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화
화집착
이설아.
그녀에게 오늘은, 근래 들어 제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녀가 점찍은 남자 에고스틱과 함께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테러를 진압하는 자신의 모습을 선보인 날.
기존에 지지부진하던 자신의 인지도와 명성도 단숨에 끌어올리고, 또한 아이시클과 에고스틱을 엮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
거기에 테러 과정도 그와 함께 사전에 계획한 대로 흠잡을데 없이 마무리 한데다가, 벌써부터 자신의 회사의 주가도 오를 조짐이 보이는, 완벽한 하루였다고 볼 수 있다.
....테러 후의 에고스틱, 그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지쳐보여 걱정된다는 것만 빼면, 정말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 그와 작별을 나누고 있을 때, 그녀와 에고스틱이 있던 곳으로 갑자기 그녀의 친구 스타더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
꿀꺽.
이설아는 그녀에게 점차 다가오는 스타더스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미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과 웃고 떠들던 에고스틱은 배를 이끌고 서둘러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설아 그녀는.
홀로 남아, 스타더스를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코앞까지 날아온 하루.
그리고 그런 하루의 표정은.
"......"
그저 무표정할 따름이었다.
...굉장히 무섭게도.
'....서, 설마 들은건 아니겠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본 이설아는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설아가 하루와 친하게 지낸지도 벌써 몇년.
그렇게 오랫동안 하루의 옆을 지켜온 이설아도, 그녀가 이렇게 싸늘한 무표정을 짓는 건 거의 처음 봤다.
그러나 이설아가 누군가.
그녀도 나름 재계와 정치판에서 구른, 노련한 사람이다.
이런일로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는건 하수.
그러니만큼, 이설아는 애써 웃으며 깜짝 놀랐다는 듯 하루에게 말을 건냈다.
"어머, 하루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알고 여기까..."
"둘이, 뭔 얘기했어?"
그리고 그런 이설아의 노력은, 말을 끊고 무표정하게 툭 던진 하루의 한마디에 의해 침몰하고 말았다.
그렇게 무심히 질문을 던진 신하루의 기색은 여전히 차분했으나, 이설아는 그 와중에도 평소와 다른 점을 찾아냈다.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눈, 그리고 하루가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싸늘한 기색의 말.
슬슬 이설아는 평정심을 잃을 위기에 쳐했으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말을 더듬지 않고 여전히 웃는 채 답을 했다.
"응? 아, 봤구나? 별건 아니라 에고스틱 쟤가 도발하니까 그냥 맞상대 해줬던거지. 하하... 그나저나 하루야, 서울에 있지 않았어? 어떻게 부산..."
"웃고있던데?"
그리고 그런 이설아의 말은, 다시한번 신하루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둘이, 대화하면서, 웃고있던데?"
여전히 싸늘한 기색으로 가라앉은 채, 이설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는 하루를 보며.
이설아는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아 그거? 그냥 서로 비꼬면서 비웃듯이 말해서 그런가? 별거 아니야."
나름 자연스럽게 답했다고 생각한 이설아였으나.
자신의 눈은 보지 않은 채, 옆머리를 살짝 꼬아가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신하루는, 이미 무언가를 느꼈다.
"......"
그리고 이내 조용히 이설아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옆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신하루가 바라본 그곳에는, 멀리서 에고스틱이 탄 비행선이 열심히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신하루는 몸을 돌려 그쪽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다. 그 배까지 따라잡기 위해.
그리고 그녀가, 막 날아가기 직전.
허공을 박찬 그녀의 팔을, 누군가 잡아 탁 멈추었다.
".....?"
"하루야? 어디가?"
이설아. 그녀가 황급히 에고스틱을 향하여 가려는 스타더스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설아의 귀에는, 신하루가 한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한 한마디가 그녀를 파고들었다.
"놔."
그 순간적인, 거의 살기까지 느껴지는 말에 순간적으로 살짝 흠칫하여 팔을 놓칠뻔한 그녀였으나.
그래도 손을 놓치는 않고, 꿋꿋하게 서서 말을 이었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줘서 에고스틱과 만나게 되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말로.
자신이 그녀를 막아야 한다는 굳은 결심으로, 이설아는 침착하게 신하루에게 말했다.
"하루야. 아까 에고스틱 저놈이 자기를 쫓아오면 부산에 마저 폭격을 가한다고 했어. 쫓아가면 안될거 같아서 그래. 저 아래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그, 그치?"
초반에는 힘있게 말한 그녀였으나,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하루의 표정에 점차 말끝을 흐린 이설아.
그렇게, 여전히 이설아가 스타더스의 팔을 붙잡은 채,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신하루는 끝내 팔에 힘을 풀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이내 그러면서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다시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온 하루.
그리고 그 틈을 틈타, 이설아가 다시 입을 열어 하루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하루야, 오해도 풀린거 같으니까 이만 돌아갈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래. 아, 그리고 나는 사람들한테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께 없으니 먼저 돌아갈께. 알았지?"
"으... 응."
그렇게 신하루는 이설아를 향해 슬쩍 웃음을 보이더니, 다시 허공을 박차 반대편, 도시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날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설아는 그제서야 한숨과 함께 몸에서 한순간에 힘이 풀리며, 그녀가 서있던 얼음발판에 거의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진짜."
십년 감수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하루의 놀랍도록 싸늘하고 차가운 표정에, 이설아는 순간 자신과 에고스틱의 관계가 들킨 줄 알고 긴장했다.
이 모든 테러가 다 자신과 에고스틱이 짜고 친 연극이라는걸 알게되면, 스타더스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안되는 상황.
그러나 다행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거기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아마 자신과 에고스틱이 웃으면서 대화하는 그것만 본 것 같은데.
"...어라?"
거기까지 생각한 이설아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고작 그거 때문에 저렇게 세상 무서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저정도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하루는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잠깐... 이거 혹시...?"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간 이설아는, 무언가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 하루가...
***
찬 바람이 불어닥치는, 바다 위.
신하루는 사람들이 모인 내륙을 피해, 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
서울에서 부산까지.
협회장을 설득해, 섀도우워커를 깨워 부산까지 한번에 이동하여 온 그녀.
그리고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테러가 다 끝난 직후, 웃으면서 떠들고 있던 에고스틱과 아이시클의 모습이었다.
으득.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린 신하루는, 자기도 모른 채 이를 악물었다.
....그 광경을 떠올리기만 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건 왜일까.
"....그래."
시간이 좀 지난 후, 약간 진정한 하루는 숨을 들이 마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까 설아에게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거 같네. 나중에 바로 사과해야겠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녀는 다시 한번, 풀어진 상태로 웃고있던 설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봐도, 빌런 앞에서 지을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 그럴수도 있지.
에고스틱 그라면.
그런 설아를 마주보며 웃고있던 에고스틱의 얼굴 또한 다시한번 떠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다시 굳는걸 느끼며 신하루는....지금까지 에고스틱과 만났던, 이때까지의 일들이 플래시백 되는걸 느꼈다.
자신이 모든걸 포기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연락하여 할 수 있다고, 그녀를 한 점 의심없이 믿는다는 듯 말하던 에고스틱의 목소리.
자신이 죽게 생기자, 스스로를 희생하여 자신을 구하고 상처를 끌어안은 채, 힘겹게 웃던 에고스틱의 표정.
자신이 허공에서 힘을 잃고 추락하자, 싸우다 말고 와 공중에서 자신을 껴안아 지켜주던 에고스틱의 품.
...그래.
그래.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자신이 아닌 다른 약한, 순진한, 평범한 다른 여성이라면.
에고스틱에게,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그를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자신 앞에서도 잘 하지 않던 웃음을 짓던 아이시클처럼.
그가 숨기고 있는 것들, 어쩌면 테러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한 비밀들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바보처럼 웃던 그녀처럼.
"....하."
거기까지 생각한 신하루는,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래.
드디어 자신이 왜 그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그의 그런 수작질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건 자신뿐이다.
그가 무엇을 하든, 꿋꿋하게 그를 잡아넣을 수 있는건 자신뿐이다.
그의 그러한 행동들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건 자신뿐이다.
그러니.
그는, 오직 자신만이 상대해야 한다.
오직 자신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다.
"....."
에고스틱과 스타더스가 엮인지도 벌써 꽤나 되었다.
그렇게 그 사이 차곡차곡 누적된, 그를 만나며 느낀 감정들과 생각 그리고 추측들이 한 곳에 모여.
스타더스 안에서 에고스틱 그에 대한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그는.
자신만이 상대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그녀만의, 빌런이라는걸.
***
"아니... 뭐지?"
"왜 그러십니까 보스?"
스타더스를 피해 비행선을 이끌고 도망치던 나는, 무언가 등줄기를 찌르는 오싹함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니, 잠깐..."
뭔가 좆된거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거 뭐냐?
나는 까닭 모를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요즘들어 뭔가 늘 갑자기 쎄할때가 있기는 했는데...
오늘따라 뭔가 그게 더 심한데?
"뭐냐...."
나는 그냥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스타더스트!}라는 히어로 만화를 기반으로 했던 이 세계의 장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