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화
화다른 장소, 다른 인물
요즘 설아가 이상하다.
"에고스틱 그놈 정말 나쁜놈인거 같지 않아? 그런 사악한 놈이 팬카페까지 있다니, 정말 세상 말세인거 같아. 그치?"
"....응."
하루 그녀가 친구 설아의 집에서 같이 지낸지도 벌써 몇주.
요즘들어 계속되는 히어로 일에 잠시 지친 마음을 쉴겸 설아의 초대로 놀러오게 된 이곳 부산에서, 그녀는 대체로 설아와 함께 지내며 놀았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설아가 이상하게 에고스틱 욕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테러도 대체 몇번이나 한거야? 이거 완전 악질아니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니까."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에고스틱의 얘기를 자주 하는 자신의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하루는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확실히 그가 빌런은 맞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나 차마 히어로인 그녀가 빌런을 조금이라도 두둔할 수는 없기에, 늘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나쁜 새끼는, 그냥 사지를 찢어 죽여버려야해."
....그거는 좀.
"내가 봤을때 걔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이코패스일꺼야."
아닌데. 자기 목숨까지 걸고 나 구해줬었는데.
"어떻게 테러를 그렇게 몇백명을 상대로 일으켜? 순수악 그자체라니까."
....그래도 사망자는 아직 한명도 안나왔는데.
"그리고 보면 늘 하루 너만 부르잖아. 소름끼치지 않아?"
딱히...
그렇게 신하루는 늘 그런 대답을 속으로 삼킨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설아네 집 벽면에 걸린 티비를 보고 있을때 쯤.
[특집! 에고스틱 심층 분석!]
흠칫.
갑자기 나온 뉴스 프로에 하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역시나.
"어! 저놈!"
소파 뒤에서 들려오는 설아의 목소리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아, 또 시작이겠구나.
*
영상 자체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대충 에고스틱이 공표한 에고스트림을 통해 알 수 있듯, 그가 앞으로 다른 빌런들과 연합하여 나올 확률이 높다는것.
그리고 테러를 일으키는 지역은 웬만하면 서울, 그리고 그를 상대할 히어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스타더스로 고정될거라는 예측.
뭐 내용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옆에서 리모컨을 가진 채 계속해서 에고스틱 욕을 쏟아내는 설아가 문제였을뿐.
"........"
이쯤되면 하루 그녀도, 뭔가 이상하던걸 깨달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에고스틱에 집착하는거지? 무슨 계기로?
예전에 에고스틱 그에대해 상담했을때만 해도 크게 신경쓰지 말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줬던 설아였다.
갑자기 하루아침부터 욕하는게 굉장히 이상했다.
그리고 더, 기묘한 것은.
"에고스틱이 아주 사악한 빌런인 이유가 저것만 봐도 나오는게 또 뭐냐면..."
그녀의 직감이 느끼기에.
설아가 하는 말에는, 딱히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
그렇게 하루는, 조용히 약간 가라앉은 눈동자로 설아의 말을 듣고있을 뿐이었다.
***
산골짜기에 박혀있는 큰집.
일명 에고스트림 본부, 더 빅하우스(王大家).
나는 그곳에서, 모두에게 선언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네?"
"부산은 너 혼자 저번에도 갔다왔잖아. 또?"
최세희가 이해가 안된다는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오빠. 부산에는 왜 가는데요?"
"테러하러."
내 심플한 대답에, 하은이는 이해가 안된다는듯 되물었다.
"테러를 부산에서 해요? 오빠 원래 서울에서 맨날 스타더스만 콕 찝어서 했잖아요."
"맞아요. 다인 오빠같은 스타더스 바라기가 다른 곳에서 한다고요?"
다들 믿을 수 없이 바라보는 모습.
아니, 내가 뭘. 내가 언제 이런 이미지가 된거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막 스타더스한테 집착하는거 같잖아. 물론 내가 스타더스를 위해 사는건 맞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막 스타더스만 하루종일 생각하고 그런건 아니다. 아니라니까.
하여튼, 나는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봐봐. 다들 오해하고 있는데, 나는 딱히 스타더스만 막 그렇게까지 집착하고 그러는건 아니야."
"저... 다인씨, 그렇게 말씀하시기에는 스타더스 팬카페까지 운영하시고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수빈씨가 내 말을 듣더니 황당하다는 듯 일침을 놓았다. 예리하군. 이럴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말을 돌리는게 정답이다.
"크흠. 어쨋든, 그런 의미로 이번에는 스타더스 말고 다른 히어로가 있는 지역에도 한번 테러를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설아가 하도 졸라데가지고 한 것도 있지만, 내가 스타더스만 늘 저격하는건 아니라는걸 밝히는 의도도 있다. 악질우결충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 지금 딱 타이밍이 좋기도 하고. 아마 곧 부산에 그놈들이 올테니까.
"그런 의미로 최세희, 너는 나랑 같이 간다."
"엥? 나?"
최세희는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르키며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아니, 나 참.
"당연히 너지. 우리중에 무력 가진게 너밖에 없는데, 당연한거 아니야?"
"아. 하긴, 글킨 하지."
최세희는 납득했다는 듯 머리를 까딱거렸다. 그렇게 휘날리는 그녀의 주황색 머리칼 사이로, 뒤에서 서은이의 부루퉁한 표정이 보였다.
"....나도 빨리, 해야지..."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불길할 따름이다.
그렇게 내가 서은이를 힐끔거리는 동안, 음음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최세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질문했다.
"아니, 근데. 나는 저번에도 테러하지 않았어? 이번에도 또 해?"
의문어린 그녀의 시선에,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아니,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테러 안해."
"그럼?"
"당연히 다른 놈 시켜야지."
나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었냐. 에고스트림. 빌런연합을 창설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당연히 이제 다른 빌런들이랑 연합해야 하는 법이다.
정확히는 연합이 아니고, 사실상 내가 부려먹는게 되겠지만. 켈켈켈.
그렇게 속으로 사악한 생각을 하며, 나는 수빈씨에게도 말했다.
"그리고 수빈씨. 배 몰줄 아시죠?"
"네? 아, 큰 배는 잘 모르는데 작은 배라면 네, 어느정도."
"역시. 그럼 수빈씨도 이번에 저와 함께 가시죠."
나는 손을 튕기며 그렇게 말했다. 좋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설아한테 연락만 하면 되겠네.
"바로 다음주, 저희는 부산으로 떠납니다."
그렇게 우리의 다음 테러가 결정되었다.
물론 부산가서 바로 테러를 할 수 있는건 아니고, 또 다른 빌런을 꼬시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은.
자,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가 스타더스 바라기가 아니라는걸. 나는 모두의 테러리스트다! 스타더스를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스타더스'만' 생각하는건 아니라는걸. 그리고 특히.
'빚, 갚은거지?'
...그날, 나를 향해 살짝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신하루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스타더스랑 거리를 둘 필요가 어느정도 있겠어.
테러나 준비하자.
***
"다음주요? 좋죠. 요트요? 훗, 절 뭘로 보시는거에요? 제가 유성그룹의 이설아에요. 최고급품으로 준비해놓을 테니까, 걱정말고 몸만 오세요."
"아 그리고, 제가 요즘 하루한테 당신에 대해 계속 나쁘게 말하고 있기는 한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효과 별로 없는거 같은데요? 그래도 그냥 하라고요? 흐응...."
"그럼 네, 알겠어요. 그때보죠."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가 전화를 끊은 이설아는, 자기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홀로 웃었다.
이미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여러가지 주판이 튕겨지고 있었다. 이번에 에고스틱이 부산에서 일으킬 테러를 자신이 진압함으로서 얻을 인지도, 인기, 그에따른 영향력과 이미지에 상승.
"완벽하네."
이미 그녀는 에고스틱 그와의 통화 이후, 계획이 착착착 세워지고 있었다. 일단 하루는 며칠뒤에 집에 돌아간다고 했으니, 그 이후니까 상관없고... 그가 보내준 여러 자료를 이용하면 딱 될거같다.
그녀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계획대로 착착 되고있다. 이대로라면 몇년안에 어느정도 그녀가 목표한 바를 이룰수도 있겠고...
그렇게 이설아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그녀를 맞이해주는건, 그녀가 냉장고에 구비해둔 망고맛 아이스바를 먹고있던 하루의 모습이었다.
"하루야아~."
"으응? 앗."
이설아는 집에 도착하지마자 아이스크림을 문 채로 자기에게 손을 흔드는 하루를 껴안아버렸다.
하아. 하루의 가슴에 안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으응? 갑자기 왜그래?"
하루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왜이러냐는 듯 당황해 하면서도, 자신을 떼어내지는 않고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자리에 서있었다.
사실, 설아는 하루의 이런점을 좋아했다. 히어로로써 활동할때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강인하게 빌런들에게 호통치며 나서지만, 사실 사석에서 알 수 있듯 하루는 원래 꽤 조용한 성격이다. 마치 안 까칠하고 착한 고양이같은 느낌? 그녀가 이렇게 껴안아도 딱히 큰 반항없이 조용히 있어주는것만 해도 그렇다는걸 알 수 있다.
MBTI도 사실 I, 그러니까 내성형이라고 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제서야 설아는 하루를 놔주었다. 여전히 의문가득한 시선으로 설아를 올려다보는 하루.
그런 그녀를 향해, 설아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냥. 요즘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좀 오버했네."
"....그래?"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그날 하루종일, 설아는 기분이 많이 좋아보였다. 살짝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있고, 텐션도 높았고, 거기에 오랜만에 에고스틱을 욕하는걸 까먹은 듯 그에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하루는, 뭔가 점점 더 가슴이 답답해지는걸 느꼈다.
....대체, 왜인지는 전혀 모르는 채.
그렇게, 에고스틱이 처음으로 부산에서 테러를 일으킬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