라는 생각도.

왜 빌런이면서 신하루 자신을 응원하고, 또 자신을 위해서 몸을 던지는지도.

전부, 전부.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묶어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지금 테러를 일으키고 있지 않다.

그가 모습을 보이질 않을 때는 어차피 마땅히 잡을 방법도 없으니, 굳이 나타나지 않는 그를 신경쓰기 보다는 다른 할일을 하는 것이다.

...라고, 이성적으로 생각은 하긴 했지만.

"하아...."

그래도 역시.

에고스틱이 없으니, 일상은 평온하게. 다른 말로는 무료하게. 흘러갔다.

이제는 자신의 능력도 많이 강해져, 다가오는 모든 빌런들이 그냥 샌드백으로 보일 지경.

오직 에고스틱만이 자신이 전력을 다하게 만든다는걸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새해만을 기다렸다.

'...내년에는, 올려나.'

그리고 그렇게, 한해가 지났다.

***

그렇게 결국 그해 끝까지, 에고스틱은 오지 않은 채 평온하게 흘러갔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그래. 이 편지. 첫눈이 내리는 날 서울에서 테러가 일어날꺼라는 제보인데, 솔직히 장난으로 보낸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그날은 대비를 단단히 해두도록."

그리고, 정기 히어로 협회 회의에서 나왔던 말.

그때 있었던 제보대로, 실제로.

첫눈이 내리는 서울 저녁.

콰아앙.

서울 한복판에서 실제로 테러가 일어났다.

그걸 듣자마자 신하루는 혹시 에고스틱의 테러인가 했지만, 방송이 켜지지 않은 걸 보니 그럴리는 만무.

살짝 그녀가 김이 샜었을 때, 협회는 이미 섀도우워커가 출동했으니 딱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줬다. 밤에 테러를 일으키는 놈은 오랜만이라고, 웃으며.

지금까지 저녁에 일어난 테러를 섀도우워커가 단기간에 처리하지 못한 적이 없는 만큼, 그녀는 슈트를 입으면서도 생각했다. 아마 도착했을 즈음이라면 이미 사건이 끝났을거 같다고.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때의 전황은, 상당히 달랐다.

소리를 지르며 대피하는 수많은 시민들. 속절없이 부숴지는 건물들.

"으아악!! 내 능력이 왜!! 안통하냐고!!"

휘이이이이이이잉.

기괴한 분홍빛과, 엄청난 강풍이 들어닥치는 폭풍으로 가득 찬 도시의 밤하늘.

그 앞에서, 섀도우워커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불길한 분홍빛만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상황을 보며. 신하루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된거같다.

***

첫눈을 만끽하던 평화로운 도심이,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한건 오래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이 잔잔하던, 도심의 거리 한복판에 어떤 하얀 도복을 입은 여자가 걸어들어 오더니.

휘이잉-

갑자기 그녀를 중심으로, 분홍빛의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갑작스럽게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회전하는 분홍빛 토네이도.

휘이잉-

콰아아아아아앙.

갑자기 육안 멀리서도 보이는 분홍색 회오리의 등장에, 이미 테러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도심에 비명소리와 사이렌 울려퍼짐을 시작으로, 평화로운 밤은 점차 커지는 거대한 분홍빛 토네이도로 물들었다.

마치 몽환적인 CG처럼, 삭막한 회색의 도심 한복판에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듯이 커지는 분홍빛 토네이도와.

점차 허공에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는 보라색의 별모양 무언가.

그리고 태풍이 사람들을 더이상 서있기도 힘들게 함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태풍 사이사이에 생겨난 보라색 별들이

물리력을 가진채 날아다니며 도심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저녁의 도시.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황하지 않았다.

밤에 일어난 테러니까.

저녁 한정으로 무적인 섀도우워커가 다 처리해 줄꺼니까.

그리고 지금, 그 섀도우워커는.

"으아악!"

그 분홍빛 태풍 앞에서, 무력하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길길이 날뛰고 있을 뿐이었다.

***

"그러니까. 저 분홍색 태풍에 가까이가면 힘이 약해진다고요?"

"그래. 아예 내 비기인 그림자이동도 안된다고!"

분홍빛으로 물든 서울의 도심.

경고의 편지대로 협회가 미리 요원과 하급 히어로들을 도심 곳곳에 대기시켜둔 덕분에 민간인들은 미리 다 대피한 그곳에서, 히어로들은 거리에 서서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열변을 토하는 섀도우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시클.

"아니. 진짜 그 정도라고요?"

"그래. 이상하게 저 태풍의 중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며 능력도 사용이 안된다. 저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보라색 별모양 구체에 한방 맞으면 몸이 튕겨져 나간다고."

"...큰일났네."

부산에 있다가 섀도우워커에 의해 서울로 올라온 아이시클은, 도심을 점거한 분홍빚 태풍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밤의 섀도우워커를 이길 상대라면, 애초에 자신이 상대가 될까?

"맞다. 스타더스, 하루는요?"

"일단 가보겠다고 안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섀도우가 그렇게 말한 순간.

쿵.

저 분홍빛 태풍 안쪽에서, 스타더스가 무엇에 부딪힌 양 튕겨져나와 지면에 추락했다.

"하루야!"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일어나는 스타더스를 향해 아이시클이 깜짝놀란 채 서둘러 그녀를 향해 다가갔고.

"괜찮아? 너..."

서둘러 그녀를 진찰하던 아이시클은, 이내 스타더스의 눈을 마주치고는 식겁했다.

저 태풍쪽을 바라보는 스타더스의 눈.

그 눈이 거의 불타듯, 독기로 가득 차있었다.

"비켜. 한번 더 해볼께.."

"어. 어..."

마치 씹어먹듯 내뱉는 그녀의 말에 뒤로 물러난 이설아.

그리고 그녀를 지나쳐, 스타더스는 태풍 속으로 들어갔고.

고민하던 아이시클도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또야.'

빌런이 일으킨 태풍 속으로 진입한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긴 머리카락이 미친듯이 날리며, 눈을 뜨고 걷기도 힘들 정도로 휘몰아치는 강풍.

그리고 기묘하게도 이 안에만 들어오면 급속도로 약해지는 그녀의 힘.

"흐윽."

신하루는 눈을 겨우겨우 떠가며, 그녀를 향해 맹렬히 날아오는 커다란 보라색 별모양의 무언가를 간신히 주먹으로 쳐냈다.

쾅. 쾅.

넓은 도심이 분홍색 바람에 뒤덮였고.

그 사이를 정체를 알 수없는 보라색 별들이 떠다니며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상황.

그리고 그녀가 몇번의 시도끝에 그걸 다 뚫고 겨우겨우 중심쪽으로 접근하면.

지이이이잉-

보이지 않는 안쪽 어딘가에서, 보라색 광선같은게 쏘아지는 것이다.

-콰과광

"크윽..."

가슴 앞에 팔을 X자로 하여 버텨봤지만, 약해진 그녀가 버틸 수 있을리 만무.

결국 그녀는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옆에서 같이 들리는 설아의 비명소리.

온갖 공격에 간신히 뒤로 튕겨진 둘은, 숨을 헐떡였다.

여전히 섀도우워커는 태풍을 뚫어보겠다고 끙끙 애쓰는 가운데.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요즘 너무 평온하다 했다.

왜 몰랐을까? 이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있고.

그녀보다 강한 적은 어디에선가 늘, 도사리고 있다는걸.

저 앞에 빌런이 있고,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해치고 있는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절망감.

지금까지 모든 빌런들을 주먹 한방에 해결하며 자만했던 지난 세월들에 대한 벌일까?

에고스틱이 비행기를 떨어트렸을 때 이후로 처음으로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옆에서 힘을 내라고 말해줄 에고스틱도 없다.

그리고 저 빌런은, 에고스틱처럼 웃으면서 물러나지는 않을거다.

그리고 당연히, 에고스틱은 지금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더욱 세게 악물었다.

이건 실전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야, 그녀는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에고스틱은 지금까지 나를 봐주고 있던 거구나.

그와 한 테러는, 그냥 장난이었구나.

진짜 테러란, 이런거였었지.

"...큰일났네. 어쩌지... 어? 하루야, 너 울어?"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말을 건 설아의 말에, 그제서야 그녀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무슨 소리야?"

설아의 말에 그녀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얼굴에 손을 갖다대었고.

그녀는 그제서야 느꼈다.

자신의 볼을 타고 그녀도 모르는 사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는걸.

***

"아이고!!! 흑흑흑 하루야아!! 내가 미안하다!! 지금 갈께!!"

"오빠 미쳤어요? 진정해요!"

"야 왜 이래! 앉아!"

"다인씨 진정하세요! 오늘은 지켜만 보신다면서요!"

티비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홍수처럼 쏟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옆에있던 일행들이 강제로 붙잡았다.

아니! 우리 스타더스가 울고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애가 속상해서 울고있잖아!!

"안돼! 스타더스야아 내가 간드아아!!!"

"언니!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오빠한테 전기좀 쏴봐요!"

"놔! 난 갈거... 그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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