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화
화비행선 공습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끝없는 바다.
작렬하는 태양이 내뿜는 뜨거운 볕이 물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그곳 위에서.
거대한 함선이, 둥실둥실 떠서 향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갑판 맨 앞쪽.
정면에 펼쳐진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는 그곳에서.
나는 카메라를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ㅋㅋㅋㅋ]
[망고! 망고! 망고! 망고!]
[오빠 날 가져요 오빠 날 가져요 오빠 날 가져요 오빠 날 가져요]
[방송 시작하자마자 웃음벨이네ㅋㅋㅋㅋㅋ]
[아니 여기 어디임?? 바다 무엇???]
[배에 탄거같은데 왜 하늘이 보이냐]
[오늘은 또 무슨 이벤트냐고ㅋㅋㅋㅋㅋㅋ]
여전히 경각심이라고는 1도 없는 채팅창을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지는 모르겠는데... 뭐,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지.
하여튼, 나는 바다를 등지고 팔을 벌린 채, 카메라를 향해 말을 이었다.
"여러분. 지난 방송에서 언급했듯, 제가 빌런들을 위한, 빌런들에 의한, 빌런 연합을 만들겠다고 한거 기억 나십니까? 에고스트림- 이라고, 제가 이름 붙였었죠."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씨익 웃는 채, 내 옆에서 쭈뼜대던 토끼헬멧 3인방을 끌고 왔다.
"그런 의미로 소개합니다! 저희 에고스트림과 협력관계를 맺기로 하신 새로운 빌런분들입니다. 그런 의미로 시청자들한테 소개 한말씀 해주시죠!"
갑작스럽게 카메라가 자신들을 향하자, 화들짝 놀라는 3인방.
그러더니 이내, 가운데 있던 빨강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레, 레, 레피스단이고요... 네, 어, 으, 아, 안녕하세요?"
무슨 면접관 앞에서 긴장한 신입사원마냥 달달달 떠는 1호.
아니, 빌런이란 놈들이 이렇게 쫄면 어떡해 이것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웰케 긴장했냐ㅋㅋㄱㅋㅋㅋㅋ]
[안녕은 왜 2번 말하냐고ㅋㅋㅋ]
[아니 이게 빌런이야 초등학교 반장선거야 아ㅋㅋㅋㅋㅋㅋ]
[빌런이 아주 커여운wwwwwww]
[토끼헬멧 할짝이고 싶다]
[아니 캐릭터 존나 신선하네ㅋㅋㅋㅋ 뭐임?]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무슨 학예회 나간 것도 아니고 이렇게 쫄면 어떡해?
이미 1호는 거기까지 말하고 정신이 나갔는지 멍하니 서있기만 하고 있다. 옆에 있는 2호랑 3호도 마찬가지.
안되겠다, 이거 내가 도와줘야겠구만.
나는 영혼이 나간채 멍하니 있는 1호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걸친다음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하하하. 이 친구가 방송이 처음이라 좀 긴장한거 같네요. 우리 1호, 웃어야지? 하하하."
"하하..."
"이 친구들이 레피스단이라는 친구들인데, 이 멋진 비행선을 가지고 있길레 제가 꼬드겨 우리 에고스트림과 독점 계약을 맺게 했습니다. 바다에서 놀고있는데 이 비행선을 끌고 오는걸 제가 보았지 뭡니까. 그래서 제 권유로 에고스트림과 같은 편이 된거죠!"
"...하하하, 네. 그말이 맞습니다."
[아니ㅋㅋㅋㅋㅋ 왜이렇게 보니까 망고가 양아치같냐]
[아니 빌런 이름이 어떻게 1호ㅋㅋㅋㅋㅋ]
[아니 친구 맞어?? 아무리봐도 갱생당한 빌런같은데?]
[왜 저 1호란 놈 말할 때 영혼이 나간거같냐]
[웃어야지 ㅇㅈㄹㅋㅋㅋㅋㅋ]
[이게 n년차 방송선배의 조언?]
[딱보니까 쟤네가 저 비행선끌고 테러하려는거 에고스틱이 눈치챈 다음에 두들겨패고 '이건 제겁니다' 시전한거같은데 기분탓이냐?]
....어떻게 알았지?
어쨌든 이런 사소한 이야기는 넘어가고, 나는 오늘의 본론이나 꺼냈다.
"하여튼 마침 보니까 부산도 거의 코앞이네요! 네, 예상했던 분들도 계셨겠지만, 제 이번 테러는 부산 정복입니다. 해운대를 에고공화국으로 만드는 유쾌한 여정!"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 비행선은 어느새 부산의 항구 앞까지 둥둥 떠서 왔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팔을 활짝 펼치며 입을 열었다.
"자! 부산은 이제 제겁니다. 대포 장전!"
"""옙 보스!"""
뒤에서 1,2,3호의 때창과 함께, 함선 벽쪽에 달려있는 포문들이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외쳤다.
"발사!!!"
"""발사!"""
뒤쪽에서 들려오는 이들의 함성과 함께, 포문에서 대포알이 펑펑 도시쪽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테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잠시 저쪽으로 치워버린 뒤.
조용히 입을 열고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 테러 시작한다. 사람들은 다 대피시켜놨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어폰쪽에서 들려오는 이설아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
[네, 당연하죠. 이미 유성그룹의 이름으로 다 대피시켜놨어요. 아마 이제 곧 정부보다 유능한 유성으로 기사가 나가겠죠, 후훗.]
"그래, 그래. 그리고 아마 습격은 여기 남쪽구역 여기만 당분간 할꺼거든? 넌 어떻게 할래."
[음... 갑자기 바로 등장해도 좀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갈게요. 대충 남쪽은 아무도 없고 동남쪽에 아직 대피못한 인원들 몇명 남아있으니까, 거기 습격하실때쯤에 제가 나서면 될거 같은데요?]
"그래. 알아서 해라. 그럼 조금 있다가 보자고."
[네. 그때 봐요.]
그렇게 연락을 끊은 뒤, 나는 다시 배 아래를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정경은,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배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도시의 모습.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거다. 이게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을.
애초에 테러의 시각과 개요를 전부 히어로와 사전에 상의하고 시작한, 일종의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
지금까지 내가 스타더스한테 일으킨 테러들은 전부 그녀를 성장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들이라면, 이번 테러는 다르다.
내가 꼭 스타더스가 있는 서울에서만 테러를 일으키는건 아니라는걸 밝히는 의도이기도 하고, 이 레피스단과 협력해서 에고스트림을 확장시키는 의미이기도 하며, 아이시클의 인기 상승도 겸사겸사 도와주는 테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미 철저히 계획된 연극이라는 것.
이미 모든 실행 플랜도 다 짜놓았다. 대충 내가 도시에 빵야빵야 하고, 사람들마저 공격받기 직전 아이시클이 딱하고 나서서 사람들을 구하고 우리를 물리쳐 도시를 구한다.
뭐, 흠잡을데가 없이 깔끔한 일.
나는 그렇게 공중에 뜬 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바닷바람도 맞아가며 새로운 곳에서 하는 테러도 신선하고 좋지만.
역시, 스타더스랑 하는게 제일 좋기는 하다.
뭐, 지금은 아이시클에 집중해야 겠지만.
그렇게 나는 바닷가 쪽을 실컷 공격한 뒤, 더 안쪽으로 나아갔다.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쇼지.
***
펑. 펑.
공격당하는 도시.
그리고 도망친 사람들.
"와... 저게 뭐시다냐."
도시를 그림자로 뒤덮는 거대한 비행선을 보며,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대피한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비행선.
"으악!"
그리고 그들이 공격받기 직전.
피슈우우우웅.
갑자기 어디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앞으로, 거대한 얼음의 장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어떤 여성의 외침.
"안심하세요 여러분! 제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여자는.
A급 히어로, 아이시클이었다.
사람들이 딱 공격받기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등장한 그녀.
날아오는 대포에 얼음을 날려 공중에서 멈춰세운 그녀는, 이내 비행선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에고스틱이라고 했나요? 지금 당장 폭격을 멈추세요! 아니면 당신은 무사하지 못할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 후, 위쪽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
[하하하! 그럴순 없죠. 당신이 바로 부산의 자랑이라는 아이시클이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면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보시죠!]
그렇게 그의 외침과 동시에, 아이시클을 향해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폭탄들을 향해 얼음을 전방위적으로 발사해, 막아내기 시작한 그녀.
그러며 아이시클은 공중에 얼음 발판들을 만들어, 폴짝 폴짝 뛰어가며 비행선이 있는 위쪽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래요, 어디한번 와서 잡아 보시죠!]
"에고스틱! 당신을 제가 이 자리에서 쓰러트리겠습니다!"
어쩐지 연극마냥 과장된 두 히어로와 빌런의 대화를 끝으로.
한쪽에서는 얼음이, 한쪽에서는 폭탄이 난무하기 시작하며.
그렇게 부산의 상공에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서울, 히어로 협회 본사.
그곳 최상층에 있는 협회장 사무실.
그 위에서, 협회장은 곤란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금발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스타더스. 지금 당장 부산으로 가겠다고?"
"네."
"....어, 지금 내가 보기에는 아이시클이 충분히 잘 상대하고 있는거 같은데, 굳이 가야겠나?"
"혹시나 모를 추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아무래도 에고스틱 전문가인 제가 가는게 맞다고 봅니다. 설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거 같기도 하고요."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차분히 말하는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며, 협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텅 빈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봐도 굳이 갈 필요는 없을거 같은데, 얘가 왜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