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92화 (92/328)

제 92화

화하이잭

대한민국 남쪽의 해안.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그곳에서, 우리는 요트를 끌고 앞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우... 이게 낭만이지."

짠 냄새를 품은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세찬 바다바람은 내 망토를 휘날리는 가운데.

우리는 목표로 삼은 곳을 향해 바다를 가로질렀다.

"야, 이수빈. 너 배 모는건 대체 어디서 배웠냐?"

요트 위에서 멍하니 있는건 심심한지, 키를 잡고있는 수빈씨에게 다가가 물어보는 최세희.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수빈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어디서?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혼자 독학했는데?"

"...? 그게 말이 되냐?"

최세희가 믿을 수 없다는 말투길래, 뒤에있는 내가 한마디 해줬다.

"수빈씨 못하는게 없으시다. 기차랑 비행기도 몰 줄 알어."

"....뭐? 진짜?"

"응."

"아니... 하."

최세희는 어질어질 하다는 듯 머리를 붙잡았다. 세희야. 수빈씨는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다르셔. 이해하려고 하면 안돼.

그와 별개로, 서로 반말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둘이 전보다 훨씬 친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 좀 이상하긴 한데 저번에 잡아온 한은그룹 연구원놈이랑 김선우를 탈탈탈 터는 과정에서 둘이 친해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저번 병기사건 이후, 한은그룹에 쌓인게 많은 서은이와 수빈씨의, 거기에 최세희까지 가세해 진득하게 괴롭힌 뒤 협회에 던져줬다.

얼마나 괴롭혔냐고? 음, 김선우 박사가 맛이 갔다는것만 알면 된다. 그러게 누가 인체실험 하래? 걘 내가 안 죽인걸 고맙게 여겨야 해.

하여튼. 우리의 현재 목표는 부산 아래쪽 바다에 있다.

목표는 단 하나.

"그래... 저기, 슬슬 보이네."

흐릿하게 낀 바다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거대한 배.

마치 중세시대에 바이킹들이 쓴 것마냥 대포가 달려있고, 커다란 흰 돛이 위풍당당하게 걸려있는 배가,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배의 특별한점은.

"야, 뭐냐. 배가... 떠있어?"

그래.

배가 공중에 떠있다.

저 거대한 비행선이 오늘 우리가 하이재킹 할 일종의 해적선, 빌런의 배 엘리스(Alice)다.

*

한은그룹 거대 병기의 서울 공습 이후, 원작 [스타더스트!]에서는 서울이 초토화 되는걸 시작으로 점점 작품의 분위기가 어두워져간다.

그리고 작품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제일 큰 이유는 역시, 강한 빌런들의 계속되는 등장.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빌런들이 다 고만고만 했다. 불가항력적인 재앙을 제외하고, 평균적인 빌런들은 다 만만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등장하는 빌런들이 강해진다. 스타더스 그녀가 감당하기 버거울정도로, 점점.

거기에 빌런들의 수마저 점점 많아진다. 질과 양 모두를 잡은 웰메이드 빌런들의 등장에 사회가 혼란해지는건 당연지사.

심지어 주로 서울에만 집중해서 테러를 일으키던 기존과는 다르게, 서울 외 지역에도 강한 빌런들의 하나 둘 등장한다. 바야흐로 춘추빌런시대.

원작에서는 이로 인해 스타더스가 점차 지쳐가며 작품의 분위기도 어두워지고, 본격적으로 피폐한 이야기가 시작된다...만.

나의 등장으로 이제 상당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스타더스는 원작보다 더 빠르게 강해졌고, 애초에 앞으로도 내가 나서서 다양한 빌런들을 회유하거나 처리할 예정이니.

그리고 그 첫번째로.

우리는 부산을 조져버리는 빌런을 잡으러 왔다.

"와... 이게 뭐냐?"

최세희는 위를 올려다보며 혀를 내두르곤 말했다.

그래, 처음에 보게 되면 놀라운 광경이다. 거대한 비행선이 공중에 둥둥 떠서 진격하는 광경이라니.

바다를 가르는걸 넘어 바다 위에서 하늘을 가르는 전함의 모습에 감탄하던 최세희는, 이내 나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그래서. 계획이 뭐라고?"

"일단 저 위에있는 애들을 두들겨 패는거지."

나는 깔끔하게 그렇게 말했다. 두들겨패서 교화되면 우리편 되는거고, 아니면... 뭐, 고기밥 되야지.

"어쨌든, 자. 내 손 잡아. 수빈씨, 저희 갔다올게요."

"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다녀오세요."

"하아, 그래. 가자."

최세희는 주먹을 한번 휘두르며 손을 풀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우리는, 저 비행선 위로 순간이동했다.

빌런 교정의 시간이 왔다.

***

저 비행선을 이끌고 노략질을 하는 놈들은 바로 총 3명으로 구성되어있는, 레피스단이란 놈들이다.

토끼 귀같은게 달려있는 오토바이 헬멧 비스무리한걸 전원이 쓴게 가장 큰 특징인 이들.

주로 다른 나라에서 대포달린 비행선을 이용해 해적질을 하던 이놈들의 원작에서 첫 등장은, 부산을 습격하는걸로 시작된다. 그때 당시는 아무런 준비가 안된 아이시클이 좀 털리고 만다. 물론 이번에는 다르겠지만.

하여튼, 거대한 비행선.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는, 세명의 인물이 있었다.

대충 가운데 있는 토끼귀가 달린 빨간색 헬멧을 쓴 놈이 서있었고, 그 옆에는 파란색과 노란색 모양의 똑같은 헬멧을 쓴 놈들. 지들끼리 수근수근 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놈들의 뒤로, 사뿐히 내려앉은 우리 둘.

그렇게 우리가 내려앉은 쪽에서 삐그덕 하는 소리가 들리자, 놈들이 고개를 휙 돌려 우리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누구냐!"

그렇게 그들이 본 것은 검은 모자에 망토까지 휘날리고 있는 나와, 옆에서 주먹을 풀고 있는 최세희.

그런 우리 둘을 향해, 가운데 있는 놈이 소리쳤다.

"너네는 누구냐!"

나를 보자마자 소리치는 가운데 있는 놈.

나는 그에게, 하품을 하며 말해줬다.

"너네 보스다 이것들아."

"무슨 개소리냐! 블루! 옐로우! 침입자다, 전부 무기챙겨!"

"예쓰!"

"예쓰!"

그렇게 옆에있는 둘이 황급히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

그걸 보면서, 나는 보따리에 싸온 야구방망이들을 염동력으로 띄울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있는 세희는 주먹을 쥐고 스파크를 튀기는 와중에.

나는 우리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한 저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나쁜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지.

"모두 쳐!!!"

그렇게 가운데 있는 토끼헬멧을 쓴 놈의 샤우팅을 시작으로.

세명이 일제히 달려들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

얼마후.

"자. 아까 뭐라고 했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세명을 향해 나는 방망이를 바닥을 향해 툭툭 두들겼다.

"대장이 누구라고?"

"에고스틱님입니다아아앗!!"

"좋아, 좋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와 최세희의 '사회화' 교육을 받은 빌런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야, 빨간색."

"네, 넵!"

제일 가운데 있던 빨간 토끼 헬멧을 쓴 애가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그래. 이렇게 대답이 빠릿빠릿하니 얼마나 좋아.

"그래. 이제 넌 우리 에고스트림이랑 한시적 동맹이다."

"네?"

"빌런연합, 에고스트림의 세컨드 파티라고. 알겠어 모르겠어."

"아..알겠습니닷!!!!"

나는 그렇게 빠따를 휘둘러 이들에게 원하는 정답을 이끌어냈다.

".....와, 진짜 이렇게 보니까 누가 빌런인줄 모르겠네."

뒤에서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최세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야, 난 이미 빌런이거든?

"어쨌든 자. 에고스트림 가입을 환영한다!"

나는 그렇게 팔을 벌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빌런 특징 첫번째. 싸우고 나면 다 친구다. 비록 친구들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내 친구임.

그렇게 이 레피스인가 래빗인가 하는 놈들은 장장 몇시간에 걸친 나의 '사회화'에 완전히 정신적으로 굴복하고, 앞으로 착한 테러만 저지르겠다는 마음속 깊숙한 서약까지 했다. 효과 좋네.

이런 식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나는 아이시클-이설아에게 연락했다.

"그래, 야. 부산침공 준비 완료했다. 대충 대포달린 비행선타고 도시 앞쪽에 빵야빵야 할 예정인데, 넌 어떻게 할래."

[...비행선이요? 당신은 참, 늘 기상천외한걸 들고 오시네요. 날짜는 언제로 하실건가요? 그럼 음... 시민들한테 미리 공습을 경고해 점수도 따고... 대충 제가 막는 모습을 보이면 이미지 상승에...]

"그리고 야, 좀 까리한 돛 하나 맞춰줘. 검은색으로."

[네? 뭐 알았어요. 그정도야. 그러면...]

그렇게 구체적인 테러날짜와 실행계획까지 모의한 나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좋아. 이건 됐고.

이다음에는... 그래. 나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채 내 눈치를 보고있는 前빌런들을 향해 말을 던졌다.

"너네, 부산 습격하고 싶다고 했지?"

"네? 아닙니닷!!! 저희는 얌전히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지 말고, 너네 나랑 같이 일 하나 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더 큰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의 환한 웃음에 바들바들 떠는 이 토끼빌런들.

우리, 친하게 지내야지?

이제 '파트너' 인데.

그렇게 나는 그들과 함께 테러를 준비했다.

대충 부산에 비행선끌고 가서 대포 몇발 쏴주면 그게 테러지.

어차피 아이시클과 짜고치는 고스톱이라, 별것도 없다. 그냥 방송각만 잘 나오게 하면 되는거지.

그렇게 결전의 시간이 밝았다.

***

부산 시내.

평화로운 그곳에서,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위잉-. 위잉-.

그리고 곧, 도시 전역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아 아. 유성그룹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 현재 부산에 테러리스트들이 습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협회보다 먼저 알아채 급하게 연락 드립니다. 지금 당장 대피하세요!]

유성그룹에서 만들어진 모든 전자기기에서, 아이시클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시민들은 당황하면서도, 황급히 모두 대피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운대 쪽에서 보이는 바다 지평선 너머, 무언가 거대한게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하늘에 떠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배.

남쪽에서 바다 위를 날아 위풍당당하게 날아오고 있는 그것.

그러한 거대한 비행선 위쪽에 달려있는건, 검은색의 커다란 돛.

그리고 거기에는, 큼지막하게 EGOSTREAM이라고 적혀있는 모습.

나는 그 배 맨 앞쪽 갑판 위에서, 팔짱을 끼고 망토를 휘날리며 저 멀리 보이는 부산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에고스틱님! 모든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보스! 대포들도 준비 완료입니다!"

"좋네 제군들. 당장 배를 더욱 빠르게 진격시키게!"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부산의 넓은 도시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흠. 서울이 아닌 바닷가에서 테러를 일으키는건 또 신선하구만.

그렇게 나는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방송을 틀 준비를 했다.

자, 쇼를 시작해볼까.

***

[에고스트림 방송 ON]

[방송떴다ㄱㄱㄱㄱㄱㄱㄱㄱㄱ]

[오 ㅅㅂ비행선 뭐냐ㅋㅋㅋㄱㅋㄱㄱㅋㄱ]

[아니 배 ㅈㄴ까리하네ㅋㅋㅋㅋㅋ]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여기 부산 아니냐????]

[부산에 망고스틱 등장ㅋㅋㅋㅋㅋㅋ]

[부산 게이들아 서울직송 망고맛좀 봐라ㅋㅋㅋㅋ]

[아이시클 개같이 떡상 직전ㄷㄷ]

에고스틱이 등장했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바로 출동하려고 했던 신하루는 글을 읽고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봐도, 적혀있는 내용은 에고스틱이 서울이 아닌 부산에 출몰했다는 내용.

"테러를 일으킨 곳이... 여기가, 아니야?"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죽은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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