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90화 (90/328)

EP.90 외도

내가 이설아와 협력하기로 한 이유는, 꽤 많다.

일단 그녀가 뭐 흑막은 흑막이니만큼, 처리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 결과, 전체적으로 봤을때 그녀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는게 더 유리할거 같다는 결론이 섰다. 원작에서 본 바로는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군림하니까.

그리고 특히, 그녀를 흑막으로 냅둔다면 내가 그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건 해킹, 테러 이 두개가 끝이기에, 더 큰 힘을 위해서는 빌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건 이설아가 제격이고,

그렇게 내가 그녀와 협력을 맺고싶다는 제안을 했고.

일주일 뒤 그녀가 이를 승낙하면서, 히어로 빌런의 유착관계가 성릭되었다.

"음. 커피 맛이 좋네."

"후후, 당신, 은근 커피를 즐기실 줄 아네요. 이건 에스메랄다 스페셜 입니다. 굉장히 구하기 힘든 품종이라고요?"

그게 뭔데 임마.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줬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법이거든. 에스...마틸다? 뭐, 그런것도 있나보지.

"근데 당신, 아까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반말하시네요?"

이설아는 나를 살짝 흘겨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뭐.

"이제 서로 동맹관계인데, 존댓말하는게 더 이상하지 않아? 너도 말 놔."

내가 그렇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눈을 샐쭉하게 뜨는 그녀.

"됐어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끼는 이설아였다. 뭐, 원작으로 안거지만 쟤는 어차피 신하루한테만 말을 놓고 다른 모두에게는 존대를 쓴다. 딱히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말.

하여튼, 그녀는 살짝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는 해도 꽤나 고분고분하다. 정확히는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고 해야겠지. 아마 저번에 내가 준 USB가 꽤 큰 효과를 발휘했을꺼다.

이설아. 내가 알기로 그녀는 이맘때쯤 재계를 정복하는데 집중하고 있을꺼다. 야망이 큰 그녀이니만큼, 다른 기업들을 열심히 집어삼키는데 주력하고 있겠지. 특히 한은그룹까지 망했 으니.

물론 그게 쉬운것만은 아니라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짜잔! 내가 등장해서 그냥 답지를 줘버렸다. 앞으로 한 몇년은 더 굴러야 할 수 있을 것들을 내 USB에 담긴 정보들 가지고 다 해 결할 수 있겠지. 물론 정보들은 서은이를 써서 취합했다. 서은아 고마워.

어쨋든, 그녀는 내 작은 선물로 인해 나에 대한 경계심이 꽤나 줄어든 것 같다. 실제로 지금도 전보다 분위기가 훨씬 편하고, 아마 내가 정말로 그녀와 협력할 생각이라는 것과, 실제로 편먹으면 좋을거라는 계산이 서서겠지만.

"저기요. 다 적었으니 한번 읽어봐요."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있을 때, 앞쪽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산 유성그룹 꼭대기층.

우리는 한쪽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서로 합의할 사항등을 정하고 있던 와중이다.

"어? 그래. 이게 기본 계약서야?"

"네. 어차피 나머지는 구두로 정할꺼니까 기본적인거만 적었어요."

펜으로 슥슥적은 그녀의 정갈한 필체로 적혀있는 내용.

대충 읽어봤더니, 요약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자.' 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보 추가 제공. 그래. 내가 힘 닿는데 까지는 도와줄게. 어차피 이제 원팀인데 너가 잘되야 나도 좋으니까."

"진짜죠?"

"그래. 속고만 살았냐?"

눈을 반짝이는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정말 이때부터 야망 하나는 대단하구만.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 멋지다. 그 꿈이 한국정복이라는게 좀 미스긴 한데....

"그리고 뭐, 추가하고 싶은 내용 있으면 지금 말해. 여기서 다 정하자고."

"그래요? 그럼... 앞으로 주에 한번은 저랑 만나요."

"뭐라고?"

"한주에 한번은 저랑 만나서 서로 정보공유 하자고요. 동맹이라면서요? 동맹이면 얼굴은 자주 봐야죠."

"...나보고 매주 한번씩 부산에 내려오라고?"

에반데.

내 부정적인 기색을 읽었는지, 그녀가 흥-거리며 말했다.

"싫으면 제가 서울로 올라가도 되고요."

우리가 맺은 계약은, 사실 단순하다.

나는 그녀가 대한민국을 정복하는 걸 돕고, 그녀는 나를 방해하려는 세력- 그게 정부는 협회든 간에- 전부 알려준다. 끝.

근데 이게 굳이 매주 얼굴만나서 할만한건가? 가끔만 만나도 충분할거 같은데?

한주에 한번은 오바고, 한달에 한번 만나자. 그럼 딱 되겠네."

"뭐가 딱 된다는 건가요?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황당하다는 듯 반문하는 그녀.

결국 우리는 의논끝에 2주에 한번 만나기로 합의됐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복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고?"

"말도 마세요. 하아, 그냥 순순히 합병될것이지 어찌나 튕기던지..."

내가 은근슬쩍 요즘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떠봤더니, 술술 말하는 그녀. 한탄섞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랬구나.

그렇게 우리는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서로 속마음과 정체를 숨기고 겉으로는 반대로 활동한다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말이 잘 통했다.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일이네.

그렇게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우리는, 어느덧 신하루의 이야기에 도달했다.

"우리 하루... 하아. 맞다. 헉. 이거 정체 모르고 있던거 아니에요? 내가 실수로 유출해버린건가?"

"내가 그걸 모르겠어? 스타더스, 신하루, 다 안다."

"하긴, 당신이라면 알거라고도 생각했어요. 근데 말이에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몹시 궁금하다는 듯 내쪽으로 고개를 가까이하고는 말했다.

"근데요... 이게 제가 예전부터 궁금했던건데, 왜 그렇게 스타더스한테 집착하는 거에요?"

"집착? 내가?"

"네. 당신이요."

내가 언제 집착했어. 음해다.

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뻔뻔한 태도를 취하자, 그녀는 눈웃음을 치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딱 우리 하루를 표적삼아서 성장시켜줄려고 하는거 아니에요? 살짝 게임에서 대신 레벨업 시켜주는 그런 개념처럼 하는거 같던데. 빌런 활동도 그 개념의 연장선이고, 맞죠?"

얘 왜 이렇게 예리해?

내가 대답을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일어나 내 옆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가 앉아있는 옆 의자쪽으로 다가와 팔을 대는 그녀. 그러더니, 마치 나한테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스타더스가 전 좀 부럽더라구요. 알잖아요. 당신과 한번 싸울때마다 우리 하루 인기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고개를 숙여, 아예 내쪽으로 몸을 기댔다.

늘어진 그녀의 하늘빛 머리칼이 내 앞을 가림과 동시에, 옆쪽에서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나한테 말을 하는 그녀.

"...그래서, 부탁하는건데. 저한테도, 테러해주시면 안되요? 우리 동료잖아. 아이시클 나와 한마디 하면서, 저한테도 해줘요. 응?"

이제는 아예 간드라지는 목소리로 나한테 속삭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서로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설아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 그녀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를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그녀쪽으로 올려.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이마를 부여잡고 물러나는 그녀.

얼굴은 빨갛게 물들고는 눈가에 눈물까지 보이는 그녀."이게 뭐하는거에요!"

세상 서럽다는듯 외치는 그녀를 향해,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긴 뭐야. 정신 차리라는 의미지."

"뭔 소리에요! 이, 이거 성추행이에요. 신고할거야!"

"A급 히어로, 빌런한테 자기 집에서 성추행당해 충격. 기사거리 나겠다 그래."

여전히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채로 나를 째려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엄청 약하게 쳤는데 엄살은.

....그리고, 아마 그녀가 저렇게 오바하는 것도 부끄러워서일꺼다. 아니, 방금 분위기 뭐야? 대체 왜저러는지 모르겠다. 나를 편하게 대하는건 알겠는데, 갑자기? 유혹이라도 할려고 한 건가.

하긴, 귀도 빨개진거 보면 그게 맞는거 같다. 역시 아직은 어리숙하구만.

하여튼, 그녀의 제안이나 돌이켜보자.

테러. 아마 한다면 부산을 말하는거겠지?

"....그리고, 테러는 안돼."

"뭐? 왜요!"

나를 향해 쏘아붙이는 그녀.

왜냐니. 그야 내 테러는 스타더스에게만 허락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답을 하려던 나는, 생각해보니까 아이시클을 키워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 그녀가 베헤모스 잡는걸 내가 대신 처리해버리는 바람에 파워업 이벤트가

날아갔으니, 어느정도 책임을 져줘야겠지.

.....근데, 그게 꼭 지금일 필요는 없잖아?

나는 말을 바꿔서 다시 말했다.

"...그래, 해줄게. 근데 지금은 안돼. 나중에."

"나중 언제요!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주세요."

그런건 없다.

나는 일단 빨리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너 스타더스랑 친하지?"

"하루요? 친하죠. 근데 그게 갑자기 왜 나오는거죠?"

나는 그녀가 황급히 원래 주제로 돌아가려고 하기전에 말을 이었다.

"별건 아니고, 앞으로 하루 앞에서 내 욕좀 해줘."

"....네?"

그녀는 순간 내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녀가 얼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지속적으로 내 뒷담화좀 까달라고."

"...왜요. 변태에요?"

뭐라는거야.

"그러니까, 하루가 당신을 의심하기 전에 미리미리 욕을 해서 확실히 빌런으로 인식시켜달라는 거에요?"

"그래."

"....어, 이게 통할거같지는 않은데요."

"아니야. 통해."

내가 누군가. 스타더스 전문가 아닌가.

나는 이게 먹힌다고 백프로 확신할 수 있다.

신하루가 누군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그녀 아닌가.

거기에 눈치도 별로 없고, 특히 친구들의 말에 잘 휩쓸리는 만큼 옆에서 자꾸 내가 극악무도한 빌런이라는걸 상기시켜주면 나를 의심하지도 않고 계속 적대하고 말거다.

비록 내 앞에있는 이설아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말이다. 아니야, 날 믿어!

"...뭐 일단은 알았어요. 노력은 해볼게요."

"고맙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일어났다.

할거 다했네. 돌아가자.

내가 그렇게 일어나자, 다시 앞쪽에 앉아있던 이설아도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가게요?"

"어. 다 정했잖아? 2주후에 다시 보자고, 번호도 교환했으니."

"...아니, 잠시만요! 그럼 제 테러는요?"

그건 언젠가 해줄게. 언젠가.

라고 말하려고 할때, 나는 잠시 번뜩이는 생각이 나를 스쳤다.

생각해보니까 곧 부산에 그 이벤트가 있지 않나?

그거라면.. 어쩌면.. 꼭 내가 안나서도...

나는 기존에 하려는 말을 바꿔 다시 말했다.

"그래. 좋아. 곧 연락할테니까, 받어. 알았지?"

"진짜죠? 조금 있다가 저도 해주는거죠?"

"진짜라니까. 속고만 살았다."

나는 좋아하는 아이시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히어로가 빌런한테 테러 좀 일으켜달라고 조르는 광경이라니.

이게 뭐야. 승부 조작도 아니고, 이게 바로 애들은 모르는 어른의 뒷세계라는거다. 원래 정치권도 지들끼리 앞에선 싸우는 애들 뒤에서는 형님아우 하면서 술한잔 기울이고 그러는거라고.

그렇게 추가 합의까지 끝난뒤, 나는 드디어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뭐, 잘풀린거 같네.

...근데 너무 잘풀린거 같은데?

***

"아가씨. 뭐 좋은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시 집으로 향하는 차의 뒷자리.

좌석에 기대 오늘의 일을 복기해보던 이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걸 느꼈다.

에고스틱. 그와의 만남은 아주 괜찮았다.

방송에서 봤을때는 그냥 미친놈일거라 예상했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깜짝 놀랄정도로,

특히 하루말고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하루와도 나눌 수 없는 얘기를 그는 다 이해해주니.

"....맘에 드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이설아. 그녀는 에고스틱이라는 이 남자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능력있고, 말도 잘 통하고, 신뢰도 간다. 한마디로, 꽂혔다.

자신의 안목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그녀이니만큼,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 이 남자는 무조건 자기편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녀는 그렇게 정했다.

어린시절부터 갖기로 마음먹은건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어코 손에 넣은 그녀였기에, 그녀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어두운 차의 뒷자리에서.

하늘색 눈동자만이, 어둠 사이에서 반짝였다.

에고스틱. 그녀는 그를, 자기것으로 만들고 말겠다.

***

"....뭔가, 불안해."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째서인지, 불안감이 해소되기는 커녕 점점 커지고있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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