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화
화계획된 연극
이번 테러의 메인 이벤트로 기획된 전투.
에고스틱 대 아이시클.
그 전투의 서막이 밝았다.
"하하하! 어디 한번 이것도 버텨보시죠!"
나는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배를 조작해 아이시클을 향해 대포를 몇발 더 날렸다.
펑-
펑-
커다란 발사소리와 함께, 그녀를 향해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대포알들.
그렇게 자신을 날아오는 수십발의 포탄을 보며.
공중에서 잠시 멈춘 아이시클은, 이내 숨을 들이마쉬더니 전방향으로 얼음을 내뿜었다.
"흡!"
하늘색의 얼음들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이내 그녀에게 날아오던 수많은 대포알들이, 전부 얼어붙어 중간에 멈추었다.
"오호..."
그리고 그런 광경을 보며, 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아이시클... 생각보다, 능력을 꽤 잘다루는데?
원작에서는 워낙 스타더스에게 초점이 집중되어있어 아이시클은 생각보다 언급이 적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나름 잘 싸우는거 같다. 얼음을 내뿜는 능력도 시원시원하니 좋고.
어쨌든, 그게 지금은 중요한게 아니지.
나는 곁눈질로 채팅창을 확인했다.
[오 어케막은거냐]
[아니 아이시클 생각보다 잘싸우는데???]
[마 이설아도 나름 잘싸운다 안카나. 부산의 명물이데이]
[시원하게 얼음을 뿜어주는 재벌 3세 ㅗㅜㅑ]
[스타더스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져서 몰랐는데 ㄹㅇ얘도 나름 치는데?]
나름 아이시클에 대하여 호의적인 반응.
상황이 나쁘지 않게 흘러간다는걸 파악한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어느덧 폭탄세례를 뚫고는 다시 공중에 얼음발판을 생성해가며 내가 탄 함선쪽으로 다가오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비릿하게 웃어주며 다시 외쳤다.
"흠, 꽤 하시는군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가라, 1호!"
"흐엣?"
나는 옆에서 조작을 하고있던 1호에게 총을 쥐어주고 아이시클을 향해 던져버렸다.
아니, 사전연습 다 해놓고 이렇게 얼타면 어떻게?
"흐아아앗!"
내가 발휘한 염동력으로 공중에 둥둥 뜬 채 배밖으로 날아간 1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시클에게 외쳤다.
"으, 으, 으아아아아!"
...외친다기보다는 어째 고함을 지르는거 같은데.
하여튼, 파이팅은 좋다. 그렇게 그는 기세넘치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시클에게 돌격했다. 총을 우두두두 쓰면서.
"흥! 제가 이런거에 맞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신에게 총알의 세례가 날아오자, 팔을 X자로 크로스하고는 정면에 얼음을 생성하여 총알을 막는 아이시클.
그렇게 그녀는 총을 얼음으로 막아가며, 천천히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으... 으아아아!"
그리고 끝내 아이시클의 코앞까지 도달한 1호는 결국 총을 붙잡고 얼음으로 둘러싸인 그녀를 직접 가격하려고 들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총알이 날아오는걸 멈춘 틈을 타, 아이시클은 손을 뻗어 다가오는 1호에게 냉동빔을 쏘아버렸다.
"으아아아악!"
마지막 신음을 끝으로 꽁꽁얼은 얼음동상이 되어버린 1호.
아아... 그는 좋은 엑스트라였습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얼음동상이 된 그를 염동력으로 다시 배까지 옮겼다. 다 끝나고 녹여줘야지.
[1호ㅋㅋㅋㅋㅋㅋㅋ왜이리 불쌍하냐ㅋㅋㅋㅋㅋ]
[아니 취급이 ㅅㅂㅋㅋㅋㅋㅋ]
[1호좌 오늘 한거: 자기소개, 기합, 총질 단 3개후 얼음행...]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에고랑 아이시클이 싸우는 사이에 애꿎은 1호만 터졌네ㅋㅋㅋ]
[아이시클 어지간한 빌런은 얼음빔으로 다 해치울듯?ㅋㅋㅋㅋ]
[시원하게 가네ㅋㅋㅋㅋㅋ]
1호에게 조의를 표하는 채팅창.
1호가 갔으면, 당연히 다음은 뭐다?
"다음은 당신입니다! 2호씨, 출격!"
"네? 으, 으으. 알겠습니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2호도 출격했고.
이내 잠시후 배 위에는 토끼 헬멧을 쓴 얼음동상 2개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쓰읍... 3호씨 당신은...."
나는 오들오들 떨며 나를 바라보는 노란색 토끼 헬멧을 쓴 3호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그래, 한명쯤은 배를 몰아야겠지.
"좋습니다! 좋아요, 아이시클씨. 제 충직한 부하들을 전부 쓰러트리셨군요!"
[아까까지만 해도 친구라더니 그새 부하로 격하당했네 ㅅㅂㅋㅋㅋㅋㅋ]
[친구ㅇㄷ?]
[역시 그냥 부하였던거냐고ㅋㅋㅋㅋ]
[하긴 친구를 적한테 날려버리는 놈이 어딨냐고ㅋㅋㅋ]
[망고단의 부하 토끼단...이거 아주 커엽네요]
[얼음동상 삽니다 선제시요]
[자기는 안나서고 부하들 먼저 보내는거 개악질이네ㅋㅋㅋㄱㅋ]
걱정하지마라, 지금 나선다.
이내 2호까지 쓰러트린 뒤 배가 있는 곳까지 막힘없이 달려오는 아이시클을 보며, 나는 드디어 발걸음을 옮겼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아무래도 이제는 제가 직접 상대를 해야겠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망토를 펄럭이며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배의 갑판 주위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수많은 무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허공에 가만히 뜬 채, 팔을 뻗어 아이시클을 향해 가르키고는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모두 쳐라!"
그렇게 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시클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무기의 공격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무기들을 보며 아이시클을 이를 악물고 같이 냉동빔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아니 망고스틱 개얄밉네ㅋㅋㅋㅋ]
[ㄹㅇㅋㅋ자기는 가만히 서서 그냥 농락만하는]
[슬슬 아이시클이 안쓰러운ㅜㅜ]
[아이시클 지금 한 5cm 움직였나? 얼음으로 막는데 급급해가지고 움직이지를 못하네]
[망고 텐련아 좀 움직여!!]
쓰읍.
이 사람들이 정말, 염동력으로 이러는게 쉬운줄 아나보네.
염동력으로 이 많은 것들 드는게 얼마나 힘든줄 알어? 벌써 피 한사발 예약이라고.
그러나 일류악당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내색하지 않는 법.
나는 가만히 서서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이시클씨, 이게 전부입니까? 하하하! 제가 기대도 많이 했는데 이게 다라니 실망이 커요 커!"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팔을 허우적대며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몸을 얼음으로 감싼 채 내 무기폭격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아이시클.
그렇게 시청자들마저 슬슬 아이시클이 불쌍하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할 때.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을 얼음으로 감싼 채 묵묵히 버티고만 있던 아이시클.
그러던 와중, 잠시 내 공격이 아다리가 안맞아 살짝 덜해진 그 순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을 가리던 팔을 풀더니, 정면을 양해 얼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으아!"
그녀의 기합과 함께, 내 공격을 받으며 비축해두던 힘을 정면으로 한순간에 뱉어버린 그녀.
평상시보다 훨씬 굵고 강력해보이는 냉동빔, 아니 숱제 파괴얼음광선이 내가 있는 비행선으로 쏘아졌고.
그걸 본 내가 급히 순간이동으로 도망쳤지만.
그 공격은 애초에 나를 목적으로 한게 아니었다.
파치지지지지징.
얼음의 파괴광선이 쏘아진 곳은 내가 있던 쪽이 아닌, 바로 비행선의 정면부분.
그녀의 농축된 힘이 배를 덮치자, 배의 앞부분은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빠르게 배의 앞쪽을 뒤덮는 하늘색의 냉기로 흘러넘치는 얼음들.
"으악! 보스! 살려주세요!!! 배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위쪽에서 키를 조작하던 3호의 울부짖음에 내가 뒤를 돌려 배를 바라보니.
비행성은 이미 앞부분이 거의 다 얼어붙은 채, 위태롭게 기우뚱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며 한방 먹었다는 듯, 이마를 탁 치고 아이시클한테 외쳐주었다.
"이럴수가! 뭘 노리시나 했더니, 제가 아닌 아예 본체인 이 비행선을 노리신 거였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허허, 웃으며 말을 흘렸다.
"이거,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 그려."
한방 먹기는 뭘 먹어. 애초에 처음부터 나와 그녀가 상의해서 나온거다. 배를 공격하는게 어떠냐.
그러나 이 사실을 시청자들이 알 리 만무. 그들은 우리의 예측대로,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캬 이건 몰랐네]
[아이시클의 큰그림ㄷㄷㄷ]
[이게 그 성동격서인가 뭔가냐?]
[망고스틱 한방 먹은wwwwwwww]
[어어 저 배 막 넘어질꺼 같은데]
[근데 이와중에 3호 파들파들 떨고있는게 킬포네 ㅅㅂㅋㅋㅋㅋㅋ]
[저 배도 못쓰게 생겼는데 이제 어캄?]
어카긴 뭘 어케.
"에고스틱! 당신이 준비한 그 비행선은 이제 무용지물입니다. 이제 어떡하실건가요?"
멀리서 나를 향해 외치는 아이시클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어떡하기는 뭘 어떡하겠습니까!"
이제 그 뭐냐.
"튀어야죠! 안녕히계세요!"
연극은 끝났다 이말이야.
나의 갑작스러운 런 소리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충격 그자체.
[????????]
[안돼!!! 이렇게 끝나는게 어딨어!!!!]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벌써끝? 벌써끝? 벌써끝? 벌써끝?벌써끝? 벌써끝? 벌써끝? 벌써끝?]
[스타더스랑 싸울때는 이렇게 빨리 끝나지 않았는데... 이게 다 아이시클이 상대라 그렇다...]
[원 모어 띵 어디갔음???? 이게 뭐임????]
[아니 이제 치킨 막 왔는데 이러는법이 어디써!!!]
미안. 그러는법이 여깄다.
하여튼, 시청자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다시 비행선은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겁하게 도망가는건가요! 정정당당하게 싸우세요!"
"비겁하다니요! 정정당당한 후퇴입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을테니 각오하시길. 아, 참고로 쫓아오셨다가는 부산에 폭탄 몇십발 준비해놓은거 쏘는 수가 있으니 가만히 계시고요!"
"치잇..."
연기를 하다보니 물이 올랐는지 세상 아쉽다는 표정을 잘짓는 아이시클을 뒤로하고, 나는 카메라를 향해 작별인사나 던져주었다.
"그러면 여러분! 더 에고스트림 쇼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안녕히계세요."
[가지마ㅏ]
그렇게 마지막 채팅을 끝으로, 카메라도 꺼졌고.
이내 여전히 웃으며 배위에 서있던 나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뱃머리에 털썩 기대었다.
"아이고 힘들어..."
"당신, 괜찮나요?"
아까까지의 나를 적대하는 표정은 어디가고, 세상 걱정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아이시클.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힘없이 대답할 뿐이었다.
"아이고... 좀 죽겠긴 한데, 괜찮아. 그보다, 너 나한테 이렇게 말해도 돼? 이거 찍히고 있는거 아니야?"
"훗. 저 이설아를 뭘로보는 건가요. 이쪽은 다 제 손바닥 위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하여튼 에고스틱씨. 정말 고마워요. 벌써 제 이름이 당신과 함께 뉴스에 떴네요. 유성기업 주가도 벌써 꿈틀하고 있고요. 이거 효과가 너무 좋은데요?"
"그래. 실컷 고마워 해둬라. 자주는 못하니 기대하지 말고. 아 그보다, 우리 1호 2호 얼음좀 녹여줘."
"아? 알았어요."
그렇게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사르르 녹는 얼음동상 2개.
그렇게 토끼단 3인방이 다시 모여 눈물겨운 상봉을 나눈 뒤, 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속도를 내는 배.
"근데 너 얼음능력 생각보다 강하더라? 별 기대도 안했는데?"
"섭섭하네요. 제가 스타더스... 우리 하루한테 밀려서 그렇지, 저도 꽤 강하거든요? 다음에 한번 제대로 싸워봐요."
"그래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답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거 진짜 괜찮은거 맞나?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히어로랑 빌런이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 하하호호 웃으며 떠드는 이 모습. 누군가 보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날 수도 있겠어.
여전히 내 앞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아이시클에게 이제 슬슬 헤어지자고 할 무렵.
그녀의 등 뒤 저 멀리서 무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잠깐, 저거 뭐야? 설마 대통령 그놈이 미사일 또 쏜건가? 정신 못차리고?
"야 잠깐."
"네?"
내가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 말하자마자,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고 바로 뒤를 돌아보는 이설아.
저거 진짜 미사일인가?
아니, 미사일이라기에는 너무 작은데.
...사람인가?
그렇게 내가 잠시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에도 그 무언가는 이쪽을 향해 무섭게 날아왔고.
이내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날아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빨간 라텍스 옷을 입은 여자.
....스타더스?
"....아니, 잠깐, 쟤가 왜 여기서 나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이설아도 당황한 상태.
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 일류 악당의 반사신경으로 빠르게 토끼단들에게 외쳤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쓰는
에고류 비기 제 36조-
대탈주(大脫走).
"야!!! 빨리 전속력으로 밟아!"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튀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