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97화 (97/328)

제 97화

화경매장

빌런의 삶은 굉장히 바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빌런 연합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경우는, 특히.

일단 단순히 테러 하나 기획하는데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거기에 또 다른 빌런들을 꼬신다? 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

테러도 만만치 않다. 해가 지고 나면 섀도우워커라는 미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테러 시작 몇분만에 바로 진압하기 때문에, 시간이 낮으로 제한되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밤이 악당들의 시간이 아닌건 아니다.

"휴우...."

어두운 서울의 어느 거리.

사람들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자, 코너쪽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

검은색의 리무진이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멈춘 차.

그리고 그곳에서는, 정장을 입고 가면무도회에서 쓸법한 가면을 쓴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확인 부탁드립니다."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그를 향해,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티켓을 건냈다.

이설아를 괴롭혀서 힘들게 얻은, VVIP용 티켓.

잠시 그걸 확인하던 남성은, 이내 확인되었다는 듯 나를 향해 다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확인되셨습니다. 자, 여기 타주시길 바랍니다."

리무진 뒷자석에 문을 열어준 남성을 따라,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안쪽은 빨간색 가죽이 뒤덮은 모습.

나는 그곳에 앉아봤다. 음, 푹신하니 좋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과 동시에, 차가 조용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차 안에서 내가 몸을 눕히자, 앞에있던 남성이 내게도 가면을 건내주었다.

"고객님. 고객님의 가면입니다. 착용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도 중세시대 배경의 귀족나오는 드라마에서 나올거같은 가면을 하나 받았다.

...어차피 다들 기본적으로 인식저해를 하고있는걸로 알고있는데, 이게 의미가 있나?

그렇게 리무진은 텅빈 도로를 계속해서 달려, 서울 밖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창밖을 보며, 그냥 멍때릴 뿐이었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경매장.

그것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세계적인 불법 경매장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왜 아직까지 이런게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체 이 세계는 좀 하자가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어느 한적한 곳의 폐건물.

그리고 차는 그대로 건물 아래 주차장스러운 곳으로 내려갔고.

"내리시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열린 리무진 바깥으로 내렸다.

그리고 직원에 도움을 받아 따라가자.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떠올랐다.

뻥 뚫린 커다란 공간, 화려하게 빛나는 샹들리에와 금색으로 수놓아진 벽지.

그리고, 화려한 가면을 쓴 다양한 사람들까지.

위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생기가 도는 이곳에.

나또한 가면을 쓰고 양복을 입은 채, 당당히 입성했다.

이곳이 전세계에서 온갖 돈이 썩어넘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엑스칼 경매장.

그와 동시에, 이 순간 어떤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비극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막으러 왔다.

'......'

그렇게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곧 본격적인 경매가 벌어질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비장한 일이라고 해봤자 돈지랄이 다이기는 한데, 아무튼.

*

그렇게 나는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두운 공간에, 가운데 꾸며진 경매가 이루어질 무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좌석들이 계단형으로 있는, 그냥 딱 뮤지컬 극장같은 형태.

나는 거기 자리중 한곳에 앉아, 하품이나 했다.

언제 시작해.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아. 지금 시작하네.

무대에 불이 켜지며, 사회자가 등장했다.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데, 대충 흘려들었다. 뭐 역사와 전통이 깊은 경매가 어쩌구, 예술에 심미안이 있으신 고객들이 어쩌구, 오늘 들어오는 물품들은 굉장히 귀하기가 어쩌구....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첫번째 물품입니다! 바로크 시대에 사용된 촛대로, 현재는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3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3200! 3200 나왔습니다! 다른 분 계신가요? 3, 2, 1. 이대로 127번님께 낙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아주 귀중한 물품이죠. 이집트 정부에서 유출된 블랙리스트입니다. 선제시 받겠습니다."

"현재로써는 기록이 말살된 S급 빌런 켈러스의 모습이 찍힌, 세상에 몇안되는 희귀한 물품입니다. 10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는 상품들.

이곳이 바로 정부와 협회의 눈을 피해 팔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을 다 파는, 엑스칼 경매장이었다.

고대 유물부터 정부의 최신 문서까지 대충 돈되는건 다 판다는 이름값답게, 정말 별별 이상한거까지 다 파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걸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더 신기하다. 다들 돈이 남아 도나벼.

하여튼, 이런 쓸데없는 물건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차분히 기다렸다. 내가 원하는 물품이 나올때까지.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기다리던 물건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대한민국의 B급 히어로 스워디어가 생전에 늘 차고다니던 반지입니다. 그가 최후에 순간 흘린걸 저희가 입수했습니다. 6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바로 저 반지.

원작에서 훗날 S급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모든 원흉이 되는 저 반지를, 내가 여기서 가로채가야 한다.

아직 아무도 저것의 가치를 모를때.

"7000달러 나왔습니다! 7000달러, 더 있으십니까?"

"7500! 7500 나왔습니다. 8000! 8000나왔습니다. 더 있으신가요?"

그렇게 나름 가열되는 경매장.

그리고 마침내, 저쪽편에 있는 육중한 사내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10000 나왔습니다! 10000! 더 없으신가요? 그러면 이대로 낙찰하겠습니다! 3, 2..."

그리고 사회자가 낙찰시키려던 그 순간.

무언가를 확인한 그의 눈이 커졌다.

"50000..! 50000 나왔습니다!"

갑작스럽게 5배가 뛰어버린 금액에, 사회자가 흥분에 젖어 외쳤다.

주위에서 무관심하게 관람하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갑자기 저 쓸데없어 보이는거에 돈을 태우는 미친놈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모습.

여기서 5만을 부른 사람은, 당연히 나다.

상남자는 화끈하게 지르는 법.

옆쪽을 슬쩍 보니, 양복을 입은 남성이 부들대는 모습이 보인다.

쟤가 바로 처음에 만을 불러 낙찰당할 뻔한, 그리고 실제로 원작에서는 낙찰에 성공하는 놈.

VK기업의 사장 류진택. 그리고 미래의 S급 빌런중 하나다.

원작에서는 경매장에서 심심해서 사본 반지의 힘을 깨닫게 되고, 그걸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놈.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수많은 힘으로 이설아의 인수합병 프로젝트에 상당한 방해가 되는 놈이다.

물론 이 반지를 내가 갖게 되었으니 이제 이루어지지 않을 미래지만.

심심해서 던져본거긴 하지만 그래도 뺐기니까 기분이 좀 상했는지, 놈은 소심한 반항을 해봤다.

"51000 나왔습니다 51000!"

응 좆까.

"100000!!! 십만 나왔습니다 십만! 더 없으신가요? 그러면 3, 2, 1... 십만에 낙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B급 히어로가 쓰던 반지 하나에 1억을 태우는 내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게 느껴졌다.

사회자는 아주 뻥튀기시켜서 파는데 성공해서인지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그렇게 소란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보며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오늘 나온 모든 물건들중에 이게 제일 귀한건데 말이지.

아마 이 반지의 진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면, 값어치가 십억 백억을 넘어 조단위로 올라갔을거다. 애초에 돈주고 살 수 있을만한게 아니거든.

여기있는 사람들 다들 자본금은 기본적으로 몇억씩 가지고 있을텐데 말이야.

하여튼, 볼일을 다본 나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더 볼건 없어 이제.

그렇게 옆쪽에서 부들거리고있는 놈을 피식 비웃어준 뒤, 나는 밖으로 나와 물건 먼저 수령했다.

가운데에 보라색 진주같은게 박혀있을 뿐인, 굉장히 평범해보이는 반지.

나는 그 반지를 케이스와 함께 주머니에 싸서 나온 채, 밖으로 나왔다.

휴우. 이걸로 하나의 목적은 달성했다.

....근데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

어찌어찌 집으로 복귀해, 도착하자마자 쓰러져서 잔 이후, 다음날.

"오빠. 이게 대체 뭐길래 밤에 그난리 치면서 나갔던거에요?"

거실에서 반지를 슥삭슥삭 닦고있던 내게, 서은이가 굉장히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봉인의 반지."

"네?"

"우리 다음 테러는 이걸로 한다."

"....아니, 대체 이게 뭔데 그래요?"

"보면 알거야."

반지의 중앙에 박혀있는 보라색 알갱이.

나는 그곳을 시계방향으로 2번, 반시계방향으로 다시 한번 돌려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지에서 빛이 번쩍하고-.

[....음? 누가 나를 깨운거지?]

반지에서, 중세시대에서나 입을법한 기사 갑옷을 입고 있는 반투명한 놈이 튀어나왔다.

".....이게 뭐에요?"

경악하는 서은이와, 아직도 어리둥절해 보이는 검은색 갑옷을 입고있는 놈.

혼란스러운 그 상황에서, 나는 덤덤히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데스나이트."

[음? 나를 말하는겐가? 내 이름은 그런게 아닌 세인트 페트....]

"아니. 너 이름은 오늘부터 데스나이트다."

데스나이트가 어감이 더 멋지거든.

이제부터 너 이름은 데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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